지난 1월 28일 「‘고용 없는 성장’은 팩트가 아니다」라는 취지의 글을 올렸다. 경제-정책에 관심 있다면, 그래서 언론 기사를 유의 깊게 봤던 사람이라면 ‘고용 없는 성장론’이 하나의 정설로 회자되고 있다는 것을 안다. 이는 진보/보수 경제학자들이 일치하며 진보/보수 언론 사이에 이견이 있지 않다.
경제학자들이 어떤 주장을 하려면 논거-팩트가 있어야 한다. ‘고용 없는 성장’의 경우도 주장하려면 논거-팩트가 있어야 한다. 가장 많이 인용되던 논거-팩트가 ‘취업유발계수’와 ‘고용유발계수’였다.
취업유발계수는 GDP가 10억 원 증가할 때 증가하는 취업자 숫자다. 예컨대 김상조 교수가 쓴 『종횡무진 한국경제』라는 책은 총 8장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3장의 제목은 「낙수효과는 유효한가」다. 주된 내용이 취업유발계수와 고용유발계수가 ‘경향적으로 줄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취업유발계수와 고용유발계수가 경향적으로 줄고 있는 것 자체는 팩트다.
문제는 이 데이터가 ‘고용 없는 성장’의 근거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경제 규모가 커지면서 단위당 고용 규모가 줄어드는 것은 너무 당연한 일이다. 흔히 경제학에서 이야기하는 ‘수확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는 표현과 ‘부가가치유발계수, 취업유발계수가 줄고 있다’는 표현은 사실상 동의어다.
위 그림은 1979-2016년 사이의 취업유발계수를 장기 시계열로 그래프로 그린 것이다. 취업유발계수가 ‘우하향하는 곡선’의 형태임을 알 수 있다. 즉 ‘수확 체감의 법칙’이 작용한다.
부가가치 유발계수와 취업유발계수, 고용유발계수가 ‘줄고 있는 것’은 경제학 교과서에 나오는 ‘수확 체감의 법칙’이 작동하고 있다는 말과 동의어기 때문에 이를 ‘고용 없는 성장’의 논거로 활용하는 모든 주장은 엉터리 주장으로 간주하면 된다. 왜 그런지에 관한 자세한 설명은 앞서 링크한 1월 28일 글을 참고하기 바란다.
‘고용 없는 성장’에 적합한 개념은 ‘고용탄력성’(=고용탄성치)개념이다. 고용탄력성 개념은 ‘경제성장률 대비 고용증가율’이다. 둘 다 증가율을 다룬다. 경제가 1% 성장할 때 고용이 몇% 성장하는지 보여주는 비율이다.
위 그림은 1987년 1분기부터 2006년 4분기까지의 고용탄력성이다. 이 자료는 국책연구기관인 한국노동연구원이 2008년에 발간한 『통계로 본 노동20년』(이병희 편)에 수록되어 있다. 이에 김○○ 교수님의 경우 실제로 한국경제의 고용탄력성이 낮아지고 있다고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이야기했다.
(…) 실제로 한국경제의 고용탄력성은 낮아지고 있습니다. 2015년 0.504, 2016년 0.421입니다. 왜 그럴까요? 한국경제 고용의 전체 사이즈(취업자수는 계속 증가)는 커져가고 있는데, 고용량의 증가가 일정하다면 고용탄력성은 낮아지기 때문입니다. (…)
“아… 내가 뭘 또 잘못 안 것인가…” 싶어서 김○○ 교수님의 지적을 고려해 두 가지를 추가로 알아봤다.
- 2010년대 이후 고용탄력성의 실제 흐름이 어떤지.
- 고용탄력성의 ‘연차별 흐름’이 실제로 어떠한지. 김○○ 교수님의 지적대로 최근 실제로 줄어들고 있는 것인지.
결론부터 말하면 김○○ 교수님의 지적은 세 가지 지점에서 타당하지 않다.
- 2015년과 2016년, 2개년도만 비교하는 것은 부적절하다. ‘중장기적 경향’을 중심으로 논하는 것이 맞다.
- “고용탄력성이 낮아졌다는 것” 자체가 사실이 아니다. 역시 중장기적 경향에 근거해서 말할 때 사실이 아니다(아래 후술한다).
- 경제 규모가 커진다고 고용탄력성이 낮아진다고 단정하는 것 자체가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한국경제의 경우 2010년대 이후 경제 규모는 커지지만 고용탄력성은 오히려 ‘증가하는’ 경향을 보인다(아래 후술한다).
위 그림은 1979년부터 2016년 기간 동안의 연도별 고용탄력성을 보여준다. 경제성장률이 ‘해마다’ 변동하듯 고용탄력성 역시 ‘해마다’ 변동한다. 전년에 비해 증가하기도 하고 전년에 비해 감소하기도 한다. 그래서 중요한 것은 ‘중장기적 경향’이다.
그림을 보면 1979년-1997년 기간 동안 평균 고용탄력성은 0.263이었다. 반면, 1998년-2016년 기간 동안 평균 고용탄력성은 0.368이었다. 즉 고용탄력성이 오히려 ‘증가’했다. 1998년-2016년 기간 동안 평균 고용탄력성은 0.368이었다. 이 지점에서 0.368이라는 수치를 기억할 필요가 있다.
2011년-2016년 기간의 고용탄력성을 보면 ▴0.47(2011년) ▴0.78(2012년) ▴0.54(2013년) ▴0.64(2014년) ▴0.47(2015년) ▴0.41(2016년)이다. 즉 2011년-2016년 기간의 고용탄력성은 1998년-2016년의 평균보다 ‘더 높은’ 고용탄력성을 보여주고 있다. 이 경우는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다. 그 반대다. ‘고용이 늘어나는 성장’에 해당한다.
위 그림은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고용정보원이 발간한 『2015 KEIS 노동시장 분석』에 수록된 내용이다. 2000-2014년의 고용탄력성 동향을 보여준다. 우상향하는 그래프가 나오는데 이는 상당히 안정적으로 정(+)의 관계가 성립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5 KEIS 노동시장 분석』은 다음과 같이 썼다.
[그림1-16]에서 보는 바와 같이 경제성장률과 고용증가율간은 정(+)의 상관관계가 존재하여 장기적으로도 이 관계는 상당히 안정적이다. (…) 이러한 고용탄력성은 최근 들어 2000년대 초반보다 높아져, 우리 경제의 일자리 창출력이 개선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 2014년 고용탄력성은 0.64로 우리 경제가 1% 성장할 때 고용은 약 0.64% 증가함을 의미한다. (…) 2000년대보다 2010년대에 들어 고용창출력이 회복하고 있다.
그럼 ‘고용 없는 성장론’이라는 담론은 왜 등장했을까?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론해볼 수 있는데, 첫째는 애초부터 ‘고용 없는 성장’의 논거로 활용하면 안 되는 ‘고용유발계수’와 ‘취업유발계수’가 경향적으로 줄어드는 것을 ‘잘못’ 인용한 것에 유래한다. 김상조 교수 등이 여기에 해당한다.
둘째는 2000년대 중 후반에 고용탄성치가 예년에 비해 적게 나오자 이를 우려한 것에서 유래한다. 실제로 2006년-2010년의 기간 동안 고용탄력성은 ▴0.25(2006년) ▴0.22(2007년) ▴0.22(2008년) ▴-0.43(2009년) ▴0.21(2010년)이다. 1998년-2016년 기간 평균 고용탄력성인 0.368에 못 미치는 수치다.
이런 ‘고용탄력성 둔화 경향’은 2011년부터 확연하게 반등한다. 2011년-2016년 동안 0.41-0.78의 수치로 평균을 상회하는 고용탄력성을 보여준다. 앞서 인용했던 것처럼 1987-2006년 동안 고용탄력성은 일정한 수준을 유지했고 이를 ‘증가한 취업자 숫자’로 환산하면 경제성장 1% 증가 시 약 5.9만 명이 증가하는 패턴이었다.
그런데 2010년대 이후 고용탄력성이 급증한다. 위 그림은 한국고용정보원의 자료를 인용한 것으로 2011-2014년의 기간 동안 고용탄력성의 증가와 실제로 늘어난 취업자 규모가 얼마나 대단한지 알 수 있다.
성장 1% 증가시 취업자 증가는 ▴11.2만 명(2011년) ▴19.0만 명(2012년) ▴13.3만 명(2013년) ▴16.2만 명(2014년)이었다. 이 기간은 ‘고용 없는 성장’이 아니라 반대로 ‘고용이 늘어나는 성장’ 패턴을 보여줬다.
‘고용 없는 성장’ 담론은 2000년대 중후반에 고용탄력성이 ‘일시적으로’ 둔화하는 경향을 보이자 누군가 ‘고용 없는 성장’ 담론을 이야기한 것에서 시작됐을 것이다. 이후 한국은행 산업연관표를 통해 고용유발계수와 취업유발계수가 발표될 때마다 이를 ‘잘못된 논거’로 활용하면서 경제학자들과 언론의 경제 해설 면을 통해 확대·재생산된 것으로 추정된다.
위 그림은 경제성장률과 고용증가율이 매우 동조적인 관계임을 보여준다. 경제성장률, 고용증가율, 고용탄력성은 같은 방향으로, 유사한 패턴으로 움직인다.
‘고용 없는 성장’는 이래저래 팩트가 아니다. 언론과 경제학자들을 포함해 대부분 남이 죄다 그렇게 주장하기에 자신도 ‘느낌적 느낌으로’ 혹은 ‘잘못된 논거를 활용하며’ 주장했던 꼴이다. 2010년대 이후 패턴만 보면 1990년대와 비교해서도, 2000년대와 비교해서도 오히려 ‘고용이 늘어나는 성장’ 패턴을 보인다.
결국 일자리를 만들려면 경제성장에 유능해져야 한다. ‘일자리 정부’가 되려면 경제성장에 유능한 정부가 되는 방법밖에 없다. 예나 지금이나, 이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미션의 핵심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