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회의 학생 아르바이트생은 청소업체에서 나온 아주머니들을 ‘어머니’라고 부른다.
‘어머니’라는 호칭
개장 전 청소하시는 어머니들께서 직접 커피를 타서 감자나 계란과 함께 주셨다. 때로는 옥수수나 고구마, 빵, 과일 등이 나올 때도 있었다. 여름에는 냉커피를 타 주셨다. 그걸 다 먹을 때쯤이면 좌석표를 나눠줄 시간이 됐다.
아직까지 나를 낳아주신 어머니에게도 “어머니”라고 부르지 않는데, 낯선 아주머니를 ‘어머니’라고 불러야 한다니 참 낯설었다. 입에 붙기까지 참 어색해했던 것 같다. 꼭 그렇게 불러야 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다들 그렇게 불렀고, 어머니들도 우리보고 “아들”이라고 부르고 잘 챙겨주셨기 때문에 ‘어머니’는 피할 수 없는 호칭이었다.
지금 일하는 지점에서 어머니들이 아르바이트생들에게 커피를 타 주신다거나 ‘아들’이라고 부르는 모습을 볼 수는 없지만(여기서는 “학생”이라고 부르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같이 일하는 동생들 중에도 ‘아주머니’라는 말을 쓰는 아이들도 있지만, 나는 여전히 ‘어머니’라 부른다. 단순히 입에 익었기 때문일까.
어머니들은 야간경마 때를 제외하고 8시 30분까지 출근하셔서 물걸레질이 다 끝나야 집에 가신다. 내가 퇴근 시간을 여쭤보니 대중없단다. 저녁 7시 반이 될 때도 있고 8시가 될 때도 있고. 오후에 첫 경주를 시작해서 밤 9시 즈음에 마지막 경주를 시행하는 혹서기의 야간 경마 때는 11시 40분까지 출근하셔서 밤 10시 30분에서 11시 사이에 퇴근하신다고 한다.
어머니들이 출근을 하시자마자 악취를 맡아가며 청소를 해야 했던 것은 똥이었다. 누군가 밤에 와서 그곳을 향해 똥물을 끼얹고 도망 간 것이다. 얼마나 많이 뿌렸는지 몇 사람이나 가담했는지는 알 수 없지만 사람이 손을 사용해서 내리는 셔터가 아니라 긴 막대기를 사용해서 내려야 할 만큼 높은데도 그 천장까지 똥물이 닿은 것을 보면 어지간히 힘 있게 뿌렸나 보다.
서쪽 출입구에는 CCTV도 설치되어 있지 않아서 간밤에 누가 와서 그랬는지 잡히지도 않았다. 나중에 한 경마팬이 전해준 이야기에 따르면 자기네들 사이에서는 경마장에서 돈을 몽땅 잃고 똥물을 뿌리면 다음부터는 돈을 잃지 않는다는 미신 같은 게 있다고 한다.
손님에게 쉴 자리를 빼앗기고 군소리도 못하는 어머니들
동대문 지점에는 어머니들이 맘 편히 쉬실 수 있는 공간이 없다. 영등포 지점에는 여자화장실 안쪽에 또 다른 문이 있어서 그 문을 열면 작은 공간이 있고 어머니들은 그곳에서 편하게 쉬셨다. 동대문 지점은 그런 곳이 없다. 물론 2층 우리 대기실 옆에 그만한 크기의 방이 있어서 거기서 식사를 하시기는 하지만 그런 곳은 영등포 지점에도 있었다. 동대문 지점의 각 층에서 어머니들이 쉬실 수 있는 공간이라는 곳도 출입문 바로 옆에 붙어 있는 곳으로 개방되어 있는 공간이다.
처음 동대문 지점에 왔을 때는 엘리베이터 옆에 있는 화장실로 가는 길에 청소도구함과 함께 3석 의자 하나가 있었다. 어머니들은 그곳에서 의자에 앉아 쉬시곤 했다. 하지만 그마저도 손님들이 먼저 앉아버리면 어머니들이 쉬실 곳은 없어지는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의 손님들은 어머니들께서 쉬려고 오시면 자리를 비켜주곤 했다.
어느 날인가 나는 그 옆에 서 있었고 어머니들은 청소를 하시다가 잠깐 쉬러 오셨다. 거기 앉아 있던 손님 중에 한 분은 자리를 양보해드렸지만 다른 손님은 양보하지 않았다. 세 분이 같이 쉬러 오셨다가 두 분만 앉으시게 되었고 한 어머니는 그 앞에서 우물쭈물하시다가 끝내 계단에 가서 앉으셨다. 의자에 앉으신 어머니는 자리를 양보해준 손님에게 “여기가 원래 우리들 쉬는 자린데…”하고 말끝을 흐리며 멋쩍은 듯이 웃으셨다.
그런데 옆에 서서 담배를 뻑뻑 태우고 있던 한 손님이 그 말을 하신 ‘어머니’께 성질을 부리기 시작했다. 침을 튀겨가며 ‘우리들이 마권을 안 사면 아줌마들이 월급 타 먹을 수 있을 거 같냐, 돈 벌러 왔으면 청소나 할 것이지 쉬기는 뭘 쉬냐, 의자가 손님들 앉으라고 갖다 놓은 거지 아줌마들 원래 쉬는 데가 어디 있냐?’며 언성을 높였다.
실내경마장에서 일하며 하나 느낀 것이 있다면 이 사람들하고 아무리 친해져봤자 소용없겠구나 하는 거다. 같은 지점에서 일하는, 정반대로 생각하고 일하는 동갑내기 친구도 있지만 나의 경우는 그렇다. 조금 친해져도 자기들 돈 잃으면 성질부리기는 마찬가지기 때문이다. 아마 지금 어머니께 성질부리고 있는 이 손님도(이쯤 되면 ‘마쟁이’다.) 원래 그렇게 몹쓸 사람은 아닐 것이다. 경마하면서 자꾸 돈 잃으니까 열 받고, 열 받으니까 모든 게 아니꼬운 거겠지.
입모아 어머니들이 쉬는 공간을 ‘손님 자리’라 말하는 마사회 직원들
아무튼 이 모든 상황을 보고 있던 나는 그 손님의 말을 듣고 조금 욱하는 마음에 ‘여기가 원래 아주머니들 쉬시는 곳 맞다.’고 대꾸를 했고 그 손님의 불만은 이제 나에게까지 옮겨져서 ‘알바 하는 학생부터 싸가지가 없다.’며 화를 내고 언성을 높였다. 나를 밀치기까지 했다. 옆에는 부인으로 보이는 사람까지 있었지만 남편이 하는 짓을 말리지 않았다.
조금 소란스러워져서 경비대원 아저씨와 미화반장 아저씨까지 오시게 되었다. 경비반장 아저씨도 오셨다. 그러자 그 손님은 더 기세가 등등해져서 같은 질문을 해댔다. ‘여기가 원래 아주머니들 쉬는 데냐, 이 학생이 그러던데, 원래 쉬는 데면 써갖다 붙여놓으라’고 하며 욕을 섞어가며 성질을 부렸다. “손님이 왕이지, 이 마사회 새끼들…”
경비반장 아저씨도 미화반장 아저씨도 모두 대답은 ‘아니다, 손님들 앉는 곳이다.’였다. 경비반장 아저씨나 미화반장 아저씨의 대답에서 나는 같은 곳에서 일하는 사람으로서 조금의 연대감도 찾아볼 수 없었다. 손님은 왕이니까. 나는 나 때문에 일이 커진 것 같아 그 마쟁이에게 제가 잘못 알았다고, 죄송하다고, 앉아서 쉬시라고 말을 했다. 그랬더니 침을 튀겨가며 ‘넌 꺼져!’란다. ‘알바하는 학생 새끼가 싸가지가 없다.’고… 나는 아, 말이 안 통하는 사람이구나 하고 물러났다.경주는 막바지를 달리고 있었고 마지막 경주에 가까워질수록 사람들은 예민해지는 법이다. 그래서 마지막 경주 마감 10분전에는 흡연단속을 하지 않는다.
이 모든 상황에 웃음이 났다. 그 마쟁이는 모르는 걸까? 사람들이 왜 자기를 왕으로 모시는지. 자본주의 사회에서 분명 손님은 왕이지만 그 왕은 조건부 왕이다. ‘손님은 왕이다.’라는 말은 곧 ‘돈은 왕이다.’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내가 이 사실을 직접 깨닫게 된 것은 편의점 에서 아르바이트를 했을 때였다. 언제나 물건을 사는 입장이었다가 손님을 맞는 입장이 되어보니 확실히 느껴졌다. 내가 생전 처음 보는 손님들에게 인사를 하는 것은 그 사람들의 인격을 존중해서가 아니다. 단지 그 사람들이 돈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이건 어딜 가나 마찬가지다. 물론 이 사실은 은폐된다.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이런 은폐 노력들은 손님으로 하여금 때때로 착각하게 만든다. 이 사람들이 자기에게 굽실거리는 것은 내가 잘나서가 아니라 단지 내가 돈을 지불하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잊어버린다.
이제는 쉴 공간조차 잃어버린 어머니들
어머니들은 일이 커지고 미화반장 아저씨까지 오시자 황급히 일어나서 청소하러 가셨다. 나는 사태가 잠잠해지고 나서 어머니들께 저 때문에 쉬지도 못하고 죄송하다고 말씀을 드렸고 어머니들은 한결같이 다 괜찮다고 하셨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곳에 있던 의자는 객장 안으로 들어와 손님용 자리가 되었다. 그 후로 어머니들은 출입문 옆에 1평도 되지 않는 공간에서 쉬게 되었다.
몇 달 뒤, 동대문 지점에 새로 부임한 박 과장님은 몇 주에 걸쳐 전 층을 돌아다니시더니, 출입문 옆에 놓여있던 쓰레기가 담긴 마대를 어머니들이 쉬시는 공간에 두도록 지시했다. ‘미관상’의 이유였다. 원래 있던 자리에서 불과 1미터도 안 되는, 그것도 누구나 볼 수 있는 개방된 공간에 마대를 넣는 것이 미관상 얼마나 좋아진다는 것일까? 어머니들은 이제 커다란 마대를 가운데 두고 쉬고 계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