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 연휴, TV에서 마땅히 볼만한 프로그램이 없어 넷플릭스를 살펴보았다. 이 패턴만 봐도 TV 시대의 위험이 단적으로 보인다. 과거에는 TV에 볼만한 게 없어도 채널을 돌리면서 어떻게든 맘에 드는 채널을 찾으려 했지만 이제는 한 바퀴만 돌려보고 마땅한 채널이 없으면 바로 넷플릭스를 켜는 시대다.
최근 고향에 있는 부모님 댁의 TV가 대형 스마트TV로 바뀌면서 넷플릭스가 연동된다. 큰 화면으로 보는 넷플릭스의 UHD 4K 영상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신세계다. 아직도 어떤 순간 깜짝 놀라며 ‘화질 정말 좋네’ 하고 혼잣말할 때가 있다. 넷플릭스에서는 주로 오리지널 드라마나 영화를 봤지만 이번에는 다큐멘터리를 살펴보았다.
직장 동료에게 듣기론 넷플릭스가 고퀄리티 다큐멘터리로도 큰 인기가 있다고 했다. 물론 〈하우스 오브 카드〉나 〈기묘한 이야기〉처럼 오리지널 시리즈물의 인기가 오늘날의 넷플릭스 붐을 만들었지만 오리지널 다큐멘터리도 그에 못지않은 마니아층이 있다고. 그래서 넷플릭스를 사용하고 처음으로 오리지널 다큐를 보았다.
사실 우주에 관심이 많은 편이다. 우주 영화는 무조건 챙겨보며, 이번 설에도 영화 〈그래비티〉를 세 번째 다시 봤다(이 역시도 넷플릭스로! 넷플릭스 만세!). 다소 비현실적일 만큼 광활한 우주와 이에 비해 현실적으로 파란 지구에 호기심이 자극되는 느낌을 받는다. 또한 우주에서는 예측할 수 없는 일로 항상 위기가 발생한다. 그 위기를 해결하는 모습과 사고법, 대처법 등을 보는 것도 우주물을 좋아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그런 내가 리스트를 살펴보다가 선택한 다큐멘터리는 바로 〈마스 제너레이션〉. 제목부터 호기심을 끌기에 충분했고 바로 재생을 눌렀다. 보는 내내 많은 영감을 받았던 다큐멘터리 〈마스 제너레이션〉에서 떠올렸던 생각을 기록해보고자 한다.
왜 지금의 10대는 ‘화성 세대’일까?
화성에 제대로 관심을 둔 건 〈마션〉이라는 영화 덕분이었다. 영화 줄거리는 이렇다. NASA의 아레스 3 탐사대는 화성을 탐사하던 중 모래 폭풍을 만나고 팀원 마크 와트니가 사망했다고 판단해 그를 남기고 떠난다. 극적으로 생존한 와트니는 화성에서 살아남을 방법을 치열하게 고민하고 자신이 살아 있음을 지구에 알리기 위해 노력한다.
이후 NASA와 와트니는 비록 느리지만 의미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탈출할 방법을 찾아간다. 영화에는 와트니가 화성에서 생존하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는지, 지구와의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어떻게 화성을 탈출하는지 잘 드러나 있다. 이 영화를 보고 난 뒤 막연하게 생각했던 ‘화성’이라는 존재에 더욱 실체적인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화성 탐사에 대해 인류는 지금까지 어떤 상상력을 가져왔는가. 영화와 TV 드라마를 통해 우리는 화성에 관해 항상 상상해왔고 화성 탐사 로봇의 이름을 ‘큐리오시티’ 즉 호기심이라고 붙일 정도로 아직 인류가 도달하지 못한 미지의 행성으로 여겨왔다. 그 상상의 방점을 영화 〈마션〉이 찍었다.
아레스3 탐사대의 화성 탐사 이야기가 곧 우리 시대가 맞이할 이야기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인류가 그동안 바라던 화성 탐사가 NASA의 SLS(Space Launch System)와 오리온 우주선, 그리고 일론 머스크가 이끄는 스페이스X 등의 항공 우주 기업들의 활약으로 빠르면 2020년, 늦어도 2030년까지는 화성에 인류가 발을 내딛게 될 것으로 점쳐진다.
지금의 10대는 〈마션〉 같은 영화를 통해 인류의 다음 우주 목표는 화성 탐사 및 정착이라는 점을 확실하게 인지하는 세대다. 이 청소년들이 우주인으로서 최소의 자격을 갖추는 때가 바로 인류의 화성 탐사가 본격화 될 수 있는 기술적인 토대가 갖춰질 때다. 그래서 지금의 10대를 ‘마스 제너레이션’ 즉 화성 세대라고 부르는 것이다.
NASA의 스페이스 캠프는 어떤 모습일까
NASA에서 10대 청소년을 대상으로 스페이스 캠프를 진행한다는 사실은 예전부터 알았다. 하지만 디테일한 프로그램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다큐멘터리 절반가량은 스페이스 캠프에서 미래의 우주인을 꿈꾸는 청소년들이 어떤 프로그램에 참여하는지, 그들은 우주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왜 우주를 좋아하는지, 화성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인터뷰를 통해 보여준다.
인상 깊었던 것은 이들이 모두 16-18세에 불과하지만 확실한 자신만의 생각과 의견이 있다는 것이다. 왜 화성이 다음 우주 목표가 되어야 하는지 설명하기도 하고 미국 행정부가 NASA의 예산을 감축하는 것을 노골적으로 비난하기도 하고 대중들의 관심에서 NASA가 사라져가는 부분이 안타깝다고 허심탄회하게 이야기한다.
또 예산 감축으로 인해 우주 왕복선 프로젝트에 차질이 생기자 소련의 소유즈 우주선 좌석을 비싼 가격에 구매해 미국인 우주인을 태워 보내는데 이는 매우 자존심이 상하는 일이라고 목소리를 모았다. 이들을 보면서 이 나이 또래에 이런 생각을 할 수 있다는 것이 놀라웠고 자신만의 소신과 신념을 얼마나 가졌는지가 꿈의 원동력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새삼 깨달았다.
로켓 제작을 하면서 물리학을 응용해 설계 공식을 만들어보기도 하고, ‘파이썬’이라는 컴퓨터 언어를 통해 로봇 프로그래밍을 해보면서 우주 로봇 공학자의 꿈을 키워나가는 학생도 있었다. 각자가 확고한 자신만의 관심 분야가 있었고 이를 토대로 어떤 우주 과학자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그들의 머릿속에 명확하게 있었다.
마지막으로 스페이스 캠프가 굉장히 ‘현실적인 경험’으로 설계되어 있다는 점에서 놀랐다. 로켓을 제작하는 실험에서 로켓 제작 미션과 함께 이들에게 부여된 건 바로 ‘예산내역서’였다. 프로젝트 총예산이 얼마인지 사전에 세팅해 각각의 부품에는 얼마의 예산이 필요한지 목록이 있었다. 캠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무제한의 예산이 아닌 제한된 예산에서 가장 효율적인 로켓을 만들어야 했다.
예산이 넘어가면 부품을 다른 것으로 교체해야 했고 쓰고 싶지만 예산상의 이유로 쓰지 못하는 부품이 생기기도 했다. 굉장히 현실에서 부딪힐 만한 문제를 가정한 실험이다. 이런 경험을 통해 캠프에 참여하는 학생들은 우선순위를 통해 꼭 필요한 부품을 우선 장착해야 한다는 점과 사용하고 싶지만 예산상 사용할 수 없는 부품이 생길 수도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를 깨닫는다.
우주 항공 산업의 발전상을 한번에
이 다큐멘터리가 의미 있는 또 다른 점은 인류의 우주 항공 산업이 어떻게 시작되었고 어떻게 발전했는지 알기 쉽게 설명해준다는 것이었다. NASA의 창립과 NASA가 어떤 방향으로 우주 산업을 이끌었는지 보여준다.
소련에 첫 로켓 발사를 허용하며 우주 산업 넘버원에서 밀린 미국은 급히 NASA를 조직해 관련 기술을 연구 및 개발했다. 그 결과 소련보다 먼저 달에 우주인을 보냄으로써 우주 강대국의 자리를 탈환한다. 이후에는 우주 왕복선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인류가 우주여행할 여건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다.
하지만 이후 수십 차례 우주 왕복선을 발사하며 진전을 꿈꿨으나 별다른 성과를 내지 못했고 이는 미국 국민과 행정부의 외면을 받은 결정적인 계기가 된다. 우주 왕복선 프로젝트가 별다른 진전이 없자 미국인의 우주 열광은 금세 식었고 미국 행정부는 NASA의 예산을 감축하기 시작했다. 많은 이가 NASA를 향해 우주 왕복선 프로젝트 이후의 ‘넥스트’가 없다고 지적했다.
새롭게 안 것은 ‘존 브라운’이라는 인물이다. 브라운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미국과 적대적인 관계였던 독일 나치군의 로켓 연구원이지만, 소련에 밀린 우주 기술을 만회하고자 미국은 브라운을 영입한다. 이후 브라운의 진두지휘 하에 미국의 항공 우주 산업은 급속히 발전하고 그는 이런 업적 덕분에 대통령과 겨룰 권력을 가졌다. 지금의 NASA에 명예를 주고 미국이 소련과 함께 우주 강대국이 되도록 한 인물이 누구일까 궁금했는데 이번 기회에 제대로 알았다. 차후 더 깊게 알아볼 예정이다.
그 밖의 인사이트
이 다큐멘터리의 주 메시지는 항공 우주 산업 투자가 헛된 꿈을 향한 투자가 아니라는 점이다. 항공 우주 산업 투자를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입장에서는 막대한 예산을 허무한 곳에 사용한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이 다큐멘터리는 오히려 오늘날의 모든 기술이 사실은 항공 우주 산업에 대한 투자에서 비롯되었다고 말한다.
물을 정화해서 먹는 정수 기술부터 스마트폰의 작은 카메라까지 모두 항공 우주 산업에서 먼저 연구가 시작되었고 이 연구 결과가 상용화되어 오늘날의 현대인이 새로운 편리함으로 만난다는 것이다. 전적으로 동의하는 부분이다. 우주인들이 극단적인 환경인 우주에서 살아남도록 연구한 것들이 실제로 전 분야에서 활용되기 때문이다.
건조를 통해 유효기간을 대폭 늘린 즉석식품부터 분뇨로 인한 환경 오염을 막을 수 있는 분류 처리 기술까지 모두 항공 우주 산업에서 시작되었다. 항공 우주 산업을 향한 투자는 헛된 투자가 아니라 전 인류의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할 ‘생존 기술’을 위한 투자인 것이다.
두 번째는 스페이스X의 멋진 실험 정신이다. 사실 몇 년 전만 하더라도 우주 산업은 사기업 영역이 아닌 국가의 영역으로 간주했다. 연구비 단위가 매우 높고 국가 기관이 아니고서는 의사 결정이 어려운 부분이 많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머스크는 화성을 향한 인류의 호기심을 충족하고 화성에 인류의 새로운 희망이 있다는 확신으로 우주 민영 기업 스페이스X를 만들었다.
이후 그는 화성까지의 왕복 비용을 극단적으로 줄이고 대량 수송이 가능한 환경을 만들기 위해 재사용 가능한 로켓 개발에 일차적으로 올인한다. 로켓 제작 비용과 제작 기간으로 인해 탐사 준비 기간이 길어지는 본질적인 문제를 찾아 이를 해결하기 위해 재사용 가능한 로켓 ‘팔콘 9’을 실험했고, 2016년 결국 성공했다.
마치며
다큐멘터리 〈마스 제너레이션〉은 두고두고 몇 번 더 볼 생각이다. 실제로 궁금했던 스페이스 캠프의 프로그램, 항공 우주 산업의 발전상, 좋은 메시지까지 담은 다큐멘터리를 오랜만에 보았다. 스페이스 캠프가 있는 미국이 살짝 부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한국 대표로 내밀 수 있는 과학 캠프가 과연 있을까?
물론 미국 정도의 우주 산업 강대국이어야 우주 캠프 인프라도 갖추어지겠지만 과학 분야에 있어서 여전히 10대 청소년들이 꿈을 키울 기회가 많지 않아 아쉬운 마음이 든다. 만약 넷플릭스 회원이라면 이 다큐멘터리는 꼭 한번 보셨으면 한다. 분명 느끼는 바가 많은 명품 다큐멘터리일 것이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