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파가 드문 새벽, 목욕탕에 홀로 나타난다. 냉탕에 빠지지도 사우나에서 잠을 자지도 않는다. 그가 원하는 것은 오로지 하나. 목욕을 끝내고 마시는 음료수다. 뒤늦게 출근한 세신사 아저씨는 외친다.
“그는 국가가 허락한 유일한 음료 신상털이 마시즘이다.”
커피우유 없는 목욕탕이 말이 돼?
낭패다. 목욕탕에서 판매하는 음료수에 커피우유가 없다. 정확히 말하자면 삼각 커피우유. 목욕탕 내부 매점에는 솔의 눈과 칡즙만이 가득했다. 어차피 이곳을 찾는 사람들은 나를 비롯한 아재들뿐이기 때문이다. 나는 한국의 고령화 문제를 목욕탕 매점에서 알게 된다. 이럴 수 없어!
목욕을 마친 아저씨들은 너도나도 솔의 눈을 마신다. 머리까지 상쾌한 청량감. 곳곳에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어른이 되면 커피우유의 달콤한 기억은 잊어버리는 것일까?
이렇게 된 이상 비장의 음료를 꺼내는 수밖에. 바로 어른을 위한 특별한 커피우유다. 술이 들어있거든.
이것은 어른들만 마실 수 있는 커피우유 술
오늘 소개할 음료는 일본에서 온 ‘코-히규뉴 슈(コーヒー牛乳のお酒)’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커피우유 술. 정말 단순하지만 이보다 이 녀석을 제대로 설명할 이름은 없다. 생김새만 보면 우리 조카들도 좋아할 법한 귀여운 디자인이다. 하지만 이 우유에 알콜도수 5%가 숨어있다는 것은 일본어를 모르면 알 수 없겠지.
우유에 술을 탄다니. 재미있는 발상이지만 선량해 보이는(?) 외관 때문에 도저히 마실 엄두가 나지 않았다. 밤에 마시기에는 너무 건전해 보일 것 같고, 낮에 마시기에는 낮술 하는 기분이 들 것 같아서이다.
하지만 드디어 이 녀석을 마실 타이밍을 찾았다. 목욕을 마치고 머리에서 물기가 마르기 전이다!
단순해 보여도 자그마치 3개 음료수의 콤비네이션!
코히규뉴 슈의 종이 포장을 벗기고 뚜껑을 열었다. 진한 카페라떼 향이 스믈스믈 올라왔다. 술이라고 해서 샀지만 향도 색깔도 그냥 잘 만든 커피우유다. 술잔에 따르지 않았다면 마시는 나조차도 커피우유라고 착각했을 것 같다. 하지만 목에 넘기는 순간 반전이 일어난다.
첫 모금에는 커피우유의 맛이 난다. 일본 커피우유들은 대체로 가볍고 깔끔하게 목에 넘어가는 것이 특징. 하지만 목을 타고 넘어가는 순간 따끈한 알콜을 남긴다. 마실 때는 달콤한 아이의 추억으로, 마신 후에는 어른들만 알 수 있는 따끈함이 매력 포인트. 끝 맛의 감동 때문에 한 병을 다 비웠더니 입이 제법 얼얼하다.
비슷한 종류의 음료로는 커피 리큐르로 만든 ‘깔루아 밀크’가 있다. 하지만 진하게 달콤하고 뜨겁게 독한 깔루아 밀크가 어두운 바를 연상시킨다면, 커피우유에 방점을 찍은 코히규뉴 슈는 해가 뜬 아침이 어울린다.
어른이를 위한 목욕탕 음료수여
누가 커피우유에 술을 탈 생각을 했을까? 알고 보니 일본 사람들도 목욕을 마친 후에는 커피우유를 즐겨 마신다고 한다. 역시는 역시. 코히규뉴 슈는 일본의 어느 목욕덕후가 나이만 어른인 아기 입맛을 위해 만든 음료가 아닐까?
한국에도 비슷한 음료가 나온다면 참 좋을 텐데, 많이 마실 텐데. 입맛을 다시는 아침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