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부터 나열하는 주장은 특별한 근거나 통계의 뒷받침없이, 그냥 저라는 인간이 그동안 카메라 시장의 흐름을 쭈욱 지켜봐 오면서 형성된 생각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인터넷상의 많은 분들이 미러리스가 대세다 아니다 DSLR 죽지 않았다 이러면서 다투고 계시며 개중에는 미러리스가 향후 모든 카메라를 대체할 수밖에 없다는 극단적 의견도 보이며 반대로 스마트폰에 의해 카메라 시장은 전멸할 것이다 라는 의견을 내놓기도 합니다.
위 이야기의결론을 내리기 전에, 고급 카메라가 왜 이렇게 널리, 그리고 많이 보급되었는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일찍이 필름밖에 없던 그 시절 SLR 카메라는 정말 비싸고 아무나 보유하기 어려운 품목이었습니다. 국내에서는 정식 유통 자체가 어려운 시절도 있었습니다. AF조차 안되는 SLR 카메라를 스플릿 스크린을 통해 초점을 맞춰가며 찍는데 플래시까지 더해지면 보통 기술로는 초점과 노출조차 제대로 맞추기 어려웠던 게 그 당시 SLR 카메라에 대한 기억입니다.
그래서 많은 경우 콤팩트 카메라를 썼지만 (애초에 심도를 깊게 해서 강제적으로 팬포커싱 시키는 카메라가 대부분이었죠), 역시 필름을 쓰긴 매한가지여서 현상하고 인화하고 앨범에 정리하고 필름관리하고…보통 지극정성이 필요한 게 아니었습니다. 이것은 제가 자라서 대학생이 되고 군대에 다녀오고 한 뒤에도 크게 변하지 않았습니다.
21세기 초만 해도 SLR 카메라는 여전히 극소수의 전문가와 매우 큰 돈을 취미 사진에 투자할 수 있는 중산층 이상 부유층만이 보유하고 사용하는 카메라였습니다. 원래 카메라라는 기계 자체가 일부의 취미에 불과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처럼 활발히 보급되고 많은 사람이 사서 쓰게 된 건 결국 두 가지 이유 때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먼저 디지털화에 의해 카메라의 자동성능 향상 및 인화, 관리, 보존이 극도로 쉬워져서 입문장벽이 매우 낮아졌다는 것, 그리고 두 번째는 필름값이 들지 않는 점 등을 감안하여 고급 카메라의 가격이 매우 낮아졌다는 것입니다.
가장 저렴한 DSLR 카메라조차도 실질적인 화질로는 가장 비싼 카메라와 솔직히 큰 차이가 없죠. 일단 DSLR/미러리스이기만 하면 기본적으로 그 아랫급 카메라와는 넘사벽의 결과물 차이가 생깁니다. 콤팩트 카메라가 100만이고 DSLR 카메라가 100만이면 당연히 DSLR을 사는 세상이 온 겁니다.
이로 인해 한때 DSLR 판매량이 전 세계적으로 천만 대가 넘는 기현상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 굳이 비싸고 좋은 고급 카메라를 살 필요가 없는 사람들도 가격이나 분위기로 인해 그런 카메라를 사게 되었었다는 말입니다.
엄밀히 말해서 저는 이를 허수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고급 카메라 시장의 규모는 애초에 그렇게 클 수가 없었는데 여러 원인이 맞물리면서 상상 이상으로 잠시 부풀어 올랐을 뿐이라는 겁니다.
아니나 다를까, 천만을 넘겼던 시장규모는 이후 급속도로 쪼그라들기 시작합니다. 분명 DSLR 카메라 자체는 보다 더 저렴해지고 더욱 더 성능이 향상되고 있음에도, 또 미러리스 카메라라고 하는 더 가볍고 쓰기 편해 보이는 카메라가 계속 존재감을 어필함에도 불구하고 카메라 시장은 매년 급속도로 줄어들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현상이 단순히 스마트폰 탓이라고 생각하고 있지도 않거니와 사실은 시장이 줄어드는 것이라고 보고 있지 않습니다. 그냥 제자리를 찾아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극단적으로 말해본다면, 인구증가율을 고려했을 때 2000년도 전후의 SLR 카메라 판매량… 그만큼이 이 시장의 본래 규모라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현시점에서 생각해볼 때 실용주의, 합리주의적 입장에서 보면 사실 절대다수의 기록을 남기는 데 있어 스마트폰이면 그 역할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앞으로도 전문가와 취미사진사들은 쭉 DSLR이나 미러리스 등 고급 카메라를 고집하겠지만 그 수는 더욱더 줄어들 겁니다. 카메라 회사들도 그것을 알고 있기 때문에 계속 사람들이 좋은 카메라를 사도록 유도하기 위해 노력 중입니다.
첫째는 비싸고 좋은 카메라를 사면 전문가, 예술가가 더 쉽게 될 수 있다는 식으로 포장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모두 가수 비가 나와서 태국 사원에서 스님들을 찍는 카메라 광고를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사막에서 모래바람을 견디며 피사체에 한 발 더 다가가느냐 마느냐 하던 그런 광고들 말이죠.
둘째는 비싸고 좋은 카메라로 사랑하는 자녀들의 가장 귀엽고 행복한 시절을 남기자고 포장하는 겁니다. 특히 보급기 광고에서 이런 부분이 두드러집니다. 당장 제 사진도 해당 광고에 사용된 적이 있죠. 사실 우리 보통 사람들이 사진으로 예술을 하려 애쓰거나, 굳이 아이들의 어린 시절을 초고화질로 남겨야만 할 필요성은 전무하다고 봅니다.
하지만 왠지 그러면 더 좋을 것 같다는 감정에 호소함으로써 필요 없는 수요를 창출해 내고자 노력하는 겁니다. 저 같은 사람을 낚아 카메라를 팔아야 하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앞으로 수요는 더 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지속적으로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는 그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DSLR과 미러리스로 대표되는 고급 카메라 시장은 결코 죽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 규모는 앞서 말했듯이 2000년대 초반 필카 판매량에 인구증가율을 더한 수준보다 아주 약간 높은 선에서 안정될 겁니다. 왜냐면 그게 고급 카메라에 대한 원래 수요이니까요. 허수가 사라지고 진정한 수요가 남을…그 시기는 우리 생각보다 빨리 다가오게 될 겁니다.
당장 저만해도 고급카메라를 샀으니 계속 쓰기는 할 것입니다. 대략 제 아이들이 성인이 되는 10년 후 정도까지는 말이죠. 하지만 그 이후로도 과연 제가 새 고급 카메라를 추가로 사서 사진을 찍을까요…? 전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많은 분, 특히 아이 가진 부모님들은 저와 비슷한 경로를 밟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원문: 마루토스의 사진과 행복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