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 주: Benjamin W. Corn이 QUARTZ에 기고한 The pope is forcing us to redefine ugliness를 번역한 글입니다.
종교가 있는 사람이든, 종교가 없는 사람이든 11월 6일에 바티칸에서 찍힌 이 사진을 보면 감동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프란치스코 교황의 공공연설이 끝나갈 때, 한 남자가 교황에게 다가왔다. 그 순례자의 피부는 전염성은 없지만 끔찍한 질병인 1형 신경섬유종, NF1이라고도 불리는 종양에 의해서 뒤덮여 있었다. 교황은 그 남자를 축복하러 다가갔고 연민으로 그를 감싸 안았다. 이 사진은 널리 퍼지기 시작했다.
대부분의 미디어가 다루지 않은 부분은 이 이야기의 첫 번째 장면이다:
추하게 생긴 남자가 다가오자, 교황은 움찔했다. 하지만 NF1 환자들을 치료하는 병원에서 일하는 의사인 나에게, 그 장면은 결국엔 교황이 대담하고 이타적인 반응을 보였다는 걸 더욱 극적으로 보여줬다. 서구사회가 심미적으로 추하다고 생각하는 걸 본 교황의 첫 반응은 본능적으로 물러나는 것이었다. 하지만 교황이 빠르게 뿌리 깊은 사회적 관습을 극복해내는 모습은 궁극적으로는 우리에게 가르침을 주고, 심미적인 기준에 대해서 다시 한 번 생각해보게 만든다.
못생겼다는 것은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사회적인 부분에 의해서 좌우된다. 사회적인 부분에 기준을 맡기면 스펙트럼의 부정적인 부분 말단에서 못생겼다는 것을 사실로 낙인 찍어버리는 문제를 낳는다. 미술사학자인 H.W. Janson은 미에 대한 현대적인 정의가 르네상스 시대에 뿌리를 두고 있다고 말한다. 1486년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외모에 대한 기준을 만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도 일러스트레이터, 광고업자, 언론 종사자들에 의해서 이 기준 – 깨끗한 피부, 금발, 큰 가슴과 탄탄한 몸매 – 은 서구 사회의 이상적인 미의 토대가 됐고, 반대로 추함의 토대도 됐다.
우리의 심미적인 기준은 변덕스럽기 때문에 미에 대한 정의는 시간을 지나면서 조금씩 변해왔다. 예를 들어 심하게 마른 패션모델들은 보티첼리의 미의 여신이 가진 몸매와는 닮은 점이 없다. 이 얘기에서 우리는 매우 중요한 부분을 발견할 수 있다: 이 제멋대로인 미의 기준 – 무엇이 아름답고, 무엇이 못생기고, 무엇이 볼만하고, 무엇이 사회적으로 낙인을 찍을만한 모습인지에 대한 생각을 포함한다 – 은 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 모두는 이러한 변화에 기여할 수 있다.
신경섬유종에 대해서 이해하는 것은 이런 변화에 도움이 된다. 프리드리히 폰 레클링하우젠은 1882년 처음 이 증후군을 언급했다. (이 질병이 공식적으로는 더 이상 “폰 레클링하우젠 병”이라고 언급되지는 않지만, 몇몇 전문가들은 여전히 그들 스스로를 “레클링하우젠학자(Recklingologist)”라고 부르곤 한다.) NF1 유전자는 “종양 억제인자”로 발현되고, 인간의 세포가 암으로 변하는 것을 막아준다. 만약 NF1 유전자가 없거나 변이되면, 체내의 면역체계에 의해서 관리되던 세포가 종양으로 변할 수 있다. 특히 신경계나 신경 조직에서 말이다.
몇몇 NF1 환자들은 신경 종양(양성 신경섬유종)이 커지면서 피부 위로 튀어나오거나 움푹 들어가기도 한다. 또 다른 환자들은 마치 커피 얼룩 같은 납작한 반점을 갖기도 한다. 이런 육안으로 볼 수 있는 종양들도 있지만, 어떤 NF1 환자들은 내부에 종양이 생겨서 보이지는 않음에도 지독한 결과를 나타내기도 한다. NF1과 관련해서 가장 빈번하게 진단되는 종양은 시력에 영향을 끼치는 암(시신경 교종 optic glioma)과 혈압에 영향은 끼치는 암(크롬친화세포종 pheochromocytoma), 그리고 혈액세포에 영향을 끼치는 암(백혈병 leukemia)이다. 일반인들처럼 50년 이상 사는 NF1 환자도 있지만, 만약 50세 이전에 암이 발병한다면, NF1 환자의 수명은 8~15년까지 줄어든다.
내가 일하는 병원인 텔 아비브 의료 센터는 이스라엘과 다른 국가들에서 오는 NF1 환자들을 위한 국가 의료기관이다. 많은 NF1 환자들과의 비공식적인 대화에서 나는 반복적으로 발생하는 부정적인 편견들과 낙인에 대한 슬픈 이야기를 들었다.
최근에 내가 인터뷰했던 37살 환자인 토바를 떠올려보면, 그녀는 자신의 목을 가리키며 “데이트하는 남자가 이 못생긴 자국들을 보고 계속해서 흘깃거릴 때 내가 느끼는 부끄러움이나 공포감을 상상할 수 있어요?!”라고 말했다. 그녀는 나에게 평범하게 슈퍼마켓에 가거나 우체국에 가는 것마저도 사람들이 쳐다보고 웃는 것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는다고 말했다. “이 저주에 걸린 사람들에게 최고의 발명은 말이죠.” 그녀가 비꼬듯이 말했다. “그건 바로 온라인 쇼핑이에요.”
우리 병원은 현대적인 신경섬유종 클리닉으로 만들어졌고, 전문가들도 보유하고 있다. 신경섬유종 클리닉의 바로 옆에는 응급소아과가 있고, 두 과는 대기실을 공유하고 있다. 2년 전 신경섬유종 클리닉을 오픈하고 며칠 만에 부모들은 “괴물들의 행렬” 속에 아이들을 노출하는 것이 배려심 없는 일이라며 불만을 표시하기 시작했다.
우리는 부모들을 달래기보다는 그들을 교육하기 위한 캠페인을 시작했다. 한 대표자가 나에게 “기쁘게도 엄마와 아빠를 가르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리고 아직 편견에 사로잡히지 않은 아이들도 ‘신경섬유종’이 “무섭고 못생긴 것”이라는 생각을 갖지 않도록 교육 받았다.
1990년 NF1 유전자의 성공적인 복제로 기본적인 NF1 연구의 흥미로운 시대가 시작됐다. 하지만 흥미로운 약물치료의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아직 제대로 된 치료법이나 만족스러운 대처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성형 수술, 언어 치료, 그리고 다른 방법들의 발전 덕분에 NF1 환자들의 삶의 질은 개선되고 있다. 그럼에도 효과적인 약물이 엄밀한 임상 실험을 거쳐서 나오기 전에는 우리 모두가 NF1 환자들을 보살피는 사회를 만들어 가면서 함께 무거운 짐을 지어야 한다. 운이 나빠 사회적인 미의 기준에서 벗어난 사람들을 위해서 말이다.
토바가 지적한대로 NF1이 저주라면, 프란치스코 교황은 적절한 해독제로서 축복을 내리고 이를 받아들였다. 따뜻한 마음이 담긴 자비로운 교황의 모습에 교훈을 얻었다면, 우리들도 외적인 모습과 차이를 극복하고 개인의 아픔을 보듬어줄수 있도록 사회적인 관점을 더 넓힐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