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람은 자신의 진로를 고민한다. 요리사도 예외 없다. 아니, 요리사는 다른 직업보다 그 고민의 깊이가 더욱 깊을 것이다. 열악한 근무환경, 주변인의 만류, 정보의 부족, 다양한 근무 경험, 불안정한 생활, 낮은 보수… 이런 현실적인 조건을 끊임없이 극복해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이다. 꿈과 열정만으로 요리한다는 말은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그래서인지 요리사가 되겠다는 꿈은 마음속에 품고 있지만, 선뜻 실행에 나서지 못하는 사람들은 우리가 아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것 같다. 호주에서 요리 공부를 하고 있는 4명의 여성을 만났다. 네 명의 공통점은 호주에서 뜨거운 여름을 보내며 요리 공부를 하고 있다는 ㄹ것. 그리고 이 한 가지 공통점 이외에는 모두 달랐다. 나이도, 전공도, 배경도, 환경도, 학교도 달랐다.
본격 요리사로서의 진로를 고민하는 사람이라면 이들이 살아가고 있는 오늘에 대한 기록이 현실적으로 도움 될 것이라 생각해 인터뷰를 진행했다. 이제껏 들어보지 못했던 솔직한 이야기 깊이 있는 진로 고민을 들어보았다. 그들의 4인 4색 인터뷰 시작한다.
Q. 간단히 자기소개해 주세요!
최민아(30대 후반):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다가 이제 3년 차 요리사에 접어들었습니다. QTHC 다니고 있고, 2년 과정 중 1년을 마쳤습니다.
김해인(21세): 이화여대 휴학하고 에볼루션 다니고 있습니다. 1년 6개월 과정 중에 1년 남았습니다.
전미미(28세): 6년 다니던 삼성전자 그만두고 요리 유학 준비 중입니다. 8개월 후 윌리엄블루 입학 예정입니다.
박주영(30대 후반): 디자인 일을 오래 했고 지금은 르 코르동 블루에서 빠티셰리 과정을 밟고 있습니다. 1년 6개월 과정에서 6개월 지났습니다.
Q. 다들 요리를 시작하기 전에 다른 일을 하셨군요? 어떻게 요리사라는 직업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나요?
박주영: 저는 시각디자인을 전공해서 컴퓨터 작업을 많이 했는데, 10시간씩 앉아 있는 게 힘들었어요. 디자이너로 4~5년 정도 일했어요. 20대 끝자락에 호주로 워킹 왔을 때, 직업을 바꾸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한국에 돌아와서는 미술 선생님 일을 잠시 했고, 지금은 이렇게 요리 공부를 하고 있네요. 요리에 대한 열정이 강했다기보다는, 그냥 집에서 즐겨 만드는 수준이었어요. 빠티셰리 과정을 배우고 있지만 한국에서는 밀가루 한 번 제대로 만져본 적이 없었어요.
전미미: 어렸을 때부터 막연하게 요리사가 멋있어 보였어요. 직업에 대해서 진지하게 고민한 적은 없어요. 정말 막연했고, ‘나중에 크면 요리사가 될 거야’라고 장래희망 란에 적어내곤 했어요. 고등학교를 졸업하자마자 한국을 탈출하고 싶어서 우선 호주로 왔었어요. 아무런 준비 없는 워킹홀리데이였어요. 이 나라가 나와 맞는지 맞춰보고 싶었는데, ‘집 떠나니 고생’이라는 말이 어떤 뜻인지 깨달았죠. 그 뒤로 요리를 본격적으로 시작할 수 있기까지 6년이 걸렸네요.
최민아: 저는 교육대학교를 나왔고 초등학교 선생님이었어요. 나를 위한 삶이 아니라, 타인을 위해 사는 삶이 값지다고 항상 생각해왔어요. 학교 선생님을 그만두고는 중동에서 생활한 적이 있었는데, 중동이라도 기름이 나오지 않는 나라는 정말 가난했고, 그 악순환을 풀기 위해서는 교육이나 자립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줘야 한다는 걸 깨달았어요. 레스토랑 사업 능력이 있으면 도움이 되겠다고 생각해서 요리 공부를 시작한 게 33살이었어요. 어렸을 때부터 요리는 좋아했어요.
김해인: 고등학생 시절 내내 입시 준비만 했어요. 경제학이나 경영학부로 진학하려고 했는데 정작 전공 선택할 때는 가능성이 열려 있는 자율전공학부를 선택했어요. 대학 입학하고 나니까 약간 의욕이 상실되었어요. 수능 끝내고 한식조리기능사 자격증을 땄어요. 공부만 하느라 하고 싶은 일 못 한 자신에게 주는 선물 같은 의미로요. 그 뒤로 주말마다 요리 봉사를 나가게 됐고, 실제 요리사분도 많이 만났고, 점점 요리에 빠져들었어요. 주말에는 요리 봉사, 주중에는 학교에 나갔어요. 학교 수업 중에도 “나는 무엇을 가장 좋아하나?”라는 질문이 계속 떠올랐고, 매 순간 요리라고 대답이 나왔어요. 지금 당장 하고 싶은 게 있다면 하는 게 맞다 생각해서 무작정 왔어요.
Q. 요리사라는 직업인으로서 진로를 세우는 데 확신이 있었나요? 어려움은 없었나요?
박주영: 디자인도 그렇고, 아이들을 가르치는 일도 그렇고, 젊을 때만 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해요. 이전에 했던 일들이 요리와 관련이 없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거든요. 저는 기술을 배워서 오래 직업으로 삼을 수 있는 요리를 하고 싶어요. 우리는 기술이 좋은 세대에 태어나서 120살까지 살 거예요. 앞으로 반평생을 먹고 살아야 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직업을 찾기 위한 과정에서 발생하는 기회비용은 아깝지 않은 것 같아요.
전미미: 고등학교 때 저는 야자 빼고 요리학원 다녔어요. 제과 제빵 쪽 수업을 듣고 자격증도 땄어요. 딱 거기까지. 요리 전문 고등학교도 가려고 했었는데 어머니께서 말리셨어요. 여느 어른들이나 그러잖아요. 요리사라는 직업에 대한 반대는 아니었어요. 기본적인 교육이나 교양수업이 이뤄져야 나중에 많은 사람과 제대로 된 관계를 맺을 수 있다고 하셨어요. 평범하고 일반적인 길을 걸었던 사람들과 공감대가 생기기 어려울 거라고 걱정해주셨어요.
저도 “요리가 아니면 절대 안 될 것 같아”라는 정도의 강한 고집이 있던 건 아니었거든요. 좋아하던 일의 연장이었죠. 제가 삼성에 들어갈 때는 마침 운 좋게 사람을 많이 뽑던 해였어요. 한국에서 안정적인 직장이 생겼기 때문에 고민은 계속 있었어요 삶이 안정적이니까 계속 일하고, 결혼하고, 아이 낳고 살 생각도 했어요. 안정적이죠. 그런데 안정적인 게 전부였어요. 그리고 그 안정적인 삶도 길어야 40대 초반까지만 보장되거든요. 직장생활을 할수록 “나는 한국에서 못 살겠다” 확실해졌어요.
Q. 주변 사람들 특히, 부모님께서 반대하시진 않았나요?
박주영: 전 아직 젊으니까 외국에 가서 새로운 삶을 사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고 말했어요. 그게 서른 후반의 나이에 할 말이냐면서 부모님은 노발대발했어요. 늦은 나이에 결혼도 안 하고 간다는 것에 대해서 많이 우려했어요. 제가 고집을 부렸죠.
김해인: 처음엔 반대하셨는데 설득시켰어요. 마음을 돌리는 데 한 달 정도 걸렸어요. 제가 하고 싶어 하니까 막을 수는 없죠. 대신 제가 선택한 일이니까 책임도 저에게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반년 동안의 생활비와 학비를 지원해 주셨어요. 그 이후의 필요한 생활비와 학비 모두 제가 벌어서 충당하고 있어요. 부모님께서는 지금도 한국으로 돌아오길 기다리고 있으세요.
최민아: 저희 부모님께서는 자식들이 원하는 것을 하도록 독립적으로 키우신 편이었어요. 그래서 믿어주는 면들이 많아요. 동의하거나 지지하진 않더라도, 너의 선택이 그러하다면, 너가 행복하다면 하라는 분위기요. 정말 가까운 친구들이나 지인들은 저를 오히려 부러워해요. 한국 여성들은 애기 낳고 나면 산후우울증도 겪고 심리적으로도 위축되거든요. 사회적으로도 약간 고립되고요. 그런 친구들은 저를 통해서 오히려 대리만족하고 있어요. 자녀를 키우는 엄마로써의 삶도 아름답지만, 자신을 위해 공부하고, 투자하고, 새로운 세상에 도전하는 것은 친구들에게는 비현실적인 일이거든요. 그런 저를 지지해주는 친구들이 많아요.
전미미: 부모님이 제 선택을 지지해준 건 완전한 독립을 했을 때부터였어요. 그전에는 철없는 딸의 투정으로 받아들이셨어요. 요리사라는 직업에 발을 담그기까지 오래 걸렸어요. 부모님은 한국에서 대학교 갈 게 아니라면 직접 벌어서 가라고 했어요. 그래서 3년을 모았는데, 또다시 막으셨어요. 지금 모은 돈으로는 학비를 내고 나면 남는 돈이 하나도 없다. 수중에 돈이 없으면 돈 버는 재미도 없고, 지칠 것이다. 일이 잘 안 풀려서 한국에 다시 돌아오게 되면 직장도 없고 빈손일 텐데, 완전히 제로베이스로 다시 시작해야 할지도 모른다. 완충장치가 될 수 있는 목돈을 마련하라고 하시더라고요. 일리가 있는 것 같아서 3년을 추가로 돈을 모았어요.
부모님께서 지원해주시는 분들 보면 부러워요. 우리 부모님은 독수리 부모님이에요. 자립심을 키워주려고 하거든요. 저는 20살이 되는 순간부터 모든 지원이 끊겼어요. 20살에 호주 워킹 올 때 비행기 티켓값, 어학원 3개월 치를 마지막으로 지원받은 게 없어요. ‘쉽지 않구나’라는 걸 처절하게 느꼈어요. 나에게 맞는 계획을 세우지 못하면 유학은 어려울 것 같아요. 목돈을 만들지 않고 3년 전에 왔다면 저는 굉장히 불안했을 것 같아요.
Q. 요리를 실제로 해보니 어떻던가요? 어렵거나 힘들진 않았나요?
전미미: 셰프라는 직업은 아직 안 해봤지만, 셰프크루 커뮤니티 사람들 얘기 들어보면, 몸이 너무 힘들다고 해요. 사실 어떤 직업이든 정신적인 힘듦은 어디에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제가 다니던 대기업도 이직률이 굉장히 높았거든요. 스트레스가 엄청나다는 뜻이에요. 돈을 거저 주지 않더라고요. 저는 그때 일하면서 저 자신을 직장에 갈아 넣어야 했어요. 어떤 직업이든 힘들거나 힘들지 않다거나 말할 순 없을 것 같아요.
박주영: 이걸 직업으로 삼으면 엄청 스트레스를 받고, 체력적으로도 힘들겠다고 생각해요. 요리를 고상한 취미생활로 즐기는 사람들도 있잖아요? 집에서 식사를 챙기는 것과는 전혀 다르다는 것을 알았어요. 여기서는 생활비뿐만 아니라 학비도 벌어야 해서 일도 병행하고 있어요. 학교 입학 전부터 카페 일자리를 찾았어요. 저는 두 번째 오는 호주라서 어렵지 않지만 어린 친구들은 이런 생활 계획적인 부분에서 힘들어할 수도 있을 거예요.
“나는 요리만 해. 나는 만들기만 할 거야”라는 생각으로 오면 안 돼요. 그 외적인 과제, 자발적인 학습이 정말 많아요. 어린 친구들은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중도 포기도 많이 해요. 학교잖아요. 어느 학교든 숙제가 있고 과제가 있어요. 저도 이렇게 과제가 많을 줄 몰랐어요. 실습만 따라 하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었어요. 그룹 과제, 문제해결, 시험도 많아요. 시간 관리 잘해야 해요. 저는 일도 하면서 학교도 다녀야 하니까, 학기 중에는 4~5시간씩 밖에 못 잤어요.
김해인: 한국에서 요리 봉사를 통해 제가 만났던 요리는 나눔의 의미로서의 요리였어요. 그때는 요리에 대한 환상이 약간 있었던 것 같아요. 요리는 무조건 좋은 거라고만 믿었거든요. 여기서 만난 요리는 조금 달라요. 저는 경제학 분야에서 자본주의 폐해를 지적하는 부분에 공감했거든요. 제삼 세계의 경제 발전을 위한 정책이나 공정무역을 통한 사회운동에 관심을 가졌어요. 그걸 한동안 망각하고 있다가 파인다이닝 레스토랑에서 일하면서 너무 많은 음식이 버려지는 걸 보고 다시 생각났어요. 예쁜 모양, 완벽한 퀄리티의 요리를 만들어내기 위해서 버려지는 재료가 너무 많았어요. 제가 처음 시작한 요리의 의미로 보거나, 제 가치관에서 보더라도 올바른 요리는 아닌 것 같아요. 그래서 새로운 고민이 많이 들어요. 제 소신과 충돌하는 데도 시키는 대로 일하는 주관 없는 요리사는 되고 싶지 않다는 생각도 들고, 이런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공부를 더 해야겠다는 생각도 뒤늦게 들기도 해요.
최민아: 제가 체력이 강한 편이 아니에요. 겁이 많이 났어요. 주변에서 저를 아시는 분들은 만류했어요. 여자에다가 체력도 약해서 다 못할 거라고 말했어요. 오기가 생겼어요. 어쩌면 정신적인 싸움일 수도 있겠다. 버텨봐야지,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겠다. 그리고 한국에서 2년 정도 일을 했는데 들어가는 것부터 쉽진 않았어요. 주방장들도 다 저보다 나이가 어리니까, 저를 써주기가 한국 문화상 어려운 거예요. 그래서 호텔조리학과 교수님을 통해 소개받아서 첫 취업을 했었어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높은 강도의 일이었어요. 처음에는 너무 힘들어서 “사람이 어떻게 이렇게 살지?” 생각이 들었어요. 다리뿐 아니라 온몸이 붓고 집에 오면 누구한테 맞은 것처럼 몸이 아픈 거예요. 선배들이 2~3달이면 몸이 적응한다고 얘기했는데 3달 지나니까 거짓말같이 다리도 안 아프고, 몸이 견딜 만해졌어요.
취미로서의 요리는 선택사항이에요. 직업으로서의 요리는 의무사항이에요. 정해진 시간, 10시간 때로는 16시간 동안 일을 해야 하고, 식사 시간도 정해지지 않고, 어떻게 보면 인간이 추구해야 하는 기본적인 권리마저 다 포기해야 하는 상황들이 닥치기도 해요. 나는 요리를 정말 하고 싶은데, 나에게 요구되는 것은 반복적인 과업들이에요. 감자 70kg 씻고 자르고를 반복해요. 이 반복되는 과정의 무의미해지고 지루한 일상을 견뎌내는 일인 것 같아요. 하지만 이런 시간들을 겪게 되면서 스스로는 더 강해지고, 육체적으로도 강해져요. 이런 과정을 겪기 때문에 의식하지 못하는 사이에 칼질, 손놀림, 요리기술이 쌓이는 직업 같아요. 저는 지금도 주방에서는 경력 3년 차의 막내에요. 5년 차가 되기 전까지는 끊임없이 자신을 내려놓고, 겸손해지고, 밑바닥이 어딘지 알면서 머물러야 하는 시간인 것 같아요.
Q. 요리 유학을 갈 수 있는 여러 나라가 있었을 것 같은데, 왜 호주를 선택하게 되었나요?
박주영: 호주에서 1년을 살아봤기 때문에 고민 없이 호주로 정했어요. 다른 나라에 가면 그 나라에 대해 배우고 적응하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저에게 호주는 그런 시간을 세이브할 수 있는 나라인 거죠. 한국에서는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많은데 여기는 그런 면은 적어요. 한국에서는 “그 나이에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고? 여자가 요리사 한다고? 너보다 나이 어린 상사 밑에서 일하려고?”라는 얘기를 듣게 되죠.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도 사회적 통념에 반대되는 듯한 충돌을 겪어요. 요리를 한국에서 시작하면 새 직장을 잡는 게 불가능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호주에 왔어요. 내 비즈니스를 하더라도 경험이 충분히 쌓여야 할 텐데, 그 경험은 호주에서 쌓는 게 더 좋겠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저는 한국에 다시 돌아갈 생각이었는데, 오고 나니까 이곳에 계속 살고 싶다는 생각이 커져서 영주권을 따는 것도 생각하고 있어요.
최민아: 호주는 정말 매력이 많아요. 자연이랑 가깝고, 신선한 식자재가 많고, 관광산업이 발전해서 외식업도 수준이 높아요. 세계적인 레벨의 레스토랑도 많아요. 요리 교육 사업도 같이 발전되어 있어서 선택할 수 있는 학교도 많아요. 여러 측면에서 다 매력적이라 생각해요. 저는 외국에서 계속 생활할 생각을 갖고 있어서 영어가 좀 더 준비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한국에서 요리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이왕이면 영어도 같이 공부해서 국제적인 적응력을 갖추면 좋잖아요?
Q. 유학 준비 중에서도 영어 부분에서 어렵진 않았나요? 어학원을 다녔다면 어떤 코스, 커리큘럼을 거치고 있나요?
박주영: 영어가 가장 중요하기 때문에 우선 한국에서 IELTS 점수를 땄어요. 시간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한국에서 준비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어요. 어학시험을 쳐본 게 8년 전 토익이 전부라서 공부 계획을 세우는 데만 2달 정도 걸렸어요. 부산에 살다 보니 서울에 비해 어학원도 많지 않았고 수업 시간대도 맞지 않았어요. 일하면서 공부해야 하니까 독학할 수밖에 없었어요. 어학원 비용을 조금이라도 줄여서 요리학교 학비에 보태는 게 낫겠다고 생각했고, 입학 가능 점수 만드는 데 약 5~6개월 정도 걸렸어요.
김해인: 저는 미국보단 유럽이나 호주권으로 가고 싶었어요. 그래서 IELTS 시험을 준비했어요. 가장 빠른 시험부터 신청한 뒤 공부를 시작했어요. 당시 대학교 1학년 중간고사 기간이었는데 학교 공부는 안 하고 한 달 내내 IELTS 공부만 했어요. 점수는 7.0을 받았어요. 점수를 받은 상태로 유학 방안을 찾다가 셰프크루를 만나게 되었어요. 종로에서 진행하는 유학설명회에 갔는데, 영어를 그렇게 강조하더라고요. 저는 영어 점수가 있으니까 그 부분이 문제가 안 되잖아요? 유학설명회 끝나고 바로 전화통화로 추가로 상담받고 바로 입학 신청 절차 들어갔어요. 수속까지도 2달이 안 걸렸어요. 입학 시기를 맞추느라고 조금 기다렸는데 총 4달 걸렸어요.
전미미: 어학 공부 효율을 따진다면 한국에서 공부하면 훨씬 효율적이에요. 저렴한 가격에 정말 잘 가르쳐줘요. 점수만 올려두고 현지 적응을 위해 어학원은 잠시 다니는 게 비용적으로나 시간적으로 효율적이에요. 그런데 저는 어학원을 10개월 동안 끊었어요. 수업은 IELTS 점수가 없이도 학교에 입학할 수 있는 EAP(English for Academic Purpose, 대학진학준비코스)를 밟고 있어요. 이 코스도 별도의 시험은 쳐야 되요. EAP 코스를 들으려면 하이인터(High Intermediate) 레벨 수업을 들어야 해요. 그 정도면 IELTS 5.0 정도 나오는 수준이거든요. 시험에 대한 압박이 적을 뿐이지, 영어 공부를 덜 하거나 장벽이 낮은 건 아니에요.
어학원 다니는 기간에는 영어에만 집중하려고요. 워킹홀리데이 하면서 느꼈던 건데 일과 공부, 두 마리 토끼를 모두 다 잡기는 쉽지 않아요. 간혹가다 한 분씩 보여요. 하지만 정말 쉽지 않은 일이거든요. 저는 제 자신을 알아서 그렇게까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요. (웃음) “여러분들도 저와 같은 평범한 사람이어서 그렇게 될 수 없어요”라고 이 글을 읽는 사람들에게 말하고 싶어요. 현실적으로 불가능한 계획을 무리하게 세워서 실패해선 안 되잖아요?
최민아: 저는 IELTS 시험은 미리 쳐두었기 때문에 점수는 문제가 안 됐어요. 그런데 영어는 아직도 저에게 큰 숙제에요. 현장에서 정말 빠른 속도로 일하려면 말들을 알아듣고 반응해야 하는데, 아직도 항상 긴장하고 있어요. 우리가 외국인이라고 해서 배려하고 봐주지 않아요. 영어 공부는 지금도 틈틈이 하고 있어요.
Q. 현지 생활은 어떤가요?
전미미: 집이 부자는 아니지만 부족함은 크게 못 느끼면서 살았어요. 하고 싶은 게 있으면 할 수 있었고, 편하게 살았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20살이 되면서 호주로 처음 자립했을 때 느꼈어요. “내가 편할 수 있었던 것은 모두 부모님의 희생이 있어서였구나.” 나는 그 편함을 포기하기 어려운 사람이라는 것도 알게 되었어요. 호주에 있으면서도 독방을 쓰고 싶었고, 취미활동도 많이 하고 싶었고, 여행도 자주 가고 싶었어요. 이런 것을 즐기는 것에 대해서는 포기가 힘들더라고요. 저는 지금 어학원을 조금 넉넉한 기간으로 다니고 있는데, 요리 시작하면 얼마나 힘들지 알기 때문에 미리 쉬어두는 것이기도 하고, 지난 6년 동안 수고했던 저를 위해 보상해주는 시간이기도 해요.
박주영: 한국에 다시 갈 생각으로 왔는데, 여기 오고 나니까, 살고 싶다는 생각이 더 커서, 영주권 딸 수 있는 쪽으로도 생각해보고 있어요. 여기서 지내는 중에도 이민법이나 비자법이 계속 바뀌기 때문에 정책들을 염두에 둬야 해요. 살고 싶다는 생각만으로 될 수 있는 일이 아니잖아요.
김해인: 호주에 한 달 살고 나서, 현지 생활이 적응될 즈음부터 일을 시작해서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처음엔 의사소통 문제도 많았어요. 호주 영어만 할 줄 알면 될 줄 알았는데 아니더라고요. 주방에는 다국적 요리사들이 많이 모이거든요. 지금은 그렇지 않은데 당시에는 모든 것이 처음이다 보니 위축된 상태로 일을 시작했어요. 그래도 한국인 셰프들이 주변에 많아서 극복할 수 있게 서로 도움을 많이 줬어요.
Q. 주방에서 일하고 있으신 분은 두 분인가요? 두 분 모두 1년 가까이 일하셨다고 들었는데, 현지 요리사 생활은 어떤가요?
최민아: 학교 2년 기간 중 1년이 끝났어요. 입학하고 나서 1달 만에 일을 구했어요. 제가 한국에서 2년 동안 모은 돈이 학비와 생활비에 급속도로 빠져나가고 있었거든요. 마음이 급해지더라고요. 처음에는 이력서를 70군데 돌렸어요. 그중에서 트라이얼까지 이어진 곳이 4곳이고, 그중 한 곳에서 일하게 되었어요. 작은 레스토랑이었는데 5개월 일했어요. 겨울에 저는 근무 시간을 더 늘리고 싶었는데 연말 휴일이 되자 손님이 적어서 늘려주지 못했어요. 그래서 다른 식당으로 옮겼어요. 두 번째 식당은 셰프만 마흔여섯 명 있는 큰 주방이에요. 이곳에서 6개월 동안 일했고 극한 체험 중입니다.
김해인: 학교마다의 커리큘럼은 조금씩 달라요. 저는 1년 더 다녀야 하는데 실습부터 우선 끝나고 이론만 남은 상태에요. 지금까지 2곳의 레스토랑에서 일했어요. 같은 벤틀리의 계열사이긴 한데 주방 환경은 많이 달라요. 처음 8개월 일한 씨러스는 파인다이닝 음식을 하는 곳이고, 지금 4개월째 일하고 있는 모노 폴은 바 형태에서 간단한 음식을 내보내고 있어요. 콜드 라더 섹션에 있었는데, 그렇게 한두 달 일하다가, 디저트 섹션이 너무 즐겁게 일하는 것 같은 거예요. 그래서 총주방장에게 디저트 파트로 옮겨달라고 말했어요. 말할 때 긴장해서 떨면서 말했는데 그냥 흔쾌히 그러라고 하더라고요. 저는 요리를 전공하고 있지만 디저트, 케이크, 페스트리 쪽이 더 많은 관심이 생겨요.
첫 식당은 주방에 15명이 일했고, 지금은 5명이서 일해요. 이전 업장에서는 맡을 일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이 중요했다면, 지금은 작은 주방 내에서 다른 동료들은 무엇을 필요로 하고, 나는 어떤 도움을 받아야 하는지, 서비스는 어떻게 나가고 있는지 등 전체적인 흐름을 배울 수 있는 곳인 것 같아요. 요즘은 5일 일하고 2일 학교 가요. 휴일이 없어요. 계속 이렇게 일하게 될 것 같아서, 일주일 동안 여행 가게 휴일 달라고 말해놓았어요.
Q. 유학 준비 과정에서 어려운 점은 없었나요?
전미미: 저는 19살 때 진로 고민할 때부터 정보를 찾았어요. 당시 10대인 제가 찾을 수 있는 정보는 너무 적더라고요. 인터넷이랑 박람회가 전부였어요. 찾아보면 모두 좋은 얘기만 반복했어요. 꿈과 희망을 주는 얘기들. “이렇게 하면 당신도 할 수 있어”, “좋은 학교야, 졸업하면 취업해, 취업하면 영주권 나와”라는 얘기만 있었어요. 그런 게 신뢰가 가지 않았던 거죠.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이 떨어져 나가요. “요리학교 졸업하면 일자리 구해야 할 텐데, 주방에서는 경력자만 찾는데, 경력도 없는 널 누가 써주겠어?”라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해주는 곳이 없어요. 그래서 직접 가보는 수밖에 없었어요. 20살에 호주에 와서 살면서 문화 차이도 느꼈고, 현실적인 어려움이 많다는 것을 몸으로 겪었어요. 한국에 돌아온 이후에도 회사를 다니는 중에도 정보는 꾸준히 수집했어요.
최민아: 저는 요리 경력과 레스토랑 사업 경험을 쌓아서 중동으로 다시 돌아가려고 했어요. 학교를 다니고 경력을 쌓으려고 했는데, 학비가 너무 비싸니까 순서가 바뀌었어요. 일을 먼저 했고, 요리학교는 요리를 시작한 지 3년 차가 되었을 때 진학할 수 있었어요. 호주의 요리학교는 기술학교다 보니 비싼 편이에요. 한국에서 2년 요리사로 일하니까 호주 요리학교 1년 학비를 겨우 모을 수 있었어요.
중동에 있을 때 르 코르동 블루가 레바논에 있다는 것을 알고 알아봤어요. 중동 쪽 유학원 정보는 전혀 없더라고요. 한국 유학원을 인터넷으로 찾아서 연락했고 알아봤어요. 레바논에 있는 학교를 몇 곳 추천해줬는데, 정작 수속을 진행하는 과정에서 제가 원하는 수업이 없다는 걸 알게 되었어요. 호텔경영이랑 외식경영 이론 수업만 있는 학사과정이더라고요.
외국에서 준비할 때는 너무 막연해요. 유학원들은 수속을 시키는 것만 목적이기 때문에, 깊이 있는 상담이나 자세한 사실 확인 등은 제쳐두고 의뢰자에게 동기 부여해서 빨리 수속 절차 밟도록 유도하려는 게 너무 티 나거든요. 한국에 있는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러 유학원을 검토하다가 셰프크루 블로그도 발견하게 됐었죠.
박주영: 저는 유학원만 세 번 거쳤어요. 제가 좀 꼼꼼한 성격이라서 유학원에서 요청한 서류나 문서를 빠짐없이 챙겨 줬는데, 유학원에서 작은 실수가 너무 잦았어요. 나는 큰 결심을 하고 가는 일인데, 내 절박함만큼 일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 해주더라고요. 수속 절차에서 생긴 실수로 학교에서 입학 거부당하면 제 계획이 모두 틀어지잖아요.
첫 번째 유학원에서는 에볼루션에 지원했는데 오퍼 레터를 받지 못했어요. 화상통화까지 진행했는데도 경력이 없다는 이유로 거절당했어요. 경력 있는 사람만 요리 학교를 들어가야 하나요? 아니잖아요? 없으니까 가는 거잖아요? 모르니까 배우러 가는 거잖아요? 학교 측에서 왜 그런 답변을 보냈는지도 모르겠고, 유학원은 왜 저의 적극성을 어필해주지 않았는지도 이해가 안 돼요. 결국 서류상에서 충분히 전달되지 않았기 때문이거든요. 이 학생이 입학 의지가 강하다는 것을 학교 측에 어필해주면 좋은데, 전혀 그런 노력을 해주지 못해요.
두 번째 유학원에서는 빠티셰 학교로 지원했어요. 그때가 12월 말이었는데, 호주에는 연말 휴일이 길어서 일들이 많이 미뤄졌어요. 거긴 수속비도 별도로 요구해서 냈었어요. 그런데 제이 셰프 만나서 들어보니 수속비는 원래 없다고 말하더라고요? 두 번째 유학원에서도 진행을 제대로 못 했기 때문에 수속비는 다시 받아냈어요. 그렇게 유학원만 찾아보면서 시간을 두세 달 낭비했어요.
저는 나이도 있고 비자도 거절될 확률이 높다는 상황 때문에 모든 우려 사항을 염두에 두고 있거든요. 다른 어린 친구들처럼 어려서 신청하면 대부분 비자가 나오면 저도 걱정 안 했을 거예요. 결국 유학원에서 대행을 해주더라도 결국 신청자 이름은 제 이름으로 들어가기 때문에, 모든 신청과정에서 생기는 문제는 제 책임이거든요.
김해인: 저는 셰프크루 알기 전에는 유학원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어요. 검색하면 요리대학교 다 찾을 수 있고, 웹사이트에 연락처도 다 나와 있잖아요. 요리대학교 국제학생부에 직접 연락하면 방법도 알려주더라고요. 각 학교 교무실이나 행정실에 연락해서 내 상태를 알려주고, 어떤 조건으로 진학할 수 있는지, 커리큘럼은 어떤지, 장학금 제도는 있는지, 기숙사 여부도 일일이 따졌어요.
Q. 그럼 셰프크루를 통해 유학을 진행하게 된 결정적인 이유가 있나요? 어떤 점이 다르던가요?
김해인: 현지 요리사 출신이라서 다른 점을 모두 제외하고, 기본적인 은행 계좌 개설, 휴대폰 개통 같은 현지 적응도 도와줘요. 셰프크루 모임에 정기적으로 나가면 같은 또래의 친구들이나 같은 꿈을 꾸고 있는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요. 선후배도 만날 수 있고요. 한국을 떠나서 요리를 배우러 왔다는 것만으로 친해질 수 있고 공감대가 생겨요. 이게 가장 큰 도움 되는 부분 같아요.
전미미: 몇 년 동안 유학 관련 정보를 찾다 보니, 내가 받아들여야 할 정보와 걸러내야 할 정보가 구분되더라고요. 그러면서 셰프크루를 접하게 됐어요. 유학원 중에서 유일하게 안 좋은 얘기를 올려놓은 곳이었어요. 블로그의 글들을 찬찬히 읽어보니까 구체적으로 짚어주는 디테일한 부분에 공감이 됐어요. 진정성이 보였어요. 이 정도면 내가 비자를 맡기고, 이곳을 통해 사람을 만나는 것이 괜찮겠다고 생각했어요. 수속하기 전까지 설명회 열릴 때마다 3번 찾아가니까 그만 찾아오라고 하더라고요. 첫 설명회 갔을 때도 입학 예정일은 1년 6개월 뒤로 잡고 계획하고 있었거든요. 매번 똑같은 얘기를 하는데 자꾸 오냐고 묻길래 “셰프님 보러 왔죠~ 팬이에요~” 하면서 계속 찾아갔어요.
박주영: 셰프크루는 유학설명회에서 처음 만났어요. 다른 유학원을 통해서 입학 신청하던 상황을 설명하고 제 고민을 털어놨어요. 답변은 시간 낭비일 거라는 거였어요. 첫 유학원에서 실패한 것처럼 안 될 거라고. 나이도 많고, 워킹 경력도 있기 때문에 법이 바뀌는 시점에서 비자가 안 나올 수도 있다고 말해주더라고요. 비자가 거절되는 것은 입학 거절보다 더 큰 문제거든요. 이민성에서 거절되면 아예 호주로 유학 가는 것 자체가 불가능해지거든요. 르 코르동 블루로 입학한 것은 비자 발급 안정성 때문이에요. 학비가 비쌌기 때문에 고민이 안 된 것은 아니에요. 더 저렴한 학교도 고려했는데, 전 확실한 계획이 필요했어요.
최민아: 셰프크루 블로그에는 미사여구가 없어요. ‘세계 최고’, ‘세계 유일’ 이런 표현들이 없어요. 오히려 그런 학교의 혜택이 전혀 도움이 안 되는 경우도 알려줘요. 르 코르동 블루 출신인 사람이 자신의 모교를 설명할 때도 그렇게 얘기하니까, 진심이라고 생각하게 되었죠. 이 사람은 진심으로 후배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생각이 글 읽는 중에 들어요.
서울에 왔을 때 직접 만났어요. 돈은 얼마나 준비되었는지, 영어 점수는 받아왔는지를 따지더라고요. 제가 세운 계획도 다 무너졌어요. 이름있는 곳에서 제대로 된 출발을 하고 싶었거든요. 유명한 학교를 들어가는 게 현실적으로 큰 도움이 되지 않고, 투자 대비 얻을 수 있는 게 작다고 말해주더라고요. 적정한 수준의 학비와 적정한 교육이 제공되는 학교를 찾았어요. QTHC라는 학교가 애들레이드에서 시드니로 분교를 내려던 차에 전교생에게 5,000달러가량 장학금 지급 프로모션 시즌이 있었어요. 저는 다행히 혜택도 받았어요.
학교에 대한 기대감은 줄이는 게 필요해요. 내가 좋은 학교를 나왔다고 해서 사람들이 알아봐 줄 것이라는 건 착각이에요. 학교에서 제공하는 건 정말 기초적인 지식이에요. 어떤 학교든 그 정도는 제공해요. 중요한 것은 오랜 시간 수련을 통해 얻게 되는 기술이에요. 학비가 비싼 학교는 좋은 재료를 써서 좋은 실습 환경이 주어지지만, 그 비용대비 현장 실무에 크게 도움 되진 않아요. 업장의 스타일이 모두 다르기 때문에 어차피 새로 배워야 하거든요.
Q. 셰프크루 사람들끼리도 자주 모이나요?
최민아: 셰프크루는 요리 유학만 집중적으로 하기 때문에 행정력도 좋고 수속이나 여러 절차에서 일 처리가 깔끔해요. 일은 일대로고, 셰프크루는 유학원이라기보다는 동료의식이 뭉친 끈끈한 공동체에 가까워요. 같은 학교에도 한국인이 많은데, 셰프크루를 통해서 온 사람들은 한 번씩 봤던 사람들이니까 더 가깝게 생각해요. 다른 유학원에서 온 친구들은 놀라요. 어떻게 그럴 수가 있지? 유학원만 같을 뿐인데, 어떻게 저렇게 친하지? 개인적으로 사람들을 만나서 한 사람 한 사람을 팔로업해주는 곳은 없거든요. 개인적이고 인간적인 이야기들, 만남을 추구하는 곳이에요. 이런 건 상업적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잖아요. 그래서인지 여기서 만난 친구들은 하나같이 착하고 좋은 사람들이 많아요.
전미미: 타지에 나와서 셰프크루 커뮤니티를 통해 같은 꿈을 가진 사람들을 만날 수 있다는 건 엄청 큰 경험이에요. 다른 사람들의 유학 후기 글도 읽다 보면, 꼭 만나보고 싶은 사람들이 몇 있는데, 실제로 만나볼 수 있다는 것. 셰프크루라는 이름으로 서로를 만날 수 있는 건 정말 도움 되고 매력적이에요.
Q. 제이리 셰프는 어떤 사람인가요?
전미미: 셰프크루는 요리 유학에 있어선 현실을 바라보게 해주는 유학원, 정신 차리게 해주는 유학원이에요. 삼성전자 그만두고 요리 유학 갈 거라고 했을 때 들은 얘기가 “미쳤어요?”였어요. 본인이라면 절대 안 간다고 하는 거예요. 유학원 대표라는 사람이.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박주영: 제이 셰프는 되는 것과 안 되는 것을 솔직하게 얘기해줘요. 그걸 기분 나쁘게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고,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도 있어요. 다른 유학원에서는 절대 얘기해주지 않는 얘기들이 많거든요. 여러 정보들을 받아들이고, 자신에게 유리한 방법을 찾아내는 게 당사자에겐 가장 중요한 것 같아요. 그런데 제이 셰프가 솔직하게 말한다고 해서 받아들이길 싫어하는 사람들도 많아요. 고객이니까 극진한 서비스를 받고 싶어 하는? 그런 사람들은 좋은 말만 해주는 다른 유학원 가는 게 좋을 것 같아요.
최민아: 호주에 오고 나서는 제가 바빠서 자주 보지 못하고 있지만, 어렵고 고민 있을 때는 연락하면 언제든 시간을 먼저 내주고 진심으로 고민을 들어줘요. 자주 보지 못하더라도 그런 사람이 항상 있다는 건 큰 도움이 돼요. 마음을 기댈 언덕 같은 거죠.
Q. 요리 유학을 준비 중인 후배들에게 조언을 해주자면?
전미미: 셰프크루 설명회에서 알게 된 20살 동생은 정말 준비를 많이 하고 있더라고요. 요즘 애들은 정말 생각도 깊고, 고민도 많이 하는 것 같아요. 반면 간혹가다 꿈만 꾸고 청사진만 크게 그리는 친구도 있어요. 그런 사람들에겐 정신 차리라고 말해주고 싶어요. 그리고 집에서 지원을 해주면 좋지만, 지원이 안 된다고 해서 조바심 가지지 않고 계속 준비했으면 좋겠어요. 저도 6년 걸려서 왔잖아요.
김해인: 저는 1년 전의 저에게 조언을 해보자면, 오라고 할 것 같아요. 걱정하지 말고 오라고 할 거예요. 지금도 한국으로 돌아갈지, 여기서 요리를 더 할지, 다른 공부를 할지 여전히 걱정이에요. 지금 당장 요리를 해야 된다는 생각 때문에 무작정 왔어요. 대학교도 버리고, 힘들게 본 수능점수도 버리고, 부모님과 친구들도 다 제쳐두고 왔어요. 뭔가 많이 포기한 것 같지만, 요리라는 분야에 몰입하고 있기 때문에 다른 분야에 대해서도 호기심이 생기고, 스스로에 대한 용기도 생길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부딪혀 봐야만 답을 찾을 수 있는 것 같아요. 부딪히라고 할 거예요.
박주영: 유학설명회든 상담이든 아무 고민 없는 상태에서 찾아가 봐야 도움 안 돼요. 내가 조사하고 공부한 뒤에 부족한 것을 물어야지, 아무것도 모르는 상태에서 정말 기본적인 질문을 하는 건 바보 같다고 생각해요. “영어는 어느 정도 해야 하나요?” 같은 질문이 실제로 나오더라고요. 찾아볼 수도 있고, 굳이 물어보지 않더라도 스스로 생각해봐도 뻔히 답을 찾을 수 있는 얘기잖아요. 본인 인생이고, 본인 공부인데 스스로 알아보고 뽑아 먹으려고 해야 더 얻을 수 있어요. 누군가에게 의지하려고 해선 안 돼요. 다른 유학원이든 셰프크루든 본인 인생을 대신 책임져줄 곳은 어디에도 없어요.
최민아: 용기 있게 선택했으면 좋겠어요. 그리고 선택하기 전에 본인이 이 일을 끝까지 할만한 준비가 된 사람인지도 점검해봤으면 좋겠어요. 요리사가 되기 위해 여러 시도를 한 뒤, 다른 길로 돌아가는 경우도 많이 생겨요. 그 시간은 아깝고 비용도 많이 드는 선택이기 때문에, 이 과정을 사랑하고 끝까지 지켜 갈 만한 열정이 있는지 스스로 점검하면 좋을 것 같아요. 현실은 상상하시는 것보다 냉혹하고 정말 어렵다는 것 알려주고 싶어요. 한국인들은 성실하고 일 잘한다고 알려져 있죠? 저도 많이 들었던 얘긴데요, 호주 와서 보니까, 유럽 친구들, 호주 친구들, 우리와 비교 안 될 정도로 열심인 애들 넘쳐요. 체력도 좋아서 혀를 내둘러요. 이런 친구들 사이에서 살아남으려면 정말 많은 준비가 필요해요. 그리고 그만큼 이 일을 좋아해야만 할 수 있는 일이에요.
주방에서 일하는 건 운동경기 피크타임 같아요. 정말 바쁘게 돌아가는 시간 속에 극도로 긴장한 상태로 스피드를 올려서 식자재를 만지고 요리로 창조해내죠. 이런 급박한 상황 뒤에는 누군가가 먹어 준다는 사실에 기뻐하고 안도해요. 이런 상황이 스트레스로 다가오는 사람이라면 맞지 않을 거예요. TV에 나오는 요리사의 포장된 모습은 찰나적 순간이에요. 그런 모습에 미혹되지 않고, 이런 요리사의 일상들이 자신의 삶으로 이어졌을 때 견뎌낼 수 있는 인내와 지구력이 있어야 주방에서 일할 수 있어요. 이 안에서 기쁨과 즐거움을 찾으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라면 용기 있게 선택하실 수 있을 거예요.
원문: 셰프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