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츠에는 원래 규칙에 그렇게 나와 있는 건 아닌데 다들 그렇게 행동해서 규칙에 그렇게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이는 플레이가 적지 않습니다. 예를 들어 수영에서 ‘자유형(free style)’은 이름 그대로 어떤 영법이든 선택해 자유롭게 경쟁하는 경기를 뜻합니다.
그런데 실제로는 100%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크롤(crawl) 영법이 대세입니다. 이 영법이 가장 빠르거든요. 그러니 수영 수준이 같을 때 다른 영법으로 자유형 경기에 참가해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건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그런 이유로 아예 이 영법 이름이 자유형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또 육상 규칙 어디에도 높이뛰기 때 어떻게 뛰어야 한다는 내용은 없지만 다들 배면뛰기를 구사합니다. 가장 효율적이기 때문입니다. 겨울 올림픽 종목에서는 스키점프가 그렇습니다. 선수들이 꼭 V자로 날을 정렬해야 한다는 규칙은 없지만 11자보다 양력을 최대 28% 더 받을 수 있기 때문에 다들 V자로 뜁니다.
쇼트트랙 계주 경기에서는 선수 교대 방식이 그렇죠. 국제빙상연맹(ISU) 규정에는 그저 “교대는 터치로 이루어진다(Relaying will be by touch)”고만 나와 있을 따름입니다. 그런데 쇼트트랙 경기를 보면 아래 사진처럼 ‘엉덩이 밀기’ 방식이 규칙에 나와 있는 것처럼 보일 정도입니다.
이렇게 다음 선수 엉덩이를 밀어주는 건 그저 이게 가장 효과적인 방법이기 때문입니다. 달리던 선수가 추진력을 유지할 수 있어 ‘운동 관성’을 최대한 이용할 수 있으니까요. 인라인스케이트 계주 경기 때도 같은 방식으로 릴레이를 이어갑니다.
또 쇼트트랙 계주 경기 때는 순서 제한도 횟수 제한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참가 선수 네 명이 꼭 1-2-3-4 순서로 경주에 나서야 하는 게 아닙니다. 직선 주로에서는 언제든 어떤 선수하고 교체해도 괜찮습니다. 그저 참가 선수 4명이 전부 한 번씩만 경기에 나서면 그만입니다.
거리 제한도 없습니다. 어떤 선수가 한 바퀴를 돈 다음 (관용적인 표현으로) 바통을 넘겨주고 나서 다음 선수가 두 바퀴를 돌아도 괜찮은 겁니다. 한국 대표팀은 보통 한 바퀴 반마다 선수를 바꾸지만 때로는 이 리듬을 깨는 방식으로 상대를 혼란에 빠뜨리기도 합니다. 딱 한 가지 제약조건은 마지막 두 바퀴 때는 선수를 교대할 수 없다는 것(올림픽 때 여자 계주는 3,000m로 27바퀴, 남자 계주는 5,000m로 45바퀴를 돕니다).
세 바퀴를 남겼을 때 종소리를 울리는 건 바로 이 때문입니다. 올림픽에서 금메달 4개를 목에 건 전이경 싱가포르 대표팀 감독(42)은 “레이스 막판에는 모든 선수가 몸싸움을 불사하기 때문에 터치 때 선수가 뒤엉켜 충동할 우려가 있다. 이를 보호하려는 조치”라고 설명했습니다. 선수를 바꿀 수 없기 때문에 마지막 주자로는 보통 각 나라 ‘에이스’가 출동합니다.
그러니까 (관용적 표현으로) 평창에서 김예진(19·평촌고) 대신 ‘에이스’ 최민정이 튀어나와 엉덩이 대신 손을 터치하고 달려도 아무 문제가 없던 겁니다. 사실 김예진은 이미 교대 준비를 하며 트랙 안쪽을 달리고 있었기 때문에 김예진이 달려가는 게 더 손해입니다.
단 이때 주자 순서가 바뀌었기 때문에 원래 마지막 주자로 준비하던 최민정 대신 심석희(21·한국체대)가 레이스를 마무리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