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답하라 1994에는 1994년의 대학문화가 없다
화제의 드라마 ‘응답하라 1994′에 대한 슬로우뉴스 기사와 그에 대한 여러 댓글반응을 보다가 몇 마디.
내가 ‘응답하라 1994′를 보는 느낌은, 딱 퓨전사극이다. 소품이 세심하고, 굵직한 당시 사건 같은 것이 박혀있어서 재밌다. 그 위에 통속적 로맨스코미디로 장르적 재미가 쏠쏠하다. 하지만 소품으로 향수를 자아내는 것을 넘어, 특정한 시대상을 꿰뚫어 나를 감동시키는 것과는 거리가 멀다. 꼭 그것까지 다 해내야 한다는 것은 아니지만, 딱 여기까지라는 것이다.
별로 대단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야기를 풀어가는 핵심 환경인 94년의 대학문화가, 94년의 대학문화가 아니라서 그렇다. 대충 퉁쳐봤자 9말0초라면 모를까.
운동권도 아닌, 소비의 시대도 아닌 공존의 90년대 중반
우선 90년대 중반의 사회 상황은, 젊은이들의 독재반대 대규모 저항운동이 더 이상 필요하지 않은 민주화된 사회를 자부하면서도, 그들의 사회참여에 대한 토끼몰이 최루탄 진압과 임의체포는 남아있던 묘한 시대다. 그 안에 있던 94년의 대학생 문화라면, 대학교에서 이뤄지는 크고 작은 활동에서 학과 학생회가 진행하는(사람들을 모으는 것부터 세부 기획까지) 부분이 컸고, 대학교의 학생회는 사회파인 것이 당연하게 받아들여져서 소위 ‘운동권’에 연계된 경우도 많았다.
아예 학생회=운동권이었던 8말9초 학번 선배들의 세계관과 소련 붕괴 이후의 사상적 체질변환 트렌드와(문화연구에 관심이 집중된 게 우연이 아니다), 김영삼 당선 등 형식민주화 이후에 대학생이 된 세대의 강화된 개인성 등이 한꺼번에 뒤섞이던 것이 90년대 중반이다. 그 틀은 96년 연대사태, 97년 IMF로 확실하게 깨졌고 말이다.
대학교 새터 – 신입생 오리엔테이션 – 는 명랑운동회와 학과 응원전과 사회운동 토픽 훈육(예: 쌀개방 반대)의 혼탕이었고, 학내방송과 과방(이거, 매우 중요한 공간이다)에서 울려퍼지는 음악으로는 대중가요와 민중가요가 마치 가요톱텐 순위권에 서태지와 조용필이 함께했듯 애매하게 공존하던 시대다. 대학생이면 누구나 운동권이 되어야 할 것 같은 시대에서는 벗어나 있었기에 그냥 오렌지족 흉내내며 클럽 죽돌이를 하며 지내도 되었으나, 학과에서 하는 행사에 참여하면서 ‘운동권 논리’를 접하지 않을 방도도 없었다.
모두가 운동권은 아니지만, 학과 친구가 운동권에 연계된 경우는 흔해 빠졌다. 선배들이 다가와 사회파 공부 모임인 ‘학회’로 데려가고, 어울렁더울렁 여러 명 한꺼번에 밥과 술을 사주며 농활을 가자고 꼬시던 시기다. 특히 신입생 때라면 더욱 학과라는 돈독한 커뮤니티의 힘에 끌려가는 일이 생기곤 해서, 클럽 죽돌이가 선배들의 섭외력과 동기들의 물귀신으로 얼결에 노학연대 시위장에 동원되어 나와 있는 경우도 빈번했다. 그런 와중에 한쪽에서는 전통의 하이텔 천리안, 그리고 신흥 나우누리가 등장하며 온라인 문화라는 새 커뮤니티 접점들이 생겨나던 시기다.
한마디로 대학교라는 커뮤니티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것저것 다 섞여 있던 전환기다.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각자 자신들이 결국 더 추구하게 되었던 어떤 부류의 문화에 대한 기억을 과거에 역적용하며 회상하곤 할 수 있겠으나, 전체상은 그랬다. 모처에 남긴 댓글을 옮기자면, “학과/학생회 문화는 원하면 피해갈 수는 있었지만 없는 척 할 수는 없었는데, 드라마에서는 그냥 없는 척 해버리죠”
응사에 대한 기대, 그리고 아쉬움
드라마 1화에서 ‘삼천포’(혹은 장국영)가 상경하자마자 눈치 보며 서울말씨를 최대한 구사하려 하면서도 당시 신촌지하철역의 악명높은 출구 찾기에서 헤매고, 당당하게 택시를 잡고도 기사에게 사기당하고, 얼결에 쌀개방반대 학생운동 전단을 가지고 있다가 경찰에 체포되어버리는 모습에서, 적잖은 기대감을 가졌다. 연희동에서 서태지를 기다리다가 전두환 사진을 찍은 어처구니없는 사건에서 문화향유와 정치현실의 이중주로 점철된 생활의 싹이 보였다.
요지경 같던 전환기에서 사람들이 이리저리 다양한 방식으로 적응하는 모습을 보여주며(한 하숙집 친구들 중에 오렌지족도 운동권도 같이 나와준다든지) 2013년 오늘날의 복잡다단함도 그리 특이한 것이 아니라는, 향수 너머의 위로를 건네는 명작으로 나아갈 수 있지 않을까 했다.
아뿔싸, 그다음부터는 갈수록 소품전시회 퓨전사극일 따름이다. 그냥 진정한 주연인 정대만만 믿고 보는 거다.
PS. “피할 수는 있지만 없는 척할 수는 없는” 부대끼며 사는 생활 가운데 하나의 패턴은, 김태권 작가의 초기작 “남수와 주영의 책장“이 좋은 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