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에게 모든 소리를 보여드릴게요’ 청각장애인을 돕는 스마트한 소통 서비스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
“보이지 않는 것은 사물과의 단절이지만. 들리지 않는 것은 사람과의 단절이다.”
헬렌 켈러가 남긴 유명한 말입니다. 청각장애를 흔히들 보이지 않는 장애라고 하지요. 사람과 단절된 청각장애인은 우리가 보이지 않은 곳에서 고립된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이런 이들을 위해 세상과 소통하는 문을 열어주는 서비스를 소개하려합니다. 듣디 못하는 이들에게 소리를 문자로 보여주는 플랫폼 서비스 ‘쉐어타이핑’입니다.
어둠 속에서도 ‘들리는’ 쉐어타이핑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이하 에이유디)이 서비스하고 있는 쉐어타이핑은 소리를 잘 들을 수 없는 사람들이 언제 어디서 누구와도 함께 어울려 소통할 수 있게 만들어진 소통 플랫폼입니다. 스마트폰 애플리케이션이나 전용 단말기를 통해 소리로 전달되는 정보를 실시간 자막으로 통역해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을 도와줍니다.
‘시각적’으로 쉐어타이핑을 설명 드리면, 이런 겁니다.
만약 여러분이 소리를 들을 수 없는 장애인이며, 어느 큰 회의장 세미나에 참여하게 됐다고 가정하자. 하지만 늦게 오는 바람에 앞자리에 앉지 못해 발표자의 입술도 보이지 않는 뒷자리에 앉게 됐다. 구화(입술의 모양을 보고 말을 알아듣는 것)도 쓸 수 없게 된 것이다. 설상가상으로 프레젠테이션이 켜지면서 회의장 조명이 어두워졌다.
이제 발표자 실루엣밖에 안 보이는 상황. 발표자는 보이지 않고 소리도 들리지 않는 그때 절망하지 않고 주머니에 있는 휴대폰을 꺼내 쉐어타이핑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한다.
애플리케이션에 접속하자 발표자의 이야기가 문자로 실시간으로 전달된다. 미리 회의장에 와 있던(혹은 원격으로 듣고 있던) 문자통역사가 발표자의 말을 속기해 자막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그제야 사람들과 함께 이야기를 ‘보고’ 웃을 수 있게 됐다. 이것이 바로 쉐어타이핑 앱 플랫폼 서비스이다.
에이유디는 청각장애인을 위한 문자통역 사회서비스를 전문으로 하는 협동조합입니다. 청각장애인과 문자통역사(속기사, 개발자) 그리고 자원봉사자, 후원자가 조합원으로 참여하여 ‘청각장애인의 의사소통과 사회참여’ 문제를 해결하는 일을 하고 있습니다.
에이유디가 제공하는 서비스는 4가지입니다.
- 세미나, 컨퍼런스, 포럼, 교육 등 행사장에서 청각장애인에게는 무료로 문자통역 서비스를 제공하고, 그 비용을 행사 주최자(기업, 공공기관, 정부, 학교 등)가 부담하는 ‘B2B 문자통역서비스’
- 교육, 회의, 법률 및 의료 상담 등 청각장애인 개인의 생활에 필요해서 신청하여 이용하는 ‘개인 문자통역서비스’. 시간당 7만 원인 기존 가격에 후원자의 기부금과 문자통역사의 후원 참여로 약 2만 원에 이용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 문자통역사가 출장 가기에 먼 거리나 굳이 장애를 드러내지 않아도 독립된 환경에서 지원을 받고 싶은 사람들을 위해서 원격으로 소리를 듣고 문자통역사가 실시간 자막 서비스를 지원하는 ‘원격 문자통역서비스’.
하지만 이런 문자통역서비스가 청각장애인들에게만 제공되는 건 아닙니다. 회의, 포럼 등 중요한 속기록이 필요한 비장애인들에게도 에이유디의 서비스는 유용합니다. 현재 쉐어타이핑 서비스 가입자는 2,000명 정도고, 그 절반은 청각장애인입니다. 하지만 이범식 AUD 사회적협동조합 이사는 생각보다 청각장애인의 참여율이 떨어진다고 말합니다.
“청각장애인들은 사회와 단절된 채 익숙한 네트워크 안에서만 활동하려고 하는 경우가 많아 새로운 걸 시도하는 걸 꺼리시는 듯해요. 그래서 저희는 청각장애인이 쉐어타이핑 서비스를 많이 사용하는 것뿐만 아니라 이들이 사회 참여를 적극적으로 할 수 있도록 교육과 문화 활동을 지원하려고 노력하고 있습니다.”
‘스마트’하게 누군가를 돕는 방법
에이유디는 ‘스마트’하게 청각장애인을 돕는 협동조합입니다. 쉐어타이핑이 제공하는 서비스는 일반적으로 속기서비스라고 불리는데, 시간당 가격은 대략 20만 원 정도입니다. 수업이나 세미나가 최소 2시간은 진행되니 한번 나갈 때마다 40만 원 가량의 비용이 드는 셈입니다.
하지만 쉐어타이핑을 통한 서비스는 개인이 사용할 경우 시간당 2만 원 남짓입니다. 공공기관 등 기관이 이용할 경우에는 시간당 7만 원입니다. 어떻게 이렇게 가격을 낮출 수 있었을까요?
우선 개인이 사용할 경우에는 협동조합이라는 특성을 이용해 조합원들과 비조합원들로부터 받은 후원금으로 서비스 비용을 충당합니다. 기관이 사용할 경우에는 행사 주최자 즉, 기관 및 단체가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도록 비용 부담을 최소화해서 지원합니다. 덕분에 행사에 참가한 모든 청각장애인이 무료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습니다.
에이유디가 청각장애인을 돕는 ‘스마트’한 방법은 여기서 그치지 않습니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스마트 폰 애플리케이션으로 서비스를 제공해 접근성을 높였을 뿐 아니라, ‘쉐어타이핑 씨온글래스’라는 실시간 자막 기기를 개발해 현재 전파 인증만 남은 상태입니다. 또한 회의나 대화를 음성인식으로 실시간 자막을 지원하는 쉐어톡을 개발 중입니다. 쉐어톡이 개발된다면 청각장애인은 좀 더 많은 자유를 누리겠지요.
누군가를 돕는 일. 소외된 계층에 공감하고 문제를 함께 고민하는 것에 ‘스마트’함을 더하면 이렇게 지속적이고 획기적으로 누군가를 도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왜 수화로 대화하지 않나요?
우리가 매스컴에서 보는 청각장애인들 대부분은 수화로 이야기합니다. 대부분의 청각장애인이 수화로 대화를 한다면 굳이 쉐어타이핑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이에 대해 이범식 이사는 “올해 보건복지부 장애인실태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에서 수화로 의사소통을 하는 청각장애인의 수는 전체(대략 27만 명)의 6%에 불과하다”고 합니다.
“외국에서는 Deaf(한국에서는 농인으로 지칭)와 Hard of hearing(한국에서는 난청인으로 지칭)을 명확하게 구분하고 각각의 협회도 존재해 원하는 의사소통 방법을 지원해주고 있지만 국내에는 수화를 사용하는 농인 중심으로 복지지원체제가 마련돼 있어서 다른 소통 방법에 대한 지원이 부족합니다.”
이범식 이사는 수화가 청각장애인들 사이에서 공용화된 의사소통 방법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시각장애인도 모두 점자를 사용하지 않는 것처럼요. 그렇다면 94%의 청각장애인들은 어떻게 의사소통을 하고 있을까요?
“젊은 세대 청각장애인들은 보청기와 와우 수술 등에 도움을 받아 듣는 걸 보조받고, 말하는 법은 소리가 아닌 청능 및 언어재활을 통해서 배우게 됩니다.”
물론 부모님이 수화를 쓰는 농인이라면 자녀도 수화언어를 자연스럽게 배우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래서 청각장애인은 수화뿐만 아니라 구화, 필담, 몸짓 등 다양한 의사소통방법을 활용합니다. 하지만 이런 소통 방법에는 장소와 시간에 따른 한계가 있습니다.
실제로 이런 방식으로 소통하는 법을 배웠던 청각장애인 박원진 에이유디 이사장은 초등학생 때 반장을 맡게 돼 교탁에 섰을 때 상당한 혼란을 느꼈다고 회고합니다.
“입술의 모양을 보고 대충 상대의 말을 알아들으며 말하는 법을 배웠기 때문에 일상적인 소통은 문제가 없었습니다. 하지만 초등학생 때 반장이 되어 앞에 섰는데 아이들이 동시에 이야기하니 도무지 무슨 말을 하는지 알아들을 수 없었습니다. 그때 아이들 입술 위로 글자가 글씨처럼 흘렀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박원진 이사장의 바람은 세상을 바꾸는 아이디어로 현실이 되었습니다. 소셜벤처대회에서 입상 후 현재의 쉐어타이핑이라는 서비스로 구현하게 된 것이죠.
태어나 처음으로 노래를 따라 부른 날
“눈에 띄는 게 싫어요. 가만히 있으면 정상으로 보이잖아요.”
이범식 이사가 어느 학교에 쉐어타이핑 서비스를 설명하러 간 날, 한 청각장애인 학부모에게 들은 이야기입니다.
수화가 아닌 구화로 소통하는 청각장애인들은 가만히 있으면 비장애인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 자신들에게 익숙한 네트워크에서 벗어나려 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청각장애인들의 교육 기회가 제한되고 덩달아 직업을 구하기도 힘들고, 구했다 해도 업무 수행에 문제가 있어 승진이 어렵습니다. 청각장애인이 가장으로 있는 가구의 소득은 국민 평균 소득의 35%에 지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래서 에이유디는 실시간 자막으로 하는 문자통역서비스에만 초점을 맞추지 않습니다. 고립된 청각장애인이 ‘사회 참여’가 가능하도록 돕기 위해 여러 행사를 개최하고 있습니다.
장애인 예술가와 비장애인 예술가가 함께 여는 ‘나다 페스티벌’에 참가한 한 청각장애인은 쉐어타이핑을 통해 “태어나 처음으로 노래를 따라 불렀다”고 감동했습니다. 장애인여행문화연구소와 함께한 ‘청각장애인의 경복궁 야간 투어’에서도 쉐어타이핑이 등장했습니다. 어둑어둑한 밤 야외 문자통역을 통해 청각장애인들은 편하게 설명을 들으며 고궁 투어를 할 수 있었습니다. 에이유디는 매년 ‘소통이 흐르는 밤’이란 이름으로 여러 청각장애인을 초대해 강연을 하고 대화하며 서로 간의 유대감을 높이고 용기를 주고 있습니다.
에이유디의 이런 활동은 청각장애인만 웃게 하는 건 아닙니다. 방송자막 일을 하다가 문자통역사의 길로 들어선 이시은 씨는 “방송자막 일을 할 때는 크게 보람을 느끼지 못했는데, 문자통역사 일하며 청각장애인 분들이 제 통역에 미소를 지을 때면 정말 행복해요.”라고 말합니다.
컴컴한 공연장, 모두가 열창을 할 때 혼자 고립되어 있던 청각장애인들, 모두가 웃는데 혼자 멀뚱멀뚱하게 있어야 했던 청각장애인들이 문자통역을 통해 세상과 소통을 시작했습니다. 에이유디는 청각장애인들이 사회와 소통하며 자신의 꿈을 펼쳐나갈 수 있기를 응원합니다.
- 문의 : audsc.org / 070_4322_3653
- 쉐어타이핑 견적 및 서비스 문의 : [email protected]
- 카카오톡 옐로 아이디 상담 및 문의 : “쉐어타이핑” 검색
원문: 이로운넷 / 글: 이은주 /사진: 이우기 사진가, 에이유디사회적협동조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