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입사한 지 1년이 채 안 된 여직원입니다. 어떤 이유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같은 팀 선배님들이 저를 좀 왕따 시키는 것 같습니다. 너무 힘든 나머지 팀장님께 말씀드렸더니 제가 처신을 잘못했기 때문이라고 하네요. 저는 제가 무엇을 잘못했는지 정말 모르겠습니다. 왜 왕따 당한 제가 죄인 취급을 받아야 하죠?
Answer
왕따 당하면 정말 힘들죠. 저 또한 직장에서 왕따를 당해봐서 그 어려움을 잘 압니다.
그런데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직장 내 왕따는 당한 사람이 ‘죄인’입니다. 그게 맞다는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니라 아직 우리나라 직장 현실이 그렇다는 얘기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해서는 안 되지만 아직도 많은 분들이 그렇게 생각하고 있고, 또 그러한 생각에 맞춰서 행동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장 내 왕따 현상은 쉽게 사라지지 않고 있죠.
이처럼 많은 분들이 직장 내 왕따를 왕따 당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이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직장 내 왕따를 왕따 당한 사람의 잘못으로 돌리는 이유
1. 다양성을 수용할 수 없는 경직된 기업문화 때문
아직도 국내 회사 중에는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회사가 많습니다. 특히 최근 급성장한 중견기업 중에는 ‘나의 방식만이 곧 성공 방식’이라는 자만심에 빠진 나머지 다양성을 수용하지 않는 것을 무슨 대단한 자랑처럼 여기는 회사들도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몇 년 전까지만 해도 ‘단일 민족’이라는 누군가가 지어낸 말도 안 되는 허상을 마치 대단한 민족적 긍지인 양 외국인들에게 얘기했던 것과 비슷하죠.
이런 회사에서는 가장 중요한 직원 선발 기준 중 하나가 ‘기업문화와의 적합도’입니다. 따라서 기업문화와 잘 맞지 않는 직원은 뽑히기도 어렵고, 설사 입사하더라도 적응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에 자의 반 타의 반으로 퇴사의 길을 걷게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처럼 경직된 기업문화를 갖고 있는 회사에서는 우리와 ‘다름’은 곧 ‘틀림’으로 간주됩니다. 유일한 성공방식인 기업문화와 다르게 행동하는 것은 곧 실패의 길을 걷겠다는 것이고, 이는 당연히 틀린 것으로 받아들여지죠. 계속해서 틀리게 행동하는 분은 조직에 피해를 주는 분이 되고요.
따라서 이런 회사에서는 기업문화와 다른 성향의 직원들은 왕따의 피해자가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런데 정작 왕따를 가하시는 분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것이죠. ‘왜 유별나게 행동해서 조직 분위기를 망치느냐’는 게 이분들의 생각일지 모릅니다.
결국 기업문화에 맞지 않게 행동해서 다른 조직원들부터 인정을 못 받는 분들은 ‘왕따의 피해자’가 아니고 오히려 ‘조직 분위기를 해치는 가해자’로 간주됩니다.
2. 왕따 당한 사람까지 배려할 만큼 여유가 없기 때문
왕따 당한 사람을 배려하기 위해서는 그를 배려할 만큼의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많은 조직에서는 그 정도의 여유조차 없습니다. 하루하루 실적으로 쪼임을 당하는 팀장 입장에서는 어느 한 팀원의 왕따는 실적을 일부 희생해서라도 바로 잡을 만큼 중요한 이슈가 아닐 수도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십시오. 왕따가 심각한 문제가 아니라는 말씀을 드리는 게 아닙니다. 사내 왕따를 겪어본 피해자로서 왕따가 얼마나 힘든지 잘 알고 있습니다. 저 또한 왕따는 절대 바람직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현실이 그렇다는 것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가령 우리 팀은 단결도 잘 되고 활기가 넘치는 팀이었는데 경력사원 한 명이 들어오고 나서 분위기가 조금 이상해졌습니다. 기존 팀원들이 경력사원을 불편해합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 경력사원을 왕따 시킵니다. 당신이 팀장이라면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처음에는 그 경력사원이 기존 팀원들과 잘 어울릴 수 있도록 이런저런 조언도 하겠죠. 하지만 그래도 별로 개선되는 것 같지 않습니다. 하루는 기존 직원 중 최고참이 찾아와서 조심스럽게 얘기합니다. “새로 온 경력사원이랑 같이 일 못 하겠다”라고.
이러한 상황까지 되면 많은 팀장님들이 경력사원의 편에 서서 왕따를 근절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대신 팀의 단결을 위해 경력사원을 포기하는 길을 선택합니다. ‘왕따 한 명 때문에 조직 분위기를 망칠 수 없다’라고 판단하기 때문이죠. 왕따 편에 섰다가는 자칫 잘못하면 팀 전체의 원성을 살 수도 있고요. 그렇게 되면 팀 실적은 바닥을 치겠죠.
결국 팀장은 어쩔 수 없이 대(大)를 위해 소(小)를 희생합니다. 경력사원을 다른 팀으로 보내거나 최악의 경우 최하 고과를 연거푸 줘서 자진 퇴사를 유도하죠. 그래서는 안 되지만 그게 안타까운 현실입니다.
3. 기업문화 또는 기존 직원들의 잘못으로 책임을 돌릴 수 없기 때문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감옥살이를 한 청년의 누명을 벗겨주는 내용을 그린 영화 <재심>에서 주인공 이준영 변호사는 “변호사한테 미안하다라는 말은 금지어”라고 주장합니다. “그 말을 내뱉는 순간 자기 책임”이 되기 때문이라는 게 그의 설명이죠.
마찬가지로 기업 입장에서도 사내 왕따를 공식화하거나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렇게 하는 순간 잘못된 기업문화의 책임이 될 수 있기 때문이죠. 마찬가지로 팀장 입장에서도 팀 내 왕따를 인정하기는 어렵습니다. 팀장의 관리력 부재를 인정하기 싫어서가 아닙니다. 왕따 현상을 인정하는 순간 기존 직원들은 왕따의 가해자가 되기 때문이죠. 이것이 경영진과 팀장의 어쩔 수 없는 딜레마인 것 같습니다.
물론 왕따를 인정하고 공식화하지 않으면 근절 대책도 마련하기 어렵겠죠. 끽해야 팀 단합대회 또는 삼겹살 회식이 아닐까요?
4. 경영진이 실제로 왕따 당한 사람은 무능하다고 생각하기 때문
어느 회사의 경영진까지 오른 분이라면 그 직위에 오르기까지 온갖 산전수전을 다 겪었을 겁니다. 왕따 비슷한 경험은 물론 이보다 훨씬 더 심한 수모도 견뎌왔겠죠.
이러한 분들에게 사내 왕따는 ‘직장인이라면 언젠가 한두 번쯤은 필연적으로 겪어야 할 통과의례’에 불과할 수도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분들은 ‘우리 회사 직원이라면 모름지기 사내 왕따 정도는 스스로 이겨낼 수 있을 만큼 생존력이 강해야 한다’라고 생각할 수도 있고요. “그깟 왕따 하나 극복하지 못해서야 어디 이 험한 직장생활 제대로 하겠나?”
이러한 분들에게 스스로를 왕따 피해자라고 밝히는 것은 ‘나 못났어요’라고 만천하에 알리는 것일 수도 있습니다. 이들에게 왕따 피해자는 ‘약해 빠진 부적응자’에 불과하니까요.
5. 왕따는 기업 운영의 ‘필요악’이라서 근절하면 안 되기 때문
사내 왕따는 어찌 보면 직장 내 ‘필요악’일 수도 있습니다. 나쁜 것이지만 때로는 꼭 필요한…
사례 제시 1
최과장은 직원들 사이에서 ‘큰 형님’ 노릇을 하는 분이었습니다. 최과장한테 한 번 찍히면 회사 생활하기 힘들어졌죠. 이 분은 자기 마음에 들지 않는 직원은 대놓고 왕따를 시켰습니다. 후배들한테 이렇게 얘기했죠.
“누구누구랑은 업무 외의 얘기는 일절 하지 말고 커피 한 잔 같이 마시지 말라.”
최과장은 약간의 피해망상증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회사에 대한 음모론에 가까운 나쁜 소문을 퍼뜨리기도 했습니다. 몇몇 직원들에게 저주에 가까운 내용이 담긴 메시지를 익명으로 보내기도 했고요. 그리고 하루는 급기야 정말 큰 실수를 저질렀습니다. 전체 회의에서 사장님께 대놓고 대든 것이죠.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다른 직원들을 선동해서 사장님께 반발할 것을 부추기기까지 했습니다.
회사 경영진은 참다못해 최과장을 내보내기로 결정하고 그에게 퇴사를 위한 딜을 제안했습니다. 하지만 최과장은 단박에 거절했죠. 말도 안 되는 보상 조건을 제시하면서요. 결국 경영진은 최과장을 반강제적으로 내보내기로 결정하고 모든 직원에게 ‘집단 왕따’를 지시했습니다. 최과장과는 같이 밥도 먹지 말고, 말도 섞지 말고, 쳐다보지도 말라고요.
왕따 가해자가 왕따 피해자가 된 순간이었습니다. 천하의 최과장이라도 이런 상태로는 오래 버티기 힘들었죠. 3개월 여를 버티다가 결국 회사의 제안을 받아들이고 퇴사를 했습니다.
위 사례처럼 아무리 이상한 사람이더라도, 조직 분위기를 망치고 다른 직원들에게 해를 끼치는 ‘썩은 사과’라고 할지라도 직원을 함부로 자를 수 없는 게 우리나라의 실정입니다. 과거 기업의 지나친 경영권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만든 안전장치가 지금은 오히려 나쁜 직원까지 방치하는 부작용을 낳은 측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예전에는 모든 직원들에게 강제적으로 사표를 쓰도록 하는 ‘집단사표 제출과 선별처리’ 관행도 있었습니다. 지금은 당연히 불법이죠. 앞선 사례처럼 ‘썩은 사과’를 제거하지 어렵다는 단점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부로 직원을 자르는 관행은 반드시 근절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따라서 오늘날 기업은 조직 내 ‘썩은 사과’를 도려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조직 차원에서의 집단 왕따에 의존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왕따는 나쁜 직원을 내보내기 위한 가장 효율적인 수단이기 때문에 경영진 입장에서는 기업 운영에 없어서는 안 될 필요악입니다. 이 수단이 아무 책임 없는 직원들까지 내보내기 위해서 악용되고 있다는 게 문제이긴 하지만요.
어쨌든 이러한 이유로 어느 회사라도 왕따라는 효과적인 방법을 포기할 수는 없습니다. 왕따 없이는 조직 내 ‘썩은 사과’를 제거하기가 힘들기 때문이죠. 따라서 기업 입장에서 왕따를 공식적으로 금지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그래야지만 경영진에서도 필요시 조직적인 왕따를 지시할 수 있으니까요.
왕따 자체를 부정하고 금지할 수 없기 때문에 왕따 근절을 위한 적극적인 방법을 쓰는 것도 어려워집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사내 왕따는 성희롱처럼 공론화하기 어려울지도 모릅니다. 기업에서 왕따 금지를 위한 교육을 적극적으로 실시하는 경우도 드물죠. 하긴, 기업에서 성희롱 예방 교육을 본격 실시한 지도 십여 년이 채 안 됐습니다. 예전에는 성희롱 피해자를 풍기문란을 했다는 이유로 경고를 주기도 했다죠. 지나친 남성 중심의 무식한 풍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사내 왕따 피해자는 조직적인 차원에서 보호받기 어렵습니다. 사내 왕따를 신고하는 사람은 오히려 왕따라는 효율적인 기업 운영 수단에 브레이크를 거는 ‘나쁜 직원’ 또는 ‘바보 직원’으로 간주될 수 있습니다.
마무리하며
이상으로 직장 내 왕따를 당한 사람이 왜 피해자가 아니라 죄인으로 간주되는지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렸습니다.
기업 경영진들은 어떻게 생각할지 모르지만 당신이 조직 내 ‘썩은 사과’가 아닌 이상 사내 왕따는 절대 당신의 잘못이 아닙니다. 당신이 못나서는 더더욱 아닙니다. 실제로 일 잘하고 잘난 사람일수록 왕따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사례 제시 2
굉장히 역동적인 조직에서 굉장히 보수적인 조직으로 옮긴 오팀장은 한동안 생각지도 못한 왕따의 피해를 겪었습니다.
오팀장은 예전 조직에서 했던 것처럼 정말 열심히, 성실히 일했죠. 가장 먼저 출근해서 가장 늦게 퇴근했고요. 팀원들을 지나치리만큼 잘 챙겨주고. 업무를 지시할 때에는 상세하고 명확하게 가이드라인을 주고.
그러자 곧 동료 팀장들 사이에서 불만이 터져 나왔습니다. “우리는 뭐가 되느냐”라고. 다른 팀장들은 은근히 오팀장을 왕따시켰습니다. 술자리에도 잘 안 부르고. 팀장들 모임을 잡을 때에도 참석하기 어렵게 맨 나중에 알려주고. 하지만 눈치 빠른 오팀장은 일하는 시간을 줄이고 다른 팀장들과 어울리는 시간을 늘렸습니다. 그러자 곧 집단 왕따에서 해금되었죠.
오팀장의 경우는 잘난 사람이 너무 잘나게 행동하니까 왕따 된 케이스라고 할 수 있습니다. 일을 덜 하니까 바로 해결되었죠. 마찬가지로 정의로운 직원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정말 별다른 이유 없이 왕따를 당할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왕따는 여러분의 잘못이 아닙니다. 여러분의 책임이 절대 아닙니다. 혹시 왕따 때문에 크게 상심하셨다면, 자존감을 잃어버리셨다면, 일할 의욕을 상실하셨다면 지금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하십시오. 왕따의 책임은 왕따를 주도한 사람들과 잘못된 기업문화에 있습니다.
너무나 당연한 말인가요? 너무나 당연한 말이 왜 현실에서는 너무나 잘 안 지켜지고 있나요? 그리고 그러한 현상을 왜 다들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일까요?
댁의 자녀들이 학교에서 왕따를 당해도 그렇게 생각하실까요? 이러한 어른들 때문에 학교 왕따도 근절되지 않는 것인가요?
Key Takeaways
- 오늘날 우리나라 기업에서는 왕따 당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간주한다.
- 기업에서는 이런저런 이유로 왕따에 적극적으로 대처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 하지만 왕따 당한 사람은 아무 잘못이 없다. 아무 책임도 없다. 훌훌 털어버리고 새 출발을 해라.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