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회사에 악인이 참 많습니다. 그동안은 그분들을 만날 일이 별로 없어서 잘 몰랐는데 어느 날 의도치 않게 그중에서도 가장 악질스러운 분과 엮이게 되면서 회사생활의 악몽이 시작되었습니다. 정말 온갖 비열한 방법을 다 동원해서 저를 괴롭히는데 어떻게 해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 진짜 수준 이하거든요. 맞서 싸우려면 저 또한 마찬가지로 비열한 방법을 써야 할 것 같은데, 아무리 직장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이렇게까지 하면서 회사에 다녀야 하나’ 하는 자괴감이 드네요. 어떻게 해야 하죠?
Answer
저런, 딜레마에 빠지셨네요. 고민이 많이 되겠어요. 이에 답변을 드리기에 앞서 먼저 이와 유사한 갈등에 빠질 수 있는 스포츠 경기의 경우를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학창 시절에 운동 종목을 한두 개쯤은 다들 해보셨을 겁니다. 정식 과정이든 단순 취미 생활이든. 축구, 야구, 농구, 수영, 태권도, 스케이트, 스키, 골프 등. 심지어 발야구나 피구라도요. 열심히 훈련하다 보면 언젠가는 시합을 해볼 기회도 있었을 것입니다. 자기가 직접 뛰지 않더라도 관람객으로 운동경기를 지켜봤던 경험은 모두 한두 번쯤은 있으셨겠죠.
스포츠 시합을 할 때 코치나 선생님은 항상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선수가 페어플레이하려고 노력합니다. 하지만 시합의 결과에 따라 본인의 진학이나 학교의 명예가 좌우된다면 얘기는 완전 달라집니다. 페어플레이고 뭐고 일단 이기는 게 중요하죠.
그러다 보면 간혹 치사하게 반칙을 일삼는 선수들도 나옵니다. 때로는 고의였는지 실수였는지 구분하기 어려울 만큼 교묘하게 위장하기도 합니다. 결과에 나와 내 팀의 운명이 걸렸다면 반칙의 유혹은 뿌리치기 힘듭니다. 반칙으로 얻는 감점에 의한 손해보다 당장의 이득이 훨씬 더 크기 때문이죠.
때로 반칙을 당한 선수는 한동안 운동을 못 할 만큼 심한 부상을 입기도 합니다. 부상 후유증으로 최악의 경우 운동을 그만두고 다른 길을 찾는 선수도 있고요. 하지만 그러한 폐해를 잘 알고 있음에도 많은 선수가 반칙을 감행합니다. 심지어 반칙을 기술적으로 하는 방법을 연구하는 선수도 있죠. 이들은 이를 본인의 핵심 경쟁력이라고 생각하죠. 반칙 당하는 선수는 고민에 빠집니다.
상대편이 저렇게 심한 반칙을 계속하는데 나 혼자 페어플레이를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지? 결국 나만 손해 아닌가?
어차피 승자독식 사회인데 반칙을 해서라도 이겨야 하는 건가?
얼마 후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무의식적으로 반칙을 하죠. 그 효과를 실감하고 나서부터는 자신 역시 상대편 선수처럼 고의로 반칙을 합니다. 그것도 아주 자주 하죠. 반칙은 때로는 경기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한동안 반칙에 의존하던 선수는 어느 순간 회의감에 빠집니다. 자신이 처음 반칙을 당해서 힘들어했던 때를 떠올리면서 지금 자신의 모습도 당시 자기한테 고의로 반칙을 했던 상대편 선수와 별반 다를 바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고는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은 질문을 던지죠.
이렇게 비열하게 하면서까지 계속 경기에 임해야 하는가?
직장 생활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아니, 훨씬 더할 수도 있죠. 팀원에서 팀장으로, 또 팀장에서 임원으로 올라갈수록, 즉 피라미드의 상층부에 다가갈수록 생존과 승진을 위한 경쟁은 더욱 치열해집니다. 경험해보신 분은 아시겠지만 이러한 경쟁 과정에서 벌어지는 암투와 중상모략은 정말 상상을 초월하죠.
개중에는 정말 눈살을 찌푸리게 할 만큼 비열한 반칙마저 서슴없이 감행하는 악질적인 동료들도 있습니다. 운동 경기든 직장 생활이든 모두가 페어플레이하면 이런 걱정을 할 필요조차 없을 텐데요. 지금부터 직장에서 라이벌을 공격할 때 흔히 사용하는 비열한 반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는지 한번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비열한 반칙의 종류
1. 집단 왕따
경력직으로 들어온 라이벌을 대상으로 기존 직원이 흔히 사용하는 방법은 집단 왕따입니다. 술자리에 초대하지 않는 것은 물론 중요한 정보에서도 모두 소외시키고 때로는 밥 먹으러 갈 때도 데리고 가지 않죠. 질문에 제대로 답해주지 않고 한결같이 퉁명스러운 말투로 응대하고요. 아, 무슨 초딩도 아니고. 그런데 이 방법 정말 많이 사용합니다. 당하는 사람은 참 당황스럽고 학창 시절로 되돌아간 것 같죠. 나가서 한판 뜨자고 할 수도 없고…
2. 고자질하기
사무실에서 동료 간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상사 험담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습니다. 그런 식으로 팀원 간 동질감을 표현하면 금방 친해지죠. 저도 팀원 시절에는 팀장 뒷담화 까면서 다른 팀원들과 유대감을 형성하곤 했습니다. 그리고 이때는 서로 암묵적인 언약 같은 것이 있습니다. ‘우리가 나눈 얘기는 절대 상사한테 흘러 들어가지 않게 하자’는.
그런데 이 언약을 깨고 정말 치사한 반칙을 일삼는 분도 가끔 있습니다. 상사에 대해서 험담한 내용을 그대로 상사한테 일러바치는 분이죠. 그런데 자기가 한 말은 쏙 빼고, 라이벌이 한 얘기는 두세 배로 과장해서 상사한테 말씀드립니다. 때로는 없는 말을 지어내기도 하고요. 이 경우 상사는 어떤 반응을 보일까요?
제가 상사였을 당시의 경험을 바탕으로 말씀드리면, 먼저 이러한 얘기를 해준 팀원에 대해서 고마움을 느낍니다. ‘고자질쟁이’라는 생각보다는 나에게 중요한 정보를 알려준 ‘심복’이라는 생각이 더 많이 들죠. 아니, 고자질쟁이라는 오명을 각오하면서까지도 내게 이런 ‘고급 정보’를 준 데 대해서 정말로 고맙죠. 또 ‘이를 내게 알려준 팀원은 적어도 그 자리에서 내 험담은 하지 않았을 것’이라고 믿게 됩니다.
한편 내 험담을 했다는 팀원의 경우에는 평소 행실이 좀 불량한 사람이었다면 바로 ‘미운털’이 박히지만 그동안 내가 좋게 봐왔던 사람이라면? 처음에는 ‘에이, 설마 그 친구가 내 욕을 했겠어?’라고 반신반의합니다. 하지만 같은 얘기를 두세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아니, 그 친구가 어떻게 나한테 그럴 수가 있지?’라고 믿게 됩니다. 반복 학습의 결과죠. 한 마디로 고자질 행위는 내 라이벌을 엿 먹일 매우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치사하지만요…
3. 책임 전가
이 방법 또한 매우 치사한 방법이죠. 가령 오 팀장과 마 팀장이 함께 사장님께 보고를 드리고 있는데 사장님께서 보고서의 내용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고 둘을 크게 꾸짖으셨습니다. 이때 오 팀장은 그냥 “죄송합니다.”라고 말씀을 드렸습니다. 반면 약삭빠른 마 팀장은 이렇게 얘기하죠.
“아, 제가 그렇게 하면 안 된다고 오 팀장한테 얘기했는데… 죄송합니다, 사장님. 제가 보고서를 제대로 검토하지 못했습니다. 앞으로는 제가 한 부분뿐 아니라 오 팀장이 맡은 부분까지 세밀하게 검토해서 이런 큰 실수를 하는 일이 다시는 없도록 하겠습니다.”
이런 상황이 되면 먼저 애기한 오팀장은 할 말을 잃는 거죠. “아닙니다, 사장님. 그 부분은 제가 혼자 한 게 아니라 마 팀장과 함께 합의해서 정리한 내용입니다. 마 팀장이 그렇게 해야 한다고 오히려 더 강하게 주장했습니다”라고 변명할 수도 있지만, 그렇게 말하는 순간 이전투구가 펼쳐지게 되겠죠. 엔간하게 독한 사람이 아니면 그 정도까지 추잡한 방법을 사용하지는 못합니다.
4. 중상모략
없는 사실을 막 지어내서 보고하는 것이죠. 시도 때도 없이 매일 사장님을 찾아가 라이벌 팀장에 대한 거짓말을 늘어놓는 것입니다. ‘팀원에게 쌍욕을 했다’거나 ‘거래처 접대를 거하게 받은 것 같다’거나 ‘술 먹고 성희롱적인 발언을 했다’거나. 사장님 역시 처음에는 긴가민가하시겠죠. 하지만 앞서 말씀드린 것처럼 여러 번 반복해서 듣다 보면 반쯤은 믿게 됩니다.
5. 허위 보고
중상모략과는 조금 다른데 공식적인 보고서에서 자신과 관계된 사항은 유리하게 기술하고 라이벌과 관계된 사항은 불리하게 기술하는 것이죠. 그런데 그냥 말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라 수치를 조작해서 자신에게 유리한 보고서를 만듭니다.
가령 평당 매출을 비교할 때 자신의 실적은 전시 면적만 포함시켜서 높게 보고하고 라이벌 팀장의 매출은 창고 면적까지 포함시켜서 낮게 보고하는 식으로요. 고위 임원 중에는 숫자에 매우 약한 분이 의외로 많습니다. 수치가 나오게 된 근거나 가정까지는 묻지 않고 그냥 결과 수치만 갖고 판단하시죠. 이러한 분이 상사라면 허위 보고가 즉효입니다.
6. 공개 망신
이건 정말 기 싸움입니다. 전체 회의에서 또는 주요 간부 회의에서 자신의 라이벌을 공개적으로 비난하는 것이죠. 가령 주요 임원들과 간부들이 모두 참석한 사장님과의 대담 자리에서 오 팀장이 ‘회사 발전을 위해 무엇무엇이 개선되었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발언을 합니다.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라이벌 마 팀장은 손을 번쩍 들더니 이렇게 얘기하죠.
“사장님, 우리 회사는 지금도 대한민국에서 가장 좋은 회사입니다. 물론 그럼에도 우리 회사에 감사함을 느끼지 못하는 불만에 찬 직원이 있을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적어도 회사의 녹을 먹고 있는 팀장이라면 회사의 작은 단점을 공개적인 자리에서 침소봉대해서 얘기하는 행위는 삼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것보다는 팀장으로서 자신이 회사에 어떻게 기여할 수 있는지부터 먼저 고민해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 팀장의 부적절한 발언에 대해서는 제가 이 자리에 참석한 모든 팀장을 대신해서 사과드리겠습니다. 죄송합니다.” (고개 꾸벅)
이렇게 나오면 회사의 발전을 위해서 고언을 한다고 한 오 팀장 입장에서는 당황할 수밖에 없죠. 이때도 역시 엔간한 독종이 아니면 그 자리에서 반박하기 어렵습니다.
7. 감시 미행
저도 여기까지는 경험해보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제 지인 한 분은 임원 자리를 놓고 다투던 경쟁자에 의해서 감시와 미행까지 당했습니다. 그분은 결국 임원 승진에서 밀렸고 퇴사했죠.
대표적인 것 몇 가지만 설명했지만 비열한 반칙의 종류는 더 많을 겁니다. 상대방이 이렇게 비열하게 나오면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요? 똑같이 더럽고 치사한 방법으로 맞서 싸워야 할까요? “에잇, 더러운 세상”을 외치며 상대하지 말아야 할까요? 나 역시 손에 피를 묻혀야 할까요? 맑은 물을 찾아서 떠나야 할까요?
죄송하지만 이에 대한 답은 제가 드릴 수 없을 것 같습니다. 이 경우에는 ‘51% 정답’은커녕 ‘10% 정답’도 드리기 어려울 것 같네요. 따라서 질문 주신 분께는 정말 죄송하지만 직접적인 답변보다는 함께 생각해볼 점들을 몇 가지 제시하는 것으로 답변을 대신하도록 하겠습니다.
비열하게라도 싸워야만 하는 이유
먼저 비열하게라도 싸워야 하는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따라야만 하는 게임의 룰이다
어찌 보면 비열한 반칙을 써서라도 싸워서 살아남아야 하는 게 월급쟁이 생존경쟁의 룰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아니, 반칙이라고도 부를 수 없겠네요. 그게 우리 시대 직장이라는 전쟁터에서의 게임의 룰이니까요. 앞서 말한 방식을 사용하지 않는 것은 페어플레이 정신이 아니라 오히려 불필요한 관용일지도 모릅니다.
약육강식의 중국 춘추시대에 혼자 군자인 양 행동하다가 초나라에게 박살 난 송양공을 당시 세상 사람들이 비웃은 게 송양지인(宋襄之仁)이라는 사자성어의 배경입니다. 페어플레이 정신을 강조하다가 사내 정치 싸움에서 밀려난 당신을 남은 동료들이 “어쭙잖게 신사인 척하다가 밀려났다”고 비웃을지도 모릅니다. 심지어 당신의 팀원들마저 “팀장 잘못 만나서 망했다”고 당신을 원망할 수 있습니다.
2. 이 세상은 승자만 기억하고, 역사는 승자가 쓰니까
한국 근현대사를 부끄럽게 여기는 분이 많습니다. 뭐 그렇게 자랑스러운 역사는 아니죠. 하지만 가만 보면 다른 나라 역사도 그닥 자랑스러울 게 없는 건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은 ‘아메리칸 인디언 학살’, 영국은 ‘아편전쟁’이라는 매우 추잡한 과거가 있죠. 스페인도 프랑스도 중국도 러시아도 오스트레일리아도 모두 지우고 싶은 과거가 있습니다. 어찌 보면 이 세상 어떤 나라에도 ‘자랑스러운 역사’란 없습니다.
아무리 추잡한 역사라도 후대에는 위대한 ‘용비어천가’로 둔갑하는 법이죠. 다름 아닌 ‘역사의 승자’에 의해서요. 한국 근현대사가 ‘부끄러운 역사’인 이유는 우리가 이를 너무 잘 알고 있기 때문이 아닐까요? 다른 나라 근현대사에도 그만큼의 관심을 갖고 공부했다면 아마 모든 나라의 근현대사를 부끄러운 역사라고 판단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제가 ‘역사 바로 세우기’에 반대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한민국 역사는 바로 세우려고 노력하되 우리나라 근현대사만 너무 부정적으로 바라보지는 말자’는 얘기죠.
기업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미국을 일으킨 거인들(The Men Who Built America)’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면 코닐리어스 밴더빌트, 앤드류 카네기, 존 D 록펠러, JP 모건, 헨리 포드 등 미국 근현대사의 위대한 기업인들 모두 라이벌을 꺾기 위해서라면 아무리 비열한 반칙이라도 거리낌 없이 사용하는 냉혈한으로 그려집니다. 결국 기업에서는 어떻게든 살아남아 ‘승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면 나중에 미디어에서는 ‘위대한 경영인’으로 포장하겠죠.
중간 과정이야 어떻든 결과에 의해서 평가를 받는 게 이 세상 이치입니다. 결과가 좋으면 과정도 좋게 바뀌는 법이죠. 결론은, 무조건 이겨야 합니다. 이기기 위해 먼저 비열한 반칙을 쓸 필요까지는 없지만 상대편이 먼저 반칙을 걸면 나 역시 ‘눈에는 눈, 이에는 이’로 대응을 해야 그나마 승산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해서라도 살아남아야만 ‘역사의 죄인’이 되지 않습니다.
3. 비열하게라도 살아남아야 기업 경영에 기여할 수 있으니까
수양대군은 조선왕조 사상 가장 잔인하고 비열한 방법으로 왕위를 찬탈한 사람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하지만 왕(세조)이 된 다음에는 조선의 통치 규범을 확립한 경국대전 편찬을 비롯하여 국가재정을 강화한 직전법 실시 등 왕권을 강화하고 국가를 발전시킨 굵직굵직한 업적을 많이 남겼죠.
‘세조처럼 비열한 방법을 써서라도 일단 살아남아야 나중에 기업경영에 조금이라도 기여할 수 있다’고 주장할 수도 있습니다. 일리 있는 말씀입니다만… 그렇다고 여러분 모두가 위대한 업적을 남길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 건 아니겠죠? 세조도 업적을 남겼으니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그냥 ‘비열한 수양대군’으로 기록될 뻔했습니다. 혹자는 이렇게 얘기할지도 모릅니다.
“위대할 자신 없으면 비열하지도 마십시오.”
명예롭게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
이번에는 명예롭게 떠나는 게 더 좋은 이유를 살펴보겠습니다.
1. 나 자신을 그렇게까지 낮추고 싶지는 않으니까
영어에 ‘로우(Low)’라는 단어가 있습니다. 정말 다양한 의미가 있는 단어죠. 그중에서도 ‘치사한’ ‘저질의’라는 뜻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로우하다’는 것은 그 사람이 참 치사하고 질이 좋지 않다는 의미입니다. 비열하게 싸우기에 앞서 먼저 스스로에게 다음 질문을 던져 보십시오.
나는 얼마나 ‘로우’하게 싸울 수 있는가?
상대방이 ‘로우’하게 나오면 나는 그 이상으로 ‘로우’하게 가야 할지도 모릅니다. 최소한 상대방만큼은 ‘로우’해야지 그나마 승산이 있겠죠. 하지만 비열하게 싸우는 것을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상대방보다 더 ‘로우’하게 싸울 자신 없다면 질 가능성이 높겠죠. 지금이라도 훌훌 털어버리고 떠나는 게 좋습니다. 안 그러면 정말 험한 꼴 당할 수도 있습니다.
2. 천성적으로 비열한 짓을 할 수 없는 사람이 있다
저는 비열한 짓을 하면 왠지 천벌 받을 것 같고 불길한 예감이 듭니다. 착하고 선하게 살면 지금 당장은 손해 볼지 몰라도 언젠가는 보상을 받을 것이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런 사람은 비열한 짓을 할래도 할 수 없습니다. 스포츠에 비유하자면 상대편이 아무리 거친 반칙을 해도 끝까지 페어플레이를 고수하는 사람이죠.
그러나 시합에서 페어플레이하는 사람이 항상 이기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반칙왕’한테 지는 경우가 더 많죠. 직장생활도 그렇습니다. 우리의 인생도 그렇습니다. 하지만 천성적으로 비열한 짓을 못한다면… 아무리 험한 꼴을 당해도 견뎌야죠. 그냥 참고 버텨야 합니다.
마치며
지금까지 직장생활에서의 비열한 반칙에는 어떤 것들이 있으며 비열하게라도 싸워야만 하는, 아니면 명예롭게 떠날 수밖에 없는 이유는 무엇인지 살펴보았습니다. 비록 제가 쓴 글이지만 저 또한 이 글을 읽고 나니까 마음이 갑갑하네요.
네? 제 글이 회사생활을 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 같다고요? 라이벌을 어떻게 해야 할지 고민하고 있었는데 제가 글에서 언급한 비열한 반칙의 종류를 보고 그를 제거할 수 있는 묘책을 찾았다고요? 앞으로 다양한 반칙을 더욱 교묘하게 구사하겠다고요? 그걸 의도한 게 절대 아니었는데…
Key Takeaways
- 직장의 피라미드 상층부로 갈수록 생존과 승진을 위한 경쟁이 치열해짐에 따라 비열한 반칙마저 서슴없이 감행하는 동료들을 종종 볼 수 있다.
- 흔히들 사용하는 비열한 반칙에는 집단 왕따, 고자질하기, 책임 전가, 중상모략, 허위 보고, 공개 망신, 감시 미행 등 다양한 종류가 있다.
- 비열하게라도 싸워야만 하는, 아니면 명예롭게 떠날 수밖에 없는 데는 나름의 이유가 있다. 어떤 길을 걸을지는 여러분의 선택, 아니, 여러분의 천성에 달렸다.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