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교육으로 폭력이 사라지는 신기한 경험.. ‘피스모모’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
“왜 우리는 실패할까, 무엇을 더 했야 했나, 사람들은 왜 무심할까…”
제주도 강정마을에서 평화운동을 하는 딸기 씨는 지난한 갈등 끝에 해군기지가 완공되자 자신을 한동안 자책했다고 합니다. 그러나 지금은 생각이 바뀌었습니다. 피스모모가 진행하는 평화교육을 만난 후부터요.
“이곳의 삶도 배움이 될 수 있다는 걸 알았어요. 우리 모두는 서로에게 배움의 영감을 줄 수 있는 존재라는 것도요. 이제 나 자신도 세상 사람도 그 누구도 원망하지 않아요.”
피스모모는 2012년 설립된 비영리 사단법인입니다. 평화교육과 관련된 분야를 연구·조사합니다. 더불어 평화교육 진행자를 양성해 그 가치를 널리 퍼트려 세상을 덜 폭력적으로 만드는 것이지요.
평화의 반대는 ‘전쟁’만이 아닙니다.
서울 불광동 혁신파크에 자리 잡은 피스모모 사무실을 찾았을 때 문아영 피스모모 대표는 제게 ‘평화란 무엇일까요’라고 물었습니다. 사람들은 평화의 반대 개념으로 전쟁, 테러를 떠올리지만 이는 너무 좁은 의미의 해석이라고 설명합니다.
“물리적인 폭력 상황이 발생하진 않았지만 지속적으로 누군가 피해 상황에 놓였다면 이것 역시 폭력입니다. 예를 들면, 사회 불평등, 부의 편중화, 특성화고 학생들의 실습 문제 같은 것들 말이죠. 우리는 일상에서 일어나는 폭력을 가능하게 만드는 알력들을 드러내 이야기합니다. 만일 해결하기 어렵다면 덜 폭력적으로 전환될 수 있는 지점을 찾아서 개입할 수 있는 사람들을 늘려나갑니다.”
피스모모가 풀어가는 도구는 교육입니다. 자체 교육 프로그램, 위탁 교육, 시민사회와 연대, 국제간 연대 등으로 점점 확장해가고 있지요.
평화를 전파하는 사람들 양성
피스모모는 평화교육 진행자 입문과정과 심화 과정을 개설하고 평화대학도 운영합니다. 또 학교와 교육기관, 공공기관, 시민단체의 요청에 따라 맞춤형 평화교육 프로그램을 진행합니다.
배움의 주제는 다양합니다. 민주 사회에서 요청되는 시민성과 평화 역량, 군사주의와 지역주의, 민족주의에서 벗어나기, 다른 성별을 이해하기 위한 젠더 감수성 기르기, 대안적 사회를 지향하는 실천가들의 교육론 등입니다.
“갈등이란 것이 갑자기 ‘펑’ 터지는 것이 아니라 쌓이고 쌓여서 생깁니다. 이를 미리 인지하고 폭력적으로 확산되지 않도록 전환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지면 폭력을 줄일 수 있겠지요. 서로 배움의 경험을 통해 불편함을 넘어서는 공존, 평화에 대한 감수성을 발견함으로써 우리 사회를 덜 폭력적인 공간으로 바꾸어가고자 합니다.”
지난 5년 동안 모모가 진행한 다양한 교육 프로그램에 참가한 누적인원수는 약 3만 5000여 명. 교사와 시민단체 교육활동가, 청소년과 청년, 학부모 등 다양합니다. 모모는 교육자들을 교육하는 이른바 TOT (Training of Trainers) 전문 교육 기관입니다.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우는 교육
모모의 교육 철학은 ‘모두가 모두로부터 배운다’ 에서 출발합니다.
“우리 모두는 각자 삶의 맥락 속에서 고유한 경험이 있고 배움이 있기 때문에 교사만이 가르치는 권위를 갖고 있지 않아요. 서로가 서로에게서 배우는 수평적 배움터입니다. 교육자의 역할은 학습의 장을 열어주고 이를 촉진하는 것입니다.”
모모는 이런 서로 배움이 가능할 수 있도록 활동 교안을 만들고 교구를 제작하고 책을 출판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특정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분이 가르치기보다는 각자가 콘텐츠를 생산하는 시대입니다. 하지만 유독 학교만은 예외죠. 목표가 수능이고 대학이니까요. 우리는 참여를 이끄는 배움의 교육 환경이 될 수 있도록 교사 연수를 진행하지만 이보다 본질적으로 과연 교사가 지식만 전달하는 위치에 있는 게 괜찮은가라는 질문을 던지고 고민해보는 시간을 더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지역 활동가 권미영 씨는 2016년 평화교육 진행자 되기 과정을 마치고 함께 수강했던 사람들과 함께 김포에 ‘다가감’이란 교육 공동체를 꾸렸습니다.
“교육이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을 까라는 다소 회의적인 생각에 지쳐있던 저에게 모모는 하나의 길을 제시해줬습니다.”
– 권미영씨
피스(P.E.A.C.E) 페다고지
피스모모의 모든 프로그램은 자체 개발한 피스페다고지에 기반해 이뤄집니다.
피스란 참여(Participation)· 낯설음(Estrange)·문화예술적 접근(Artistic-Cultural)·창조적 비판(Creative-Critical)· 대화식(Exchange)의 앞 글자를 딴 거예요.
여기서 낯설음이란 자신과는 아무 상관없다고 여겨졌던 문제들과 부딪혀보면서 타인의 입장을 이해해보는 과정입니다.
“사람이 바뀌는 건 자기 자신을 바꾸는 방법 밖에 없어요. 나를 돌아볼 수 있는 시간을 갖고 현대의 폭력성과 나와의 연결고리를 찾아가보는 과정입니다.”
문화예술적 교육이란 놀이와 연극, 몸의 움직임, 소리와 색채 등 문화예술의 요소를 적극 활용해 내재된 평화 감수성을 일깨우는 일입니다.
“생각이 머리에서 가슴으로 옮겨가는 데는 수백 번의 경험이 쌓여야 한다고 하죠. 피스모모에선 그 수백 번이 열번 쯤으로 줄어듭니다.”
– 온유한(피스모모 교육 참가자)
시민사회와 연대해 행동으로 옮기다
피스모모는 단순한 교육자 양성에 머물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줍니다. 2017년 9월 ‘부산 여중생 폭행 사건’이 발생했을 때 피스모모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 앞으로 공개 질의서를 보냈습니다. 그리곤 개인의 존엄과 존재의 고유함이 중심에 서는 교육 문화가 이뤄지도록 정책적, 제도적 노력을 기울여 줄 것을 요청했습니다.
“교육부에 보낸 장문의 공개 질의서를 보고 눈시울이 붉어졌어요. 내가 못하고 있지만, 누군가가 일어서서 힘차게 움직여 주기를, 그렇게 세상에 희망이 살아있다는 걸 보기를 원했던 것 같습니다.”
– 태봉(평화대학 수강자)
피스모모와 연대해 활동하는 단체들은 여럿입니다. 무기 거래의 문제점을 알리는 ‘아덱스(ADEX) 저항 행동, 교육을 통해 누구도 배제되지 않는 사회를 만들어가려는 ’교육연대체 씨앗’, 국가가 외면한 폭력과 고통의 역사를 그 피해 당사자와 시민들이 연대해 복원하는 일 들입니다. 오는 4월에는 베트남전 당시 한국군에 의해 저질러진 민간인 학살 문제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한 시민평화법정을 개최할 계획입니다.
세계화를 추구하면서도 현지 문화를 존중하는 이른바 글로컬 연대사업은 피스모모의 주요 사업입니다. 피스모모는 2016년 아시아 남태평양 지역의 30여 개국 회원들로 구성된 아시아 남태평양 국제성인교육협의회(ASPBAE)에 가입했습니다. 이를 기반으로 국제 단체 간에 교육의제를 공유하고 당면한 공통의 문제를 해결하는 연대 방안을 모색한다는 전략입니다.
피스모모의 이 같은 평화교육 활동은 폭력성을 몰아내는 혁신적인 방법으로 인정받아 지난 2014년 문 대표는 아름다운 가게의 뷰티풀펠로에 선정됐습니다.
지역을 변화시키는 힘의 원천은 지역 주민의 손에 달렸다
국제기구에서 일하는 데 관심이 많았던 문 대표는 아프리카에 지원 활동을 갔다가 크게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제가 아프리카에 가면 엄청 도움을 줄 수 있으리라 생각했어요. 하지만 할 수 있는 게 거의 없더라고요. 경험을 통해 삶에 변화를 만들거나 지역을 변화시키는 건 그 지역에서 태어나서 자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몫이더군요.”
그는 한계를 느끼고 귀국해 자신이 할 일을 찾으려 할 때 용산참사 현장을 목격했습니다.
“난쟁이가 쏘아 올린 작은 공의 저자 조세희 선생님이 집회의 발언자로 나오셨어요. 자신이 소설을 썼었던 70년대랑 지금 변한 게 하나도 없다며 한탄을 하시는 데 제 마음에 와닿았어요. 이후 강제진압이 이뤄졌고 그 낯선 경험이 저를 여기로 이끌었습니다.”
피스모모는 출범할 당시 회원 수가 14명에 불과했지만 5년 여 만에 208명이 됐습니다. 그 사이 직원 수도 2명에서 8명으로 늘어났지요. 함께하는 사람들은 교육, 인권, 평화학, 국제정치, 국제개발협력등의 분야에서 활동했던 경력의 소유자들입니다.
창립멤버인 전세현 사무국장은 피스모모에서 일하면서 예전엔 그냥 넘어갔던 일들이 멈춰 서서 덜걱거리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 전 원래 둥글둥글하고 매끄러운 사람이었어요. 모모에서 활동하다 보니 오돌토돌 촉수가 생겼어요. 모모의 전제는 지금 이 사회가 이대론 충분하지 않다는 것. 그래서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이죠. 덕분에 삶이 좀 무거워지만 그 무거움은 버거움이 아니라 변화를 위한 힘으로 여겨집니다. ”
피스모모는 지난 연말 평화교육 연구소를 신설했습니다. 탈분단, 페미니즘, 예술, 지리경제 등 서로 다른 주체들이 모여 영역을 넘나들며 새로운 활동을 모색해보는 겁니다.
침묵하지 않고 외면하지 않는 힘, ‘나’ 만큼 ‘타인’을 소중히 여기는 모모의 발걸음이 더 많은 사람들과 연결돼 한 사람이라도 덜 아픈 세상이 됐으면 좋겠습니다.
원문: 이로운넷 / 글: 백선기 / 사진: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