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년 10월 18일, 보건복지부는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 비준 동의안을 국회에 제출했다. 한국이 이 협약에 서명한 것이 2013년 5월이니, 4년 5개월 만이다. 이 협약은 입양을 최후의 수단으로 여길 것을 강조하면서, 불가피하게 입양을 보낼 경우에도 국내 입양을 우선으로 하고, 해외입양의 경우 양국 정부가 나서서 양부모가 아이를 제대로 키울 수 있는지 검증하고 입양아 국적 취득을 보장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세계최대의 ‘고아 수출국’이라는 오명을 가진 한국 입장에서는 많은 준비가 필요한 협약이다. 정부가 비준 동의안을 제출하면서 남윤인순 의원 등은 그에 걸맞은 입양특례법 개정을 추진 중이다. 당연한 수순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관련 단체들의 반발로 법 개정은 어려움을 겪고 있다. (관련 기사 : “우리는 아동 일부를 포기합니다…언제까지?”).
최근 몇 년 동안 해외로 입양되었던 국제입양인의 안타까운 사연들이 언론을 통해 간간이 알려졌다. 바로 한 달 전에도 ‘얀’의 사연이 보도되었다. 노르웨이로 입양된 ‘얀’이 한국으로 돌아와 5년 동안이나 친부모를 찾아 헤매다 결국 고시텔에서 사망한 것이다. 그의 사례는 왜 우리가 ‘아동 최우선의 원칙’에 입각해서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의 내용을 지켜나가야 하는지 보여준다. ‘얀’의 경험은 그만의 특수한 것이 아니다.
2003년 <미국교정정신의학회지>에 실린 논문 “청년이 된 국제입양아 – 스웨덴 코호트 연구“는 발표된 지 무려 15년이 흘렀음에도 오늘날 한국사회에 중요한 교훈을 던져준다. 당시 스웨덴 연구진은 국가 통계자료를 기반으로 전국적인 추적조사 연구를 진행했다.
1968~1975년 사이에 태어난 5942명의 스웨덴 입양인 자료를 이용하여 가족과 고용조건, 정신 건강 문제, 학력 등을 확인하고, 이를 일반 인구집단, 이민자, 그리고 입양 가족 내 다른 형제자매들과 비교했다. 연구대상이었던 입양인 5942명 중 3237명이 동아시아 지역 출신이었는데, 그중에서도 2658명이 한국에서 태어나 입양된 이들이었다. 나머지 중에서 1422명은 남아시아, 871명은 라틴아메리카, 412명은 아프리카 출생자였다.
분석 결과, 전 연령에서 성인 입양인들은 일반인구집단에 비해 정신질환, 약물 남용, 알코올 중독 등 정신건강 문제를 더 자주 겪고 있었다. 장기간의 실직을 경험할 가능성 역시 입양인들이 더 컸고, 그러다 보니 장기간 사회복지 수혜를 받는 경우도 더 많았다. 학력 수준은 일반 인구집단과 비슷했지만, 사회경제적 위치를 고려해보면 그렇지 못했다.
즉, 입양된 가정의 사회경제적 수준이 일반 인구집단과 비슷하다고 할 때 평균적으로 기대할 수 있는 교육 수준에 미치지 못했던 것이다. 이들의 학력은 이민자 집단과 비슷한 것으로 나타났다. 또한, 일반적으로 어머니의 교육수준이 자녀의 대학 진학 여부에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나타났지만, 입양아들의 대학진학 가능성은 어머니의 교육 수준과 관련이 없었다. 입양인들은 같은 연령대와 비교했을 때, 결혼해서 아이를 가질 가능성도 더 낮았다.
한편, 보다 어린 나이에 스웨덴으로 입양된 이들일수록 정신건강 상태와 학력 등의 지표가 더 좋은 것으로 나타났다. 이를테면 입양 연령을 0~1세, 2~3세, 4~6세로 구분한 결과, 4~6세에 스웨덴으로 입양되어 온 경우 모든 면에서 좋지 않은 결과를 보였다. 그리고 동아시아 지역 출신인 경우에 정신건강 상태와 교육 수준, 고용 상태, 사회복지 수혜 여부 등 모든 면에서 결과가 좋았고, 남성보다는 여성 입양인의 결과가 좋았다.
연구진은 비슷한 교육 수준을 가진 스웨덴 출신자에 비해 국제 입양인들이 장기간 실업을 많이 경험하는 것은 눈에 띄는 외모 차이가 차별을 초래하기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이는 학력 조건이 비슷할 때, 스웨덴 출생자들과 비슷한 외모를 가진 유럽권 이민자들이 비유럽권 이민자들보다 일자리를 쉽게 구하는 현상과 일맥상통한다. 또한, 국제입양인들이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경우가 더 적은 것은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는 것에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러한 연구 결과는 복지국가 모델의 대표주자라 할 수 있는 ‘스웨덴에서조차’ 국제 입양이라는 사건이 아동기의 삶에 부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보여준다. 2015년 7월, 국내 언론에는 “나는 입양 한인이다”라는 제목으로 미켈 룬 아너선(28세)의 이야기가 실렸다. (“나는 입양 한인이다” : 스칸디나비아 입양 한인의 정체성에 대한 이야기)
그는 생후 5개월에 덴마크로 입양되었고, 25년 동안 스스로 덴마크 인이라는 사실을 의심하지 않았다. 대체로 행복하게 자랐던 그는 2012년 학교에서 한국에서 온 교환 학생들을 만났고, 그것이 인연이 되어 자신이 태어난 한국을 방문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정체성 갈등을 겪으며, 자신의 상황을 “두 의자 사이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라고 표현했다. 그리고 이것이 자신만의 이야기가 아니라고 강조했다.
덴마크에도 스웨덴에도 미국에도, 수많은 미켈 룬 아너선은 존재하고 있는 것이다. 입양인들에게 ‘정체성에 대한 권리’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사람마다 정체성 갈등을 겪기 시작하는 시기와 이유, 그 정도에는 차이가 있다. 그럼에도 ‘헤이그 국제아동입양협약’과 ‘유엔아동권리협약’이 ‘원 가정 양육을 우선한다’고 선언한 것, 그리고 유엔아동권리협약 제7조에서 아동이 자신의 출신에 대해 알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한 것은 그만큼 인간에게 ‘정체성에 대한 권리’가 중요하기 때문이다.
입양을 보낼 수밖에 없었던 부모, 입양아를 맞아들인 새로운 부모, 이 과정을 연계하고 돌봄을 제공한 여러 단체와 선의의 자원봉사자들. 이들 모두가 입양 문제에 대해 설득력 있는 각자의 의견을 가질 수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아동 최우선의 원칙’이다. 실업과 차별, 고립으로 어려움을 겪는 입양인들, 무엇보다도 정체성 위기를 경험하고 있는 입양 아동과 청소년, 성인들의 고통을 최소화할 수 있도록 입양특례법 개정에서 아동 최우선의 원칙은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
* 서지정보
Frank Lindblad, Aders Hjern & B. Vinnerljung (2003). Intercountry Adopted Children as Young Adults – A swedish Cohort Study, America Journal of Orthopsychiatry, 73(2), 190-212.
원문: 시민건강증진연구소 / 글: 팥수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