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신 책임이 아닙니다. 당신의 잘못도 아닙니다. 당신이 그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게 아니라 그들이 당신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최대한 양보해도 당신과 그들의 책임과 잘못이 반반입니다. 바보같이 전부 덤터기 쓰지 마십시오.
나아가 당신과 그들이 어울리지 못하는 것엔 당신도, 그들도, 누구도 아무런 책임과 잘못이 없습니다. 어울리지 않는 건 그냥 어울리지 않는 것일 뿐입니다. 거기엔 ‘잘못된 것’이 아무것도 없습니다. 색깔이 서로 어울리는 것이 있고 어울리지 않는 것이 있는 것과 같은 ‘자연스러운 현상’일 뿐입니다.
그러니 ‘어울리지 않음’을 특별한 현상인 듯 느낄 이유가 없습니다. 그냥 그럴 때가 있는 것입니다.
어울리는 듯 보일 뿐
문제는 그게 아니라고요? 나만 사람들과 잘 어울리지 못하는 것 같고 다들 잘 지내는 것 같다고요? 남들은 안 그런 것 같은데 내가 너무 심하다고요? 아닙니다. 착각입니다. 그들도 다 나와 같은 사람입니다. 서로 잘 어울리는 듯 보이지만 그건 글자 그대로 ‘그렇게 보이는 것’입니다. 속 사정은, 실제 관계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그들도 마음속에선 서로 어떤 생각을 하는지 모르며 그들의 관계도 언제 어떻게 끝날지 아무도 모릅니다. 그 관계들을 업신여기거나 저주하라는 것이 아니라 실제 현실이 그렇다는 말입니다. 그러니 타인들의 관계를 보며 괜히 조급해하거나 불안해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냉정히 말해 각자 처지와 입장은 다 비슷합니다. 도토리 키재기입니다. 그들도 당신을 보며 당신과 비슷한 자기 걱정을 하고 있을 수 있습니다.
나는 그렇게 겉으로라도 어울리지 못하는 듯하다고요? 오히려 그게 좋습니다. 어울리지 못할 관계에 억지로 어울리는 척하는 건 별로 바람직한 모습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자연스럽게 안 어울릴 땐 안 어울리면 됩니다. 그래도 사람이 좀 다른 이들과 어울려야 된다고요? 네, 맞습니다. 잘 맞는 사람이든 아니든 어울릴 수 있는 건 삶의 유용한 기술입니다.
어울림의 기술
만약 그렇게 생각한다면 그런 어울림의 기술을 배우면 됩니다. 어울림도 기술이고, 그 안엔 더 세부적인 기술들도 있습니다. 관련된 책만이 아니라 대화 프로그램, 관계 프로그램 등등 검색하면 찾을 수 있으니 잘 알아본 다음에 참가도 해 보십시오. 배우면 무엇이든 다 할 수 있게 됩니다. 관계도, 대화도 다 기술입니다. 이걸 타고나는 무엇이라고 결코 착각하지 마십시오.
배우지 않고 왜 안 되냐고 스스로를 탓하거나 배우지 않고 잘 되길 바랄 필요 없습니다. 다른 건 그렇게 하지 않으면서 관계와 대화만 그럴 걸로 생각하는 건 이상하죠? 자기가 뭔가 잘 못 하거나 잘 안 된다면 그냥 배우면 됩니다. 물론 시간이 들 수도 있습니다. 그러면 시간을 들이면 됩니다. 망설일 게 뭐 있습니까.
배우는 것과 별도로, 자신에게 주어지는 관계를 수동적으로 기다리지 말고 자신과 어울리는 대상을 능동적으로 찾거나 만나도 보십시오. 이것 역시 배우는 것과 비슷합니다. 그저 주어지는 대로 개인이나 집단과 관계를 맺지 말고, 가정이나 일이나 직장에서 의무적으로 만나는 사람들은 만나되 내 주위에 있어도 나와 맞지 않는 사람들일 수 있으니 어디서든 자신의 사람들을 찾고 만나려 해 보십시오.
다 있습니다. 물론 그렇게 나와 맞는 타인들이 없다 해도 삶을 살지 못할 건 아닙니다. 잘 살 수 있습니다. ‘관계’는 삶의 요소에서 옵션에 불과합니다. 관계와 타인에 목멜 이유는 전혀 없습니다. 나와 내 삶은, 그런 것 없어도 잘 굴러가고 충분히 살 가치가 있습니다. 옵션이므로 자신의 사람을 찾아보십시오. 잘 만나 어울리면 삶의 좋은 옵션이 하나 더 생기는 것이니까요.
외로움은 위험하지 않다
혼자되는 것, 외로운 것은 두려워해야 하거나 위험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외로움이나 혼자됨을 두려워하는 것은 원시 시대의 심리적 흔적이 남아서 그럴 뿐입니다. 이게 무슨 말이냐고요? 원시 시대에는 한 사람이 무리에서 혼자가 되거나 버려지면 바로 죽음이었습니다. 먹을 것도, 맹수로부터의 보호도 사라지는 것이니까요. 그래서 혼자되는 것, 외로운 것은 죽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은 그렇지 않습니다. 현대의 우리는, 웬만큼 혼자되어도 웬만큼 외로워도 안 죽습니다. 위험하지 않습니다. 먹을 거 다 먹을 수 있고 볼 거 다 볼 수 있고 즐길 거 웬만하면 다 즐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우리 DNA와 뇌에는 원시 시대의 흔적이 남아서 본능적으로 혼자되는 것을 두려워할 뿐입니다.
이걸 눈치채면 더 이상 혼자인 것, 외로운 것이 불필요하게 두렵거나 걱정되지 않습니다. 이렇게 편안하고 여유로운 마음을 가지고, 이제 추가로 나와 맞는 사람, 사람들을 찾아서 함께 어울려 보는 것도 좋습니다. 안 맞는 사람들과 의무적으로 함께 할 때도 좀 어울려 보고 말이지요. 안 어울려도 괜찮지만 이왕이면 한번 내가 자비를 베풀어 어울려 주는 것입니다.
어울리지 못하는 것도 자연스러운 것이다
마지막으로 가정, 학교, 일, 직업 등 지금 내 주위에 있는 사람들이 나와 맞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해서 그들과 관계를 맺을 수 없는 게 아님을 유의하세요. 어차피 사람은 정말 원수 같은 사이가 아니면 이래저래 웬만하게 어울릴 수 있습니다. 아주 친한 관계는 될 수 없겠지만 어느 정도 무난한 관계는 서로 다 만들 수 있습니다.
계속 만나야 하는데 불필요하게 서로 백안시하거나 미워하면 사실 서로 손해이고 고통입니다. 여기에도 물론 기술과 배움이 들어가긴 합니다. 그냥 되는 건 아니기도 하니까요. 하지만 엄청 어렵거나, 안 될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환경상 계속 만나고 지내야 하는 이라면 마음에 들지 않더라도 최대한 어울릴 수 있게 해 볼 수 있습니다. 그게 나에게도 이익이니까요.
마지막으로 다시,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는 것은 당신 책임, 잘못이 아닙니다. 그, 그들의 책임과 잘못도 아닙니다. 그냥 그런 것일 뿐입니다. 어울림도, 어울리지 않음도 모두 자연입니다. 본래 관계란 어울리는 사람들이 아닌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들끼리의 어울림이기 때문입니다.
원문: 필로 이경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