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ryptocurrency와 관련된 문제 제기 중 가장 일반인들 관점에서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바로 ‘블록체인이 중요하면 블록체인 기술에만 투자를 하면 되지 그게 꼭 암호화폐의 유통으로 이어져야 하는가?‘일 것이다. 이를 두고 퍼블릭/프라이빗 채널을 구분하여 설명하는 경우도 있기는 한데, 엔지니어링 관점에서면 몰라도 그게 이 부분을 궁금해하는 일반인들에게는 별 의미가 없고 해서 다시 한번 정리.
- cryptocurrency의 번역어로 난 암호화 토큰을 쓰려 한다. 일전에도 이 모든 오해는 ‘가상화폐’라는 번역어에서 비롯된 것이라는 얘길 한 적이 있기 때문. 특히나 ‘화폐’라는 단어는 본질을 이해하는 데에 도움이 되지 않는 단어다. 직역된 ‘암호통화’가 가장 적절한 의미이겠지만, ‘통화’ 조차도 ‘화폐’와 별반 다르지 않게 받아들이는 이들이 많아서 암호화 토큰을 선택.
- 사전에 이 글과 이 글을 읽고 나서 보면 더 이해가 쉽다. 내가 쓴 글의 경우, 내가 쓰는 글이다 보니 나도 모르게 일전에 언급한 부분들은 생략하는 습관이 있어서…;;
- 추가로 기술적 이해를 위해서는 이 글도 참고해 보는걸 추천한다.
자, 이제 시작.
1. 블록체인 네트워크와 암호화 토큰 사이의 상관 관계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신뢰도는 앞서 다른 글에서도 얘기했다시피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생성하는 노드의 형성과 유지에 의해서 보증된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블록체인의 무결성에 대한 신뢰는 동일 장부의 존재에 의해 보증되는데, 이게 의미가 있으려면 이 두 가지가 전제되어야 한다.
- 동일한 장부의 다량 존재
- 동일한 장부의 연속적 생성
전자는 유의미할 만큼의 통계적 신뢰를 위해서, 후자는 각 반영 속도 차이에 의한 정보의 격차가 발생했을 때 좀 더 신뢰도 높은 정보를 반영하기 위한 것이다.
그러니깐, 기술적인 설명 다 제외하고 그냥 편하게 얘기하자면, 블록체인은 분산원장의 생성이 지속적으로 유지되어야 한다고 생각해 두면 된다. 일단은.
그런데, 이 블록체인의 분산원장의 유지는 그냥 자동으로 이뤄지는 게 아니다. 어떤 전제가 되는 행위가 필요한데, 이걸 그냥 단순하게 거래장부라 생각해 보자. 거래장부가 새로 업데이트되기 위한 조건은 무엇일까? 바로 거래의 성립이다. 마찬가지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일반적으로 분산원장의 생성과 유지를 가능케 하는 건 바로 거래의 성립, 즉 토큰의 이동이다. 이는, 암호화 토큰이 바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의 노드의 형성에 의한 보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암호화 토큰은 한번 생성되고 끝나면 되는 게 아니다. 앞서서도 얘기했다시피 지속적인 생성이 발생해야 노드의 수도 늘어나면서 블록체인의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는 건데, 그럴려면 지속적으로 ‘거래 – 생성’이 발생해야 한다.
문제는, 이 과정에서 이러한 토큰의 ‘거래 – 생성’을 유인할만한 동기가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원되는데 바로 ‘화폐 가치의 부여’이다. 즉, 네트워크 참여자들에게 토큰의 보상으로서 무언가 주어져야 토큰의 생성과 이동을 계속 유인할 수 있는데, 그게 바로 거래를 통한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다. 전형적인 자본 거래를 통한 자본 가치 획득과 이를 통한 경제 효과를 기대하는 형태다.
쉽게 말하면, 블록체인의 기술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암호화 토큰의 지속적 거래가 필요한데, 현재로서 이 거래를 일으키기 위한 동기를 부여하는 방법은 자산가치에 대한 기대밖에 없다. 그걸 위해서 뛰어들게 함으로써 시스템은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신뢰도를 유지할 수 있다.
즉, 많은 이들이 지적하는 것처럼 ‘가상화폐의 거래 없이도 블록체인 기술은 발전시킬 수 있는 것 아닌가’라는 지적은 블록체인의 특성을 몰라서 하는 얘기라는 것이다.
2. 투기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인가
앞에서 블록체인의 유지와 발전을 위해서는 토큰의 거래가 필요하고 그 토큰의 거래를 일으키기 위해서는, 즉 자발적 참여를 유도하기 위해서는 동기를 부여해야 하는데 그건 자산가치에 대한 기대로 인한 자발적 참여밖에 없다는 얘길 했다.
그렇다면 ‘블록체인은 투기를 조장하지 않고서는 발전할 수 없는 모델인가?’라는 근본적 물음이 발생할 수 있는데, 이건 조금 다른 문제다. 미리 얘기하자면 이 지점에서 블록체인을 둘러싼 논의에서 기술성과 정치성이 갈라진다.
앞서 블록체인 네트워크에서 신뢰도의 보증은 분산원장의 지속적 생성과 유지에 의해 보증된다고 했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지속적 거래가 발생해야 한다고 했다. 그런데, 이건 한가지 전제 조건이 있다. 바로 ‘통제자’의 존재를 부인했을 때이다.
무슨 말이냐 하면, 통제자의 존재를 인정하면 저 요소는 필수적이지 않다는 얘기다. 즉, 자연 발생적으로 분산원장이 만들어지고 기록되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에 의해서 통제되는 환경에서라면 암호화 토큰은 불특정 참여자들의 참여가 없더라도 생성되며 이를 통해서 블록체인의 무결성은 계속해서 유지될 수 있다는 얘기다.
좀 더 쉽게 얘기하자면, 통제자를 인정한다면 암호화 토큰의 거래 없이도 노드의 유지가 가능하다. 즉, 자본 가치 상승에 대한 기대로 시장 참여자들의 투기를 유도하지 않더라도 기술의 발전과 적용은 가능하다는 얘기다.
그런데 왜 사람들은 ‘블록체인은 암호화 토큰의 거래를 필수로 한다’고 얘기하는 걸까? 이건 기술의 문제라기보다는 정치적 문제인데, 그러니까 저렇게 통제자의 존재를 인정하면 ‘어떠한 경우에라도 위변조가 불가능하다’라는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무결성이 조건부로 바뀌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냐 하면, 저렇게 되면 ‘통제자’는 적어도 이 분산원장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절대자의 위치에 오르기 때문에 그 자체로서 권력을 획득하게 되는 것인데 이는 블록체인이 애초에 추구했었던 이념과 배치되는 개념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이 바로 블록체인에 내재되어 있는 정치성이다. 그러니까 블록체인은 애초에 순수한 기술적 의미뿐만 아니라 정치적 의미까지 포함된 이론이라는 얘기다. 국가와 같은 통제자에게 신뢰도 확보를 위한 심판관의 역할을 맡기는 조건으로 통제 권력을 이양하지 않더라도 자연상태에서 순수 참여자들의 활동만으로 기술적으로 완벽하게 신뢰도가 통제되고 그 보상은 참여자들에게 공평하게 분배되는 기술!
최초의 비트코인 탄생 자체에 내재된 것도 바로 저런 정치적 요소이고, 그게 궁극적인 블록체인이라 주장하는 이들은 저런 정치적 요소의 실현까지도 염두에 두고 하는 얘기다. 그러니까, 이 부분은 기술적 요소가 아니라 정치적 요소가 반영된 부분이라는 얘기다.
블록체인이 대단한 기술이라 하는데도 불구하고 기술적 요소에 대해 그리 높게 보지 않는 엔지니어들의 관점을 가끔 접하는 경우도 있을 텐데, 그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블록체인의 가치에는 기술적 요소뿐만 아니라 정치적 요소가 다분히 포함되어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시 돌아가서, 저 통제자의 존재를 인정하고 말고는 사실 정치적 관점이고, 그걸 제외하고 본다면 순수 기술적 의미에서는 통제자의 존재만 인정한다면 토큰의 거래는 필수 불가결한 요소가 아니게 된다. 즉, 지금과 같은 ‘보상을 통한 유도(자본 투기) – 토큰 거래 – 블록체인 노드 유지’의 사이클을 타지 않더라도 블록체인의 무결성은 (다분히 조건부이긴 하지만) 획득 가능하다.
3. ‘현실적’으로 타협 가능한 지점
위의 ‘통제자’의 존재를 인정하는 블록체인은 이미 나와 있다. 채굴하지 않더라도 노드가 유지되는 블록체인의 존재가 바로 그것이다. 리플이나 스텔라와 같은 것들이 바로 그것인데, 이들은 노드의 생성과 유지의 증명으로서 암호화 토큰이 만들어지기는 하지만 중앙의 통제자가 존재하기 때문에 토큰의 자연 발생적으로 만들어지고(채굴) 또한 거래되어야 할 이유가 없다.
(여담이지만 이 지점에서 아이러니한 일이 발생하는데, 저런 이유로 인해서 리플 코인의 가치는 리플의 비즈니스적 가치와는 별개다. 하지만 리플 코인의 보유자들은 그 둘을 동일시하여 리플 코인에 대해 비즈니스 가치의 상승을 통한 코인 가치의 상승을 기대하고 투자하는데, 사실 잘못된 생각이다)
이 얘기를 왜 하냐 하면, 궁극적인 의미, 그러니깐 정치적 의미까지 포함한 것으로서 최초에 사토시 나카모토가 궁극적으로 추구했었던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달성을 위해서는 암호화 토큰의 거래가 필수 불가결한 요소였다. 그래서 투기가 곧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의 필수 조건처럼 여겨지겠지만, 그건 블록체인 네트워크가 가지고 있는 정치적 이상향의 추구까지 그 안에 포함시킬 때 해당되는 얘기다. 블록체인이 가지고 있는 기술적 요소만을 현실에 대입시키기 위해서는 그중 분산원장 기술만 가지고 와도 크게 무리는 없다는 얘기다.
물론 이때 ‘통제자’의 존재를 인정해야 하지만, 우리는 지금도 그 ‘통제자’의 선의를 전제하여 많은 권력을 국가와 권력기관, 그 외에 수많은 약속된 단체에 위임하고 있지 않은가.
그리고 이때의 ‘우리가 최대한의 선의를 가정할 수 있는 통제자’는 결국에는 국가일 수밖에 없게 된다. 혹은 국가로부터 그 권력을 위임받은 기관이던가. 물론 그건 인정할 수 없다고 말하는 블록체인의 지지자들도 다수 존재하겠지만, 국가의 요체는 물리력이다. 강제할 수 있는 물리력을 가진 국가가 이 지점에서 합의점을 찾으려 들 때 이를 막을 수 있는 개개인은 존재할 수 없다.
물론 사토시 나카모토는 이러한 개개인의 무력함을 암호화 토큰에 부여된 자본 가치에 대한 기대와 그 보상으로 뭉친 개개인이 이겨내길 바라는 마음으로 ‘비트코인’이라는 희대의 개념을 탄생시키고 (하필이면) 화폐의 성격을 부여한 것이겠지만, 그게 실질적 물리력을 담보할 수 있게 되기까지 현재의 물리력은 그걸 지켜보고만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에 이는 다분히 이상적 관점이다.
하여 아마도 이 논란의 귀결은 어쩌면 리플처럼 ‘통제자’의 존재를 전제한 블록체인 네트워크의 운영이 가능한 기술을 보안 및 암호화 분야, 혹은 스마트 계약 등의 분야에 적용하는 방식으로 현실에 자리 잡아 나가게 되지 않을까. 그게 현실의 권력이 블록체인이 갖는 기술적 의미와 만나게 되는 지점이기 때문이다.
인터넷도 최초에는 기술적 의미보다 아나키즘적 의미가 강했지만, 현실에 자리 잡게 된 것은 현실 정치 -즉 국가 권력의 적당한 통제 범위 내에서 기술적 요소들만 자리 잡았을 때부터였다. 아마도 비슷한 경로를 걷게 될 것이라 본다.
타협점이 없으면 모를까, 존재한다는 것. 이게 중요한 지점이다. 오늘은 이 정도로. 총총.
PS 1. 물론 이는 기술적인 타협점이고 자본의 관점에서 본다면 또 다른 문제가 될 수 있다고 보는데, 이미 암호화 토큰의 거래 시장은 뭐가 되었든 간에 무시하지 못할 자본 가치를 만들어 내고 있다. 그리고 이에 주목하는 자본이 늘어날수록 자본 시장에서의 가치는 확장될 것이고, 이는 ‘암호화 토큰의 거래를 필요로 하는 시장’의 존재 가치를 계속해서 만들어 낼 것이다.
난 종종 시장은 기술의 의지가 아니라 자본의 의지대로 만들어진다고 얘기하곤 하는데, 이런 관점에서라면 앞서 얘기한 저런 기술적 타협점이 존재하더라도 그와 상관없이 자본의 선택에 의해 보다 순수한 의미에서의 블록체인 기술 – 즉, 암호화 토큰의 지속적 거래를 요구하는 블록체인 시장이 계속해서 확장되고 유지될 수 있는 토양이 만들어질 수 있다.
(사실 앞에서도 얘기했지만 사토시 나카모토가 굳이 ‘화폐’의 기능에 집중한 것도 자본 가치 상승에 대한 대중의 기대 심리를 통해 자본 가치를 확대함으로써 이런 자본 시장의 선택을 유도하기 위한 포석이 아니었을까 싶다)
반대로, 기술적 타협점이 저 지점에서 이뤄진다면 지금의 암호화 토큰 거래 시장은 차차 그 비중이 약해지게 되지 않을까 싶다. 물론 그 와중에서도 계속 알트코인들이 나올 것이고 ICO도 진행되고 그래서 나름의 거래도 일어나겠지만, 시장이 ‘통제자가 통제하는 블록체인’을 선택하기 시작하면 자연스레 그 시장의 중심적인 자본 유입은 기존의 전통적 시장에 편입될 것이고, 그러면 그다음부터는 장내 진입을 위한 희망 고문의 장이 될 테니까 말이다. 물론 그게 언제 도래될지는 모를 일이지만 말이다.
PS 2. 그와 별개로, 그러면 미리 통제하고 폐쇄하는 게 맞지 않나 – 하는 데에 대해서는 부정적이다. 아직 우리는 저 부분에 있어서 가장 합리적인 최적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떤 지점에서 최적지를 찾게 될지 모르는 상황에서 미리 통제해서 정치적 부담을 제거해 놓고서는 나중에 다른 이들이 만든 길을 따라가겠다는 논리는 딱 정확하게 산업화 시대 논리이자 관치 논리다.
PS 3. 그러면 지금 통제하더라도 블록체인 기술의 발전에 악영향을 주는 건 아니지 않나 – 라는 지적에 대해서는, 꼭 그렇지는 않다.
앞서서도 얘기했다시피 모든 기술은 초기에 다양한 방법론이 제시되고, 그 과정에서 다양한 선택의 길이 열려야 자본의 유입을 통한 기술 개발의 가능성도 커진다. 그리고 그런 측면을 떠나서 순수 정무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난 반대인데, 과거 코스닥을 생각하면 간단하다.
코스닥도 따지고 보면 증시에 상장되기 힘든, 하지만 IT 기술의 발달과 더불어 등장한 수많은 닷컴 기업들에 대한 투기성 투자 열기를 제도권 안으로 끌어들여 안전장치를 마련함으로써 정치적 부담을 줄이는 동시에 이를 통해 돈이 돌게 함으로써 경제의 활성화에 도움이 되도록 유도한 정책이었다.
같은 사안을 두고도 네거티브 하게 가는 방식이 있고 포지티브 하게 가는 방식이 있는데 난 후자를 지지한다. 어차피 존재하는 에너지라면 부작용을 우려해서 굳이 꺼뜨리기보다는 어떻게든 플러스가 되는 방향으로 유도하기 위한 정책을 고려하는 게 맞지 않나 싶은데, 현 정부의 관료들이 DJ 정부가 고심했던 부분을 벤치마킹해 봤으면 싶다.
원문: 손원근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