게임 중독에 대한 근거가 되는 책, DSM
요즘 세간을 떠들썩하게 하고 있는 게임 중독 문제에 대하여, 정신과 의사 출신의 국회의원들이 레퍼런스로 삼고 있는 책자가 있으니, 바로 DSM이다. DSM은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정신장애의 진단 방법 및 그 통계에 관한 편람)의 약자로, 1952년부터 미국의 정신과 의학회(APA, American Psychiatric Association)에서 발간하고 있는 레퍼런스 북이다.
세계 최고의 정신과 관련 학술지 중 하나로 손꼽히며, 우리나라의 정신과학회에서도 이 DSM을 가이드북으로 사용하고 있을 정도이다. 올해에는 5번째의 개정판이 출간되었다. 개정판의 간략한 내용에 대해서는 여기서 확인할 수 있다.
DSM에는 총 3가지 섹션이 있는데, 첫 번째 섹션에서는 서론과 DSM을 활용할 시의 주의점 등이, 두 번째 섹션에서는 진단 기준 및 질병 코드, 치료방법 및 사례들이 주로 나와 있다. 그리고 세 번째는 진단 및 치료에 있어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기존 항목들이나 정신 질환으로 분류하지 말아야 할 항목들, 새롭게 대두하고 있는 문제들, 그리고 아직은 증거나 연구가 불충분하여 정신 장애로 판단하기 힘들기 때문에 보다 많은 연구와 임상실험이 필요한(Conditions for further study)항목들에 대해 소개하는 섹션이다.
중독물질에 게임은 없다
올해 출간된 DSM-5에는 아직 정신 장애로 분류되지 않기 때문에 향후 더 많은 연구가 필요한 사안으로 다음의 문제들이 제기되었다.
Attenuated Psychosis Syndrome
Depressive Episodes With Short-Duration Hypomania
Persistent Complex Bereavement DisorderDSM-5 Table of Contents • 9
Caffeine Use Disorder
Internet Gaming Disorder (인터넷 게임 장애)
Neurobehavioral Disorder Associated With Prenatal Alcohol Exposure
Suicidal Behavior Disorder
Nonsuicidal Self-Injury
앞서, 실제 정신 질환 혹은 장애요인으로 판단되는 항목들에 대해서 중점적으로 다루는, DSM의 핵심 부분인 섹션 II에는 중독물질에 의한 정신 장애(Substance Related and Addictive Disorder)와, 그렇지 않은 정신 장애(Non-Substance Related Disorder)를 포함한 총 38개의 정신 질환을 소개하고 있는데, 중독물질에 의한 정신 장애에 포함된 것들은 다음과 같다.
Alcohol-Related Disorders (알코올 중독)
Caffeine-Related Disorders (카페인 중독)
Cannabis-Related Disorders (대마초 중독)
Hallucinogen-Related Disorders (환각제 중독)
Inhalant-Related Disorders (흡입제 중독)
Opioid-Related Disorders (아편 중독)
Sedative-, Hypnotic-, or Anxiolytic-Related Disorders (진정제, 최면제, 그리고 우울증 해소 등을 위한 약품에 의한 중독)
Stimulant-Related Disorders (흥분제 중독)
Tobacco-Related Disorders (담배 중독 문제)
그리고 비물질 정신 장애에 대한 항목에는 도박 중독에 의한 장애(Gambling Disorder)가 소개되어있다.
즉, 세간에서 떠들어대고 있거나, 정신과 의사들 및 정신과 의사 출신의 국회의원이 주장하는 것과는 달리, APA가 올해 출간한 DSM-5에서는 게임을 중독물질로 다루고 있지도 않고, 비물질 정신 장애로 인정하고 있지도 않다는 이야기가 된다.
이제서야 연구가 ‘필요’한 수준의 인터넷 게임 ‘장애’
금년도에 출간된 DSM-5의 소개 페이지에서도 다운로드가 가능한 인터넷 게임에 대한 항목은 다음과 같은 서문으로 출발한다.
“In the fifth edition of the Diagnostic and Statistical Manual of Mental Disorders (DSM-5), Internet Gam¬ing Disorder is identified in Section III as a condition warranting more clinical research and experience before it might be considered for inclusion in the main book as a formal disorder.”
“정신장애의 진단 방법 및 그 통계에 관한 편람”의 제5차 개정판에서는 인터넷 게임으로 인한 장애를 새로이 섹션 III에 추가하여, 이것이 실제 정신 질환으로 분류되어 차기 DSM에 등재되기 이전에 보다 많은 연구 및 임상실험이 진행될 필요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그러면 이제 본문을 살펴보도록 하자.
“The Internet is now an integral, even inescapable part of many people’s daily lives; they turn to it to send messages, read news, conduct business and much more. But recent scientific reports have begun to focus on the preoccupation some people develop with certain aspects of the Internet, particularly online games. The “gamers” play compulsively, to the exclusion of other interests, and their persistent and recurrent online activity results in clinically significant impairment or distress. People with this con-dition endanger their academic or job functioning because of the amount of time they spend playing. They experience symptoms of withdrawal when kept from gaming.”
“현재 인터넷은 많은 이들의 일상생활에 필수적인 요소 중 하나이며, 인터넷 없이는 많은 것을 수행할 수 없을 정도로 필연적이기도 하다. 많은 이들이 인터넷을 통하여 서로 안부를 주고받으며, 뉴스를 접하고, 업무를 수행하며, 그 외에도 많은 일들을 한다.
그러나 최근의 몇몇 연구 보고서 중에는 일부 사람들이 인터넷, 특히 인터넷상에서 행하여지는 게임의 특정한 부분에만 대해 집착한 나머지, 중독 현상과 비슷한 사례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에 주목하기 시작하였다. 이들 “게이머”들은 강박적으로 게임에 관여하고, 그 외의 다른 것에 흥미를 두지 않는다.
이들은 쉴 새 없이 온라인 활동을 추구하고, 그에 의하여 임상적으로 사람에게 필요한 부분에 대한 어떠한 손상을 입거나 혹은 질병 등의 고통에 이르기도 한다. 이들은 게임을 하지 못하는 경우 금단 증상과 비슷한 증세를 보이며, 게임에 할애하는 시간이 많다 보니 학업 혹은 업무에 집중하지 못하는 위험에 빠지기도 한다.”
“Much of this literature stems from evidence from Asian countries and centers on young males. The studies suggest that when these individuals are engrossed in Internet games, certain pathways in their brains are triggered in the same direct and intense way that a drug addict’s brain is affected by a par-ticular substance. The gaming prompts a neurological response that influences feelings of pleasure and reward, and the result, in the extreme, is manifested as addictive behavior.”
이러한 사례들을 소개하고 있는 논문들 대부분은 일부 아시아 국가들에서 발견된 사례들에 기초하고 있으며, 주로 젊은 남성들에게서 많이 발생하고 있는 것으로 서술하고 있다.
인터넷 게임 중독에 관련한 연구들은 일부 게이머들이 게임에 너무 몰두하게 되면 약물 중독 환자들의 케이스에서 볼 수 있는 것과 비슷한, 직접적이고 강렬한 반응이 나타난다고 주장하고 있다. 또한, 게임을 하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나 성취감, 그리고 그로부터 얻을 수 있는 보상에 대한 감정적인 부분들이 신경학적 반응을 유발하여, 극단적인 경우에는 중독 현상으로 이어진다.”
“Further research will determine if the same patterns of excessive online gaming are detected using the proposed criteria. At this time, the criteria for this condition are limited to Internet gaming and do not include general use of the Internet, online gambling or social media.”
향후 행하여질 연구는, 앞서 제안된 여러 기준들을 통하여 온라인 게임을 과도하게 하였을 시에 현재까지 발표된 논문의 내용과 비슷한 사례가 발견되는지에 대하여 검증하게 될 것이다. 또한, 현재 이러한 게임 중독 현상이 정신 장애로 분류될지에 대한 연구 기준은, 어디까지나 게임을 하는 행위에만 한정할 것이며, 일반적인 인터넷 사용 및 온라인상에서 이루어지는 도박행위, 그리고 SNS 등의 소셜 미디어는 포함하지 않을 것이다.
마지막에는 이런 문구가 들어가 있다.
“By listing Internet Gaming Disorder in DSM’5 Section III, APA hopes to encourage research to determine whether the condition should be added to the manual as a disorder.”
APA는 인터넷 게임(으로 인한 정신)장애를 DSM-V의 섹션 3에 등재함으로써, 향후 이 분야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이루어져 본(인터넷 게임으로 인한 정신 장애) 현상이 정신 질환으로써 등재될지에 대한 여부를 판단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즉, 아직 연구결과도 미비하기 때문에 정식으로 정신 질환, 또는 정신 장애로 인정하기 어려우므로 앞으로 더 연구를 해보아야 한다는 거다.
이러한 의학적 사실을 숨기는, 혹은 모르는 높은 분들
문제는, 게임을 알코올, 도박, 마약과 함께 4대 중독 물질로 규정하고, 이를 규제하는 법안을 발의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는 정부 여당과, 이를 지지하고 있는 정신과 의사들과 학부모 단체들, 특히 정신과 의사들이 DSM에서 아직 중독 현상도 아니고 정신 장애로 분류되지도 않고 “아직 논란이 많은” 애매모호한 사항이라 섹션 3에 언급되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숨기고 있다는 것이다.
뭐 그런데, APA의 이러한 견해를 악의적인 의도를 가지고 숨긴 게 아니라, 사실은 그냥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나름 의료기기 업체에 종사해왔고 아버지를 의사로 둔 사람으로서 이야기하자면, 사실 의료기기 업체 직원들이나 일반인들보다도 의학 기술이나 트렌드, 혹은 학술지의 내용을 파악하고 있지 못한 의사들이 수두룩하기 때문.
많은 의료기기 업체들이나 의약품 업체들은 의사들에게 영업하기 위하여 의사들이 선호하거나 혹은 참가해보고 싶은 국내외 학술대회의 참가 비용 등을 스폰서하는 경우가 많다. 나 또한 업체 직원으로 응급구조학회나 방사선학회 등에 자주 다닌 편인데, 학술대회에 가서 정작 “관광”을 즐기는 의사들은 솔직히 엄청나게 많다.
한 나라의 국정을 책임지는 자리에까지 오른 의사가 내가 지금껏 만나봤던 수많은 “젊고, 특권의식에 쩔어 있고, 그러나 멍청한” 의사들에 가까운 인물이 아니길 바랄 뿐이지만, 최근의 행보를 보면 더할 나위 없이 그 카테고리에 속하는 인물이 아닐까 한다.
p.s. APA의 DSM-5는 온라인에서 주문이 가능하다. 가격은 미화로 $199.00. 20만원 정도 하는 셈이다. 구매 링크는 요기를 참조바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