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사 편찬위원회〉 〈내 인생의 스탑오버〉 〈리얼토크 날〉을 아시나요? 전주MBC, UBC울산방송, KBS광주가 자체 제작한 프로그램입니다. 서울이 아닌 각 지역에서는 지역방송 편성 시간대에 지역 제작 프로그램이 방송됩니다. 서울 사람들은 모르는 세계죠. 지역민 중에는 서울 방송을 보지 못해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지만, 지역방송은 지역방송만의 매력이 있답니다.
서울 중심 소재 프로그램 속에서 지역의 이야기는 소외됩니다. 그래서 지역방송은 지역민들에게 생생한 지역만의 이야기를 들려주려고 합니다. 지역의 문화재를 소개하는 프로그램, 지역민들이 참여하는 토크쇼, 지역사회 이슈를 토론하는 프로그램 등 지역 이야기를 담은 프로그램을 꽤 많이 만들어 방송합니다. 하지만 우리는 지역에 살면서도 지역에서 만들어지는 프로그램을 잘 알지 못합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만들어지지만, 지역만의 색다른 매력을 가진 프로그램들을 소개해볼까 합니다.
깨가 쏟아지는 다문화 퀴즈쇼! 〈깨소금〉
국내 다문화 이주민 180만 시대! 경북 지역에만 12만, 농촌 지역엔 10쌍 중 3쌍이 다문화 가족입니다. 2014년, 안동MBC는 지역적인 특징을 살려 다문화 부부 퀴즈쇼 프로그램을 런칭 했습니다. 〈깨소금〉은 내년 1월이면 5주년을 맞이하는 안동MBC의 장수 프로그램이랍니다. 다문화 부부 혹은 외국인과 그 친구가 나와서 퀴즈를 푸는데요. 재미없을 것 같다고요? 아닙니다! 문제의 답을 쓴 이유를 묻는 MC에게 한국말이 서툴러 “생각이 없어요”라고 엉뚱하게 대답하는 출연진은 국내 출연자라면 나올 수 없는 재미 요소 중 하나입니다.
〈깨소금〉을 연출한 서현 PD는 다문화 이주민들을 이방인이 아니라 동시대에 우리와 함께 살아가는 공동체 구성원으로 받아들일 수 있도록 지역민들의 인식 틀을 바꾸고 싶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지속적인 정규물로 프로그램을 만들었는데요. 프로그램이 방송되기 전 사내에서 걱정이 많았다고 합니다. 일반인들 특히 외국인이 많이 참여할까 하는 걱정이었지요. 그런 걱정을 뒤엎고 많은 다문화 부부가 출연했고, 그들이 퀴즈를 풀면서 그들의 문화나 관습을 진솔하게 드러내면서 이 프로그램은 다문화 가족에 대한 선입견을 말끔히 없애는 계기를 만들어 주었습니다.
〈깨소금〉은 100만원이라는 말도 안 되는 제작비로 시작된 초저예산 프로그램입니다. 〈깨소금〉은 힘든 제작 환경에도 불구하고 한국방송대상, 이달의 PD상,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 국민대통합 우수콘텐츠 등 많은 상을 받았답니다. 다문화 부부를 방송의 주체로 끌어안고 다문화 부부, 다문화 가족 등에 대한 편견을 없애고 인식을 개선시켰기 때문이죠. 서 PD는 〈깨소금〉이 10년, 20년 장수 프로그램이 되어 다문화 프로그램 중 ‘최고’의 브랜드를 가졌으면 좋겠다고 합니다.
부산의 유네스코 위원회, 부네스코 위원회
지난해 8월 종영한 KBS부산의 〈부네스코위원회〉. 부네스코위원회가 뭐냐고요? 부네스코위원회는 부산과 유네스코위원회의 합성어입니다. 부산에 있는 장소와 사람에 담긴 역사를 이야기하고, 부산만의 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프로그램입니다. 탤런트 이인혜와 아나운서 차재환, 향토전문가와 맛 칼럼니스트 등 지역 전문가들이 모여 문화유산에 담긴 역사를 이야기 합니다. 부산에 사는 전문가들이 이야기해주는 부산의 생생한 역사 이야기는 부산 사람뿐 아니라 타 지역 사람에게도 새로운 정보를 제공합니다. 부산에서만 프로그램이 방송되어 아쉬울 정도입니다.
〈부네스코위원회〉는 패널의 토론뿐 아니라 재연 드라마를 통해서 역사적 내용을 쉽게 설명해줍니다. 우리가 잘 몰랐던 여성 독립운동가 박차정 의사가 중국으로 건너가게 된 계기, 의열단원으로 활동하는 이야기를 소재로 한 재연 드라마는 시청자들을 프로그램에 몰입하게 만듭니다. 방송 말미엔 7명의 패널이 투표를 하고 다수의 표를 얻은 문화유산이 ‘부네스코 문화유산’에 등재됩니다. 최동원 편에서는 최동원 동상과 선거 포스터가 맞붙었는데요. 박빙 끝에 4표를 얻은 최동원 동상이 등재되었답니다. 어떤 문화유산이 등재될까 궁금하면서도, 재미있게 정보를 얻는 프로그램이죠.
〈부네스코위원회〉의 오인교 PD는 부산지역에 사는 사람들이 부산 지역의 역사를 더 잘 알았으면 좋겠다는 생각에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시청자들은 잘 몰랐던 부산의 이모저모를 역사와 함께 친절하게 알려주는 유익한 프로그램이라 평가받았다고 하는데요. 아쉬움은 남는다고 합니다. 〈부네스코위원회〉는 스튜디오 TV쇼인데, TV쇼는 MC와 패널의 인지도가 중요한 장르입니다. 하지만 이인혜 씨를 제외하고는 패널의 인지도가 부족해 더 많은 시청자를 확보하지 못한 점이 아쉽다고 하네요.
〈부네스코위원회〉는 지난해 8월 종영했지만, 앞으로 부산의 역사를 소개하는 새로운 형식의 프로그램을 만들 예정이라고 합니다. 지역의 역사를 통해 자신이 사는 지역에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부네스코위원회〉 같은 프로그램을 다시 만나볼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촌티콤! 〈웰컴 투 가오리〉 시즌2
‘촌티콤’이 뭐냐고요? ‘촌티 나는 시트콤’이라는 뜻의 촌티콤은 〈웰컴 투 가오리〉 제작진이 만든 신조어입니다. 〈웰컴 투 가오리〉는 부산 민영방송국인 KNN에서 만든 시트콤입니다. 지역민방이 서울에서도 성공하기 쉽지 않다는 시트콤을 만든 겁니다. 부산광역시 기장군을 배경으로 한 〈웰컴 투 가오리〉 시즌2는 기장군에서 나고 자란 부산 사나이 ‘기장군’과 과거의 라이벌이었던 ‘순기’를 둘러싼 갈등과 ‘기장군’의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담습니다. 이 시트콤에는 김명국, 권남희, 김원범 등 지역에서 활동하는 배우들이 다수 출연합니다. 배우의 실감 나는 사투리 연기와 지역민들이 공감하는 소소한 일상은 시청자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웰컴 투 가오리〉는 2010년 시즌1이 처음 방송되었고 2017년에 방송된 시즌2 또한 성황리에 막을 내렸습니다. 〈웰컴 투 가오리〉 시즌2는 ‘지역민의, 지역민에 의한, 지역민을 위한 시트콤’입니다. 시즌2 임혁규 CP는 ‘지역의 이야기를 정감있게 전해주는 이야기는 왜 없을까?’ 하는 질문에서 이 프로그램을 기획했다고 합니다. 〈웰컴 투 가오리〉는 고향 토박이인 ‘기장군’과 고향으로 돌아온 ‘김순기’,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다가 아버지의 가업을 물려받는 기장군의 아들 ‘기진만’ 등 지역민들의 생활과 고민이 담겨있답니다. 임 CP는 ‘우리’ 지역을 배경으로 지역만의 이야기를 담아내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것이 지역방송의 역할이라 생각한다고 합니다.
지역방송국에서 시트콤을 제작하기는 정말 어려웠을 텐데요. 임 CP는 적은 예산과 배우 캐스팅, 로케이션 등 쉬운 게 하나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KNN이 이전부터 쌓아온 저예산 드라마 제작 노하우가 큰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웰컴 투 가오리〉 시즌1은 지역방송 최초로 ‘한국방송대상 장편드라마 부문 작품상’을 받기도 했답니다. 인력도 제작비도 부족한 열악한 환경이지만, 고품질의 드라마를 만들어 낸 비결이 궁금한데요. 임 CP는 배우와 스태프의 열정이 한계를 극복하는 힘이 되었다고 합니다. 내년에도 새로운 이야기로 드라마를 만들 예정이라고 하는데요. 어떤 지역민들의 이야기로 새롭게 찾아올지 기대가 됩니다.
지역방송을 끄지 마세요
지역방송 프로그램은 엉성한 느낌이 듭니다. 이유가 있습니다. 인력과 제작비가 서울 방송보다 현저히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서울 방송국이 회당 3,000만 원으로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지역 방송국은 서울 방송국의 1/5~1/10 수준이거나 어떤 때는 그보다 더 적은 제작비로 프로그램을 만듭니다. 시청률이 잘 나오지 않는다는 이유로 본사의 제작비 지원을 제대로 받지 못하거나 지역방송국 자체에 제작비가 부족합니다.
영상 플랫폼이 늘어남에 따라 지역방송은 설 자리를 점점 잃어갑니다. 하지만 지역방송은 사라져서는 안 됩니다. 지역 프로그램은 지역문화를 형성하고, 콘텐츠 생산을 통해 지역민들을 방송에 유입시키면서 지역 경제 발전에도 도움이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지역 방송국마다 방송하는 토론 프로그램은 서울 중심 방송 환경에서 지역 이슈를 이야기하는 공론장을 만듭니다.
지역 방송국들은 힘든 환경에서도 지역민들을 위한 콘텐츠를 만들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지역성을 살린 프로그램을 통해 지역의 이야기를 전국적으로 볼 수 있는 날이 오면 좋겠습니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이연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