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도 여전한 편견, 노동자 파업 집회 보도
언론은 ‘시민 대 시위대’라는 이분법적 시각에서 노동자 총파업 집회를 다뤄왔다. 이분법적인 언론 보도에서 집회에 참가한 노동자들은 ‘불법적으로’ 도로를 점거해 평범한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들에게 교통혼잡 등 불편함을 야기하고, ‘폭력적으로’ 경찰과 대치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자신들의 문제를 알리기 위해 최후의 수단인 집회를 선택할 수밖에 없는 노동자의 사회적 위치를 무시한 보도 관행이다. 불법과 폭력을 일삼는 집회 참가자들의 모습만 강조한 보도에서 정작 노동자들이 사회에 알리고 바로잡기를 원하는 노동 문제는 묵살된다.
지난 11월 28일에 있었던 민주노총 건설노조의 총파업 집회를 다룬 MBC 보도 또한 관행에서 벗어나질 못했다. 리포트 내용을 핵심만 압축해서 전달하는 앵커 멘트는 ‘여의도 일대에 혼잡’을 빚고, ‘경찰의 해산 명령에 불응’한 집회 참가자들의 문제점을 짚었다. 기자의 보도 내용은 이에 더해 ‘물병을 던지며’ 경찰과 물리적 충돌을 벌인 노동자들의 폭력적인 모습도 묘사했다. 기자는 마지막 멘트로 ‘주요 행위자를 선별해 사법처리하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는 경찰의 입장을 전했다.
노동자 파업 집회를 다루는 언론의 관행적인 보도는 적어도 저널리즘 원칙 세 가지를 어기고 있다. 하나는 ‘사실 확인 의무’의 원칙이다. 다른 하나는 ‘권력을 감시하고 소외된 사람들에게 목소리를 제공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마지막으로 ‘시민을 위해 일해야 한다’는 원칙이다.
건설노동자들의 총파업 집회 이유를 짚어주지 않는 불친절한 보도
기자는 리포트에서 “임금 인상과 근로환경 개선을 요구하며”라고 짧게 건설노동자들의 총파업 집회 이유를 짚어주었다. 이 간략한 언급은 건설노동자들의 총파업 집회 이유를 더 정당하지 못하게끔 보이게 한다. 기자가 말한 두 가지 이유는 어떤 사업장의 어느 노동자든 요구하는 일상적인 문제이다. 민주언론연합은 “그 어떤 집회에 붙여놓아도 될 법한 추상적 표현일 뿐”이라고 표현했다. 이 때문에 불법적이고 폭력적인 모습을 보이면서까지 총파업 집회에 참가하는 건설노동자들의 행위는 납득하기 어려워 보인다.
이는 ‘비중에 맞게 보도하라’는 저널리즘 원칙과도 관련 있다. 기자의 리포트 하나만 가지고 편파적인 보도라고 따지기 어렵다. 아래 <그림1>을 보면 이 리포트를 맡은 기자는 건설노조의 시위에 대해 세 개의 기사를 썼다. 첫 번째, 세 번째 기사는 단신 뉴스이고 두 번째가 이 글에서 언급한 방송 보도이다. 세 개 모두 총파업 시위로 인한 교통혼잡만을 이야기하고 있다.
네 번째와 다섯 번째는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달한 MBC 뉴미디어뉴스국이 만든 영상이다. 온라인을 통해 건설노동자의 목소리를 전달하기는 했으나 다수에게 무차별적으로 전달되는 공중파 방송 보도에 비하면 선택적으로 전달되는 온라인 영상은 영향력 면에서 상대적으로 미미하다.
결과적으로 MBC는 건설노동자 총파업 집회를 여러 측면에서 다루기보다 기자의 리포트 내용처럼 집회의 불법성과 폭력성만을 부각했을 뿐이다.
건설노동자 총파업 집회가 열린 이유는 ‘건설근로자의 고용개선 등에 관한 법률’(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 국회에서 논의되지 못해서다. 현행 건설근로자법은 다수가 일용직인 불안정한 위치의 건설노동자를 위한 퇴직금(퇴직공제금) 적립 제도를 포함한다. 건설노동자 퇴직금 제도의 문제는 같은 일수로 일한 일반 노동자 퇴직금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 금액을 받는다는 점이다.
또한 일부 건설노동자들의 경우 사실상 노동자임에도 ‘사업자’로 분류되는 ‘특수고용노동자’로 퇴직공제 대상에서 제외되고 있다는 점도 문제다. 한겨레에 따르면 건설노조가 수년째 제기한 문제를 반영한 개정안에 대한 여야 간 이견은 크지 않았다. 그러나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대한 여야 간 대립으로 건설근로자법까지 제대로 처리되지 못하게 됐다.
건설노동자 총파업 집회는 여야 간 싸움 때문에 건설노동자의 인간다운 삶을 위한 법안이 통과되지 못한 데서 비롯됐다. 집회로 인한 마포대교 교통 체증은 경찰의 세 번째 해산 명령에 따라 한 시간여 만에 풀렸다.
소외된 노동자들의 목소리에 귀 닫은 대신 경찰을 대변하는 보도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 발의된 이유는 건설노동자들이 법과 제도를 통해 제대로 보호받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건설현장 노동자들은 대다수가 일용직이기에 불안정한 삶을 살아가고 있고, 퇴직금 등에서도 일반 노동자보다 적은 차별적인 금액을 받고 있다. 국회는 오랫동안 문제로 지적된 건설현장 노동자들의 현실과 법의 괴리를 좁혀줄 대의기구임에도 내부 대립으로 인해 건설근로자법 개정안 통과에 실패했다.
언론은 법은 물론 국회에서도 외면받는 건설노동자들의 현실을 전달할 의무가 있다. 그러나 MBC 뉴스는 경찰의 명령에 순응하지 않는 건설노동자들의 모습을 강조할 뿐이다. 기자의 리포트는 건설노조의 불법성을 이유로 사법처리를 할 거라는 경찰의 입장으로 끝난다. 집회에 참가한 건설현장 노동자의 목소리는 담기지 않았다.
시민을 위하는 척만 하는 보도
언론은 시민들에게 민주 시민의 책임과 의무, 권리를 알려주는 역할을 한다. 노동권은 다수의 시민들에게 공통적으로 적용되는 주제다. 민간 기업에 한정할 경우 9.1%라는 낮은 노조 조직률 등을 고려할 때 한국 사회에서 노동권에 대한 인식은 여전히 낮다. 특히 소외된 분야의 노동자들은 목소리를 내기 위해 광장과 길거리로 나올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이다.
MBC 보도는 일부 언론이 그래왔듯 노동자와 시민을 편 가르며 소외된 노동자를 더욱 소외시키는 현상을 낳는다. 파업 집회에 참여하는 노동자들은 일상을 살아가는 시민에게 길거리 혼잡, 소음 등 사회질서를 어지럽히는 시민 이외의 존재로만 다뤄진다. 파업 집회가 낳는 소소한 사회 갈등의 핵심은 법/제도와 노동 현실의 괴리라는 점을 제대로 다루지 않는다.
TV조선에는 ‘왜’ 저널리즘이 필요하다
TV조선 보도의 ‘불법·폭력’ 프레이밍은 현재진행형이다
‘문재인 정부 들어 첫 도심 불법 집회가 열렸다. 민주노총 전국건설노동조합(이하 건설노조)이 법 개정을 요구하며 마포대교를 막고 시위를 벌였다. 퇴근 시각 여의도 일대 교통은 마비됐다. 경찰 추산 만 이천여 명의 집회 참가자들이 경찰 차단벽을 흔들었다. 고함을 치고, 물병도 집어 던졌다. 경찰은 “막무가내로 길을 막아서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고 했다. 노조는 고공 농성장 근처로 이동해 야간 집회를 이어갔다. 밤 8시가 지나서야 해산했다.’
11월 28일 TV조선 <종합뉴스9> ‘문재인 정부 첫 불법 도심 집회…퇴근길 여의도 마비’ 아이템 보도 내용이다. 건설노조 시위의 폭력성과 불법성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보도 화면은 세 갈래로 구성되었다. 건설노조원들이 경찰 차단벽을 마구 흔들며 소리치는 장면, 마포대교와 여의도 일대에 차량이 멈춰서 있는 장면, 어두운 밤 한 노조원이 확성기를 들고 “200만 건설노동자들의 분노와 울분을 모아서 더 힘차게 투쟁합시다”를 외치는 장면이다. 화면 역시 건설노조의 폭력성, 시민 불편을 부각시켰다. 앵커와 기자는 “문재인 정부 들어 사실상 첫 도심 불법집회” 멘트를 두 번 반복했다.
정작 기사 구성요건 중 가장 중요한 ‘왜?’는 빠져있다. 건설노조는 왜 이런 집회를 하게 됐을까?
TV조선 보도에는 ‘왜’가 빠져있다
건설노조가 시위를 벌인 것은 28일 국회 환경노동위원회 고용노동소위원회 파행으로 건설근로자법 개정안이 논의조차 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 개정안에는 퇴직공제금(하루당 4000원)을 인상하고, 레미콘-덤프트럭 등 1인 건설기계 노동자도 퇴직공제회 가입을 허용해달라는 요구가 담겨있다.
현행 퇴직공제부금의 하루 적립액은 9년간 한 번도 오르지 않았고, 1년간 적립액도 120만 원 안팎이다. 또한 건설기계 운전사들은 사실상 ‘노동자’이지만 법적으로 ‘1인 사업자’로 분류되기에 공제부금 적립대상에서 제외된다. 건설노조는 최소한의 사회안전망을 구축해달라는 목소리를 국회에 전하고자 했다. 200만 건설노동자들이 분노와 울분을 이기지 못한 이유다.
구태의연한 틀 짓기 방식
TV조선의 건설노조 보도는 틀짓기 이론으로 설명된다. 이는 특정한 단어나 구절, 맥락, 영상을 사용해 하나의 사건을 특정한 방식으로 해석한다는 이론이다. TV조선은 이 보도를 통해 집회에 3가지 프레임을 짜 맞추었다. 건설노조 시위의 불법성과 폭력성, 그로 인한 시민 불편, 문재인 정부 첫 불법 집회가 그것이다. 이를 통해 진보 정권에서도 불법시위가 자행됐고, 애꿎은 시민만 피해를 보게 됐다는 인식을 유도했다.
해당 리포트는 특정 사실만을 선택해 보도했다. 신고 지역을 벗어나 국회로 돌진하려 했던 시위대의 불법성과 퇴근 시간 마포대교를 점거한 시위대로 인한 교통 체증 등. 시위대가 왜 국회로 향했는지, 많은 이들의 발목을 잡으면서까지 말하려는 점이 무엇이었는지에 대한 사실은 조명하지 않았다.
“마포대교 때문에 불편을 드린 점에 대해서는 사과드립니다. 그래도 한 말씀만 드리자면, 죄송합니다만, 저희도 국민입니다. 건설근로자법이 개정되면 임금체불을 막고, 투명한 건설현장을 만들어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낼 수 있어요. 그런데 이를 막고 있는 건 국회입니다.”
전재희 건설노조 선전실장이 시위 다음 날 한 발언이다.
틀짓기 저널리즘이 나쁜 것만은 아니다. 언론학자 허쉬(Hershey)는 미디어 프레임이 ‘기사에서 가장 의미 있는 것이 무엇이냐?’ 하는 질문에 답을 주고, 기사를 쉽게 이해하도록 도움을 준다고 봤다.
그러나 TV조선 보도는 건설노조 조합원들이 ‘왜’ 시위를 하게 됐는지에 대한 사실을 누락시켜,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지 못했다. 시청자들에게 가장 의미 있는 내용을 전달하기보다, 편향된 관점에서 시위를 바라보게 했다. ‘노조=불법’이라는 수식을 한층 강화해 사회적 갈등을 부추기는 결과만 초래한 셈이다.
노암 촘스키는 ‘한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이 그 나라의 언론 수준을 결정한다’고 했다. 그 역도 성립한다.
‘한 나라의 언론 수준이 그 나라의 민주주의 수준을 결정한다.’
TV조선이 건설노조 시위가 ‘왜’ 일어났는지에 대한 보도를 함께 했다면 어땠을까? 건설노조가 아닌 이들도 건설근로자법의 문제점과 개정 방향을 한 번쯤 고민하고 건설노동자의 삶을 공감하게 만들지 않았을까. 이는 우리가 원하는 민주주의의 출발점과 다르지 않다. TV조선에서 ‘왜’ 저널리즘을 보고 싶은 이유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김소영 기자, 최지영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