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아이들이 마스크를 벗고 사시사철 신나게 뛰어노는 맑은 대한민국을 원하지 않습니까?”
지난해 9월 26일 서울 세종로 정부서울청사 3층 합동브리핑룸에서 안병옥 환경부 차관이 미세먼지관리 종합대책 발표를 마치며 호소했다. 정부의 의지만으로는 문제 해결이 어려우니 국민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산업계의 협조를 부탁한다는 말이었다. 오는 2022년까지 7조 2천억원을 투입해 미세먼지를 2014년 배출량 대비 30%가량 줄이겠다는 내용의 이날 대책은 그러나 ‘정부의 의지 자체도 부족한 것 아니냐’는 의구심을 낳았다.
문재인 정부 말까지 석탄화력발전량 더 늘어
정부는 미세먼지를 내뿜는 석탄화력발전을 줄이고 신재생에너지를 늘리겠다고 공언했으나 산업통상자원부의 에너지수급계획 등을 종합하면 문재인 정부 말까지 석탄발전의 절대량은 오히려 늘어난다. 문 대통령은 대선후보 시절 공정률이 낮은 석탄화력발전소 9기의 건설을 원점에서 재검토하겠다고 밝혔지만 취임 후 7기(신서천 1기·고성 2기·강릉 2기·삼척 2기)는 그대로 진행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최고 수준의 배출 기준을 적용한다’는 조건을 달았을 뿐이다.
정부는 대신 노후 석탄화력발전소 7기(보령1・2호기, 삼천포1・2호기, 영동2호기, 호남1・2호기)를 당초 예정보다 3년 빠른 2022년까지 차례로 폐쇄하기로 했다. 따라서 문 대통령 임기 말 전체 석탄화력발전소 수는 변함이 없다. 그러나 발전설비용량은 2017년 36.8기가와트(GW)에서 2022년 42GW로 5.2GW가 더 늘어난다. 새로 짓는 발전소의 설비용량이 폐쇄되는 것들보다 크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의 국토면적 대비 석탄발전용량은 이미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가장 크다.
산자부는 전체 발전량(실제 전기생산량) 중 재생에너지 비중을 2017년의 6.2%에서 2030년 20%로 확대하고 석탄발전은 같은 기간 45.3%에서 36.1%까지 줄이겠다고 밝혔다. 그러나 환경운동연합 등 시민단체들은 현재 국내 발전원 중 1위(설비용량 기준 31.5%)인 석탄화력이 2030년에도 여전히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할 것이라며 정부를 비판하고 있다.
우리나라가 이처럼 석탄화력발전에 크게 의존하게 된 것은 1970년대 두 차례의 석유파동을 겪은 뒤 전기생산의 ‘탈석유화’를 추진하면서 값싼 유연탄 수입을 늘렸기 때문이다. 이 추세는 최근까지 이어져 2005년 39기였던 석탄화력발전소가 2017년 12월 현재 61기로 늘었다.
지난해에만 충남 보령·태안, 강원 삼척·동해(북평)에서 석탄발전소 6기가 새로 가동됐다. 문재인 정부 들어 노후 발전소인 서천화력 2기가 문을 닫고 강릉 영동화력발전소 1호기가 바이오매스 연료로 전환했지만 결과적으로는 3개가 더 늘었다. 석탄발전을 중단한 3기의 설비용량은 525메가와트(MW)지만, 신규 발전소 6기의 설비용량은 5114MW로 10배 가까이 된다.
초미세먼지·온실가스 등 배출, 건강·환경에 치명타
석탄은 천연가스 등과 비교할 때 대기오염물질 배출량이 압도적으로 많다. 더불어민주당 이용득(65) 의원이 지난해 10월 23일 환경부에서 받은 자료에 따르면 ‘최고 수준의 저감 설비’를 갖춘다 해도 석탄화력발전소는 액화천연가스(LNG) 발전소에 비해 황산화물을 100배, 초미세먼지를 4배가량 배출한다. 석탄은 또 LNG의 2배가량 이산화탄소를 뿜어 내 기후변화의 주범으로 꼽히기도 한다.
환경전문가들은 정부가 지난해 7월 노후석탄발전소인 영동 1호기를 목재 펠릿을 쓰는 바이오매스 발전소로 전환한 데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목재 펠릿은 기후변화를 일으키는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석탄에 비해 적지만 미세먼지,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기 때문이다.
손민우(32) 그린피스 기후에너지 캠페이너는 지난 12일 <단비뉴스>와의 전화인터뷰에서 “발전회사들이 사용하는 목재 펠릿은 페인트 등 화학물질을 제대로 제거하지 않은 폐목재를 가공한 것이 대부분”이라며 “그대로 연소했을 때 오히려 대기오염물질이 더 나올 수 있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바이오매스 발전은 원래 자원순환에 도움이 된다는 게 장점이지만 현실은 동남아에서 멀쩡한 나무를 베어 수입해오는 등 정말 친환경인지 의문이 든다”며 “그 돈으로 태양광, 풍력같이 대기오염물질이나 온실가스를 배출하지 않는 발전방식에 투자하는 게 옳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익명을 요구한 산림바이오매스에너지협회 관계자는 “목재 펠릿은 국내외 품질기준에 따라 유해 화학물질이 함유되지 않은 고체바이오연료만을 의미한다”며 “(손 캠페이너가 지적한) 화학물질을 함유한 폐목재나 농업폐기물 등으로 만든 고형연료는 바이오 SRF로, 목재 펠릿과는 구분해야 한다”고 반박했다.
국내 바이오매스발전소 중 바이오SRF를 연료로 태우는 곳도 있지만, 영동1호기 연료로 쓰이는 목재 펠릿은 먼지, 황산화물, 질소산화물 등 대기오염물질이 유연탄과 견줘 크게 낮은 수준이라는 것이다. 산림바이오매스에너지협회는 목재 펠릿 관련 민간 업체들과 공공연구기관인 한국에너지기술연구원 등을 회원사로 둔 비영리법인이다.
그는 국내에서 사용하는 목재 펠릿의 99%를 대부분 동남아에서 수입해와 자원순환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에 대해서도 “국산 목재펠릿과 가격차가 워낙 커서 발전소들도 저렴한 수입산을 쓸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특히 동남아는 한국보다 원재료값이 절반 가까이 낮다”고 설명했다.
선진국은 ‘탈석탄’ 박차, 한국은 역주행
우리나라와 달리 선진국들은 ‘탈석탄’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영국, 프랑스, 덴마크, 캐나다 등 주요국들은 지난 2015년 체결된 ‘기후변화에 관한 파리협정’의 온실가스 감축 목표 이행을 위해 오는 2030년 무렵까지 석탄발전소를 모두 폐쇄한다는 계획을 세웠다. 특히 영국과 캐나다는 지난해 11월 독일 본에서 열린 제23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3)에서 ‘탈석탄동맹(Powering Past Coal Alliance)’ 결성을 이끌었다.
프랑스, 이탈리아, 핀란드, 덴마크, 멕시코 등 총 20개국이 참여한 이 동맹은 선언문을 통해 “세계 전력생산 중 40%를 차지하는 석탄발전은 온실가스 배출의 주범”이라며 “석탄을 태워 발생한 대기오염으로 매년 80만 명이 사망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동맹은 앞으로 가입국을 50개 나라 이상으로 늘려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영국은 엘리자베스 여왕의 생일이던 지난해 4월 21일 석탄을 24시간 동안 전혀 사용하지 않고 전력을 공급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1882년 런던에 세계 최초의 석탄발전소가 들어선 이래 처음 있는 일이었다. 2015년 22%였던 영국의 석탄발전 비중은 천연가스발전이 늘면서 이듬해 9%까지 떨어졌다. 영국은 오는 2025년 석탄발전을 완전 중단할 계획이다.
2003년 전체 전력생산의 25%를 석탄발전으로 충당했던 캐나다 역시 천연가스발전을 늘리면서 2015년 석탄발전비중을 6.5%로 줄였다. 캐나다에서는 올해부터 석탄, 석유 등 화석연료 탄소배출량 1톤(t)당 최소 10캐나다달러(한화 약 8500원)의 탄소세가 부과된다. 캐나다 연방정부는 2022년까지 탄소세를 50캐나다달러(약 4만2000원)로 올릴 방침이다. 탄소세를 많이 내게 될 석탄 및 석유관련 업계는 ‘국가 경제에 타격을 줄 것’이라 반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청정에너지 사업 비중 확대를 고심하고 있다.
‘친환경 석탄발전’은 국민 속이는 ‘그린워싱’
우리나라의 발전회사들은 첨단기술을 활용한 고효율 발전과 오염물질 저감시설 등을 내세워 석탄발전도 ‘친환경적으로’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지난해 가동을 시작한 강원 삼척그린파워발전소가 대표적인 예다.
총 2044MW 규모의 삼척그린파워발전소 1,2호기를 운영하는 한국남부발전주식회사는 홍보동영상에서 옥내형 저탄장, 친환경 보일러, 이산화탄소 저감연구센터, 발전폐수 무방류 시스템 등을 내세워 ‘친환경 저원가 발전소’임을 강조하고 있다. 2022년까지 문을 열게 될 강릉에코파워, 고성그린파워, 삼척포스파워발전소의 홈페이지 역시 ‘세계 최고 수준의 친환경설비’ ‘환경영향 제로(0)화’ 등 문구를 앞세우고 있다.
하지만 국제환경단체 그린피스는 기업이 석탄발전에 ‘친환경’ 이미지를 덧씌우는 것은 전형적인 ‘그린워싱(greenwashing)’이라고 비판한다. 본질을 가리는 허위 혹은 과장이라는 얘기다. 손민우 캠페이너는 이렇게 말했다.
“석탄발전은 아무리 최신 기술로 걸러낸다 하더라도 결코 오염물질을 ‘제로화’할 수 없으며, 따라서 친환경적일 수 없다.”
“발전소 이름에 ‘그린’ ‘에코’ 등을 넣어 초미세먼지와 온실가스의 주요 원인인 석탄발전의 해악을 가리는 건 국민을 속이는 것이다.”
그린피스는 석탄발전사들의 허위·과장광고에 대해 지난해 9월 국민권익위원회와 국회에 문제를 제기했고, 현재 환경부가 환경피해 유발기관의 친환경 홍보를 규제하는 고시를 마련하고 있다.
국제 비영리기구(NGO)연합체인 유럽기후행동네트워크(CAN Europe)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기후변화이행지수(CCPI) 2018’ 보고서에서 한국을 60개국 중 최하위권인 58위로 평가했다. 한국 정부의 재생에너지 확대 목표는 긍정적이지만 여전히 온실가스 배출량과 에너지 수요관리가 부족해 실제 진전된 정책은 거의 없다는 이유에서다.
지난 2016년 11월에는 영국의 기후변화 전문언론 <클라이밋 홈>이 연구기관인 기후행동추적(Climate Action Tracker·CAT)의 분석 결과를 토대로 한국을 사우디아라비아, 호주, 뉴질랜드와 함께 ‘세계 4대 기후 악당(Climate Villain)’으로 지목했다. 석탄화력발전소 수출에 국책은행이 재정지원을 하고 있고, 1인당 온실가스 배출량의 증가속도가 가파르다는 등의 이유였다.
에너지와 교통 수요 줄이는 근본대책 미흡
정부의 미세먼지 대책에는 낡은 경유차를 줄이고 친환경차량 보급을 늘리는 정책도 들어 있다. 2005년말 이전 제작된 경유차를 폐차할 경우 정부와 지방자치단체에서 차량 무게에 따라 165만~770만원의 보조금을 지급한다. 노후경유차의 운행제한지역도 현재 수도권에서 2020년까지 충청, 동남(부산·울산 등), 광양만권(여수·순천·광양)까지 확대한다. 교통수요관리를 위해 ‘녹색교통진흥지역’을 지정해 노후경유차 진입을 억제하는 방안도 시행한다.
또 오는 2022년까지 오염물질을 적게 배출하는 하이브리드차(내연엔진과 전기배터리를 함께 쓰는 차), 수소차, 전기차 등 친환경차량을 총 200만대 보급하고 전기・수소차 충전소를 총 1만310기 확충하기로 했다. 친환경차량에는 보조금을 주고 오염물질 배출차량에는 부담금을 물리는 ‘친환경차협력금제도’도 2019년까지 관계부처 공동으로 마련하기로 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9.26 대책이 에너지와 교통 수요를 줄이려는 근본적인 대책 면에서 미흡하다고 지적했다. 조경두(55) 인천발전연구원 기후환경연구센터장은 “에너지 정책을 보면 소비 자체를 줄이겠다는 정책 얼개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말했다. 그는 민간에 전기차 보급을 늘리는 정책이 도리어 전력 수요를 늘려 대기오염과 온실가스 배출을 악화시킬 가능성은 없는지 면밀히 검토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북유럽이나 미국 서부지역처럼 재생에너지 의존도가 높은 지역에서는 전기차를 쓰는 게 맞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는 전력 대부분을 석탄과 원자력에 의존하고 있잖아요?
그런 상황에서 전기차를 구입하고 운행할 때 여러 가지 인센티브를 준다면 대중교통 이용하라고 인프라 투자한 것이 일정부분 도로아미타불이 되는 거잖아요. 에너지믹스에서 석탄 비중이 큰 상황이 해결되지 않는다면 전기차는 석탄화력발전소의 지속적인 수요처가 되는 거죠.”
조 센터장은 또 “국민 세금을 쓰는 기본적인 로직(논리)이 달라져야 한다”며 “도로를 적게 만들어야 자동차도 덜 이용한다”고 주장했다. 세계적인 도시들이 ‘도로 다이어트’를 하는 것도 그런 이유에서라는 것이다. 그는 또 대기오염 문제와 기후변화 대응에 수익자부담원칙을 적절히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자동차제조업체나 석탄화력발전소처럼 대기오염물질과 온실가스를 많이 배출할수록 수익을 얻는 쪽에서 비용을 더 부담하도록 제도를 설계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배출부과금 징수에 붙은 다양한 유예나 면제조건을 줄이고, 배출권 거래가격이 좀 더 현실적으로 상향 조정될 수 있도록 하는 등의 정책설계가 뒤따라야 실질적인 감축 노력을 이끌어낼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세걸(47) 서울환경운동연합 사무처장은 “미세먼지를 재난으로 인식했다면 더 강한 대책이 필요하다”며 “대선 기간에는 개인 경유차 퇴출까지 얘기했던 부분이 통째로 빠졌고, 현재 휘발유(리터당 745원)보다 싼 경유의 유류세(리터당 528원)를 올려 에너지의 상대가격을 조정하는 것에는 의지가 없어 보인다”고 비판했다. 그는 전기차에 필요한 전력의 45% 이상을 석탄이 공급하는 상황에서는 전체 차량 약 2천 2백만 대 중 전기차 비중을 높이는 것보다 차량 수를 줄이는 것이 더 근본적인 대책이라고 지적했다.
유럽은 2040년까지 휘발유·경유차량 퇴출 추진
유럽에선 기후변화 대응과 국민 건강 보호를 위해 석유차 퇴출이 추진되고 있다. 프랑스와 영국은 오는 2040년까지 휘발유와 경유 차량 판매를 전면 금지하겠다고 지난해 7월 선언했다. 현재 세계에서 전기차 보급률이 가장 높은 노르웨이는 2025년부터 100% 전기자동차와 플러그인하이브리드차(하이브리드차와 전기차의 중간단계)만 판매를 허용하기로 결정했다. 네덜란드 역시 2025년까지 휘발유와 경유차량의 판매를 금지하기로 했다.
유럽의 여러 도시에는 대기오염물질을 많이 배출하는 차량의 진입을 금지하거나 통행세를 물리는 ‘저배출구역(LEZ・Low Emission Zone)’도 늘어나고 있다. 벨기에, 독일, 네덜란드, 스웨덴, 영국, 덴마크, 이탈리아에서 시행 중이다. 이 중 가장 강력한 규제를 시행하고 있는 건 영국이다.
수도 런던의 경우 2008년 처음 저배출구역 제도가 도입됐으며 지금은 대다수 거리가 LEZ로 지정돼 있다. 24시간 거리 곳곳에서 카메라로 차량을 식별해, 운행금지대상 차량을 적발한다. 배출허용기준을 충족하지 못하는 차량은 사전에 ‘1일 통행료’를 미리 납부하거나 도로 사용 후 48시간 안에 내야 한다. 이를 어기고 운행하면 벌금을 내게 되며 차량이 클수록, 그리고 납부가 늦어질수록 금액이 커진다. 예를 들어 3.5t 이상의 화물차가 14일 이내 벌금을 내면 500파운드(약 72만원)지만 이 기간을 넘기면 1000파운드(약 144만원)를 내야 한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나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