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호동 상권은 2005년 전후로 발전했다. 먹자골목·로데오거리·아울렛거리와 백화점·마트, 골목가게와 시장이 공존한다. 천호동에선 신장개업한 점포와 폐업을 준비하는 점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 한 부동산 업자는 “무리하게 빚을 내 점포를 열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도 부지기수”라고 말한다.
경쟁도 심하다. 더 많은 손님을 잡고 높아지는 임대료를 부담하기 위해 상인들은 장시간 노동을 택했다. 인건비 부담을 덜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고용하기보다는 가족을 동원한다. 천호역 현대백화점 뒤편으로 가보면 3층 정도 되는 상가가 길게 뻗고, 상가건물 앞에는 노점상이 좌판을 깔았다. 일명 ‘깔세’라 불리는 노점상이다.
깔세는 건물 세입자 점포 앞에서 단기 임대를 내 장사를 하는 방식이다. 보증금이나 권리금을 건물주에게 내지 않고 건물을 임대한 세입자에게 월세를 지불한다. 권리금이나 보증금과 같이 목돈이 없어도 장사할 수 있긴 하지만 월세는 조금 비싸다. 깔세 노점상은 점포 세입자의 권리금과 보증금의 1%를 매달 월세로 지불한다.
서원배(52) 씨는 월세 150만 원짜리 깔세로 5평 남짓한 와플 노점을 운영한다. 서 씨는 호텔 식당에서 일하다 그만두고, 요식업체를 전전하다 와플 노점을 열었다. 일하는 시간은 오전 10시부터 밤 11시까지. 여기에 재료 준비 시간을 더하면 총 15시간이다.
서 씨는 “임금근로자가 아무리 힘들다 해도 자영업자와 비교하면 천국”이라며 “자영업은 소규모나 대규모나 직장생활 두세 배를 일해야 살 수 있다”라고 말한다. 설이나 추석 빼고는 매일매일 좌판을 벌인다. 주력상품인 벨기에 와플은 개당 1,000원이다. 일반 점포에서 2,000원에 파는 상품이다. 1,000원짜리 와플로 수지를 맞추려면 일반 점포보다 배는 더 팔아야 한다.
천호시장 입구에서 2년째 국수가게를 운영하는 안숙자(54) 씨도 장시간 노동과 가족노동을 택했다. 안 씨는 아침 8시부터 밤 11시~12시까지 일한다. 휴일은 따로 없다. 쉬는 시간은 손님 없을 때 5분에서 10분 정도다. 일이 버겁지만 사람을 사서 쓰기도 어렵다. 일당이 버겁다. 퇴직한 남편도 가게로 출근해 일을 돕는다.
안 씨는 남편 몰래 일을 시작했다. 남편이 직장을 잃자 생계를 위해 국수가게를 연 가정주부였다. 부부가 함께 일을 하지만, 벌이는 시원찮다. 월수입이 남편 퇴직 전 월급 절반이다. 안 씨 남편은 “자영업자들이 말을 안 해서 그렇지 IMF 때보다 힘들다”라고 말한다.
편의점 점주 이 씨(64)는 아르바이트를 쓰지 않는다. 아들과 2교대로 일하는 이 씨는 매일 새벽 4시 반에 출근해 오후 4시까지 일한다. 식사시간, 휴식시간, 휴가도 따로 없다. 60이 넘은 나이에 버거운 일이지만 이 씨는 직접 일을 한다.
아르바이트는 일을 하지 않아요. 하루 매출이 60만 원 가까이 준다니까. 청소도 안 하고 돈도 비고, 도둑질하는 사람도 있었어요. 인건비도 버거운데 매출도 줄어요. 결국 내가 직접 합니다.
이 씨는 편의점에서 파는 즉석식품으로 식사를 해결한다. 잠은 하루에 5~6시간밖에 자지 못한다. 먹는 게 부실하고 잠자는 시간도 없으니 몸은 힘들다. 이 씨는 보약을 지어 먹으며 버틴다.
자영업자들은 최저임금에 박했다. 사람들 수입이 늘면 더 많이 사지 않겠냐는 질문에는 “나가는 돈은 확실한데, 들어올 돈은 불확실하다”라는 답이 돌아왔다. 돈을 쥔 사람들이 자신의 가게로 들어온다는 확신이 없어서다. 이들에게 있어 최선은 경기부양이다. 경기가 좋아져 사람들 씀씀이가 커지기만 기다린다.
그러나 몇 년째 체감 경기는 좋아지지 않았다. 총선 때 투표했냐는 질문에 편의점 점주 이 씨는 고개를 저었다. 투표하러 갈 시간에 하나라도 더 파는 게 이득이란 이유였다. 하루에 12시간 넘게 일을 하니 가족과 이야기할 시간도 적다. 국수가게 안 씨는 딸과 아들이 있지만 연락하기 쉽지 않다. 가족이 각자 알아서 사는 형편이다. 가족에게 신경을 쓰지 못하다 보니 친구와 주변 이웃에게도 관심이 옅어진다.
편의점 점주 이 씨는 이웃 상인과 친하냐는 질문에 고개만 저었다. 현재 인간관계는 오직 가족, 그리고 같은 프랜차이즈 점주와의 네트워크만 있다고 말한다. 와플 노점 서 씨는 “자영업자는 다 포기해야 한다”라는 말로 자영업자의 ‘관계’를 설명한다. 가족과 여유 있게 식사를 하거나 친구를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단 의미다.
이웃 상인과 오해가 생긴 상인도 있다. 상권을 지나는 소비자는 늘지 않는데 경쟁자만 늘어나니 서로가 박해졌다. 옷 가게를 운영하는 40대 김 씨는 “유독 ‘깔세’ 매장이 많이 들어서 문제”라며 “한, 두 달 짧게 세를 내고 장사해가는 사람들이라 질 나쁜 상품을 대량으로 싸게 판다”라고 말한다. 깔세 상인에게 손님을 뺏긴다는 푸념이다.
IT 회사에 다니다 프랜차이즈 샌드위치 가게 오픈을 준비 중인 박 씨(55)는 기대와 우려가 뒤섞인 표정이었다. 박 씨는 “잘 돼도 걱정, 안 돼도 걱정”이라며 “장사가 잘되면 다른 자영업자도 이곳에 같은 가게를 열지 않을까”라고 말한다. 이들에게 있어 옆집 상인은 같은 골목에서 장사하는 이웃이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잠재적 경쟁자였다.
치킨게임에서 벗어나지 못하는 자영업자들
두 운전자가 서로 정면충돌하는 코스로 마주 보고 달려온다. 먼저 피하는 사람에게는 겁쟁이란 뜻의 ‘Chicken’이란 멸칭이 붙는다. 1950년대 미국에서 유행하던 ‘치킨게임’이다. 현재 자영업 현장에서도 치킨게임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나 미국의 그것과는 다르다.
자영업 치킨게임 참여자는 자신의 배포와 호기를 증명하기 위해 이 판에 뛰어드는 것이 아니다. 먹고살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선택이다. 경기도 성남에서 호프집을 하는 40대 이 씨는 “저 업종이 잘 된다니 내가 해도 잘 되리라는 믿음이 있는 거 같다”라고 자영업 치킨게임을 묘사했다.
2016년 들어선 여기에 새로운 게임 참여자가 들어왔다. 명예퇴직이나 정년을 맞이한 베이비부머 세대다. 신촌에서 대폿집을 운영하는 한 씨(63)는 본래 외국계 기업을 다니던 직장인이었다. 한 씨는 “100세 시대라는데 아직 30년은 더 살아야 한다”라며 “물가는 오르고, 자녀 부양도 해야 해서 가게를 인수했다”라고 말했다.
재취업을 하자니 뽑아주는 회사가 없다. 경기 불황으로 고용도 적은 데다, 직업 재교육도 쉽지 않다. 인건비 부담 탓에 아르바이트를 고용도 버겁다. 경기 침체가 시작된 2000년대 후반, 소규모 부부창업이 인기를 끈 것도 이 때문이다. 편의점은 부부가 2교대로, 음식점은 부부가 홀서빙과 부엌일을 나눠 맡는 방식이다.
골목상권으로 들어오는 대형 프랜차이즈와 대기업도 자영업자에겐 큰 걸림돌이다. 호프집 사장 이 씨는 “프랜차이즈와 대기업도 골목으로 들어오는데 TV에서 대놓고 홍보해주는 식당도 골목에 들어온다”라며 “우리 가게가 경쟁할 수가 없다”라고 한숨을 쉬었다. 자본과 기술, 노하우, 홍보에서도 밀리는 영세 자영업자가 택하는 길은 ‘노오력’이다. 남들보다 일찍 출근하고, 늦게 퇴근한다.
신촌에서 닭 요릿집을 하는 박종운(62세) 씨는 또 다른 고민이 생겼다. 공기업을 다니던 그는 금융위기가 불어닥친 2008년 명예퇴직을 택하고 퇴직금으로 가게를 열었다. 삼계탕집, 횟집에 이어 이번이 세 번째 가게다. 유력한 경제지에서 창업 모범 케이스라고 소개하기까지 했다. 부인과 함께 출퇴근하며 부지런히 일한 보상이었다.
그런데 2015년, 구청에서 그의 점포가 있는 토지에 호텔 설립 인가를 냈다. 건물주는 상가를 매물로 내놨다. 박 씨는 건물주와 만나 이야기를 하고 싶지만 해외에 있는 건물주를 만날 수는 없다. 오로지 변호사와 이야기하라는 전언만 올 뿐이다. 그는 말한다.
얼마 전 친구가 연락이 왔어요. 가게 시작하고 나서 손에 꼽는 친구 연락이라 반갑게 받았는데요. 은퇴를 앞두고 장사를 시작하고 싶은데 저한테 물어보고 싶다고 연락한 거예요. 그래서 한마디 했죠. 건물주에게 니 돈 다 먹힌다고.
자영업자 양산 그리고 폐업
자영업자는 점점 줄고 있다.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쓸고 간 후 한국 자영업자는 580만 여 명까지 치솟다 2012년부터 줄었다. 2016년 5월 22일 통계청이 발표한 ‘4월 고용동향’에 따르면 비임금 근로자 중 자영업자 규모는 555만 1,000명으로 전년 대비 10만 5,000명이 감소했다. 그러나 아직도 자영업자 비율은 상대적으로 높다. 2017년 5월 25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행한 ‘OECD 팩트북 2015~2016’을 보면 2014년 기준 한국 자영업자 비율은 26.8%다. OECD가 조사한 36개국 중 5번째다.
자영업자에게 더 큰 문제는 ‘대출’이다. 자영업자는 줄었지만 대출금액은 늘었다. 2016년 5월 31일 금융감독원 발표에 따르면 4월 한 달에만 국내은행 자영업자 대출은 2조 3,000억 원이 늘었다. 전체 기업 대출 증가 폭(5조8,000억 원)의 39.6%다. 빚을 내 창업한 자영업자가 불경기에 장사가 잘 되지 않자 또 빚을 내 점포를 근근이 굴리고 있다는 의미다.
베이비부머 세대가 자영업으로 넘어온다. 이들은 명예퇴직금 만으로 30년을 먹고살아야 한다. 재취업은 어렵다. 잘 된다는 요식업을 하자니 조리기술이나 장비가 부족하다. 이 탓에 은퇴한 자영업자는 보통 운영이 쉬운 프랜차이즈를 택한다. 본사에서 조리법과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니 창업할 수 있다는 믿음이 생겨서다.
하지만 그만큼 망하는 사람도 많다. 신촌 대폿집 사장 한 씨(65)는 “7년 전과 비교했을 때, 신촌 상권의 90% 정도가 주인이 바뀌었고, 주인이 바뀌는 주기는 점점 짧아지고 있다”라며 “‘잘 된다’란 광고만 믿고 프랜차이즈 가게를 여는 사람이 상당수다”라고 말했다. 분당에서 호프집을 하는 이 씨는 “상권조사와 현장조사, 가게 운영 준비 없이 ‘월 ○○○만 원 수익보장’이란 프랜차이즈 가맹문의만 보고 가게를 연 은퇴자도 많다”라고 말했다.
준비가 덜 된 만큼 폐업하는 자영업자의 수도 증가하고 있다. 2015년 현대경제연구원이 펴낸 「자영업자 진입·퇴출 추계와 특징」 보고서에 따르면 2013년 자영업 퇴출자(65만 6,000명)는 진입자(58만 2,000명)를 초과했다. KB금융지수경영연구소는 2015년 1월에 펴낸 「국내 자영업자 현황과 업종별 생멸통계」에서 “장기적으로 봤을 때, 자영업자는 OECD 평균인 16.1% 수준으로 떨어질 것”이라고 추정했다. 자영업자가 국내 소비자 구매력보다 과다하단 분석이다.
한국은행에 따르면 2015년 말 기준 국내 은행 자영업자 대출 규모는 239조 3,000억 원이다. 저축은행이나 대부 업체 등 제2금융권 대출까지 합하면 2016년 6월 말 기준으로 519원 5,000억 원이다. 수익보다 갚아야 할 이자가 크다면 자영업자는 문을 닫을 수밖에 없다. 폐업하는 자영업자를 복지로 떠안아주기엔 600조 원 적자인 국가 재정 상황이 녹록지 않다. 그렇다고 각 가정에서 받아들이기도 가계부채 1,200조 원이 걸린다. 이런 상황에서 은퇴한 인구는 점점 늘어나고 자영업에 몰리는 인구 역시 늘어나고 있다.
『한계 가족』을 펴낸 김광수경제연구소의 서성민 연구이사는 자영업자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근본적인 대책을 주문한다. 그는 정부가 내놓은 자영업자에게 대출을 쉽게 해주거나 특별 상권 지역 지정 대책이 오히려 자영업자를 양산한다고 지적했다. 중장년을 자영업자로 내모는 시스템부터 바꿔야 한다는 주장이다. 또한 “중장년 인구가 자영업에 몰리지 않게 좋은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야 하고, 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주체는 당연히 기업”이라고 말한다. 기업이 혁신과 투자를 계속해야 좋은 일자리가 나온다는 이야기다.
불경기가 계속되면서 양질의 일자리는 줄어든다. 손쉽게 시세차익을 얻을 수 있는 부동산 투기에 집중하거나 골목상권 서비스업에 진출한 기업을 찾기가 쉬워졌다. 일자리가 없으니 돈 벌 길이 없는 가계는 무리하게 재테크, 부동산 투기에 참여했다. 결국 이는 감당하기 어려운 부채로 돌아와 만성적인 내수 침체를 일으켰다.
서 이사는 “일자리 시작은 교육, 일자리가 끝나는 지점은 복지”라며 “복지 부담도 결국 양질의 일자리를 많이 만들어내는 것으로 해결할 수밖에 없다”라고 주장한다. 고령화가 이미 진행된 선진국 역시 복지 부담 증가와 세수 감소로 정부 재정적자가 점차 심각해지고 있다. 한국 역시 중장년에게 양질의 일자리를 제공하거나 이들을 대상으로 한 실버산업을 육성하는 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김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