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관계보다 공부에 시간을 투자하는 게 씁쓸해요.”
10대 청소년에게 인간관계는 입시를 위해 희생해야 하는 가치이다. <단비뉴스> 취재팀은 지난 7월 2일부터 이틀간 초등학교 5학년부터 고등학교 3학년까지 10대 신청자 13명을 대상으로 심층 인터뷰를 진행했다.
부모님, 친구, 선생님과의 관계를 중심으로 ‘내가 상상하는 하루’를 그려보았다. 문답은 소셜픽션 방식으로 ‘학교 성적이 대학입학에 반영되지 않고 부모님이 반대하지 않으며 돈/시간이 모자라지 않는다’고 가정한 상상이다.
친구와 수다 떨고 가족과 맛있는 저녁 한 끼
10대 쳥소년이 주변 관계에서 바라는 것은 식사, 수다 등 소소한 일상이다. 친구와 코인 노래방에 가서 노래를 부르거나 카페에서 맛있는 것을 먹는다.
친구와 보내는 시간은 하루 평균 3시간. 서로에 대한 솔직한 속마음이나 진로에 관한 이야기를 나눈다. 학교에서는 일주일에 한 번씩 동아리가 있다. 같은 꿈과 취미를 가진 친구들과 요리, 운동, 악기 등을 주제로 동아리 활동을 한다.
집으로 돌아온 뒤 일정은 가족과 함께하는 저녁 식사와 영화감상. 저녁 6시쯤 부모님과 함께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기 시작한다. 날씨 좋은 날에는 캠핑에 온 것처럼 소시지를 구워 먹기도 한다. 식사가 끝난 뒤 새로 개봉한 영화를 보기 위해 영화관을 찾는다. 함께 본 영화는 가족들의 대화 소재가 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소에 따르면 15~24세 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 학습시간은 33.9시간이지만 한국 고2 학생은 70.1시간으로 두 배가 넘는 시간을 공부로 보낸다. 가족, 친구들과 보내야 할 시간은 야간자율학습이나 학원 가는 시간으로 대체된다. 한국청소년정책연구소 김기헌 연구위원이 진행한 ‘2010 한국청소년 핵심역량진단조사’는 입시에 갇힌 청소년의 삶은 관계에 투자할 시간과 기회가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
조사에 따르면 ‘나의 고민에 대해 부모님과 대화하는 빈도’는 ‘거의 하지 않는다’가 46.3%로 가장 높았고 ‘일주일에 1~2회’가 33.5%, ‘일주일에 3~4회’가 11.8%로 뒤따랐다. 부모와 함께 하는 저녁 식사에 대해서는 ‘일주일에 1~2회’가 30.7%로 가장 높았고 ‘매일’이 25.7%, ‘일주일에 3~4회’가 17.2%로 나타났다.
부모와의 대화는 양적으로도 부족하지만 질적으로도 모자라다. 부모에게서 자주 듣는 말은 ‘정리해라’, ‘(공부) 다 했니?’ 등이지만 듣고 싶은 말은 ‘믿는다’, ‘수고했어’, ‘놀아라’ 등이 많았다.
국·영·수 중심의 입시를 벗어나 단체 활동을 하는 경우도 드물었다. 부모와 함께 여가 활동을 하느냐는 질문에 ‘일주일에 1~2회’가 37.8%, ‘거의 하지 않는다’가 37.6%로 비슷했으며 ‘일주일에 3~4회’가 14.8%로 나타났다. 지난 1년간 문화 교육 또는 취미단체 그룹 및 단체 활동 참여 여부에 대해 ‘아니오’라는 응답이 66.3%로 ‘예’라는 대답 30.7%의 두 배에 달했다.
위로되는 연애를 하고 싶어요
“남자친구를 만나면 마음이 싱숭생숭해져서 공부에 집중을 못 해요. 그래서 고백을 받아도 순간의 기쁨으로 넘어가고 사귀진 않고 있어요.”
인터뷰에 참여한 이아무개(19)씨는 연애를 긍정적으로 생각하지만 지금 당장은 할 수 없는 것이라 답했다. 남자친구가 생기면 주말에 데이트하고 평일에 공원 산책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하지만 입시를 준비하는 지금 상황에선 시간을 전혀 낼 수 없다. 다른 참가자들이 연애에 대해 가지고 있는 생각은 비슷했다.
평일에는 수다를 떨거나 산책을 하고 주말에는 종일 시간을 내서 영화를 보거나 맛있는 것을 먹는다. 연애에 대한 생각으로 ‘처음 사귈 때는 친구들에게 자랑할 수 있어서 좋았다’, ‘지내다 보니 같이 놀면 재미도 있고 의지가 된다’, ‘힘든 일이 있을 때 많은 위로가 된다’ 등이 있었다.
청소년 관계단절은 사회적 손실
한국 청소년의 과도한 입시 부담은 세계화의 흐름과 역행한다. OECD는 1997년부터 2003년까지 개인의 창의성이나 자기 주도성을 강조하며 교과 중심의 교육을 넘어 소통, 협상 등을 강조한 DeSeCo(Definition and Selection of Competencies) 프로젝트를 진행했다.
PISA, ALL, ICCS 2009 등 국제비교 자료에 나타난 한국 청소년의 사회적 상호작용 역량 수준은 비교 대상 36개국 중 35위이다. 이는 관계지향성, 사회적협력, 갈등관리를 계량화한 수치로 비교 대상 국가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준인 지적도구활용 역량 수준과는 정반대의 결과를 보였다.
임종화 좋은교사운동 공동대표는 “2~30년 전 학생들은 놀이터 등에서 시간을 보내며 자유로운 관계 맺기와 갈등을 경험했지만 요즘 10대들은 과도한 학습시간으로 이를 경험할 시간이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정작 학생 본인은 관계에 어려움이 없다고 생각하지만 현직 교사들은 예전보다 학생들을 상대하는 것이 더 어려워지고 있다. 왕따와 학교폭력이 느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임 대표는 최근 한 학기 동안 시험을 치지 않고 진로 탐색의 시간을 갖는 ‘자유학기제’의 도입이 중요한 시작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여행 등 다양한 경험을 하며 심심해하는 시간을 갖는 것이 중요”하다며 “경쟁을 목표로 혼자 공부하는 시간이 많은 학생에게 (다양한 경험은) 관계 맺기를 배우는 시간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를 예로 들며 “고등학교 입학 전 기존 교과목에서 벗어나 1년간 다양한 체험을 하고 진로를 탐색하는 자유학교에서 보듯이 ‘쉼이 있는 교육’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원문: 단비뉴스 / 필자: 김민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