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늘 이별을 한다.
삶은 어쩌면 이별이 가득 써진 슬픈 이야기집과 같다. 누군가에게 정을 붙이고, 그 정이 이제는 더 이상 효력이 없다는 것을 느끼는 순간의 상실감은 그 어느 다른 고통에 비할 바 없이 아프다. 애초에 혼자였다면 느끼지 못할 아픔이었을 텐데, 애초에 당신을 만나지 말았어야 할 텐데하는 후회도 밀려온다.
이별은 슬프다.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일상이 더 이상 당연해지지 않을 때, 밀려 들어오는 공허함은 왠지 모르게 너무나도 쓸쓸하고, 그리움에 잡아 보는 그의 손이 더 이상 나를 바라지 않는다는 상실감은 버티기 어렵다. 하지만 이별이라는 과정은 지극한 삶의 순리이며, 우리는 이 따가운 삶의 순리를 통해, 조금씩 더 배우면서 성장하게 된다.
그렇다면, 이별은 우리를 어떻게 성장시키는가.
이별은 무뎌지는 법을 가르쳐 준다
누구나 슬픔을 가지고 싶어 하지 않아 한다. 고통스러운 하루하루를 감내해야 하는 슬픔의 감정은 누구에게나 찾아오지만, 누구든 찾고 싶지 않은 감정이다. 하지만, 슬픔이라는 감정은 우리에게 참 많은 것을 준다.
슬픔은 부정적인 감정이다. 정상적인 사람의 상황에서 벗어나 사람을 무기력하게 만드는 감정이다. 하지만 중요한 것은, 이별이 주는 슬픔의 과정은 당신이 아픔을 무뎌지게 할 수 있는 방법을 알려 준다는 것이다.
누군가 이별을 했을 때, 누군가는 담담하게 길을 걸어갈 것이고, 누군가는 엉엉 울며 그 사람의 이름을 부르고, 또 다른 누군가는 다른 사람을 만나러 가기도 한다. 그들의 방식이 어떤 것은 옳고, 어떤 것은 그르다는 것이 절대로 아니다. 우리가 이별의 순간에서 저러한 행동을 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슬픔이라는 무기력한 감정을 무뎌지게 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이다.
당신이 이별을 했을 때, 언제까지고 이별의 아픔을 심도 깊게 담아낼 수는 없다. 언젠가는 아무 일 없듯 훌훌 털어놓아야 할 순간이 분명 찾아온다. 이별은 당신에게 무뎌지는 방법을 알려 준다. 당신의 방법이 어떻든, 이별은 당신이 슬픔의 순간에서 어떻게 벗어날 수 있을지에 대한 방법을 알 수 있게 해 준다.
슬픔에 대한 회복 탄력성
결국, 이별은 부정적인 감정에 대한 탄력성을 길러 줄 수 있는 ‘살아 있는 선생’ 이다. 물론 그 선생님이 내게 버티기 힘든 아픔을 선사한다는 것이 문제라면 문제가 될 수 있긴 하지만.
무기력하고 아픈 감정을 극복한다는 것은 무엇보다 중요하다. 아픔에서 빠르게 빠져나올수록, 온전하게 자신의 삶을 멋지게 살아갈 수 있기 때문이다. 누군가와 이별을 해도, 삶은 현재진행형이다. 내 삶이 잠시 무너졌지만 더 이상 무너지지 않도록 하기 위해 더욱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 한다. 사실 가장 좋은 스승은 내게 아픔을 주는 스승이다.
당신이 ‘담담해진다’는 것은, 물론 ‘담담한 척’을 하며 실제로는 슬픔에 빠지는 경우도 있겠지만, 슬픔에 대해 담담하다는 것은 무기력의 기운을 온전히 받아들이지 않고 그것을 다시 일어서기 위한 힘으로 산다는 것이다. 즉, 이별에 익숙해지는 것이 아니라 이별이 주는 아픔을 이겨낼 수 있는 회복 탄력성이 있다는 것이 아닐까.
이별을 이겨내라
이별은 아프다. 하지만 이별은 이겨내야 할 인생의 수많은 관문 중 하나이며, 당신은 그 관문을 멋지게 통과할 수 있다. 시간이 약이지만, 단순히 시간뿐만 아니라 이별을 이겨내는 나만의 방법을 생각하자. 당신이 만약 이별의 아픔을 이겨낸다면, 당신은 어제보다 오늘 더 성장하는 사람이 되어 있을 것이다.
원문: 고석균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