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뮤니티 덕후의 탄생
아마도 우리는 유사 이래 가장 외로운 세대일 것이다. 초고속 인터넷 덕분에 그 어느 세대보다 연결되었지만 동시에 가장 파편화된 세대라고 느끼는 것은 나만의 생각일까? 높은 자살률을 들먹이지 않아도 다들 암묵적으로 동의할 것이다.
그 누구보다 열심히 페이스북을, 인스타그램을 이용하지만, 그래서 페북 친구가 수천 명이지만 막상 맘 편하게 전화할 사람은 단 한 명 없는 그런 날이 있었다. 그날 밤 서러워서 엉엉 울면서 다시는 이런 삶을 살지 않겠다고 굳게 다짐했다.
일단 떠났다
흔한 퇴사 후 세계 여행일 수도, 탈조선일 수도 있겠다. 남들은 디지털 노마드라고 부르기도 하고 n잡러라고도 했지만 난 그냥 사람이 겁내 그리운, 외로운 사람이었다. 혼자 둥둥 떠다니니까 얼마나 사무치게 외로웠겠냐. 돌아다니다 보니 나만 그런 건 아니더라.
밀레니얼 세대라고 부르는 전 세계의 그들은 노란 머리, 까만 머리 할 것 없이 다들 외로워서 같이 일하고(코워킹), 같이 배우며 휴식을 취하고(리트릿), 농사짓고(파머컬처), 심지어 같이 살기 시작(코리빙)했다. 나 또한 질세라 태국, 베트남, 모로코, 독일, 발리를 쏘다니며 농장에서 살고, 코워킹에서 일하고, 밋업에 나가고, 요가 리트릿에 기웃거렸다. 마침내 코리빙 하우스까지 차렸다.
사람이 최고의 학교였다. 사람이 최고의 관광지였다. 유적지? 미술관? 박물관? 쇼핑몰? 럭셔리 리조트? 힙하다는 클럽? 물론 초반에는 흥미로울 수 있다. 그러나 이도 순식간이다. 어느 순간 그게 그거고, 다 똑같아 보이더라. 그러나 반대로 커뮤니티, 공동체, 마을, 농장, 밋업에 가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만큼 재밌는 것이 없었다. 그들과의 대화가 놀랍고, 신기하고, 흥미로웠다.
동네 사람들이 학교고 박물관이고 클럽이었다. 그렇게 마음이 헛헛하던 나는 커뮤니티를 찾아가고 머물면서 생각했다. 왜 아직도 마음이 허전할까? 나의 집은 어디일까? 나의 커뮤니티는 어디인가? 나의 종족을 찾고 싶다. 즉 이 시리즈는 커뮤니티 덕후의 탐방기이다.
- 어쩌다 나는 커뮤니티 덕후가 되었나
-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공동체 ‘오로빌’에 가보자
- 태국 생태농장에서 한 달 동안 살아보자
- 디지털 노마드의 코워킹은 뭐가 달라?
- 커뮤니티 천국이라는 베를린에 가보자
- 발리 요가 리트릿 다녀올게
- 치앙마이 코리빙 하우스를 시작했다
- 가족의 탄생
- 그래서 도대체 커뮤니티는 무엇인가
- ‘왜’ 커뮤니티 덕후가 되었나
이는 동시에 실패의 기록이다
왜냐고? 질문 자체가 잘못되었기 때문이다. 나는 “어디에 있는” “어떤” 커뮤니티를 가야 할지 고민하느라 바빴다. 끊임없이 검색하며 국가별, 종류별 커뮤니티 리스트를 만들었다. 그리고 그렇게 방문을 하면 할수록 점점 기운이 빠졌다. 마음이 헛헛해졌다.
질문 자체가 잘못된 것이었다. “어떻게”를 질문하기 전에, “무엇이” 커뮤니티인지 질문했어야 했다. 결정적으로 “왜” 내가 커뮤니티 덕후가 되었는지 그 이유부터 진지하게 고민해야 했다. 온 세계를 쑤시고 다니고, 코리빙 하우스를 차린 후 마침내 그 이유를 깨닫게 되었지만 말이다.
이전의 질문이
- “어떤” 종류의 커뮤니티가 있는 걸까?
- “어디에” 있는 어느 커뮤니티를 가야 할까?
였다면, 이후의 질문은 아래와 같다.
- 커뮤니티는 도대체 “무엇”인 거지?
- 도대체 “왜” 나는 커뮤니티를 찾아다닌 걸까?
위의 핵심 질문에 나만의 답 없이는 결국 쳇바퀴의 연속이더라. 그래서 그 답이 뭐냐고? 그건 다 읽어보면 나온다. 그러니 시리즈를 끝까지 읽어보시기 바란다.
무언가를 얻으면 무언가를 잃습니다. 기계와 접속될수록 자연과 끊어집니다. 익명과 소통할수록 내 곁의 사람과는 경색됩니다. 기계가 자율 할수록 인간은 퇴화합니다. 가상이 현실이 될수록 현실은 가상이 됩니다. 사물과 연결될수록 나의 순수한 인간 능력과 주체성은 시들어갑니다. 우리는 무엇을 얻을 것이고 무엇을 잃게 되는 걸까요. 4차 산업혁명 가운데서, 인간의 날들은 어디로 갈까요.
- 박노해 시인
덕후가 세상을 바꿀 거다. 사람 냄새 폴폴 풍기는, 커뮤니티 덕후는 더더욱.
원문: Lynn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