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The Guardian의 「What’s next for the women’s movement?」를 번역한 글입니다.
여성 행진(Women’s March) 성공 후 15명의 영향력 있는 여성이 모였습니다. 그들은 평등을 향한 운동의 다음 단계를 이야기했습니다.
리나 던햄
- 미국의 배우, 감독, 작가 겸 제작자
“행동하세요.”
오늘날의 사회 운동과 조직화를 보면 시위에 참여하는 것, 지역구 의원 사무실에 전화하는 것, 지역사회 단체에 가입하고, 매달 입금으로 연대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나의 돈과 시간을 투자하고, 직접 현장에 나타나 목소리를 내는 것이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는 말입니다.
얼마 전 열린 여성 행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 가운데는 타당한 이야기도 많았지만, 여성 행진이 전 세계에서 열린 대규모 집회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많은 사람이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기 위해 기꺼이 생업을 내려놓고 직접 현장에 나타나 공간을 채워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당장 우리가 원하는 결과를 얻지 못하는 듯해도 정부에게 경고의 뜻을 전한 것입니다. 상대를 두렵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바로 이런 행동력입니다. 여성은 물론 평등을 지지하는 모든 동맹군들에 맞서는 어려운 싸움이 될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 것입니다.
니콜라 스터전
- 스코틀랜드 자치정부 수반
“우수한 육아 지원 정책이 우선입니다.”
성 평등을 보장하기 위한 법안들이 생겨난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많은 분야에서 격차가 여전한 현실은 우리에게 좌절을 안겨줍니다. 스코틀랜드 정부는 평등을 중시하여 성별 균형을 고려한 내각을 구성했지만, 선진국에서조차 이런 사례가 충분치 않습니다. 성별 격차를 줄일 구체적인 정책 분야를 하나만 꼽자면, 다름 아닌 육아 정책입니다. 고품질의 육아 지원을 최대한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이야말로 여권 신장을 통한 성 평등 실현을 이룰 근본적인 방법입니다.
일하면서 가정도 돌봐야 하는 것은 많은 여성의 커리어에 가장 큰 장애물입니다. 육아 지원을 충분히 받을 수 없기 때문에 커리어를 포기하는 여성이 많습니다. 저렴하고도 질 높은 보육 지원을 많은 사람에게 제공하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성별에 관계없이 모두가 기회의 평등을 누릴 수 있는 사회를 만들기 위해서는 반드시 선결해야 할 과제입니다.
나히드 파리드
- 2010년, 27세의 나이로 아프가니스탄 의회에 입성한 정치인
“여성에게 경제권을, 경제 성장은 아래로부터.”
저는 여성으로 살아가기가 가장 어려운 국가로 알려진 아프가니스탄의 여성 정치인입니다. 이곳에서는 많은 여성이 폭력에 시달리고 교육 및 보건 같은 가장 기본적인 권리도 누리지 못합니다. 우리는 시민사회, 교육, 민주주의 등에 투자하며 다양한 시도를 했지만 불행히도 큰 변화는 없었습니다.
저는 아프간, 나아가 세계 어디에서라도 여성의 권리와 성 평등을 진전시키기 위해서는 여성이 생산 과정에 참여해 경제권을 얻는 것이 우선이라는 결론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경제 정책 역시 지금처럼 ‘위로부터’가 아닌 ‘아래로부터’에 초점을 두어야 합니다. 여성이 발전의 정치, 경제, 사회적 측면에 모두 참여할 수 있어야 합니다.
놈보니소 가사
- 토지, 정치, 젠더, 문화 이슈에 집중하는 남아공의 연구자 겸 작가
“여성혐오적 지도자들에 맞서 투쟁합시다.”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도널드 트럼프와 멜라니아 트럼프 간의 바디랭귀지를 보고 저는 2009년 남아공 대통령 취임식을 떠올렸습니다. 아내가 사이즈 큰 구두를 신고 종종걸음을 걷는 동안 트럼프는 뒤도 돌아보지 않았죠. 그녀가 넘어졌어도 아마 알아채지 못했을 겁니다.
많은 사람이 이미 제이콥 주마 대통령과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공통점으로 사법부, 언론, 헌법에 대한 무시를 꼽았지만 큰 공통점이 하나 더 있습니다. 공공연하게 여성을 비하한다는 점입니다. “유명해지면 여성들이 마구 달려든다”고 말한 트럼프의 영상을 보니 주마 대통령이 강간 혐의를 받았을 때 했던 말이 떠오르더군요. “내가 인기가 많은데 왜 강간을 하겠는가?”라고 말했죠.
주마 대통령은 트럼프를 부러워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의 소속 정당인 아프리카민족회의에는 여성에게 몸과 생식에 대한 권리를 부여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뒤집을 만큼의 정치력이 없으니까요. 이런 종류의 남성들에게 맞서려면 지속 가능한 투쟁 계획이 필요합니다. 이들의 기만적인 내러티브를 조심스럽게 깨뜨려가야 합니다.
로라 베이츠
- 칼럼니스트, ‘일상의 성차별주의 프로젝트(Everyday Sexism Project)’ 설립자
“제대로 된 성교육이 필요합니다.”
지난 10년간 활동가, 교사, 학부모, 학생들은 한목소리로 성과 관계에 대한 교육(sex and relations education, SRE)을 정규 과목으로 설치하자고 주장해왔습니다. 성관계에 있어 동의의 의미와 건강한 관계, 포르노, 젠더 선입견, LGBT 인권 문제 등을 다루는 과정이죠. 현재 영국에서는 15세 전에 생식의 생물학적인 면에 대해서 배우는 것만 의무 교육 과정에 포함합니다.
포괄적인 SRE을 도입하면 이미 성적 학대를 경험하고 있는 아동, 청소년들을 보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사회 전체의 성범죄 관련 현상도 달라질 수 있습니다. 연간 8만 5,000명의 여성이 강간 피해자가 되고 매주 두 명의 여성이 과거 또는 현재의 파트너 손에 죽어 나가는 잉글랜드와 웨일스에서 성범죄는 매우 심각한 문제입니다.
오늘날 아동 및 청소년이 섹스팅과 포르노로부터 어마어마한 영향을 받는다는 사실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길을 찾도록 지도 보는 법을 가르치고 가게에서 물건을 사고 거스름돈을 잘 받도록 산수를 가르치면서 대부분의 학생이 영위할 성생활에 관해서는 거의 아무것도 가르치지 않는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습니다. 제대로 된 성교육은 사회 전체를 위하는 길입니다.
앤-마리 이마피돈
- 대영제국 훈장을 받은 컴퓨터/수학 신동
“이공계에 종사하는 여성들을 TV에서 더 많이 보여줘야 합니다.”
저는 어렸을 때부터 TV를 많이 보는 편이었습니다. 특히 제가 살던 런던 동부를 배경으로 한 드라마 〈이스트엔더스〉를 즐겨 보았습니다. 드라마가 현실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지는 않지만, 시대의 변화를 반영하기는 하죠. 어느새 등장인물들이 모두 휴대폰을 사용하고, 신기술이 스토리에 녹아 들어가기도 하니까요.
저는 TV에 등장하는 여성들의 진로도 성 평등 투쟁 전선의 중요한 이슈라고 생각합니다. TV가 늘 그려내는 구태의연한 이공계 종사자들 대신 다니던 직장을 그만두고 테크 스타트업으로 이직하는 여성, 퇴근 후 코딩 수업을 듣다가 만난 사람과 사랑에 빠지는 여성이 등장하면 어떨까요? 할리우드가 〈히든 피겨스〉 같은 영화를 만들기 시작했듯 TV 업계도 달라져야 합니다.
리 마이치
- 버스와 지하철의 성범죄에 항의하는 시위를 조직했다가 1달 이상 구금되었던 중국의 여성운동가
“여성을 침묵시키는 세력에 대항하는 국제 연대가 필요합니다.”
중국에서 모든 차별에 저항해 목소리를 내는 것은 저의 일상입니다. 반격이 들어오면 우리는 한데 뭉쳐 맞서야 하죠. 여성인 저에게는 조국이 없습니다. 온 세계가 저의 조국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는 ‘암적인 남자’ 도널드 트럼프도 똑같이 비난할 것입니다.
오늘날 중국에서는 시민운동의 입지가 점점 좁아지고 있습니다. 웨이보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계정 가운데 하나인 ‘페미니즘 보이스(Feminism Voice)’는 트럼프에 맞서는 여성들의 시위 관련 기사를 올렸다는 이유로 정지당했습니다. 여성 운동의 영역에서 특정 국가만의 이슈는 있을 수 없습니다. 여성을 침묵시키려는 세력에 모두가 함께 맞서 싸워야 합니다.
캐서린 메이어
- 여성평등당 창립자
“육아는 엄마와 아빠의 공동 책임입니다.”
여성 문제를 일거에 해결할 솔루션은 존재하지 않습니다. 여성을 억압하는 구조 속에는 여러 요소가 서로 긴밀히 엉켜있기 때문이죠. 그러나 여성평등당의 7대 목표 가운데 하나인 ‘육아 평등’이 실현된다면 그것만으로도 엄청난 변화가 가능합니다. 육아는 여성의 임무라는 생각에서 벗어난다면, 현재 여성들이 너무나 당연히 떠맡고 있는 무급 노동의 가치가 인정된다면, 성별 간 임금 격차 문제의 원인 판명에도 더욱 가까이 갈 것입니다.
1975년, 아이슬란드에서는 여성의 90%가 직장과 가정에서 하루 간의 파업에 돌입했죠. 여성이 얼마나 많은 일을 하는지 보여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오늘날 아이슬란드의 성 평등 지수는 세계에서 가장 높은 수준입니다. 저는 2018년 영국에서 이와 같은 ‘1일 여성 파업’ 행사를 추진하기 위해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스텔라 크리시
- 영국 의원, 여성주의 행동 네트워크 운영 중
“뛰어드세요.”
우리는 계속해서 뭉치고 알람을 울려야 합니다. 가장 경계해야 할 것은 절망에 빠지는 일입니다. 멀찍이 서서 바라보며 훈수 두지 말고 뛰어드세요. 집회에 한 번 참여한 후 내 할 일은 끝이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행동에는 반발이 따르기 마련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계속해서 행동해야 합니다. 저는 마틴 루터 킹을 존경하지만 그가 한 말에 모두 동의하지는 않습니다. 그는 “역사의 활은 길지만 그것은 정의를 향해 휜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싸우지 않는 한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리브 리틀
- 잡지 《갤뎀(gal-dem)》의 편집장
“유색인종 여성들에게 경제력을.”
저를 둘러싼 여성주의는 젊고 신선한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여성주의는 밝고 활기찬 운동이 될 수 있는 풍부한 잠재력을 갖고 있죠. 하지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시급하게 해결해야 할 너무나도 문제가 많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권을 갖는 것입니다. 저는 유색인종 여성으로서 우리가 사업을 하고 돈을 벌어 서로를 지지하고 자라나는 어린 여성을 도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당신이 흑인 여성이라면 똑같은 대학 졸업장을 갖고도 백인 남성에 비해 돈을 적게 벌 가능성이 높습니다. 물론 이전보다는 영향력 있는 자리에 선 흑인 여성이 많아졌지만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케이틀린 모란
- 작가, 칼럼니스트
“우리의 약점이 곧 우리의 무기입니다.”
우리를 강하게 만드는 것은 무엇일까요? 우리가 장애물이라 여기는 모든 것입니다. 우리의 ‘나약함’, 몸에 걸치는 우스운 것들, 유머와 같은 것들이 실은 우리의 무기죠. 여성 행진에는 유모차와 휠체어, 장애인, ‘소수자 집단’에 속하는 여성들이 분홍색 모자를 쓰고 함께 했습니다. 이런 행진에 무장 경찰을 보낼 수 없으니 이것은 곧 우리의 강점이 됩니다. 이런 행진을 폭력 시위, 극단주의자들의 소행으로 낙인찍어 해산시킬 근거를 찾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입니다. 우리가 누군가의 눈에 더 나약하고 우스꽝스러울수록 우리의 행진을 막는 것은 점점 더 어려워집니다.
세상이 거꾸로 가니 더 이상은 맞서 싸울 힘이 나지 않는 것도 사실입니다. 하지만 기존의 ‘싸움’은 더 이상 통하지 않습니다. 상대는 이미 ‘싸움꾼’에 대처하는 방법을 알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즐기는 사람, 농담과 유머, 핑크색 모자에 맞서는 방법은 알지 못합니다. 싸워본 적이 없는 상대니까요. 바로 이 점이 우리의 강점입니다. 고갈될 염려 없는 무기이기도 하죠. 뜨개질을 하고 농담을 주고받으며 혁명을 향해 나아갑시다!
수지 오바크
- 심리치료사, 애널리스트, 작가
“몸을 억압하는 구조를 파괴합시다.”
누구에게나 따뜻한 집과 같아야 할 우리의 몸은 오늘날 상업주의의 공격에 상처 입습니다. 신체 부위를 조각조각 나누어 평가하고, 기준에 부합하기 위한 수술을 안전하고 긍정적인 해결책으로 포장하는 일이 비일비재합니다. ‘아름다움’을 정의하는 시장과 여성 할례의 집행자들, 몸에 대한 여성의 선택권을 부정하는 백악관은 모두 이런 사회 분위기 조성에 기여하는 세력입니다. 세 살 난 여아들에게 성형수술 놀이 세트를 안겨주어 미에 대한 고정관념을 심어주는 것은 누구의 배를 불리기 위한 것일까요? 이제는 모두가 나이 먹고 변화하는 자신의 몸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패리스 리스
- 저널리스트, 트랜스젠더권리 활동가
“진정한 페미니즘은 아무도 소외시키지 않는 것.”
당신이 사회 정의를 외치면서 유색인종 여성이나 장애인 여성, 트랜스 여성, 성 노동자, 무슬림, 유대인, 빈곤 계층을 제외시킨다면 당신이 원하는 것은 평등이 아니라 특권입니다. 당신과 같은 계급, 같은 인종 여성의 권리 신장을 위해 노력하면서 자신보다 불리한 위치에 있는 여성을 외면한다면 페미니즘이 아닙니다. 우월주의죠.
저는 다인종 가정 출신이라 인종주의에 대해서 조금은 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흑인은 아니기에 이 주제에 함부로 말을 얹지 않습니다. 귀를 열고 들을 뿐이죠. 소셜미디어에서는 소수자 배경을 가진 페미니스트를 여럿 팔로우하고 있습니다.
지난 대선 당시 대부분 여성은 힐러리 클린턴에게 표를 주었지만 대졸 백인 여성들의 표는 트럼프에게로 향했고 결국 이것이 투표 결과를 바꾸어 놓았습니다. 여성들이 서로 뭉치지 않은 결과는 이렇습니다. 파시즘이 부활한 시대입니다. 여성들은 이미 저항에 앞장서고 있지만,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우리는 반드시 연대해야 합니다.
마리엘라 프로스트럽
- 방송인, 칼럼니스트, ‘그레이트 이니셔티브’ 창립자
“남성도 함께해야 합니다.”
저는 첫 숨을 들이쉰 순간부터 페미니스트로 살아왔지만 싸움은 지긋지긋합니다. 제가 사는 서구의 작은 모퉁이에서는 자신의 딸, 아내, 여자 형제, 어머니, 여성 동료가 자신과 동등한 인격체라는 사실을 부인하는 남성은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젠더로 전선을 구분하고 있죠. 양 성의 참여 없이 성공한 혁명은 역사상 존재하지 않습니다. 이제는 남성도 운동에 동참시킬 때가 왔습니다.
여자도 운전할 수 있다는 것을 어필하는 자동차 광고보다는 남성도 진공청소기를 잘 돌릴 수 있음을 보여주는 청소기 광고에서 더 큰 희망을 보는 이유입니다. 여성이 과거 남성의 영역에 진출할 능력이 있음은 충분히 증명되었지만, 여성의 영역으로 여겨졌던 곳에서 남성을 찾아보기는 여전히 어렵습니다. 여성이 직업을 갖는 것은 너무나 흔한 일이지만 무급 노동도 함께 하는 쪽은 여전히 압도적으로 여성이니까요.
우리는 중고등학교 남학생들이 남성성과 젠더 이슈에 대해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장을 열었습니다. 세상에서 여성혐오를 없애려면, 젊은 남성들이 그렇게 할 수 있도록 지원해야 합니다.
리사 랜덜
- 하버드대 교수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에 마침표를.”
다양한 여성 문제 중 주목을 받지 못하는 것이 바로 여성들이 느끼는 두려움입니다. 그 자체로 매우 광범위한 사안이고 현존하는 구조 속에서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이지만 물리적 폭력, 온라인 스토킹, 괴롭힘 등은 여성들의 삶의 질을 저해하는 심각한 요소들입니다. 현재 우리 사회는 매우 명백한 위험에만 대응합니다. 별것 아닌 것처럼 보이는 공격도 여성들을 위축시키며, 오프라인과 온라인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사라지게 만드는 주범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원문: 뉴스페퍼민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