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년지갑 트레이닝센터 사회적협동조합’, 돈 때문에 속앓이하는 청년들아 모여라
이유란 청년지갑 트레이닝센터사회적협동조합(이하 청지트)이사장은 고등학교 때부터 가계부를 썼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병원 치료를 제대로 못 받거나 급식 신청을 못 할 때도 있었습니다.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꼬박꼬박 가계부를 썼지만 ‘돈을 아끼자’와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살자’ 사이에서 늘 고민이 많았습니다. 그러다 청지트의 ‘내 지갑 워크숍’을 듣고는 재미와 의미에 푹 빠져 ‘청지트’의 일원이 됐지요.
“ 가계 부채를 해결한다기보다는 심리적인 도움을 많이 받았어요. 지나치게 아끼는 성향에서 돈을 잘 활용할 줄 알게 됐습니다.”
그의 생생한 경험담이 녹아든 강의는 청년들의 공감을 높이 샀고 이 이사장은 청지트에서 가장 인기 있는 강사가 됐습니다. 청지트의 직원 중 70%는 이 이사장처럼 교육을 듣고 삶에 변화를 느껴 청지트의 일을 직업으로 삼은 사람들이라는군요. 그렇다면 돈을 잘 활용한다는 의미는 무엇일까요?
‘꿈꾸는 가계부’로 돈의 주인이 되자
청지트는 2013년 설립된 대안 은행인 ‘청년은행 토닥’에서 교육과 상담을 전담하는 부설기관으로 출발했습니다. 이후 2015년 사람 중심의 경제생활 문화를 만들겠다는 기치 아래 사회적 협동조합을 꾸렸습니다. 대상자는 나라의 미래를 짊어질 청년들입니다.
청지트의 대표 교육 브랜드는 ‘내 지갑 워크숍’이고 핵심 내용은 ‘꿈꾸는 가계부’입니다.
“가계부를 잘 쓰고 나면 내 인생이 점검되고 미래를 꿈꿀 수 있게 됩니다. 가계부는 돈을 아끼기 위해 쓰는 것이 아니라 돈을 잘 쓰기 위해 쓰는 도구입니다.”
‘꿈꾸는 가계부’는 총 2권으로 돼있습니다. 1권은 본인의 꿈을 꺼내어보고 그것을 이루기 위한 체크리스트를 작성합니다. 2권에서는 예산을 세우고 지출 및 결산 까지의 과정을 기록합니다.
“ 가계부 수업인데 웬 꿈 이야기냐며 생뚱맞게 느껴질 수도 있어요. 하지만 작은 것부터 큰 것까지 내가 하고 싶은 것들을 꺼내어 보고 그걸 위해서 돈을 써보는 습관을 들이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가 가계부를 안 쓰는 이유 중 하나가 써도 발전이 없다는 거예요. 그저 ‘아 많이 썼네’에 그치면 소용이 없어요. 지출에 대한 만족도를 피드백해야 합니다. 감정 일기를 통해 돈을 잘 썼는지 혹은 아까웠는지 돌아보고 다음엔 돈을 더 유용하게 쓸 수 있도록 하는 거죠.”
가계부 쓰기뿐 아니라 경제 기초 상식도 일러줍니다.
“청년들 대부분 정보력이 부족합니다. 저축만 하면 바보 같고 재테크는 손실 위험이 있어 무섭고 모르니 불안하고요. 우리는 투자 상품을 파는 곳이 아니기 때문에 꼭 알아야 할 것과 몰라도 되는 것을 알려줍니다. 적어도 당하지 않게 정보 값을 주는 것이죠. 기업 마케팅에 의해 내 가치관과 다른 소비를 하는 것을 알아차리고 그것을 걷어내는 작업도 합니다.”
돈의 철학을 바꾸면 달라지는 것들
요즘 청년들이 미래가 안 그려진다고 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꿈을 가져라’고 하면 허탈하기도 하고 희망고문을 하는 것 같기도 하지요. 우리가 저축만으로 서울 수도권에 집을 사기란 하늘에 별 따기임을 누구나 압니다. 하지만 한영섭 내지갑 연구소장에 따르면 여러 조달 방법이 있다는군요.
“개인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할 수 있지요. 그러나 공공 재원을 통해서 공공 임대 주택이나 사회 주택에 임대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협동 경제를 통해 주거를 공급받을 수 있고요. 그런데 청년들은 경험이 없다 보니 그걸 잘 모릅니다. 그걸 알면 희망이 생깁니다.”
그는 미래 설계에 돈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시간과 에너지가 필요한 것도 많다고 합니다.
“20대는 경험을 많이 쌓아야 하는 시기입니다. 경험을 쌓기 위해 돈을 모으고 써야 합니다. 재정 관리란 돈을 많이 모아두고 절약하는 것이라는 기존의 틀을 깨고 다른 방식의 경제관을 일러줍니다. 궁극적으로 생활 경제 역량을 키워주는 겁니다.”
삶의 부유함을 위해 꼭 필요한 4가지
돈이 수단이 아니고 목적이 될 때 많은 불행한 일이 일어납니다. 청지트는 좋은 삶을 살기 위한 4가지 부(富)를 정하고 이를 전파하고 있어요. 그 첫 번째가 ‘생태적 부’입니다.
“공공 도서관, 미술관, 공공 재원이 우리의 것이고 그 안에 내가 있다는 인식이 들면 내가 누릴 수 있는 자원이 늘어납니다. 내 통장에 든 돈의 액수만 생각하니 문제가 안 풀립니다. ”
두 번째는 ‘정신적 부’입니다. 워라밸처럼 일과 삶의 균형을 맞추는 거죠. 세 번째는 관계 맺음을 통한 ‘사회적 부’입니다.
“관계 맺음은 흔히 인맥 만들기와는 다른 개념입니다. 고독사가 늘어나고 있는 때 손을 내밀 수 있는 단 한 사람이 필요합니다. 우리는 관계 맺음을 하기 위해 돈을 써야 합니다. 때론 이것이 경제적 문제를 해결해줍니다.
사회주택을 함께 집을 조달하는 것으로 볼 때 관계 맺음은 굉장히 중요한 의미가 됩니다.”
마지막으로 이 세 가지 부를 얻기 위한 수단으로 경제적 부 즉 ‘돈’이 필요합니다. 청지트는 이 같은 돈의 철학을 교육과 상담을 통해 전파해나가고 있어요.
공허한 재정 상담은 가라… 생활 경제 역량 강화
청년들은 가계부 쓰기가 익숙해지면 다음 단계로 상담과 소모임을 진행합니다.
청지트 상담사 김환희 씨는 한 달에 약 10여 명의 청년들을 만납니다. 청년수당을 받거나 희망두배청년통장 참여자, 구직자, 사회 초년생 등 다양합니다. 1인당 2차례에 걸쳐 청년들의 지갑 상황에 대해 은밀한 이야기를 듣지요.
“ 긴장하고 주눅이 들어있어요. 밤에 한숨도 못 자고 불안한 심리상태들도 많습니다. 일단 안심을 시키고 어떻게 하면 좋을지 조언을 해주면 ‘이젠 발 뻗고 잘 수 있겠다’고 합니다.
그런 말 한마디, 표정 하나가 신바람 나게 합니다. 상담을 하다 보면 청년들에게 꼭 필요한 서비스구나 그러니 정말 잘 해야겠다는 책임감이 듭니다.”
청지트는 서울시의 지원을 받아 김 씨와 같은 상담 전문 트레이너를 38명 배출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지난해 광주지부도 생겨 6명의 조합원들이 지역에서 청지트의 미션을 함께 수행해나가고 있습니다.
이유란 이사장은 “ 한 번의 상담이나 교육을 듣는다고 해서 바뀌진 않기 때문에 참가자들끼리 서로 교류하고 배움을 실천하는 소모임도 이어간다”고 말합니다.
“ 돈 이야기는 가족과 친구들과도 하기 어렵습니다. 재정 고민뿐 아니라 실질적인 생활 정보들 주거, 일자리 같은 일상적인 생활 속 팁을 얻으며 안정감과 자신감을 얻고 사회적인 관계망도 두터워지죠.”
때론 재정적으로 힘든 사람들에겐 서울금융복지 상담센터와 MOU를 맺고 부채 문제를 슬기롭게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20대 청년 희욱(가명) 씨는 청지트의 도움을 받아 빚을 갚을 수 있다는 희망을 얻었습니다. 3년 전 빌린 부채 원금 1200만 원에 대해 신용 회복위원회에 8년간 분담해 갚는 플랜을 진행 중입니다.
“경제 활동 개념이나 금융 지식이 없어 낙담을 하는 청년들이 제 주변에도 많습니다. 저는 서울시와 연계해 몇 가지 방법이 있는 걸 알았고 그중 가장 적합한 방법을 선택했지요.”
동작신용협동조합과는 적정대출 프로젝트를 함께 진행 중입니다. 햇살론이라는 정부 대출이 필요한 경우 상담을 통해 대출자에게 꼭 필요한 적정 금액만큼만 빌려주는 형식입니다.
“200만 원이 필요한 사람에게 300만 원을 대출해주면 100만 원은 다 써버립니다. 반대로 200만 원이 필요한데 100만 원만 대출해주면 100만원은 이상한 데 가서 빌립니다. “
동작 신협은 청지트의 상담 결과지를 토대로 상황에 맞게 대출심사를 진행하고 있습니다.
“ 무료로 상담을 해주는 공공 기관은 많습니다. 하지만 워낙 수요가 많다 보니 너무 바빠 마음을 어루만져 줄 여유가 없습니다. 기계적으로 제도적으로 움직이다 보니 효율이 떨어집니다. 그 작업을 청지트에서 하는 겁니다.”
씨를 뿌리는 사람들
청지트의 조합원은 모두 28명입니다. 생산자 조합원으로 강사, 상담사들이죠. 정수현 센터장은 새해에는 청지트의 미션이 더 많은 사람들에게 공유됐으면 좋겠다는 희망을 나타냈습니다.
“ 저소득층 청년들, 새터민, 장애인들은 특히 금융에 취약합니다. 몰라서 당하는 경우들도 많고요. 최소한 피해를 입지 않도록 지원이 이뤄졌으면 좋겠는데 저희 힘만으론 부족합니다.
그들은 삶에 쫓기다 보니 여기에 귀 기울일 여유가 없어요. 목구멍에 찰 때까지 버티다 파산 지경에 이르러야 옵니다. 조금만 일찍 잡아주면 괜찮을 텐데 아쉬움이 남습니다. 청지트의 가치와 철학이 멀리 퍼져나가 저희가 못해도 보다 많은 곳에서 이런 활동이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
청지트의 직원들은 한목소리로 이야기합니다. 사회적 경제에는 인내 자본이란 것이 있어서 기다려 줄 수 있어야 한다고요. 그리고 청지트의 역할은 열심히 씨앗을 뿌리는 것이라고요.
그 씨앗들은 어쩌면 꽃을 못 피울 수도 있고 잘 성장하면 꽃밭을 이룰 수도 있겠지요. 하지만 분명한 건 꽃을 피우려면 누군가는 열심히 씨앗을 뿌려야 한다는 사실일 겁니다.
원문: 이로운넷 / 필자: 백선기 / 사진: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