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의 신년 기자회견이 지난 1월 22일 여의도 당사에서 있었다. 홍 대표는 화제가 됐던 문재인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따라 하려고 했던 모양이다.
대통령이 질문하는 기자를 선택하고, 사전 각본 없이 자유롭게 질의하고 응답했던 모양새는 똑같았다. 그러나 신년 기자회견장은 자유한국당 출입 기자가 얼마나 힘든 직업인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줬다.
질문하라고 했더니 답변을 거부한 홍준표
“기자에게 이 질문은 하라, 저 질문은 하지 말라고 하는 것도 문제 발언이고, 이전에도 ‘KNN과 SBS를 빼앗겼다’라는 식의 발언을 해서 언론관에 대한 문제가 지적됐는데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 미디어오늘 기자
“이 질문에는 답하지 않겠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
질문을 받겠다고 기자를 모아 놓고, 막상 질문하니 답변을 거부한다. 과연 이걸 기자회견이라고 볼 수 있을까?
질문도 민감한 분야가 아니었다. 불과 2주 전에 홍준표 대표가 MB와 만나 던졌던 “좌파 정권이 들어서니 SBS도 뺏겼다. 지금 부산에 KNN밖에 없는데 KNN도 회장이 물러났다. (정권이) 아예 방송을 빼앗는다”라는 발언에 대한 질문이었다.
홍준표 대표의 발언은 언론사 사장들을 발끈하게 한 것이 아니라 기자들을 분노하게 했다. KNN 앵커와 아나운서는 홍 대표의 발언 영상이 나오자 어이가 없는 표정을 지었다. KNN이 제작한 “KNN은 뺏긴 적이 없습니다”라는 영상은 조회수가 70만이 넘었다.
“SBS라는 방송은 그거 내가 ‘모래시계’ 드라마 만들어서 키운 방송입니다. 어떻게 홍준표가 키워준 방송에서 그따위 짓을 할 수 있느냔 말입니다. 내 집권하면 SBS 8시 뉴스 싹 없애버리겠습니다.” – 2017년 5월 부산 유세,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선 후보
“SBS 8시 뉴스 없애버리겠다고 그랬습니까?” – 2017년 12월 28일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SBS 주영진의 뉴스브리핑
홍준표 대표는 지난해 12월 SBS에 출연했다. 앵커의 질문에 홍 대표는 오히려 ‘제가 SBS 8시 뉴스 없애버리겠다고 그랬습니까?’라고 반문했다. 마지못해 사과는 했지만, 홍준표 대표의 언론관은 기자라면 상종조차 하기 어려운 폭군에 가까웠다.
막말을 막말이라 부르지 못하는 기자
신년 기자회견에서 문화일보 기자는 ‘평소에 막말 관련 논란이 많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말투를 순화할 생각이 없느냐’고 물었다. 홍 대표는 ‘막말한 사례를 이야기하면 대답하겠다. 내가 막말한 거 어떤 게 막말이냐?’라고 되물었다. 기자가 ‘너무 많아 가지고’라고 하자 홍 대표는 ‘또 이야기해보세요. 많아 가지고가 아니고’라고 말했다.
그 누가 봐도 ‘막말’을 홍준표 대표는 ‘막말’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기자 입장에서는 환장할 노릇이다. 기자회견장이 아니라 말싸움하는 모습 같다.
“얼마 전 조국 수석에 ‘조국인지 타국인지, 사법시험에 못 붙은 한’이라고 말했는데, 조국 수석은 사법시험에 응시한 적이 없다. 이것은 팩트가 아니지 않냐” – 더팩트 기자
“사법 시험 응시했다고 말한 게 아니라, 그냥 통과하지 않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건 팩트 문제가 아니지 않냐”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기자를 가리켜 사실을 전달하는 사람이라고 한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와 대화를 하려는 기자는 ‘팩트’를 말할 수 없다.
팩트를 논하면 ‘팩트 문제가 아니다’라고 말하고, 의미를 질문하면 ‘팩트를 말하라’고 한다.
소속이 어디야? 이제부터 질문 하지마
“‘평양 올림픽’이라는 발언과 관련해 나경원 의원이 같은 말을 했고, 자유한국당 의원들의 의식이 일본 극우 정치인 발언과 같다는 지적이 나온다”- 오마이뉴스 기자
“오마이뉴스도 우리 당 출입하느냐?” – 자유한국당 홍준표 대표
오마이뉴스가 자유한국당에 우호적인 언론사는 아니다. 그렇다고 대놓고 ‘출입하느냐’고 묻는 태도는 이해하기 어렵다. 만약 출입 기자가 아니라면 답변을 하지 않았겠다는 생각마저 든다.
특히 이날 기자들은 유독 자유한국당 당직자로부터 소속이 어디냐는 질문을 받았다고 한다. 말은 자유롭게 질문을 받겠다고 했지만, 소속에 따라 질문을 받고 답변을 받겠다는 의도로 볼 수 있다.
한국경제 기자가 홍준표 대표에게 대구시장 직접 출마와 관련한 질문을 했다. 홍 대표는 ‘직접 출마는 없다’라고 답한 뒤 ‘더 이상 언론에서는 방금 이 기자가 질문한 것 하지 마라’고 말했다. 자유 질문이 아니라 질문을 통제하고 선별하겠다는 강압적인 태도이다. 청와대 신년 기자회견과는 전혀 다른 분위기였다.
반말과 폭언을 듣는 기자들
세계일보 기자가 질문을 하자 홍준표 대표는 ‘주머니에서 손은 빼라’고 주문했다. 이 상황만 놓고 보면 교장 선생님이 학생을 가르치는 듯한 장면 같다. 질문하는 기자라도 예의를 지켜야 한다고 주장할 수 있다. 하지만 평소에도 출입 기자에게 반말을 예사로 하는 홍 대표가 ‘상호 예의’를 말하는 것도 우습다.
2011년 전당대회 자금 의혹 관련 기자 질문
“이영수에게 돈을 받은 사실이 있나요?” – 경향신문 기자
“그런 걸 왜 물어, 너 진짜 맞는 수가 있어. (민주당이) 내 이름 말했어?” – 홍준표 대표“야당에서 실명을 거론한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 주장하고 있습니다” – 경향신문 기자
“너 나에게 이러기야? 내가 그런 사람이야? 버릇없이 말이야” – 홍준표 대표
2011년 한나라당 전당대회 자금 의혹이 불거졌다. 홍준표 대표에게 자금 의혹을 질문한 기자는 ‘맞는 수가 있다’,’버릇없이 말이야’라는 반말과 폭언을 들었다. 정치인에게 ‘갑질’을 당하는 ‘기자’가 바로 자유한국당 출입 기자였다.
청와대 신년기자회견에서 청와대 출입 기자들은 질문을 하기 위해 너도나도 손을 들었다. 외신기자에 비해 제대로 된 질문을 하지 못했다는 비판도 있었다. 그러나 자유한국당 출입 기자들 입장에서는 그저 부러운 장면에 불과했다.
대통령에게 질문을 선택받느냐 아니냐가 아니다. 자유한국당 출입 기자에게는 대화가 되지 않는 정치인에게 질문하는 자체가 고통이었다.
질문을 하라고 해놓고 기자들 자리는 페이스북 생중계를 위한 모니터와 카메라 뒤에 배치했다. 홍준표 대표의 얼굴조차 보이지 않았다. 한 마디로 문재인 대통령 따라하기에 희생양이 됐다.
평소에 언론과 기자를 향한 비판을 자주 한다. 그러나 이번 자유한국당 신년 기자회견을 보면 기자들이 안쓰러웠다. 참으로 ‘극한직업’이다. 앞으로는 갑질 정치인 대신에 국민만 바라보고 기사를 쓰는 수밖에 없다.
원문: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