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낙에 여행을 좋아하는지라, 여행과 관련된 마케팅을 보면 눈여겨보게 됩니다. 동시에 여행을 가고 싶은 마음, ‘여행 뽐뿌’를 느끼곤 합니다. ‘여행에 미치다’ 페이스북 페이지에서 여행 영상을 볼 때, 대한항공 TV 광고를 볼 때 그런 느낌이 듭니다. 그리고 최근에 제게 여행 뽐뿌를 주는 또 한 곳을 알게 되었는데요. 바로 호주정부관광청(이하 호주관광청)입니다.
호주정부관광청은 호주 정부의 산하 기관입니다. 일명 ‘공기업’이죠. 이 기관의 미션은, 해외 여행객들이 호주에 여행을 많이 오게끔 만드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 전 세계적으로 호주 여행과 관련된 관광 마케팅을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한국도 타겟 국가 중 한 곳입니다.
제가 호주 관광청의 관광 마케팅을 주의 깊게 본 이유는, 다른 해외 관광청들과는 확실히 차별화된 여행마케팅으로 호주 여행 뽐뿌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국내의 아웃바운드 관광객 (우리나라에서 해외로 나가는 관광객)이 해가 갈수록 많아지게 되면서 세계 각국의 관광청들이 한국의 잠재적 여행 관광객을 대상으로 관광 마케팅을 펼치고 있습니다. 필리핀, 태국, 인도네시아 등의 동남아시아뿐만 아니라 캐나다, 영국 같은 곳에서도 국내 여행객의 유치를 위해 열심히 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 중 단연 ‘열일’하고 있는 해외 관광청은 바로 호주 관광청입니다.
이 덕분에 2017년은 최초로 호주를 방문한 한국 관광객이 30만 명을 돌파했습니다. 또한 SNS에서 ‘호주관광청’을 검색해도, 그들의 마케팅이 실제로 ‘먹히고 있다’는 것을 한 번에 알 수 있습니다.
이처럼 어떻게 호주관광청은 ‘여행사’보다 관광 마케팅을 더 잘한다고 소문이 나게 되었는지, 그리고 어떻게 여행 뽐뿌를 만들어내고 있는지 살펴보고자 합니다.
‘내’가 무엇을 느낄 수 있을지 보여주다
아마, 대부분 기억하고 계시는 여행사 광고의 메시지를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여행할 때 가장 저렴한 곳은 XXX”
“거품 없는 직판 여행사, OOO”
“여행 잘하는 습관, DDD”
“전 세계 인기 여행 상품이 한 곳에!”
“항공권 초특가 여행은 XXX”
모두 ‘여행’이라는 워딩이 빠지지 않고 등장하고, 저렴하다/거품 없다 등등 다른 여행사와 가격 차별화 또는 기능 차별화를 강조하는 메시지가 다수입니다. 물론, 수십 개의 여행사가 난무하고 있는 시장 상황에서 차별화된 포인트로 강한 인상을 남기는 것도 중요합니다. 여행사 입장에서는 ‘언젠가 여행이 가고 싶을 때 기억하고 있는 우리 여행사를 찾지 않을까’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사실 단 한번도 그래본 적이 없습니다. 대부분의 여행객들은, 여행을 가고 싶어 할 때 제로베이스에서 시작할 것입니다. 각자만의 방법으로 최적의 여행사를 다시 찾게 되는 거죠.
제 생각에는,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드는 것’이 관광 마케팅에서는 제일 중요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여행을 가고 싶게 만들어야 여행사를 찾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여행사 입장에서는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아니, 기껏 여행 가고 싶게 광고를 만들었더니 우리 여행사는 기억 못 하고 다른 여행사 좋은일만 하게 되는 거 아닙니까?”라고 말이죠. 하지만 ‘대한항공’의 마케팅 성공이 그 의문점에 답을 해줄 수 있습니다.
대한항공은 매년 꾸준하게, 핵심 노선을 기반으로 국가와 도시를 지정해 여행 광고를 온에어하고 있습니다. 광고를 살펴보면, 맨 마지막 ‘Korean Air’를 언급하는 부분을 빼고는 어느 곳에도 대한항공의 모습을 찾을 수 없습니다. 대신, 그곳에서 내가 여행을 하면 어떤 것을 느끼게 될지를 보여줍니다. 화려한 영상미와 재미있는 컨셉으로 집중도 있게 광고를 보게 되죠. 그러면서 자연스럽게, 아! 여행 가고 싶다, 라는 생각이 들게 되고 광고하는 그곳을 여행지로 정해 여행 계획을 짜보게 됩니다. 물론, 그 과정에서 해당 노선의 여러 항공사들이 있어 다른 항공사를 선택할 수 있지만, 특정 여행지에 대한 수요를 엄청나게 끌어 올리면서 대한항공을 이용하는 여행객을 대폭 늘리게 되었습니다.
다른 항공사를 이기겠다, 는 생각보다는 여행지에 대한 파이 자체를 늘려 대한항공이 얻어갈 수 있는 이득을 크게 높이는 전략이었던 셈입니다.
호주관광청의 여행마케팅도 대한항공 마케팅처럼, 철저히 ‘나’의 입장에서 여행을 하면 어떤 것을 느끼게 될지를 알려주는 것에 초점을 잡았습니다. 호주관광청은 매년 정기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여행 캠페인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여행 캠페인을 국내에서도 함께 홍보하고 있습니다.
국내에서의 시작은 1999년이었습니다. 외국의 해외 관광청 중에서는 가장 먼저 한국에서 호주 관광 마케팅을 시작했습니다. 그때의 슬로건은 “자유로울 때 새로운 나를 발견하는 곳” 이었습니다. 처음부터 ‘호주’가 아닌 ‘시청자’ 즉 ‘나’에 초점을 잡았습니다.
2011년에는 “호주만큼 멋진 곳은 어디에도 없습니다”라는 캠페인 슬로건으로 글로벌 캠페인을 대대적으로 오픈했고, 이 영상을 기반으로 2012년에는 국내 TV CF를 온에어하였습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흘렀지만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광고입니다. 많은 것을 버리고 광고 엔딩에 슬로건을 얹었을 뿐입니다.
리포터들이 직접 체험을 해보며 느낌 점을 뉴스 형식으로 전달하고 있는데요. 페이스북 페이지를 통해 매일 1개의 뉴스를 올려주고 있으며, 재미있는 호주 이야기들과 콘텐츠들이 많아 구독자 수가 60만 명에 달하고 있습니다 (참고 : 오지 뉴스 페이스북 페이지)
이처럼 매년 꾸준하게 여행캠페인을 진행하면서 호주 여행지에 대한 인식을 심어주게 되었고, 여행 정보 전달에서 여행 느낌 전달로 프레임을 전환하면서 국내의 잠재적 여행객들에게도 호주 여행에 대한 니즈를 키우게 되었습니다.
기발한 아이디어가 돋보인 공식 홈페이지
호주관관청 역시 어느 해외 관광청과 같게 공식 홈페이지를 운영하고 있습니다. 다만, 그 안의 다양한 콘텐츠와 제공하는 서비스들이 다른 곳들과도 사뭇 달랐는데요. 우선은 ‘여행 책자 배달 서비스’였습니다. 배송비 3천 원만 지불하면 호주 여행 책자 6종 세트를 보내주는 서비스입니다. 또한 휴대폰이나 태블릿으로 보고자 하는 여행객을 위해 e-book을 무료로 제공하고 있습니다.
어디론가 여행을 가기 위해서는 가이드북이 거의 필수적으로 필요합니다. 서점에서 가이드북을 구매하기도 하고, 블로그 리뷰를 보면서 가볼 만한 곳, 먹을만한 것들, 살만한 것들을 찾아보게 됩니다.
이런 여행객들을 위해 호주관광청은 호주관광청이라는 신뢰감 있는 브랜드를 활용해 여행 책자를 배송비만 지불하면 보내주고 있습니다. 많은 해외 관광청들이 ‘우리나라로 놀러 오세요’라 말하지만 막상 이렇게 여행객들이 필요로 하는 서비스는 제공하지 않고 있습니다. 과연 진짜 놀러 오라고 하는건지 의심스러울 정도로 온라인 공식 홈페이지에 여행 정보가 없을 때도 많습니다.
하지만 호주관광청은, 호주로 여행을 오고자 하는 여행객들이 무엇을 필요로 할 지 고민한 뒤 온라인에서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었습니다.
또한 360도 VR 영상으로 주요 관광지를 미리 볼 수 있는 콘텐츠도 신tjs했습니다. 그레이트 오션 로드, 시드니 하버 등 호주를 대표하는 자연경관을 360도 VR 영상으로 미리 볼 수 있었습니다. 호주 관광의 핵심 자원인 ‘자연’을 새로운 기술을 활용해 적극적으로 콘텐츠로 만들고 홍보하는 점이 인상 깊었습니다.
항공사, 방송사, 여행사 등과의 적극적인 제휴
호주관광청이 잘 알려진 이유 중 하나로 적극적인 제휴도 한몫을 했습니다. 호주관광청은 국내에서 ‘여행’과 관련된 다양한 산업의 플레이어들과 함께 콜라보레이션 제휴를 맺었습니다. 방송사의 경우는 여행 프로그램의 PPL을 통해, 연예인들이 호주를 여행하게큼 하고 이로 인해 호주의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프로그램이 바로 얼마 전 위너가 출연하며 화제가 되었던 <꽃보다 청춘 – 위너 편>입니다.
위너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서호주 곳곳을 여행했고 이곳에서의 스카이다이빙, 사막 체험, 서핑 등을 체험하는 것들이 TV로 그대로 방영되었습니다. 시드니, 골드코스트 등 동호주만 잘 알고 있던 한국인들에게 서호주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습니다.
어떻게 이들은 서호주로 가게 되었을까요? 알아보니 신서유기에서 위너의 송민호 군이 <꽃보다 청춘 – 위너 편>을 경품으로 획득하게 되자 호주관광청이 재빠르게 컨택했다고 하네요. 참 ‘열일’ 하는 관광청이 아닐 수 없습니다.
뿐만 아니라, 대표 여행 프로그램인 <배틀트립>에서도 호주가 등장했습니다. 이 역시 PPL이었습니다. 한국의 여행 프로그램들을 후원하면서 호주 곳곳의 매력을 지속적으로 알리고 있습니다.
마치며
사실, 호주정부관광청 이야기를 다루면서 하고 싶었던 이야기는 여행사의 마케팅에 대한 생각이었습니다. 아직도 신문광고를 비롯하여 TV 광고에서도 여행사에서 집행하는 광고를 흔하게 볼 수 있는데, 몇 년 동안 큰 변화가 없습니다.
신문광고의 경우는 각 회사들이 가지고 있는 모든 여행 상품을 들고나와 신문에 빽빽하게 채워놓으며 “이 중에서 가고 싶은 곳이 하나는 있겠지?”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전 가격과 할인된 가격을 표시하면서 “우리 여행사에서는 이 만큼 할인해서 판매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이런 마케팅이 놀랍게도 몇십 년 동안 계속 지속되고 있습니다.
지난번, ‘여행에 미치다’ 페이스북 페이지 흥행 사례를 살펴보면서 내렸던 결론이지만, 이제는 더 이상 유용한 정보 전달만으로는 누군가의 마음과 행동을 움직이기가 쉽지 않습니다. 정보 접근성이 높아지면서, 행동 변화에 부정적인 영향을 줄 수 있는 정보 역시 쉽게 접할 수 있게 되면서 우리는 계속 정보들 속에서 내가 꼭 이걸 해야만 하는 이유를 찾으려고 노력하게 됩니다.
그래서, 느낌을 강조하는 것이 오히려 행동을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무엇을 해보는 게 어떻겠냐, 무엇을 먹어보는 게 어떻겠냐고 자세하게 제안하는 것보다 이런 느낌과 분위기를 느껴보는 게 어떨지 제안하는 것이 더 중요해지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만 아직도 많은 곳에서 ‘공급자적 마인드’로 마케팅을 하는 사례가 많은 것 같습니다. 특히 제 생각에는 여행사가 더욱 그런 것 같습니다. (물론, 나름 열심히 하고 계시겠지만요) ‘여행에 미치다’의 성공 사례가 벌써 1~2년이 됐음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메이저 여행사의 여행 마케팅이나 관광 마케팅은 크게 변하지 않을 것 같습니다. 유명 셀럽을 모셔와 여행사의 장점만 말하고 휙 사라져버리는 광고를 보고 나면, 과연 저 광고를 보고 시청자들이 얼마나 저 여행사를 이용할까, 하는 의문점이 남습니다.
차라리, 여행사도 매년 여행 캠페인을 꾸준하게 진행하면서 대한항공과 같이 특정 국가, 특정 도시를 중점적으로 알려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과 함께 해당 여행사를 이용한 고객들만이 이용할 수 있는 커뮤니티 베네핏을 통해 충성도를 만들어보는 실험도 재미있지 않을까 싶었습니다. 한번 A 여행사를 이용했다면, 다른 B, C 여행사들이 더 저렴한 가격으로 경쟁력을 만든다고 했을 때 계속 A 여행사를 이용할 수 있도록 하는 거죠.
사람들은 더 저렴한 곳으로 무조건 간다고 하지만 꼭 그렇지만은 않습니다. 애플보다 갤럭시 가격이 더 저렴해도 여전히 아이폰을 사는 세대가 현재의 밀레니얼 세대이고, 조금 더 비싸더라도, 구매 상품의 브랜드 파워가 나의 파워로 비춰질 수 있음을 잘 알기에 구매하는 세대입니다.
우리나라에서의 관광 마케팅은 언제 바뀔 수 있을까요?
※ 해당 포스팅은 호주정부관광청으로부터 어떠한 부탁이나 청탁을 받지 않은 포스팅입니다.
원문: 생각노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