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UX라는 주제로 지인들과 대화를 나눌 기회가 몇 번 있었습니다. 가만히 듣고 있기만 해도 가슴이 두근거릴 정도로 멋진 그들의 도전기들을 듣고, 저 또한 제가 지금까지 개인적으로 고민하고 시도해봤던 이야기들을 나누다가 뭔가 생각이 정리되는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 한번 정리해보려 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UX라는 가치를 주장하고, UX Designer라는 담당자를 찾고, UX 사례라는 내용을 나누곤 하지만 그 속에 알맹이가 없다고 느낄 때가 너무 많습니다. UX 컨설팅을 하고 있는 제 지인 중 한 분은 항상 어느 정도의 답을 정해놓고 프로젝트를 발의하는 클라이언트들과 함께 일하는 데 항상 애를 먹고 있다고 합니다. 그들이 가진 문제를 해결하는 것에 앞서 그들의 그릇의 크기를 간파하고, 그들이 현실적으로 소화할 수 있을 만한 수준의 해결책을 제안하는 데에서의 고민이 크다고 합니다.
다른 한 지인분은 실무를 담당하며 고객의 경험을 개선하는 것보다는 현실적으로 지금 당장 해결해야 하는 숙제들 때문에 언제쯤이나 순수하게 고객을 위한 UX를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며 고민을 저한테 나눴습니다. 그 두 분께 각각 조금 다른 표현으로 나눴던 저의 생각은
“아마 앞으로도 제대로 된 UX는 여전히 하기 힘들 겁니다.”
였습니다.
UX를 제대로 하는 기업은 거의 없습니다
많은 기업과 조직들이 ‘조직·기업의 혁신을 위해 UX를 도입하자’라는 맥락으로 UX를 고려합니다. 그리고 UX를 도입하는 방식은 매우 비슷합니다:
‘혁신조직’이라는 이름의 현업을 진행하는 부서들과는 매우 구분이 되는 새로운 부서를 신설하고, 업무 역시 현재 비지니스 모델과는 가장 거리가 있는 신규 아이템 혹은 리서치를 담당합니다. 많은 기업들이 이런 방식으로 UX를 검토·도입하는 이유는 매우 간단합니다. UX가 우리 회사/조직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에 대한 리스크가 판단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UX는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론이 아닌, 사용자의 경험을 중심으로 모든 것을 보겠다는 관점입니다. 숫자를 기반으로 KPI를 산정하고 관리하는 정량적·이성적 사고방식의 기업에게 경험적·정성적·총체적 관점의 사고방식으로 일을 하라고 하는 것은 회사의 DNA부터 바꿔버리라는 것과 마찬가지인 말입니다. 매출·영업이익·비용 등의 지표들이 1순위 지표들이 아닌, 그 모든 지표들이 스토리텔링이 될 수 있는 새로운 1순위의 기준이 생긴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똑같은 지표를 관리하더라도 그 지표를 대하는 이유와 태도가 완전 달라진다는 것은 즉 그 기업이 일하는 DNA가 바뀌어야 한다는 것과 같은 말입니다.
UX를 도입한다는 것은 그런 의미입니다. 어떤 조직도 쉽고 가볍게 여길 수 없는 투자이며 도박인 게 맞습니다. 그래서 그런 큰 리스크를 감당하기 싫은 조직은 신규 독립조직을 구성하거나, 혹은 특정 부서에만 UX라는 관점을 부분적으로 주입해봅니다.
저는 UX가 실무레벨에서는 결국 고객향 인터페이스 레벨에서 설계/디자인 영역의 일부로만 취급당하는 이유가 바로 이런 환경적인 한계에서 온다고 생각합니다. 영업, 기획, 개발부서는 그렇지 않지만 디자인 부서만 UX관점을 가지고 일을 한다고 해서 그 기업이 UX를 하는 조직이라고 말하기에는 무리가 있습니다. 오히려 그런 조직에서는 실무자들 간의 괴리감만 커져 전체 효율이 떨어지는 문제를 야기하게 되겠죠.
저는 지금 우리나라의 UX가 딱 그 단계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치를 증명하지는 못했지만 산발적/부분적으로 도입만 어설프게 시도되고 있는 단계요.
UX는 적용을 해야 하는 단계가 아닌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입니다
UX라는 개념을 처음 접했을 때의 두근거림이 있었던 분들이라면, 막상 실무에서 업무를 시작했을 때의 그 괴리감 역시 잊기 힘들었을 겁니다. UX가 좋아서 UX Designer라는 타이틀을 겨우겨우 획득했더니 결국 담당하는 일은 고객을 만나는 것도, 리서치도, 기획도 아닌 화면 설계라든가, 아니면 Product 중심적인 사고가 중요하다는 이유로 이제는 고객을 리서치하겠다는 의지마저도 사라지는 조직·기업의 상황을 보면 허무하게 느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UX를 하고 싶은 사람이라면 답답하고 속상하기만 할 수 있는 이 상황 역시 기업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조금 생각이 달라질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많은 기업·조직의 입장에서 ‘UX’란, 반드시 지켜야 하거나 혹은 기업의 근간이 되어야 하는 핵심가치나 관점이라기보다는 지금 기업의 성장과 성공을 가져오는데 시도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방법 중에 하나일 뿐입니다. 기업의 입장에서는 UX를 시도해봤는데 아니다 싶으면 그로스 해킹을 관점으로 일을 시도해볼 수도 있고… Waterfall 방식으로 업무를 하다가 Lean이나 Agile방식으로 업무 프로세스를 새롭게 시도해볼 수도 있고… 이렇게 다양하게 선택하고 시도해볼 수 있는 여러 가지 ‘옵션’중에 하나입니다. 결국 이런 상황에서 UX관점으로 일을 하고 싶은 사람들은 UX를 하고 싶다 말만 하거나 기다리는 것이 아닌 ‘UX의 가치를 증명/검증’하는 절차를 거쳐야만 합니다.
3개월 고객 리서치를 통해 인사이트를 기반으로 도출된 아이디어든, 밤에 자다가 갑자기 꿈에서 뿅 하고 나타난 아이디어든 기업과 조직의 입장에서는 둘 다 검증되지 않은 아이디어입니다. 어떤 아이디어는 논리적으로 조금 더 납득이 될 수도 있고 안 그럴 수도 있지만, 그 논리적 차이조차 기업 입장에서는 그다지 중요한 변수는 아닐 수 있습니다.
정말 제대로 진행된 고객 리서치는 다양한 관점에서 풍부한 인사이트를 제공해주고, 그로 인해 일관된 방향성의 여러 아이디어들을 도출할 수 있도록 도와줍니다. 하지만 많은 UX담당자들이 공을 들여 진행한 고객 리서치에서 나온 아이디어가 ‘정답’이라고 생각하는 발상은 전혀 다른 이야기이고, 매우 위험하고 올바르지 못한 생각입니다.
UX Research의 퍼소나들이 실질적으로 실무 단계에서 미치는 영향력은 ‘방향성이 조금 구체화된 가설의 도출’ 이상이 되기 힘들고, 그 이상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UX Research에서 활용하는 대표 사용자 그룹의 대표성의 범위는 실질적으로 10%를 넘기기 힘듭니다. 이 10%의 대표성을 가지고 있는 경험들을 기반으로 한 인사이트와 아이디어들은 어쩔 때는 나머지 90%의 사용자들까지 만족시키는 경험을 제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의 경우에는 비지니스적으로는 영향이 거의 없거나 심지어 역효과가 일어나는 상황까지 발생하게 됩니다.
UX든 다른 관점의 업무 방식이든 상관없이 검증되지 않고 그 가치가 증명이 되지 않으면 기업의 입장에서는 도입은커녕 진지하게 고려를 할 수도 없습니다.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것, 그것이 지금 UX가 현실적으로 풀어야 하는 현재의 숙제입니다.
우리는 아마 제대로 UX를 할 수 없을 겁니다
UX를 중심으로 서비스와 업무를 바라보기 전, UX라는 관점의 가치 자체를 증명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지금은 제대로 UX를 할 수 없습니다.
내가 개선하려고 하는 이 경험이 서비스에 어떤 임팩트를 가지고 오는지 증명을 하려는 연습을 해야 하고, 거기에서부터 성공사례들을 쌓아서 UX라는 관점에 대한 신뢰를 쌓아야 합니다. 그 어떤 관점도 한두 개의 성공사례로 그 가치를 모두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지금이 가장 힘들 수 있지만 한편으로는 가장 가치 있는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지금 UX를 해 나가시는 분들이 본인의 영역에서, 본인의 자리에서 그 관점을 포기하지 않고 끊임없이 증명하고 그 가치를 나눴으면 좋겠습니다. 그것이 인터페이스의 요소들을 유저 테스팅을 거쳐 완성하는 것이든, 고객 상담을 하는 방식에 대한 프로토콜을 개선하는 것이든, 제품 개발을 하는 프로세스에 경험에 대한 고민을 하는 단계를 반드시 포함하는 것이든 모두 다 가치가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리고 꼭 UX의 이름으로 한 일들의 가치를 증명, 검증하려고 했으면 좋겠습니다. 정성적인 영역에 UX의 임팩트를 방치했다가 타 부서의 성과에 눈 뜨고 코 베이듯 뺏겨가지 말고 최대한 검증을 해보려 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결국 데이터라는 것과 친해지셔야 하기는 할 것 같습니다. KPI를 기준으로 UX를 소통했을 때의 임팩트를 경험해본 바로는, 정말 시도해볼 가치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KPI를 기준으로 소통을 했을 때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조직이 있기는 하지만… 거기는 사실 원래부터 답이 없다고 생각하시면 맘은 편하실지도…
아마 앞으로도 당분간은 UX를 제대로 하는 사례는 찾기 힘들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저는 제 자리에서 제가 할 수 있는 부분들에 있어서 최선을 다해보려 합니다. 지금은 도전해볼 수 있을 만한, 그만큼 신뢰를 받고 있는 환경에 있으니까요.
여러분들의 도전을 응원합니다. 많이 검증하시고, 많이 실패하시고, 결국 많이 성공하세요!
원문: Ji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