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녀 차별은 사회문제다. 사회문제라 함은 ‘문화나 제도의 결함이나 모순, 사회구성원들의 집합적 행동에 따라 발생하는 문제로, 사회구성원들이 많든 적든 관심을 가져야 할 문제’ 정도로 정의할 수 있다. 간단히 말해서 사회 전체의 층위에서 다루어야 할 문제란 뜻이다. 남녀 차별이 사회문제임은 굳이 수많은 통계들을 들고 오지 않아도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동의하는 바일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이 말하는 ‘역차별’은 무엇일까? 남녀 차별 문제에서는 여성이 더 약자의 위치에 있는데, 그 반대로 남자가 약자의 위치에 있는 상황을 가리키는 개념으로 보인다. 즉, 방향이 반대란 의미로 역(逆)이라는 접두어를 붙인 것이다. 하지만 나는 남녀 역차별은 없다고 생각한다.
이해를 돕기 위해 비유를 해보자. 남자들은 여자들보다 평균적으로 키가 크다. ‘키가 크다’는 것은 사회 제도적 문제는 아니긴 하지만, 편의상 이것을 ‘남녀차별 문제에 있어 남자가 여자보다 더 강자의 위치에 있다’는 뜻으로 대입해보자.
이 비유에서 역차별의 개념은 곧, ‘여자가 남자보다 평균적으로 키가 크다.’라고 주장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개념상 틀린 주장이란 뜻이다. (굳이 여기서 왜 이 명제가 틀렸는지 자세히 논증하지는 않겠다. 간단히 말하자면, 고위직 여성 비율, 여성 수입 통계, 성범죄 통계 등 다양한 증거들을 찾아봐도, 전체 남자집단의 평균이 더 불리한 경우는 아마 찾아보기 어려울 것이다. )
사회문제로서 역차별이라는 개념은 성립하지 않지만, 저 말을 쓰는 사람들이 어떤 이유에서 쓰는지는 짐작이 간다. 분명 여자가 강자인 개별 사례가 있을 수 있다. 비유에 따르자면, ‘남자보다 키가 큰 여자도 (소수지만) 있다’는 말로 바꿔 생각하면 된다.
예를 들어 회사에서 배포되는 직장 내 성희롱 교재에도 거의 필수적으로 여자가 가해자인 사례는 소개되며 실제로 판례들을 보면 그런 사례들은 늘 있었다. 실제로 몇천만 명이 살고 있는 이 복잡한 한국사회에서, 여자가 강자인 상황이 단 하나도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들은 아마도 없을 것이다. 역차별을 이야기하는 사람들은, 악의적이든 무의식적이든 간에 자신이 겪은 이런 개별 경험들을 이야기하고 싶었던 거라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개별 경험들은 남녀 차별 문제에서 여자가 약자라는 엄연한 구조적 사실을 흔들 만큼 보편화된 현상은 아니다. 그 개별사례들은 ‘역차별’에 대한 증거가 아니라, 그냥 또 다른 차별사례가 있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이런 사례들은 굳이, 남녀차별이라는 사회문제를 부정하지 않고도 따로 논의될 수 있다. 아직까진 사회 전체의 문제가 아닌, 특수 집단의 문제나 개별 사례로서 다룰만한 정도라 본다.
우리가 주의해야 할 점은, 남녀 역차별이 없다고 해서 ‘남자가 약자인 경우는 아예 없다’라든지, ‘이 문제에서 당신은 강자이니, 다른 종류의 차별은 받을 리가 없다’라든지, ‘당신은 역사적으로 강자집단에 속했으니, 손해를 감수해야’라는 식으로 생각해버리는 것이다.
이 논리는 남녀 차별문제를 벗어나서 생각하면 금세 이상함을 느낄 수 있다. ‘정상인이 장애인이 될 리가 없다’, ‘정상인은 장애인보다 강자이니, 다른 차별을 받을 리가 없다.’, ‘당신은 이제껏 정상인으로 살아왔으니, (다른 종류의) 장애인이 된다고 해도 장애인 인권을 주장해서는 안 된다’라고 바꿔 본다면, 모두가 동의할 수 있는가?
현실적으로 사회문제들은 경중이 있고, 우선순위가 있다. 하지만 모든 종류의 차별은 언젠가는 해결되어야 할 문제들이다. 높은 우선순위를 얻기 위해 논의와 논쟁은 불가피하지만, 그게 극단적이 되어 엄연히 존재하는 사회문제를 없는 셈 친다든지, 불행배틀처럼 개별 사안의 경중을 놓고 심각하게 싸운다든지 하는 건 사회 전체의 문제 해결 역량을 깎아 먹는 일일 것이다.
우리가 가져야 할 태도는 사회 전체의 문제에 관심을 가지되, 개별 문제들을 해결하는 최적의 방법들을 그때그때 고민하는 것이다. 사회가 복잡한 만큼 쉬운 답은 없다. 다만 쉽지 않은 답을 쉽게 해결하려 들면, 남은 건 갈등이 증폭되는 길밖에 없다.
원문: 괴골 [개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