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실 많은 초기 기업들이 무너지는 이유는 외부적 환경 요인 때문이 아니다. 조직과 같은 내부적 환경 요인 때문이다. 실제로 불과 1~2년 전과 달리 국내 스타트업의 분위기는 매우 달라졌고, 그와 함께 덩달아 많이 나오고 있는 것이 스타트업의 실패담이다. 그리고 이는 자신이 쌓아왔던 감정을 분출하듯 비판적 글들이 많았다.
그러한 글들을 접하면서 나는 아무런 반문을 할 수가 없었다. 훗날 사업을 종료하고서 오랜만에 만난 우리 팀원들에게 들었던 속마음과 비슷했기 때문이다. 지금도 주변의 스타트업 대표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경쟁사 이야기보단 내부적 문제에 대한 고민이 대화의 과반수를 차지하고 있다.
이에 팀원과 타인의 이야기, 그리고 내가 팀원이었을 때의 경험으로 퇴사를 결정하는 주된 이유를 나열해보고자 한다.
소통 부재 : 내부 갈등
먼저 CEO들은 조직관리를 잘할 수가 없다. 첫 번째로 조직관리의 경험이 부족한 경우가 제일 많았고, 두 번째로 조직관리를 자신이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조직 관리인을 따로 둠으로서 관리를 담당하는 팀원이 지쳐가는 경우가 있었다.
사실 첫 번째는 상관이 없다. 초기 기업에서 조직관리는 내 경험상 특별한 무언가가 요구되는 것이 아니었다. 경험이 부족하다는 사실을 경영자 본인이 자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괜히 무엇인가 해야만 할 것 같고, 그렇기 때문에 체계화된 기업의 성격을 보여주기 위해서라도 KPI를 알아본다던지 사내 규정을 만들어본다는지 등의 행정적 움직임이 조직관리에 도움 되리라 판단되기 때문이었다.
가장 최악이라고 생각이 드는 사례는 경영자가 ‘자신은 팀원이 아니다’라는 생각으로 중간관리자를 억누르고 쥐어짜면 밑 조직이 순응할 것이라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은 CEO가 자신이 건설한 왕국에서 벌일 수 있는 갑질 행위라고밖에 설명할 방도가 없다.
무엇이 잘못일까? 입장을 바꿔 생각해보면 된다. 팀원의 입장에서 갈등의 이유는 단순하다. 경영진과 일반 팀원들을 중재해야 하는 중간급 창업 멤버라 할지라도, 혹은 일심동체의 팀원들로 구성되어 있다 하더라도 어디에선가 소통이 단절되었다. 그것이 전부다. 함께 무엇인가 창조하고 도전하자고 모여있는 이 작은 공간에서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투명하게 밝혀져야 하는데 항상 바쁜 CEO는 어딜 그렇게 다니는지 알 턱이 없고, 회사가 무엇이 어떻게 되고 있는지가 공유되지 않는다.
실제로 나 또한 팀원들에게 비치는 나의 모습을 듣고 굉장히 충격을 받았던 적이 있다. 내가 대외적으로 활동하는 모습들이 마치 회사가 아닌 나의 개인주의적 행동이라고 오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팀원들에게 급여를 주면서 정작 내 급여가 없던 시절 최소한의 생활비 때문에 강연이든 멘토링이든 활동을 했던 적이 없지 않아 있었다. 하지만 팀원들은 “그 속마음을 같이 나눌 수 있었길 바랐다”라고 전해왔다. 그때 느낀 것이 바로 소통의 부재로 인한 조직관리의 실패였다.
내부 갈등과 사내정치는 CEO의 행동에서부터 나온다고 믿는다. 팀원들은 ‘항상 함께’이길 원하는 것이 아니라 사소한 것이라도 ‘함께 나눌 수 있는’ 구성원이길 원한다. 하지만 경영자는 ‘적당히’를 염두한다는 것이다.
소외감 : 팀워크
팀원이 퇴사하려 할 때, 팀원은 자신이 팀에서 소속감이 사라졌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초기 기업일수록 팀원은 경영진의 리더십이나 풍기는 에너지를 믿고 따라오는 경우가 훨씬 크다. 그런 친구들은 충성심이 매우 뛰어나기 마련이다.
그런데 그런 충성심을 믿고 안일하게 행동하는 경영자도 더러 있다. 경영자는 익숙해지니 믿고 신경 안 쓰지만, 팀원의 입장에선 자신이 대표의 대리 수행을 하면서도 의사결정권은 없기 때문에 본인 스스로를 포함한 조직 전체에서 자신의 정체성의 혼란을 받게 된다.
경영자가 ‘적당히’ 거리를 두기 시작할 때 팀원은 원동력이었던 대상으로부터 미움이 만들어진다. 그러다 문득 팀에 어떤 문제라도 하나 발생되어보자. 일은 일대로, 관리는 관리대로, 화살은 화살대로 받게 되는데 이는 온전한 조직문화를 갖춘 기업이라면 사실 문제가 안 된다.
초기기업은 일심동체 팀워크가 생명이다. 그런데 감정 소모가 일어나게 된다. 그러면 팀원은 자신이 ‘동료’가 아닌 일개 ‘부하직원’이라는 느낌을 확신하게 된다. 이때쯤 조직을 벗어날 준비를 한다.
일례로 어느 한 조직에 내가 중간관리자로 들어갔을 때, 한 경영자는 내가 ‘자신의 대변인’이 되어주길 원했다. 그에 반해 기존 팀원들은 나를 외부인이 아닌 자신들을 밀어내는 역할이라 생각했고, 그것은 그대로 경영자에 대한 ‘서운함의 대상자’로 낙인찍히는 결과로 돌아왔다.
내가 대표직을 맡고 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점점 비즈니스적인 결정이 요구되고 민감한 사항이 만들어지면서 난 중요한 결정을 할 때 주주와 외부 관계자들의 의사에 충실하게 대했다. 하지만 팀원은 나에게 이렇게 말했다.
“중요한 결정에 내가 의견을 제시 못 해서 서운한 것이 아니다. 만약 동료로 인정해주었다면, 그리고 진짜 창업 멤버로 인정해주었다면 ‘그런 이슈가 있는데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을 것이다. 혹은 양해를 부탁한다’ 정도의 공감이라도 나누는 것이 우리 모두가 여기에 있는 합당한 이유가 되었을 것”라고 말이다.
‘환상’에서 ‘현실’로
스타트업의 현실을 다룬 기사나 경종의 기고문들은 심심찮게 나오고 있다. 지금의 대한민국 스타트업은 여전히 따라 하기 바쁜 한국인들의 특성을 대변하듯 너도나도 모조리 스타트업에 빠져있는 것 같다. 하지만 정작 스타트업의 생태계는 변하지 않았다. 박봉에 밤샘, 젊은 꼰대의 갑질, 생각보다 열악한 환경.
양쪽 모두의 측면으로 바라볼 수 있다. 첫 번째는 소위 ‘스타트업’이면 젊은이들을 마음껏 사용할 수 있을 거라는 일부 몰지각한 영세기업에서 스타트업이라는 단어를 악용했다는 것이다. 두 번째는 남들과 똑같이 하면서 성공을 기대하거나, 보이는 부분만을 판단하여 내가 손해를 보고 있다는 잘못된 생각이다.
스타트업이라 해서 근로기준법을 지키지 않아도 되는 것도 아니고, 가난해야만 할 필요가 없고, 법적 이슈를 눈감아줘야 하는 것도 아니다. 스타트업이라면 본질에 집중해서 일단 회사를 안정화시켜놓고 문제를 개선해 나가야 하는 것도 맞는 말이다.
따라서 이 문제는 비즈니스를 우선시해야 하는 경영자와 자신의 삶을 우선시해야 하는 팀원 간에 충돌이 빚어질 수밖에 없는 대표적인 딜레마 중 하나인 것이다. 소통이 안 되고 내부 갈등이 불거지면 다음으로 겪는 것이 바로 이러한 사실관계의 적합성 진단이다. 그것을 우리는 현실이라고 부른다.
억압된 환경, 갇혀진 생각 : 자유와 자율
자유와 자율의 사전적 의미 또한 되짚어 볼 필요가 있다. 자유란 ‘외부적인 구속이나 무엇에 얽매이지 않고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상태’인 반면, 자율은 ‘남의 지배나 구속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의 원칙에 따라 어떤 일을 하는 일’이라고 한다. 회사에서 조직에게 ‘자유’를 주는 것과 ‘자율’을 주는 것은 매우 다르다.
회사에서 고된 업무의 보상으로 유연 근무제를 도입하거나 원하는 시간에 휴식시간을 부여하는 것을 팀원들은 ‘자유’라고 판단할 가능성이 높다. 여기는 회사이며, 규정과 규율 속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것은 ‘자율’이라는 것이 초기에 명확해지지 않으면 뒤늦게 마련된 규정과 규율로 인해 팀원들은 ‘자유를 박탈당한다’라고 느끼게 되며, 이는 ‘회사가 변했다’라고 생각하게 마련이다. 이는 대단히 중요한 사안이다. 최고 경영진이 팀의 결속을 위해 항상 자주 언급해야 하는 소통 중 하나라고 생각한다.
초기 창업 멤버든, 뒤늦게 합류한 멤버든 간에 가장 중요한 것은 함께 의지하며 마음을 나누어야 하는 인간적 소통이다. 이 소통의 부재는 조직의 붕괴로 이어질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다.
나의 꿈을 우리의 꿈으로 만들고, 보이지 않는 길고 험난한 도전에 누군가의 인생 일부가 여정에 스며들어야 하는 것은 실로 중요한 문제다. 지난날 나는 나만 외로운 줄 알았다. 그러나 내가 마주했던 팀원들은 결국 외로웠기 때문에 떠나더라. 우리 모두가 생각해보자.
원문: 김지호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