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해 10월 26일, tvN 드라마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이한빛 PD가 스스로 목숨을 끊는 일이 발생했다. 그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되는 ‘좋은 드라마’를 만들고 싶어 tvN에 입사했고 바람대로 ‘청년들을 위로하는 드라마’ 혼술남녀를 함께 만들었다. 그러나 그는 역설적으로 드라마가 마지막 방송이 되던 날 유서 한 장을 남기고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촬영장에서 스탭들이 농담 반 진담 반 건네는 ‘노동 착취’라는 단어가 가슴을 후벼 팠어요. 물론 나도 노동자에 불과하지만, 적어도 그네들 앞에선 노동자를 쥐어짜는 관리자 이상도 이하도 아니니까요.
하루에 20시간 넘는 노동을 부과하고 두세 시간 재운 뒤 다시 현장으로 노동자를 불러내고 우리가 원하는 결과물을 만들기 위해 이미 지쳐있는 노동자들을 독촉하고 등 떠밀고 제가 가장 경멸했던 삶이기에 더 이어가긴 어려웠어요.”
– 고인의 유서 중
세상에 사건이 알려진 것은 고인의 죽음 이후 6개월 뒤인 2017년 4월 18일 대책위와 유가족이 준비한 기자회견을 통해서였다. 그 후, 많은 사람들이 잘 아는 것처럼 많은 시민들이 故 이한빛 PD 사건에 공감하고 함께 문제해결에 나서주었다.
그리고 지난 7월, tvN 운영사 CJ E&M은 故 이한빛 PD의 사망 책임이 ‘개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며, ‘그동안 관행이라 얘기됐던 방송 제작 환경’에게 있음을 인정하고 공식적으로 사과했다. 또한, 카메라 뒤의 노동을 기억하며 방송 제작환경과 문화를 개선하기 위한 개선과제를 약속하고 적정노동시간과 휴식시간, 합리적 표준 근로계약서 마련 등 9가지 약속을 꼭 실천해가겠다고 약속했다. 추후에 청년유니온과 유가족은 개선 대책의 이행 여부를 점검해가기로 회사와 협의했다.
‘tvn-사망사건대책위’는 이한빛 PD의 죽음을 계기로 방송업계의 노동조건과 현실을 사회적으로 공론화하고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방송제작환경제도개선 연구모임’을 만들어 방송 제작 환경 개선을 위한 연구를 진행했다. 이한빛 PD가 겪었던 문제들은 결코 그가 처한 특수한 상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나약한 개인이 되거나, 관행을 강요하는 존재가 되거나
연구 사업을 통해 마주했던 현실에는 ‘이 바닥은 원래 그렇다’라는 식으로 묘사되는 제작 현장의 문제들이 존재했다. 생방송으로 촬영되는 제작구조에서 짧은 제작기간과 드라마 제작비용의 문제는 어쩔 수 없는 것으로 되었다. 꿈이 있어 제작현장에 들어왔기 때문에 방송의 질을 담보하기 위한 장시간·고강도 노동은 어쩔 수 없는 일이고, 타이트한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군대식 조직문화는 당연한 일로 치부되었다.
“아래에서는 계속 번아웃 되는 거예요. 일이 끊임없이 돌아가고, 아무것도 변하지 않는 환경에서 계속해서 번아웃이 되는데, 위에서는 그냥 ‘힘내자’, ‘계속 이렇게 하자. 잘 해왔지 않냐’ 그냥 이런 식으로만 돌아가니까, 그거에 대해서 되게 1차적으로는 많이 지치는 것도 있고.
그리고 2차적으로는 보람이 없는 것도 있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다들 뭐 어느 정도의 창작이나 뭐, 아니면 이런 크리에이터가 되고 싶은 욕구를 가지고 들어온 건데. 들어와서 한다는 거는 시키는 것밖에 할 수가 없어요. 그렇다고 해서 의견을 아무리 개진한다고 해도 들어주지 않아요.
결국에는 자기들이 원하는 대로 흘러가고, 그나마도 자기들이 원하는 것도 최대한의 저비용을 들여야 하기 때문에 되게 창피한 퀄리티가 나오는데 그냥 일단 방송이 나왔으니까 위에서는 된 거예요. 왜냐하면 그걸로 자기들은 한 줄을 적을 수가 있거든요. 그런 거를 계속해서 만들다 보면 당연히 업무에 대한 보람도 없어지고.” – PD(AD) 3년차 A
“드라마 촬영이 시작되면, 1일 평균 20시간 일한다.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쉰다. 그런데, 정말 잠만 잔다. 쉬는 날도 약속을 잡을 수 없다. 피로가 축적이 돼 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하루 쉰다고 해도 새벽 2~3시에 들어와서 씻으면 4~5시. 잠만 자고 저녁 8시에 일어나 밥 먹고 다음 날 촬영 나가고 그 정도, 이게 쉬는 날 일과였다.
가장 길게 일을 한때는 아침 7시 시작해서 오후 4시에 끝나고 오후 6시에 모이라고 했다. 그래서 촬영팀 모두 찜질방에 가서 단체로 씻고 나왔고 그렇게 40시간 가까이 일을 했다. 그때는 몸이 제 맘대로 안 움직인다. 커피, 카페인 음료를 계속 먹고. 안 그러면 몸이 안 움직이니까. 방송업계의 특수성을 감안해서 12시간만 돼도 감사할 것 같다” – 촬영 1년차 I
“하루도 쉬지 않고 최대 50일 일했다. 이동시간에만 잤다. 그 촬영은 a팀밖에 없기도 했다. 보통 드라마 제작은 두 개의 팀으로 운영된다. 스케줄이 많아지면 한 팀을 더 꾸린다. 일주일에 2회분 찍는 것이 워낙 힘들기 때문이다.” – 조명 6년차 G
방송업계 노동자들은 하루 평균 19.18시간, 평균 휴일 주 0.9일, 1주 평균 노동시간 116.8시간을 일했다.(※ [1]) 단순히 노동시간이 긴 문제만이 아니었다. 오늘 촬영이 몇 시에 끝날지, 휴일은 언제일지 알 수 없었다. 휴게시간은 기대할 수도 없었다.
이 외에도 늦은 시간에 일이 끝났지만 집에 갈 차비를 제공받지 못해 근처 찜질방에서 잠을 청하고 다시 현장으로 향해야 했던 노동자, 밤샘 촬영으로 졸음이 오는 상태에서 장비차를 운전해야 하는 노동자, 촬영으로 인해 병원 갈 시간이 없어 꿰맨 실밥을 자기가 직접 풀어야 했던 노동자들이 존재했다.
방송업계의 관행을 버티지 못한 채 떠나면 나약한 개인이 되어버렸고, 끝까지 버텨 어느 지위에 오르면 또 다른 누군가에게 관행을 강요하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오랫동안 쳇바퀴 돌아왔던 업계의 관행, 고유한 시스템처럼 자리 잡아버린 구조들은 누군가의 희생을 통해 단단한 벽으로 존재했다.
하지만 ‘원래 그런 것’은 없었다
지금은 방송 제작이 외주제작사에 의해 만들어지는 게 당연하게 느껴지고 하나의 드라마를 제작할 때 계약직, 프리랜서 등 불안정한 고용관계가 뿌리 박혀있지만, 처음부터 그런 것은 아니었다. 방송사의 외주제작 의무편성비율이 시행된 건 1990년 8월에 방송법이 의결된 이후부터고 외주제작 프로그램의 지상파 편성이 의무편성비율을 초과한 건 2003년부터다. 또한, 모든 나라에서 방송촬영을 밤새하거나 생방송으로 촬영하는 것도 아니다.
‘원래 그렇다’는 건 현행 구조를 유지하기 위해 사용될 뿐 정당화할 순 없다. 원래 그래야 하는 것은 ‘인간의 존엄성’을 보장하기 위한 인권, 임금, 노동시간 등 사회적 기준을 말할 때뿐이다.
다행스럽게도 이한빛 PD 사건 이후, ‘원래 그래야 하는 것’들이 제 역할을 하는 것을 마주하고 있다. 이한빛 PD 사건에 책임을 져야 하는 CJ E&M의 대표가 직접 나서 사과를 하고 방송제작환경을 바꾸기 위한 약속을 했고 노동시간의 상한선과 특례폐지, 최소 휴식권 도입을 위한 논의가 국회 차원에서 진행되고 있다. 그리고 방송통신위원회와 고용노동부, 문화체육관광부가 함께 방송제작환경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하고 있으며 고용노동부는 방송제작에 대한 근로감독과 개선사업을 진행하겠다고 밝혔다.
이전에 없었던 변화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은 분명하다.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우려하는 것처럼 지금의 시도들이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사람들이 체감하는 변화로 단숨에 이어질 것이라 생각하지 않는다. 오랫동안 굳어진 관행을 뽑아내기 위해선 몇 차례의 시도와 노력만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현장을 바꾸어내는 것은 결국 이한빛 PD 사건 해결의 과정이 그러했듯 ‘카메라 뒤의 노동을 기억하는 시청자들’, ‘만드는 사람이 행복해야 한다는 것을 끈질기게 주장하는 노동자들’의 끈질긴 외침을 통해서일 거다. 오늘 하루도 일터에서 치열한 시간을 보냈을 수많은 이한빛을 떠올리며 서로가 변화의 근거가 될 수 있길 바란다.
원문: 진보적 미디어운동 연구저널 ACT! / 필자: 전진희 (청년유니온)
※ [1] *주1. 드라마/방송 현장 내 노동실태와 폭력에 대한 제보센터 1차 분석 결과. tvN <혼술남녀> 신입 조연출 사망사건 대책위원회. 2017.5.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