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이번 무도가요제에서 프라이머리 표절 논란이 나왔다. 거기에 대한 설왕설래를 보면서 4년 전 올림픽대로 가요제에서 타이거 JK, 윤미래, 유재석이 함께했던 곡인 ‘Let’s Dance’가 생각났다.
Let’s Dance는 벨기에 출신의 댄스랩 그룹 테크노트로닉 (Technotronic)의 세계적인 히트곡 ‘Get Up’과 완전히 유사한 노래이다. 90년대 초반 팝 음악 좀 들었던 분은 아마 바로 알아채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아예 빼다 박은 곡이다. 글쓴이도 듣자마자 바로 ‘어? 이렇게 베껴도 되나?’ 싶었다. 그때 이 노래에 대해서는 표절 이야기한 사람이 별로 없었는데 이번에 유독 문제가 되는 것이 의아했다. (필자의 앨범 리뷰)
2. 그때는 ‘아, 이게 정식으로 샘플링을 해서 만든 노래라 별문제가 없나보다’라고 생각했다. 하도 문제를 제기하는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 프라이머리가 문제가 되길래 ‘Let’s Dance’ 관련 크레딧을 찾아봤는데 샘플링 원작자 표시가 전혀 안 되어 있었다. 원래 샘플링을 했으면 누구의 무슨 노래에서 샘플링을 했는지 표시를 해줘야 하고 관련 저작권료도 주어야 한다.
예를 들어, 에미넴 (Eminem)의 유명한 히트곡 ‘Stan’은 영국의 여가수 다이도 (Dido)의 ‘Thank You’라는 노래에서 샘플을 가져왔다. 그럴 경우 This song contains samples from ‘Thank you’, 즉 “이 노래는 ‘thank you’라는 노래에서 가져온 샘플링을 포함하고 있다”라는 문구를 포함하게 된다. 그리고 관련 비용이 원저작권자에게 지급된다.
‘Let’s Dance’에 샘플링 출처 표기가 안되어 있다는 것은 그냥 무단으로 ‘Get Up’을 베낀 것이다. 필자가 자주 가는 게시판의 한 유저분께서 해주신 이야기를 들어보니, Let’s Dance의 경우는 그냥 “가져다 쓴 거 맞다” 라고 이야기하고는 별 이야기 없이 그냥 넘어간 모양이다. 즉 샘플링한 것은 맞지만 샘플링 표시도 안 했고 관련 저작권료 지급도 안 한 것 같다.
3. 논문을 쓸 때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하게 되는데, 그때는 누가 언제 쓴 글에서 문구를 인용했다는 표시를 한다. 보통 ‘….. (델리키트, 2013)’ 이런 식으로 인용한 부분에는 앞뒤로 인용부호를 붙이고 글 맨 뒤의 참고문헌 목록, 혹은 각주로 어떤 글인지 알려준다. 물론 이런 식의 인용에는 저작권료가 지급되는 것은 아니다(…)
샘플링이라는 것은 이 ‘인용’과 비슷하다. 다른 사람의 저작물을 훼손하지 않으면서 내가 필요한 부분만 가져다가 쓰고, 거기에 내 생각을 덧붙여서 새로운 것을 만든다. 인용이나 샘플링이 포함되었다고 해도 그것은 원래 오리지널과는 다른 새로운 창작물의 일부가 되는 것이다.
논문이나 글을 쓸 때도 인용의 출처를 밝히지 않고 마치 내 생각인 양 쓰면 그것은 표절이다. 샘플링도 마찬가지고.
4. 사실 프라이머리의 경우는 빅밴드 재즈 음악을 샘플링했고, 이럴 경우 노래가 비슷해질 수는 있다. ‘장르 특성상…’ 운운하는 프라이머리의 해명이 ‘희대의 X드립’이라는 말을 듣는 것 같던데, 프라이머리의 표절 여부를 떠나서 사실 이렇게 복고적인 빅밴드 재즈를 기초로 힙합을 만들 경우, 비슷한 색깔의 음악이 나올 수 있는 것은 사실이다. 오히려 타이거 JK의 ‘Let’s Dance’는 빼도박도 못하는 표절이라 생각하지만.
그런데 이렇게 샘플링을 해놓고 샘플링 출처를 안 밝히는 것이 비단 타이거 JK만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나라 힙합계 전체의 문제이고, 이 문제는 인디와 메이저를 가리지 않는다.
개인적인 의견을 밝히자면, 샘플링을 할 때 출처는 꼭 밝혀야 한다는 입장이며 (즉 누구의 어떤 음악에서 따왔다는 표시는 해줘야 한다), 거기에 대해서 큰 액수의 저작권료를 지불하는 것이 무조건 합당하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쓸 때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했다고 해서 원작자에게 저작권료를 줄 필요가 없는 것처럼 말이다. 위에서 이야기했듯, 다른 사람의 글을 인용했지만, 그것을 통해서 새로운 제2, 제3의 결과물을 만들었다면 그것은 또 다른 ‘새로운 창작물’이라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영미음악계의 경우 뮤지션, 평론가, 관련 학자들은 ‘샘플링 출처만 제대로 밝혀주면 됐지 거기에 꼭 돈을 쥐어 주어야 하나?’라는 의견을 가진 사람이 많다 (일례로 <Free Culture>, <Remix> 등 디지털 시대의 저작권 문제에 관한 논의를 쓴 Lawrence Lessig 같은 학자).
샘플링 및 표절 관련해서 저작권료에 초점을 맞추는 사람들은 오히려 해당 음악인인 경우보다는 그 음원에 대한 저작권료 징수 권리를 가지고 있는 음반사인 경우가 대부분이고, 재판 역시 해당 음반사 (및 그들과 관련된 법조인)의 의사 결정으로 이루어진다. (다시 강조하지만, ‘출처를 밝히는 일’은 물론 중요하다)
5. 이 저작권료 관련 이슈에 대해서는 의견이 엇갈릴 수 있다고 생각한다. 90년대 중후반 전 세계 최고의 히트곡 중 하나인 버브 (The Verve)의 <Bittersweet Symphony>가 표절 논란에 휘말리며 엄청난 배상금을 물어준 일, 90년대 초반의 인기 가수였던 마이클 볼튼 (Michael Bolton)의 빅히트곡 <Love is a Wonderful Thing>이 표절 판정을 받아 해당 곡이 실린 앨범 「Time, Love and Tenderness」(1991)가 절판 조치가 되어버린 것 등 이런 일은 사실 영미음악권에서도 종종 일어나던 일이다.
그리고 그러한 논란은 여전히 현재진행형이기도 하다. 올해 미국 빌보드 차트 최고의 히트곡인 로빈 시크 (Robin Thicke)와 페럴 (Pharrell)의 ‘Blurred Lines’가 마빈 게이 (Marvin Gaye)의 ‘Got to Give Up Pt. 2’를 표절했다는 이야기가 들려오는 걸 보면, 이 ‘샘플링과 표절’ 문제는 여전히 대중음악계의 첨예한 이슈 중 하나이기도 하다.
음악 제작의 방식이 바뀌고 창작의 개념도 바뀐 지 오래인데 저작권법은 여전히 구체제의 산물에서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또 음악인과 청자들의 윤리 의식 및 개념 역시 달라진 제작 방식/창작 개념과는 어떤 부분에 있어서는 상충하는 부분도 있다.
그렇지만, 국내 힙합 음악의 팬인 내 생각에도 이 ‘무단 도용’ 건에 대해서 만큼은 우리나라 뮤지션들은 인디건 언더건 모두 변명의 여지가 없다고 본다. 창작의 개념이 변한 시대인지라 이런 문제는 앞으로도 계~~속 나올 텐데, 언제까지 이렇게 출처 표시도 없는 무단 도용을 아무렇지도 않게 할 것인지 좀 답답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