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글을 아주 잘 써서 먹고 살겠다는 생각은 잘못된 발상에 가깝다. 글 실력이 뛰어나서, 글을 ‘아주 잘’ 쓴다는 이유로 먹고사는 경우는 잘 없다. 오히려 조금 더 정확한 발상을 한다면, 유명세를 얻어(인지도를 높여) 글을 쓰고 먹고 살겠다는 것이 보다 현실적이다. 글을 통해 먹고 사는 경우의 절대다수는 ‘유명한 인물’이 ‘글을 쓰기’ 때문이지, 글 실력을 아주 열심히 연마하여 글을 아주 잘 쓰기 때문은 아니다. 유명한 글쟁이 중에 소수의 글 잘 쓰는 사람이 있을 뿐이다.
그렇기 때문에, 애초에 글을 쓰는 일로 먹고살고 싶다면, 글 실력을 연마하는 것은 ‘부(sub)’로 하고, 유명세를 얻는 일을 ‘주(main)’로 하는 것이 올바른 발상이다. 실제로 현재 잘 나가는 글쟁이들, 그러니까, 글을 통해 충분한 수입을 얻고 글 쓰는 일을 일종의 직업으로 정착해 낸 이들이 거의 다 이런 루트를 밟았다. 물론 기본을 갖춘 글쓰기 실력이나 적당한 생각의 깊이가 시너지 효과를 발휘하여, 글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인지도를 높이는 데 도움을 주긴 했을 것이다.
다시 말해, ‘글을 잘 쓰는 일 =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은 잘못된 등식이다. 차라리,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 = 유명세를 얻는 일 = 자기 브랜드를 만드는 일 = 자기 자신을 가지고 일종의 사업을 하는 일’이라는 공식 쪽이 더 정확하다.
2.
글 자체의 내용적 심오함이나 독특하고 뛰어난 발상, 유려한 문체 등은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과는 크게 관련이 없다(오히려 이러한 각각의 요소들은 지나치게 뛰어날수록 글 써서 먹고 사는 일에 방해될 수 있다).
대부분 우리의 마음에 닿아 울리는 이야기들, 뛰어난 통찰력을 가진 것처럼 보이는 이야기들은 다른 곳에서 반복된 것들이다. 단지 우리에게까지 전달된 시점이 각자 다르고, 그것이 전달되었기 때문에 우리가 감응하는 것이지 그 콘텐츠(책) 자체가 정말 남다른 통찰력과 엄청난 발상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에게 충격이나 감동을 주는 것이 아니다.
예를 들어, 아주 훌륭한 시대적이거나 인간적인 통찰이 어떤 유명한 작가에 의해 우리에게 닿았다고 하자. 그런데, 그 내용은 그보다 덜 유명하거나, 나와 만날 맥락이 적었던 다른 곳에서 이미 말해졌을 가능성이 100%에 가깝다.
물론 모든 글이 똑같을 수는 없고, 작가마다 다른 스타일이나 나름대로 제시하는 고유한 맥락 같은 것도 있겠지만 굳이 그 글이 아니어도 다른 글로도 거의 유사한 내용은 얼마든지 전달받을 수 있다. 단지 그 글이 어떤 높은 인지도와 영향력과 유명세 등으로 나에게 전달되었을 뿐이다. 그 글이 그렇게 유난히 특별해서가 아니다.
물론, ‘그래도 아주 독창적이고 깊이 있으며 유려한 글을 써낼 수만 있다면, 먹고 사는 일에 도움이 될 수 있지 않을까?’라고 보수적으로 물을 수 있다. 당연히 도움이 된다. 하지만 (계량하기 쉽지는 않겠지만) 글 실력을 100배 정도 늘리는 일 보다 자신의 인지도를 10배 정도 늘리는 일이 여전히 ‘먹고 사는’ 일과 훨씬 더 가까울 것이다.
글의 내용과 스타일 등을 포괄하는 ‘실력’은 적당한 정도면 된다. 적당한 수준 이상의 글쓰기 실력 연마는 ‘먹고 사는’ 데 거의 영향을 주지 않는다. 생각의 깊이, 심오한 내용, 뛰어난 통찰력 등도 어느 시점을 넘어가면 먹고 사는 일에는 쓸모가 없다.
3.
글 써서 먹고 사는 일에서는 다른 무엇보다 ‘우연’이 굉장히 중요하게 작용한다. 달리 말해, 이 우연은 ‘인연’이다. 거의 몇몇 결정적인 우연한 인연이 글 써서 ‘먹고 사는’ 일을 결정한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단행본을 5권을 출간했고, 이 5권이 적절히 초판을 소화해서 총 1~2만 부 정도 팔렸다 해도 ‘적절한 인연’에게 운 좋게 닿지 못했다면 그는 글을 써서 먹고 살지 못한다. 5권 써서 2~3천만 원 정도를 버는 것인데, 매년 책을 5권씩 쓰지 않는 이상 어떻게 먹고살겠는가?
그런데 그 1~2만 명의 독자 중에서 어느 정도 파급력 있는 언론사의 기자가 몇 명, 강연 프로그램을 담당하는 도서관 사서가 몇 명, 방송사 작가가 몇 명, 정부 기관의 심의위원 등 대략 20명 정도의 ‘적절한 인연’이 포함되어 있다고 해보자. 이 글쟁이가 글 써서 먹고 살 수 있는 확률은 훨씬 올라간다. 신문사나 잡지사에 기고하여 원고료를 받거나, 도서관 특강 및 몇 주간의 수업을 맡을 수도 있고, 방소 출연을 통해 인지도를 높이고, 정부의 지원 대상이 되거나 정부 기관에 초청을 받을 수 있다.
이런 일들은 ‘먹고 사는’ 데 확실히 도움이 된다. 대체로 글 써서 먹고 사는 사람의 경우, 이러한 부가적인 일을 통해 얻고 벌어들이는 것들이 더 많다.
다시 말해,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일은 인연에 의해 결정된다. 그 인연은 1번처럼 단순한 유명세나 인지도일 수 있겠지만, 대부분의 경우 그러한 유명세도 여러 인연들이 얽히고설키면서 건너 건너 알게 된 이들의 도움을 받으면서 함께 얻게 된다.
글 써서 먹고 사는 일도 다른 사회생활처럼 인맥을 관리하고, 좋은 인연을 만나는 일이다.
4.
나 같은 경우는 공저를 포함하여 9권의 책을 썼다. 처음 몇 권까지만 해도 ‘먹고 사는’ 것과는 별로 관련이 없었다. 3~4쇄를 찍기도 했고, 문화체육관광부 우수도서에 선정되기도 했고, ‘네이버 오늘의 책’은 거의 내는 책마다 선정되었다.
그러나 먹고 사는 일이 어느 정도 가능해지기 시작했던 건 『분노사회』 이후 시간이 흐르면서였다. 책이 정확히 모를 곳곳에 침투하기 시작하면서 3번에서 말한 ‘적절한 인연’이 어느 정도 생기기 시작했다.
그다음은 팟캐스트였다. 팟캐스트를 통해 ‘적절한 인연’들이 약간 확대되었고, 2쇄 정도까지는 무리 없이 소화해낼 수 있는 독자층이 생겼다. 물론, 유명세라고 불릴 만한 것에는 전혀 이르지 못했기 때문에 여전히 글 써서 먹고 사는 일은 어렵다. 그럼에도 우연히 닿은 여러 인연들이 매번 내게 조금씩 ‘일용할 양식’들을 주었다.
이런 인연들은 어느 날 끊어져서 1년 동안 전혀 나타나지 않을 수도 있고, 어떤 때는 한 달 동안 너무 많은 인연이 쏟아져서 감당이 안 될 때도 있다. 물론, 작가 중에서는 거의 아무런 인연을 만나지 못하는 경우가 절대다수다.
만약에 글을 써서 먹고 살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좋은 글을 써내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것 자체만으로는 먹고 사는 일과는 거의 관련이 없다는 걸 이야기해주고 싶다. 좋은 글을 쓰고, 글 쓰는 일을 사랑하고, 자기의 진실에 몰두하며, 진리를 탐구해가는 과정 같은 것은 사실 ‘글 써서 먹고 사는 것’과 다르다. 그림 잘 그리는 것과 잘 나가는 미술학원 선생이 다른 것처럼, 노래 잘 부르는 것과 유명 아이돌이 되는 것이 다르듯이 말이다.
정말 극소수의 운 좋은 글쟁이가 아니라면, 결코 그런 감각만 가지고는 살 수 없다. 글 써서 먹고 사는 일은 글 잘 쓰는 것이 아니다.
원문: 정지우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