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은 사람이 다시 살아났습니다. 예수의 부활처럼 오래전 이야기가 아닙니다. 불과 5년 전에 총살당했다는 현송월이 판문점에 버젓이 나타났습니다. 2013년 8월 29일 《조선일보》 지면에는 「김정은 옛 애인 등 10여 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라는 기사가 실렸습니다. 《조선일보》는 김정은의 옛 애인이 ‘보천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이라고 친절하게 알려주기까지 합니다.
《조선일보》 안용현 베이징 특파원은 중국 내 복수의 대북 소식통의 말을 인용해 김정은의 연인으로 알려진 가수 현송월과 은하수 관현악단장 문경진 등이 가족이 지켜보는 데서 기관총으로 공개 처형당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안용현 특파원은 현송월의 공개 처형 이유가 김정은의 지시를 어기고 음란물을 제작하고 성 녹화물을 시청했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공개 처형 이유도 사망 날짜도 증인도 다 나와 죽은 줄만 알았던 현송월은 2018년 1월 15일 판문점에 북한 예술단 파견을 위한 실무자로 등장했습니다. 죽었다는 현송월이 등장했는데도 《조선일보》는 놀라지 않습니다. 그저 웹사이트 메인에 현송월의 사진과 관련 기사를 걸어 놨을 뿐입니다.
음란물 몰카의 주인공이 걸그룹을 이끄는 협상 전문가로
당시 《조선일보》는 미국의 《자유아시아방송》을 인용해 현송월이 김정은과 연인 관계임을 입증하기 위해 고려 호텔에서 은밀히 만나는 장면을 몰래 촬영했다며 신의주 소식통, 무산 소식통의 말을 전하고 현송월이 생활고로 음란물 제작에 동참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했습니다.
그 후에도 8월 말부터 12월까지 ‘음란물’ ‘공개 총살’ ‘기관총 처형’ ‘화염방사기로 잔혹 처형’ ‘김정은 옛 애인 섹시 댄스 영상’ 등이라는 자극적인 단어를 사용한 제목의 기사 여러 건을 보도했습니다.
- 「[단독] 김정은 옛 애인(보천보 전자악단 소속 가수 현송월) 등 10여 명, 음란물 찍어 총살돼」, 2013년 8월 29일
- 「김정은 옛애인 현송월, 음란물 제작 혐의‥가족 지켜보는 데서 공개 총살」, 2013년 8월 29일
- 「김정은 옛 애인 현송월, 음란물 제작·취급 혐의로 공개 총살 ‘충격’」, 2013년 9월 1일
- 「음란물 제작 혐의로 총살된 김정은 옛 애인의 섹시 댄스 영상」, 2013년 9월 6일
- 「현송월, 김정은과 ‘고려호텔’ 밀회 몰카 들통나 ‘기관총처형’」, 2013년 9월 8일
- 「리설주 추문 화난 김정은, 은하수악단 기관총·화염방사기로 ‘잔혹처형’…김정일 능가 폭군」, 2013년 12월 12일
2013년도 《조선일보》가 보도했던 현송월은 음란물 몰카를 제작한 김정은의 옛 애인이었습니다. 그러나 2018년 《조선일보》에 등장한 현송월은 세련되고 카리스마 있는 협상 전문가였습니다.
이날 현송월 단장은 감색 정장을 입고 눈에는 진한 아이라인을 그렸다. 입술은 옅은 핑크색 립스틱을 누드톤으로 바른 모습. 앞머리는 오른쪽으로 자연스레 젖혀두고 뒷부분은 반만 묶고 자연스럽게 흘러내리는 스타일로 연출했다.
- 「현송월의 ‘협상 이미지’ 전략, 2015년 중국 때와는 달랐다」, 《조선일보》, 2018년 1월 15일
《조선일보》는 현송월 단장의 옷과 화장, 머리 스타일을 연예인보다 더 자세히 묘사했습니다. 여기에 대형 연예기획사 임원의 말까지 인용해 ‘단정’과 ‘카리스마’라는 표현을 강조했습니다. 더 나아가서 김정은의 부인 리설주와 헤어 스타일을 비교하면서 라이벌 관계처럼 묘사합니다. 옛 애인과 현재 부인 사이의 갈등을 유발하는 막장 드라마와 큰 차이가 없습니다.
「‘북한판 걸그룹’ 이끄는 현송월, 엷은 미소에 강렬한 눈빛 눈웃음」이라는 기사를 보면 음란물을 제작 배포했다고 보도했던 현송월과 동일 인물인지 아리송합니다. 시간이 흘렀다고 해도 이토록 180도 다르게 표현할 수 있는지 참 신기하기만 합니다.
《조선일보》의 북한 오보를 대하는 자세
《조선일보》는 유난히 오보를 많이 내는 언론사입니다. 그중에서 특히 북한 관련 오보는 너무 많아 일일이 열거하기 어렵습니다. 《조선일보》가 현송월 공개 처형 오보를 어떻게 처리했는지만 살펴보겠습니다.
1. 단독보도: 자극적인 제목으로 여러 건의 기사 보도
《조선일보》가 오보를 많이 내는 이유 중의 하나가 비슷한 내용의 기사를 여러 건 보도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을 제대로 검증하지 않고 인터넷 기사를 송고하니 대량 오보 사태가 벌어집니다.
2. 카더라: 찌라시를 기사화하는 언론
《조선일보》의 북한 관련 기사를 보면 ‘소문이 있다’는 문장을 자주 볼 수 있습니다. 소문은 우리가 흔히 말하는 ‘찌라시’입니다. ‘카더라 통신’을 지면이나 네이버 뉴스 등에 당당히 송고하는 《조선일보》의 배짱은 흉내조차 어렵습니다.
3. 물타기: “다른 언론사도 보도했다”
오보로 밝혀지면 《조선일보》는 꼭 다른 언론사를 물고 늘어집니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다른 언론사의 소스를 《조선일보》가 제공했다는 점입니다. 《조선일보》는 ‘《조선일보》 오보 → 다른 언론사 받아쓰기 → 다른 언론도 보도했다’는 이상한 결론으로 책임을 회피합니다.
4. 떠넘기기: “탈북자들 왜 그랬어?”
2014년 10월 17일 《조선일보》 황대진 정치부 기자는 「기자수첩, 일부 탈북자의 신중해야 할 ‘입’」이라는 기사에서 언론 오보가 탈북자들의 미확인 루머를 확대 재생산했기 때문이라고 주장합니다. 신기합니다. 자기가 근무하는 《조선일보》가 탈북자의 말을 인용해 여러 건의 오보를 냈지만 책임은 탈북자에게 떠넘깁니다.
황 기자는 “북한 관련 미확인 정보를 다룰 때는 신중해야 한다.” “잘못된 정보를 확대, 재생산하는 것은 남북 관계는 물론 ‘통일 대계(大計)’에도 도움이 되지 않는다.”라며 탈북자를 훈계합니다. 탈북자 대신 《조선일보》가 꼭 새겨들어야 할 말 같습니다.
원문: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