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는 클래스> 건축가 조정구, 신축이 무조건 좋다는 편견을 깬 건축 철학을 말하다
내가 사는 김해는 나날이 발전하는 도시 중 하나다. 꾸준히 인구가 유입되어 지금은 50만이 넘는 도시로 성장하고 있다. 인구가 늘어나는 만큼 여러 상업 시설도 증가해 이제는 부산까지 버스를 타고서 장시간 이동하지 않더라도 김해 내에서 많은 활동이 가능하다. 개인적으로 나는 이 점이 참 좋다.
하지만 도시가 발전하더라도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니다. 어머니는 종종 “도시가 발전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 우리가 잘 먹고 못 사는데.”라고 말씀하신다. 확실히 그렇다. 아무리 도시가 급속히 성장하더라도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은 매출이 확 늘어나지 않는 이상 도시 발전을 체감하기 어렵다. 주변에서는 경쟁하듯 서로 쌓아 올리기 시작한 건물들을 보며 ‘김해에 부자가 많네? 도대체 우린 언제 저렇게 건물을 지어보냐?’라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낄 수도 있다. 내가 사는 아파트 근처에서도 과거의 흔적을 찾아보기가 어려울 정도로 원룸 건물을 비롯해 다양한 상가 건물이 우후죽순 들어섰다.
이렇게 건물이 들어서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만감이 교차한다. 내가 사는 도시가 이렇게 발전하고 있다는 뿌듯함도 있지만, 하나같이 시야가 답답한 건물을 층층이 쌓아 올리는 데에 열중해 조화가 느껴지지 않기도 한다.
한번 생각해보라. 좁은 지역에 원룸 건물과 상가 건물 등 최소 5~7층 정도가 되는 건물이 한 다리 건너 세워지는 모습을. 과거에는 녹색의 자연과 소규모 건물들이 사이좋게 있었는데, 언젠가부터 ‘높은’ 건물을 세우면서 임대 장사를 하기 위한 현수막이 붙어 있는 건물로 채워졌다. 이게 정말 좋은 걸까?
이번에 방송을 통해 본 <차이나는 클라스>에서는 건축가 조정구가 등장했다. 그가 말하는 동네의 재생사업 이야기를 들으면서 나는 ‘바로 이게 우리가 앞으로 추구해야 할 건축이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무조건 옛 건물로 채워진 동네를 싹 밀고 새로운 동네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그 동네의 변화를 천천히 가져가는 동시에 사람과 건물이 함께 어울리게 하는 것이다.
한때 부동산 시장을 통해 많은 부자를 낳은 한국은, 아직도 부동산 투자를 통해 돈을 불리고자 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그 사람들은 오직 지금의 건물과 땅을 팔아 높은 건물을 지어서 부동산 임대 수입을 늘리거나 땅값을 높여 차익을 보려고 한다. 똑같이 좁은 땅을 가지고 이익을 보려고 한다면?
당연히 전형적인 스타일로 건물을 높일 수밖에 없고, 시커먼 콘크리트 건물을 세워서 ‘분양합니다! 확실한 수입 보장!’이라는 문구를 적은 현수막을 내건다. 건물주가 건물을 세우는 데에 투자한 만큼 본전을 뽑기 위해 금액도 높게 책정하니 막상 들어오려는 사람도 적어 반년 가까이 빌 때도 있다.
이렇게 개인의 욕망을 충족하기 위해 조화를 무시하는 무분별한 난개발은 절대 좋지 않다. 오히려 잘 살려고 새로운 건물을 짓는 선택이 집에서 사는 즐거움을 잊어버리는 계기가 될 수도 있다. 과연 우리는 어떤 형식으로 건축을 해야 사람과 건물이 어울리고, 건물이 동네와 어울리는 환경을 만들 수 있을까?
<차이나는 클라스>의 건축가 조정구가 보여준 ‘신축과 보수’ 둘이 겹치는 적절한 점을 찾아 사람들과 어울리는 건축이 나는 그 답이라고 생각한다.
과거 우리 정부는 낙후된 도시를 발전한 도시로 탈바꿈하기 위해서 신축에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덕분에 우리는 옛 모습을 간직한 곳을 찾기 어려워졌다. 그래서 우리가 외국 여행을 가서 옛 정취가 남은 골목길과 동네 모습에 반해 천천히 둘러보는 모습을 보면 괜히 쓴웃음이 지어진다. 우리 한국도 옛 골목길과 동네 모습이 남아있는 곳이 있다. 종종 그런 장소는 입소문을 타서 명소가 되기도 하는데, 그때마다 재개발 운운하는 목소리가 또 커진다.
재개발 목소리가 나오기 시작하면 동네에 사는 사람들은 재개발과 유지의 의견이 나누어져 싸우거나 힘없는 사람들은 쫓겨난다. 동네에 사람을 불러모은 풍경은 재개발에 밀려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의 상태가 되어버린다. 그러면 우리는 또 도시가 답답하다면서 다른 곳을 찾아 나서는 일을 반복한다.
도시 재생 사업을 한다고 해서 새 건물을 지어 올리거나 동네에 벽화를 칠해 사람을 끌어모으는 게 목적이 되어서는 안 된다. 도시 재생 사업과 도시 발전 계획은 ‘어떻게 그 지역의 사람과 동네의 풍경이 어울릴 수 있을까?’라는 시선으로 접근해야 하지 않을까? 지금 이 글을 읽는 당신은 어떻게 생각하는가?
우리가 유럽이나 일본에서 보는 사람과 동네가 함께 어울리는 풍경은 바로 그렇게 만들어지는 법이다. 비록 좁은 땅덩어리에 많은 사람이 모여 있어 힘들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수도권에 지나치게 밀집된 중앙 중심 정책에서 벗어나 지방 분권이 힘이 실린다면, 앞으로 실현 가능하다고 생각한다.
원문: 노지의 소박한 이야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