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 글은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픽사의 19번째 장편영화 <코코>는 역대 픽사의 작품 중 가장 디즈니스러운 작품이 아닌가 싶다. 물론 픽사의 작품들이 디즈니가 다뤄오던 가족주의를 놓은 적은 없다.
그것의 형태는 <토이스토리> 속 장난감들의 연대나 <몬스터 주식회사>의 종족을 뛰어넘는 유사 부녀관계와 세대 격차를 넘는 <업>의 유사 부자 관계, <니모를 찾아서> 속 이방인 및 장애인과의 연대, 결국 가족으로 회귀하는 <인사이드 아웃>의 엔딩.
결국 픽사, 그리고 디즈니가 표방하는 가족주의는 조금 거칠게 말해서 <분노의 질주> 시리즈 속 ‘Familism’과 큰 차이를 보이지 않는다. 다만 픽사는 그것을 더욱 영화적으로, 새로운 소재를 통해 독창적으로, 그리고 아름답게 담아내는 능력을 지닌 곳이다.
<인크레더블> 정도를 제외하면 픽사엔 가족을 전면으로 내세운 영화는 없지만, 그만큼 자신들의 테마를 표면적으로는 은폐하면서 감정적으로는 진하게 전달하는 내공을 쌓아왔다는 이야기로 볼 수 있다.
<코코>는 <인크레더블> 이후 처음으로 가족이 주인공인 픽사의 영화다. 주인공인 멕시코 소년 미구엘(안소니 곤잘레스)은 가족을 버리고 떠난 음악가 고조할아버지 때문에 음악이 금지된 집안에서 살고 있다. 하지만 그는 마을 출신의 유명한 뮤지션 델라크루즈(벤자민 브랫)를 흠모하며 몰래 뮤지션의 꿈을 키워간다.
우연히 델라 크루즈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일지도 모른다는 증거를 발견한 미구엘은, 그의 무덤에 걸린 기타를 훔쳐 음악 경연대회에 나가려 한다. 그러나 미구엘이 기타를 치는 순간, 미구엘은 산채로 사후세계에 가게 된다. 미구엘은 그곳에서 의문의 남자 헥터(가엘 가르시아 베르날)를 만나고, 사후세계에서의 모험을 시작한다.
미구엘이 사후세계에서 만나는 것은 당연하게도 죽은 가족들이다. 미구엘은 고조할머니 이멜다(알리나 우바치)를 만나고 그의 축복을 받아 이승으로 돌아가려 하지만, 뮤지션인 남편이 가족을 버리고 떠난 것을 증오하는 그는 미구엘이 음악을 그만둘 것을 조건으로 내건다. 때문에 미구엘은 자신의 고조할아버지일 것으로 여겨지는 델라 크루즈에게 축복을 받아 이승으로 돌아가려 한다.
이러한 대립 구도는 굉장히 도식적이다. 픽사는 그간 애니메이션 속에서 범죄, 액션, 스릴러, 호러, 멜로드라마 등 다양한 영화의 클리셰 또는 직접적으로 장면을 가져와 활용했지만, <코코>에서는 그것이 유독 도식적으로 느껴진다. 가령 처음 공연하는 미구엘의 노래에 당연하다는 듯이 환호를 보내는 관객들과 헥터와 자연스럽게 협연하는 모습 등에서 이러한 기시감이 느껴졌다.
이러한 기시감은 자신의 꿈과 가족 사이에서 갈등한다는 가족 멜로드라마의 흔하디 흔한 설정에서도 이어진다. 어쩌면 이번 영화에 이르러서, 픽사는 더 이상 새로운 소재를 통해 독창적인 방식으로 가족주의를 포장하려는 시도를 멈추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픽사 특유의 반전 서사(그 사람이 선한 영웅인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악당이었어! 그리고 보잘것없는 옆자리 누군가가 진짜였어!)는 <코코>에 들어서면 적극적으로 가족을 강조하는 데 사용된다.
장난감, 감정, 물고기, 몬스터 등을 소재로 삼아온 픽사가 현실 전통에 기반을 두고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코코>의 멕시코식 사후세계를 그려냈다는 점 또한 그렇다. 어쩌면 디즈니가 <겨울왕국>의 자매애, <모아나>의 여성 영웅 등으로 남성 중심 세계관과 가족주의를 조금씩 덜어내는 것에 대한 반동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나 픽사는 익숙한 가족주의 서사를 세련된 신파로 직조해낼 수 있는 능력을 지닌 스튜디오다. 이것은 단순히 3D 애니메이션으로 영화 속 인물과 배경을 실사에 가깝게 그려내는 기술력이나, 아름다운 사후세계의 풍광을 그려내고 기억에 남을 귀엽고 예쁜 캐릭터들을 만들어내는데 그치지 않는다.
픽사는 <토이 스토리> 시리즈나 <월 E> 등의 작품을 통해 <싸이코>나 여러 서부극, 등의 영화를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변주하고 활용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코코> 역시 이러한 모습을 드러낸다.
영화 속 영화로 등장하는 델라 크루즈의 영화들은 20세기 초반에 등장한 B급 할리우드 서부극 혹은 액션 영화들을 연상시키며, 후반부 무대 위에서 벌어지는 뮤지컬 액션 시퀀스는 시리즈 등의 첩보 액션물에서 보아온 리듬감을 선보인다.
또한 히스패닉계 미국인과 이민자들을 의식한 듯 멕시코의 명절인 망자의 날에 대한 섬세한 고증과 그 문화를 존중하는 태도를 갖춘 것은 <코코>가 지닌 최고의 미덕 중 하나일 것이다. 동시에 망자의 날이라는 문화가 한국의 추석을 연상시키기도 해 익숙하게 다가오기도 한다. 결론적으로 <코코>는 관객보다 영화가 먼저 울며 주접떠는 지루한 신파극과는 달리, 다소 도식적인 가족주의를 깊고 진하게 전달한다.
<코코>를 비롯한 픽사의 작품을 단순한 상품으로 남게 하지 않는 부분은 각 영화가 지닌 영화적인 순간들에서 비롯된다. 특히 <코코>에서는 악당의 실체가 영화 속 카메라로 촬영되어 영화 속 스크린으로 생중계되며 폭로된다는 점이 인상 깊게 다가왔다.
이러한 방식을 픽사의 작품에서 처음 만나는 것은 아니다. <코코>의 연출자인 리 언크리치의 장편 데뷔작인 <몬스터 주식회사>는시뮬레이션 룸을 통해 비슷한 상황을 연출해 냈으며, 픽사의 다른 작품인 <월 E> 또한 함장실의 카메라를 통해 기계장치의 음모를 우주선내 승객들에게 폭로하는 전략을 선보였다.
<토이 스토리 2>의 TV CF나 <토이 스토리 3>의 CCTV, <인사이드 아웃>에서 감정들이 라일리와 시각을 공유하는 스크린 역시 유사한 전략을 위해 기능한다. 이러한 장치들은 대부분 아이 혹은 아이를 보호 내지 공유하는 존재들(미구엘의 사후세계 가족, 몬스터, 아이들처럼 무력해진 승객들의 함장 앤디의 장난감, 라일리의 감정들)에 의해 구현된다.
이 장치들은 소위 ‘어른의 세상’이라 일컬어지는 동심 밖의 세계를 관객에게 폭로한 뒤, 보호자에 의해 대상을 구해내면서 다시금 그러한 폭로를 봉합한다. 그러나 아이들은 이미 그 세상을 봤고, 서사는 이를 통한 그들의 성장을 그려내며 막을 내린다.
보호자와 보호대상이 모두 아이들이 아닌 혹은 서사의 주인공이 보호자이거나 그와 동일시되는 몇몇 작품(<토이 스토리 3>, <월 E>, <인사이드 아웃>)이 픽사의 걸작으로 불리는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때문에 <코코>는 앞선 걸작들의 반열에 오르지 못한 채 서사 속 가족주의를 봉합하는데 그칠 뿐이다.
<코코>는 분명 뛰어난 작품이다. “역시 픽사”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로 서사는 매끄럽게 흘러가고, (몇몇 관객이 부르짖는) 개연성의 구멍 따위는 찾아보기 힘들며, 섬세한 고증을 통해 만들어진 멕시코식 사후세계의 아름다움은 디즈니의 <라푼젤>이나 <겨울왕국> 등의 작품과 어깨를 나란히 한다. 여기에 ‘Remember Me’로대표되는 OST 또한 <코코>의 중요한 요소 중 하나이다.
가사를 통해 서사를 진행시키는 정통 뮤지컬 영화는 아니지만, <코코>는 뮤지션이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음악영화로서도 훌륭하다. 다만 영화가 담고 있는 도식적인 가족주의 서사는 아쉬움을 남긴다. (유사)부자관계, 강아지(혹은 동물)의 동행, 영웅으로 묘사되던 인물의 반전 등은 <업>을 비롯한 픽사와 디즈니의 작품에서 수 차례 반복되어 진부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사실 <토이 스토리 3>와 <인사이드 아웃>을 제외하면 최근 몇 년간의 픽사의 영화들은 아쉽게만 느껴진다. <도리를 찾아서>와 <몬스터 대학교>는 (어쩌면 당연하게도) 전작의 벽을 넘지 못했고, <카> 시리즈는 여전히 픽사 작품 중 가장 아쉬운 시리즈의 자리를 놓치지 않았으며, <굿 다이노>는 아름다운 이미지와 놀라운 기술력만이 남은 범작이었다.
<코코>는앞선 범작들과 걸작 사이 어딘가에 위치하고, 동시에 픽사-디즈니의 장편 애니메이션들이 공유하는 지점과 한계점을 뚜렷하게 드러낸 작품이다. 앞으로 개봉 예정인 픽사의 작품은 <인크레더블 2>와 <토이 스토리 4>이다. 과연 픽사는 <코코>가 드러낸 진부함을 넘을 수 있을 것인지, 혹은 여기서 머물고 말 것인지 앞으로의 행보가 궁금해진다.
원문: 동구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