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영화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스포일러를 포함합니다. 내용 누설을 원하지 않으면 이 글을 닫아 주세요.
금산에서 이발소를 운영하는 모금산(기주봉)은 보건소에서 위암일지도 모른다는 이야기를 듣는다. 매일 출근하고, 수영장에 들르고, 치킨집에서 맥주를 마시고, 집에서 자는 일상을 반복하던 그는 젊은 시절 꿈꿔왔던 영화배우의 꿈을 다시금 떠올린다.
모금산은 서울에서 영화학과에 다니던 아들 스데반(오정환)과 그의 애인 예원(고원희)을 불러 자신이 직접 각본을 쓰고 주연을 맡을 단편영화 〈사제폭탄을 삼킨 사나이〉의 제작을 도와달라 부탁한다.
임대형 감독의 장편 데뷔작인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죽음을 영화라는 예술로 승화시킨다든가 하는 고리타분한 이야기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영화는 ‘예술’ 같은 것에는 그다지 관심이 없다. 그보다도 영화, 특히 찰리 채플린의 영화로 대표되는 쓸쓸함과 사랑스러움이 공존하는 캐릭터와 시간에 관심을 둔 작품이다.
영화의 내용은 아주 단순하고 직선적이다. 다섯 개의 챕터로 나눠져 있는 영화는 모금산의 일상을 보여주고, 오랜만에 아들을 만나고, 단편영화라는 아이디어를 발전시키고, 영화를 촬영하고, 완성하여 상영하는 것에 이른다.
흑백으로 촬영된 영화는 묘한 노스탤지어를 불러일으키고 동문서답이나 혼잣말로 이어지는 대화, 모금산의 단편영화를 비롯하여 슬랩스틱을 포함한 유머 등은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의 감정을 단순히 쓸쓸함에 머물지 않게 만든다.
영화가 보여주는 감정적인 섬세함은 모금산을 둘러싼 여러 캐릭터를 다루는 태도에서도 드러난다. 가령 모금산이 수영장에서 만나게 된 은행원 자영(전여빈)이나 아들의 애인인 예원 등의 캐릭터는 단순히 영화를 진행시키기 위한 존재로 남거나, 모금산의 감정선을 고조시키기 위한 장치로 낭비되지 않는다.
모금산이 자신의 과거를 추억하고, 존 웨인, 잉그리드 버그만, 제인 폰다와 같은 배우들을 추억하듯이 각 캐릭터들 또한 자신의 과거와 현재를 추억한다. 다시 말해 각자의 삶이 쌓여 〈사제 폭탄을 삼킨 사나이〉라는 단편영화와 그 영화를 관람하는 각 캐릭터가 된달까?
〈사제 폭탄을 삼킨 사나이〉는 제목 그대로 폭탄을 삼킨 사나이가 주인공이다. 찰리 채플린처럼 양복에 모자를 쓴 주인공은 홀로 강냉이 폭탄을 개발했다. 어느 날 집에서 강냉이를 집어 먹다 실수로 강냉이 폭탄까지 집어먹은 그는 기폭 스위치를 누를 곳을 찾아 서울 곳곳을 돌아다닌다. 한강의 다리 위, 국회 앞, 교회 앞 등의 장소를 돌아다니지만 실패하고, 밤이 되자 남산의 어느 공원에 오른다. 그는 결심한 듯 기폭장치를 누르지만, 속이 부글부글 끓다 입에서 연기만 뿜어져 나올 뿐 폭탄은 불발되고 만다.
영화 속에서 영화가 상영되는 동안 모금산은 서울의 병원에서 수술을 받을 준비를 한다. 잠들지 못하고 깬 그는 창밖의 불꽃놀이를 바라본다. 모금산의 영화 속에서 불발된 폭탄은 아름다운 불꽃의 모습으로 그의 눈앞에 나타난다. 그가 암 수술을 성공적으로 받았는지, 아니면 이미 너무 진행되어 시한부의 삶을 살게 될지는 알 수 없다.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극복이나 희망 같은 이야기를 쉽게 꺼내지 않는다. 대신 삶의 어떤 순간이라도 그저 지나갈 뿐이며, 쓸쓸함과 사랑스러움이 뒤섞여 공존하는 어느 중년의 삶을 긍정하는 데 그친다.
그렇기에 〈메리 크리스마스 미스터 모〉는 어떤 정도를 아는 영화처럼 느껴진다. 〈사제 폭탄을 삼킨 사나이〉가 상영되는 장면을 보는 많은 관객이 눈물을 글썽였던 이유가 여기에 있지 않을까? 누군가의 삶을 착취하면서 눈물을 짜내는 것은 쉽지만, 누군가의 삶을 긍정하면서 눈물을 얻어내기는 어렵다.
원문: 동구리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