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은 우리를 억만장자와 엉망장자로 갈라놓았다. 사실 비트코인이라는 존재는 이전부터 알았다. 하지만 이리 비싸질 줄은 꿈에도 몰랐다. 때문에 사람들은 과거로 돌아간다면 로또고 뭐고 비트코인 먼저 사겠다고 다짐한다. 글쎄 나라면 또 음료수나 마시고 있겠지?
과연 억만장자도 엉망장자도 화를 낼 대답이다. “음료수가 뭔데 돈을 날려!” 하지만 음료야말로 우리가 돈을 벌고 삶을 사는 목표이지 않겠는가? 심지어 더 옛날로 돌아가면 음료가 화폐의 기능을 대신하기도 했다. 오늘은 음료수로 월급을 받고, 물건을 샀던 그 시대로 가본다. 아니, 가즈아!!
이집트, 여기 공사 일당을 맥주로 주는 나라가 있다
시간을 돌려보자. 기원전 4,000년 이집트로. 이곳은 피라미드 공사가 한창이다. 인부들은 땀을 흘리며 벽돌을 나르고 쌓는다. 피라미드 쌓기가 이리 힘든 줄은 테트리스 할 때는 몰랐지. 투덜거리다 보니 해가 저문다. 드디어 하루의 보람을 받는 시간. 내가 받은 일당은 무려 3, 4조각의 빵과… 맥주 2병?!
그렇다. 피라미드 작업현장에서는 맥주가 곧 급여였다. 고고학자 패트릭 맥거번은 “맥주가 없었으면 피라미드가 지어지지 않았을 것”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맥주는 단순히 하루의 피로를 날리는 여흥 이상이었다. 우리가 아는 맥주와 다르게 이집트 맥주는 걸쭉한 영양분 덩어리였다. 그들은 후식이 아닌 주식으로 맥주를 마셨다.
맥주의 발상지답게 이집트(그리고 옆 동네 메소포타미아)는 맥주를 만들고, 마시기 위해 살았다. 국가는 보리로 세금을 거두고, 급여로 맥주를 주었다. 인부들에게 얼마의 맥주를 주었는지 기록하기 위해 문자가 만들어졌고, 임금명세서가 기록되었다. 안타깝게도 이 완벽한 프로세스에 화폐가 낄 자리는 없었다.
중국, 여기 말을 팔아 차를 마시는 유목민들이 있다
이번에는 중국이다. 기원전 2,700년 신농이 찻잎의 효능을 발견한 이후 중국인들은 차를 마셨다. 그런데 차라는 음료를 중국인보다 더 좋아하는 민족이 있다. 바로 중국 북서쪽에 사는 유목민족이었다. 중국의 역사는 거칠게 말해 ‘농민과 유목민의 전투’라고 볼 수 있는데 그 둘을 중재시켜주는 게 차였다.
유목민족의 삶으로 들어가 보자. 부동산이랄 것도 없어서 이 땅, 저 땅 집을 옮겨 다녀야 하는 신세. 한족처럼 씨를 뿌려 열매를 얻는 여유는 꿈도 못 꾼다. 때문에 그들이 먹을 수 있는 것은 동물에게서 얻는 우유, 치즈 그리고 고기뿐이다. 마치 삼겹살에 삼겹살을 싸 먹는 듯한 식단이지 않았을까?
이때 한 잔의 차가 목을 통해 들어온다. 오장육부의 기름이 씻겨나가는 푸르름. 유목민들이 차 중독자가 되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말 1필에 차 20~30KG를 얻어올 수 있었다. 거래가 눈에 띄게 늘어가자 찻잎을 한 장, 한 장 세고 옮기는 것이 어려웠다. 그래서 ‘긴압차(전차)’라는 음료 겸 화폐가 만들어진다.
긴압차는 기존의 찻잎을 틀에 압축해 모양을 낸 것이다. 벽돌 모양으로 만든 긴압차는 옮기기도 쉬웠고, 오래 보관할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개수를 세기에 간편했다. 때때로 긴압차에 차 생산지를 표기하기도 했는데 멀수록 더 가치가 있었다. 때문에 중국 상인들은 따로 화폐를 들고 다닐 필요가 없었다. 현재도 중앙아시아 일부에서는 교환 무역용으로 긴압차가 사용된다고 한다.
아프리카, 여기 술 한잔에 사람도 파는 취객이 있다
시간은 흘러 16세기로 온다. 새로운 대륙을 찾아 바다를 무법 질주하던 그때. 와인을 증류하여 만든 브랜디는 장거리 항해의 필수품이었다. 알콜도수가 낮은 와인이나 맥주는 이동 중에 쉽게 상했다. 브랜디는 소량이어도 금방 취할 수 있어 인기가 좋았다. 선원들도 좋아했지만, 진짜 덕후는 따로 있었다. 아프리카 원주민이다.
유럽과 아프리카. 두 문명의 어색한 만남을 이어준 것은 브랜디였다. 아프리카의 술로는 느껴보지 못한 새로운 차원의 음료. 그들은 브랜디만 받을 수 있다면 그들은 뭐든지 내어줬다. 심지어 사람을 브랜디 몇 병에 노예로 팔았다. 문제는 팔려간 이들도 급여를 브랜디로 받길 원했다. 브랜디는 아프리카가 받아들인 최초의 외래 문명이자 화폐가 된다.
아프리카에서 데려온 노예들은 대부분 사탕수수 농장으로 간다. 하지만 아무리 열일해도 브랜디는 비쌌고, 충분한 양을 받을 수 없었다. 때문에 그들은 수확한 사탕수수에서 설탕을 만들고 남은 부산물로 술을 제조한다. 바로 ‘럼’이다. 브랜디보다 훨씬 싼 가격에 독한 알콜도수를 자랑하는 럼은 노예들은 물론, 항해를 하는 선원, 그리고 유럽 본토의 서민들 사이에서 크게 유행을 한다.
새로움에 대한 관심은 화폐가 된다
단지 음료를 마시기 위해 하루의 노동력을 바치고, 이동수단을 팔고, 심지어 사람까지 넘기는(?) 일은 지금 보면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하지만 당대 사람들에게 그 음료는 단순 마실 거리를 넘어서, 새로운 쾌락의 영역을 찾아준 문명이었다. 또한, 필요 이상의 광풍이 잦아진 후에는 하나의 문화로 정착되었다.
새로운 것에 대한 열광은 지금도 다르지 않다. 하지만 음료가 화폐가 아니듯이, 가상화폐는 도박이 아니다. 비트코인이 빨리 안정적으로 자리 잡고, 제 가치를 찾을 수 있기를 바란다.
물론 나는 안 넣었으니까.
참고도서
- 역사 한 잔 하실까요, 톰 스탠디지
- 차의 세계사, 베아트리스 호헤네거
- 술의 세계사, 패트릭. E. 맥거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