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년 성폭행 사건에 연루됐던 연예인 박시후 씨가 블로그 게시글을 무더기로 삭제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습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에 ‘박시후 성폭행’이라는 검색어를 입력하고 나온 블로그 게시글을 클릭하면, 대부분 ‘비공개 또는 삭제된 글’ ‘임시조치된 글’이라는 메시지가 나옵니다.
‘임시조치’는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에 따라 포털사이트가 해당 정보의 삭제 요청을 받아 글을 볼 수 없도록 블라인드 처리하는 것을 말합니다.
정보통신망 이용촉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44조의2(정보의 삭제요청 등) ① 정보통신망을 통하여 일반에게 공개를 목적으로 제공된 정보로 사생활 침해나 명예훼손 등 타인의 권리가 침해된 경우 그 침해를 받은 자는 해당 정보를 취급한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에게 침해사실을 소명하여 그 정보의 삭제 또는 반박내용의 게재(이하 “삭제 등”이라 한다)를 요청할 수 있다.
②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제1항에 따른 해당 정보의 삭제 등을 요청받으면 지체 없이 삭제·임시조치 등의 필요한 조치를 하고 즉시 신청인 및 정보게재자에게 알려야 한다. 이 경우 정보통신서비스 제공자는 필요한 조치를 한 사실을 해당 게시판에 공시하는 등의 방법으로 이용자가 알 수 있도록 하여야 한다.
글을 쓴 블로거는 30일 이내에 이의를 제기할 수 있고, 만약 게시글이 정당하면 복원됩니다. 하지만 30일 동안은 글을 볼 수가 없습니다. 블로거들은 절차상 또는 불이익을 당할까 두려워 이의 신청을 하지 않아 대부분 글이 삭제됩니다.
기자 글은 놔두고 일반 블로거 글만 삭제
‘박시후 성폭행’ 검색 리스트 18페이지에는 중앙일보 배상복 기자가 올린 「“A양 친구 “눈 떴을 때, 박시후가 강제로 관계를…”」이라는 글이, 19페이지 첫 번째는 「박시후 공식 입장에 공감할 수밖에 없는 이유」라는 블로그 게시글이 있습니다. 배 기자의 블로그 글은 삭제되지 않았지만, 블로거의 글은 ‘임시조치’로 글이 블라인드 처리됐습니다.
박시후 씨의 대리인이 삭제 요청을 하면서 언론사 기자가 블로그에 올린 글만 제외한 것은 언론은 무서워하지만 국민은 무시하는 처사입니다. 기자는 삭제 요청에 반박하거나 대응하지만 대부분 블로거는 이의를 제기하지 않고 넘어간다는 사실을 악용한 것입니다.
단 한 문장이라도 ‘박시후 성폭행’ 단어가 있으면 삭제
“요즘 박시후 성폭행 사건으로 충격을 많이 받은 팬들이 많죠. 그래서 송중기가 더욱 인기가 치솟는 게 아닌가 싶어요”
블로거 P 씨도 박시후 씨의 대리인에 의해서 블로그 게시글이 ‘임시조치’됐습니다. 하지만 내용은 박시후 씨가 아닌 송중기 씨였고 박 씨를 언급한 부분은 단 한 문장에 불과했습니다. 박 씨 대리인은 내용과 상관없이 ‘박시후 성폭행’ 검색 리스트에 나왔다는 이유만으로 무조건 블로그 게시글을 삭제한 것입니다.
약자를 보호하려는 정책을 악용하는 사람들
아이엠피터는 포털사이트가 내용의 진실 여부와 상관없이 요청이 오면 무조건 ‘임시조치'(블라인드 처리, 삭제)하는 정책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는 헌법소원청구를 한 바 있습니다. 이와 비슷한 위헌 확인이 2010년에도 있었습니다. (2010헌마88)
당시 헌법재판소는 ‘임시조치’가 인터넷상에서의 정보 유통이 빠르고 반론권 행사가 쉽지 않은 상황에서 정보의 유통과 확산을 일시적으로 차단하는 목적으로 적절하다며 기각 결정을 내렸습니다.
잘못된 정보의 확산을 막아 약자를 보호하려는 취지는 이해합니다. 그러나 이런 제도를 정치인, 대기업, 종교 단체 등이 악용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선거, 재벌 총수 재판, 연예계 복귀 등과 맞물려 여론을 잠재우기 위한 수법으로 ‘임시조치’를 남발합니다.
연예인이라도 블로그 게시글이 사실과 다르거나 다분히 악의적인 의도로 명예를 훼손한다면 삭제 요청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방식과 목적은 신중해야 합니다. 언론 앞에서는 고개 숙여 사과하고, 뒤로는 무더기 삭제 요청을 하는 모습은 이중적인 태도입니다.
원문: 아이엠피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