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이 성장하려면 투자가 필수입니다. 하지만 영세한 기업들은 자금 조달에 어려움을 겪지요. 특히 이윤과 사회적 가치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사회적 기업들이 그러합니다.
동작신용협동조합은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서울시 사회투자기금과 매칭해 복지, 환경, 문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사회적 과제를 풀어가는 기업들에게 저리로 자금을 빌려주고 있습니다. 이를 통해 쑥쑥 성장해 가는 사회적기업과 협동조합, 마을기업들의 이야기를 이로운넷이 전합니다.
버려진 가구의 화려한 부활, 폐목재 업사이클링 전문 기업 ‘문화로놀이짱’
오아름 문화로놀이짱 공동대표는 얼마 전 망가진 가스레인지의 레버(손잡이)를 창의적인 방법으로 바꿔놓았습니다. 레버를 나무로 깎아 만들었지요.
“레버가 고장 났다고 멀쩡한 가스레인지를 바꿀 필요는 없잖아요.”
사람들은 일상의 문제를 흔히 돈으로 해결하지만 그는 다른 방법으로 해법을 찾습니다. 망가진 것들을 고쳐보고 또는 해체해 다른 용도로 만들어보며 한때 소유했던 물건이나 공간들과 관계를 이어가는 것이죠.
“오래된 물건을 존중합니다. 그 안에는 사람들에 대한 삶의 기억들이 오롯이 담겨있으니까요”
재활용·순환의 가치를 품다
문화로놀이짱은 폐목재를 활용해 가구를 만드는 업사이클링 전문 사회적기업입니다. 모든 제작에는 재활용과 순환이란 키워드가 숨겨져 있습니다.
문화로놀이짱 페이스북에는 쓰임을 다한 사다리가 좌탁으로, 뜯어낸 문짝이 테이블 상판으로 변신하는 등 폐목재들의 화려한 부활기가 빼곡히 올라와 있습니다. 폐목재를 활용한 가구 제작은 새 목재로 만드는 것보다 배가의 노동력이 들어간다고 합니다.
“누군가가 가공했던 흔적이 있고 그것을 살리면서 만들어야 합니다. 못이 박힌 자국들, 곡선들.. 규격화된 양산품을 제조하는 것이 아니다 보니 늘 예상치 못했던 문제에 부딪힙니다. 저희들 끼린 그걸 ‘위기’라고 표현하는데 이를 해결해 나가는 과정이 매력적입니다.” (김정석 공동대표)
“가구 버릴 때 연락 주세요”
문화로놀이짱은 첫 매출을 올린 날 1톤짜리 중고 픽업트럭을 샀습니다. 그리곤 자신들의 활동 무대인 홍대 인근 마포지역을 돌며 ‘가구 버릴 때 연락해주세요’라는 전단지를 뿌렸습니다.
“원목과 합판의 종류는 거의 다 살립니다. 그러나 MDF나 파티클보드는 수거를 안 합니다. 본드와 같은 유해물질이 섞여 있기 때문이죠. 저희가 사용하는 재료는 발암물질 등이 다 빠져나간 건강한 재료들입니다.”
홍대 주변의 리모델링 현장은 그들의 단골 출입처입니다.
“ 건설현장에 계신 분들께 가져가도 되냐고 물으면 쌍수를 들고 좋아합니다. 폐목재들이 재료로 보이기 시작하니까 주변에 웬만한 것들은 다 주워서 쓸 수 있는 경지에 이른 것 같아요.”
조립식으로 해체가 쉽도록 제작
그렇다고 늘 폐목재만 사용하는 건 아닙니다. 새 자재를 쓸 때도 있지만 나름 원칙이 있습니다.
“공연이나 행사가 끝나면 일반적으로 포클레인이 와서 구조물을 다 부숴버립니다. 바로 폐기물로 처리되죠.
저희는 품이 들더라도 조립해서 해체가 가능한 구조로 만듭니다. 어딘가에 다시 쓰일 수 있도록 하되 그렇지 못할 경우 수거해 옵니다. 폐자재를 쓴다는 게 중요한 것이 아니라 순환적인 제작 활동을 하는데 방점이 찍혀 있으니까요.”
그렇게 수거해온 목재들로 만들어진 가구들은 서강 초등학교 사물함, 하자 센터 카페, 성미산 밥상 등에서 만나 볼 수 있습니다.
비단 큰 가구뿐만이 아닙니다. 책걸상이나 책장처럼 일반 가정에서도 꽤 주문이 들어옵니다. 환경을 생각하며 독특한 빈티지 감성을 좋아하는 층이 주 고객들입니다.
일상의 사물을 치료하는 해결사들의 수리병원
문화로놀이짱은 2004년 10대들을 대상으로 한 문화 교육 비영리단체로 출발했습니다. 2009년 사회적기업진흥원이 주최한 소셜벤처대회에서 ‘1/4 하우스’란 브랜드로 출전해 상을 타면서 사회적기업과 인연을 맺었습니다. 1/4하우스란 4곳의 버려진 가구가 만나면 1집의 가구가 된다는 콘셉트입니다.
문화로놀이짱은 이름이 말해주듯 우리의 삶 속에서 다양한 문화를 기획하고 실천에 옮겼습니다. 2011년부터 4년 동안 진행한 ‘해결사들의 수리병원’이란 프로젝트가 좋은 예입니다.
“동네마다 이른바 맥가이버 같은 분이 꼭 계세요. 그런 장인들을 발굴해 한 달에 한 번꼴로 동진시장· 마포구청· 망원시장 등 마포 지역의 주요 거점을 돌며 고쳐 쓰는 문화를 확산시켰습니다. 지금은 사라져버린 칼갈이 고수로부터 가죽 용품, 시계, 우산, 전자제품 등 약 10여 가지의 생활용품을 수리하는 캠페인을 진행했습니다.”
제작 워크숍을 통해 화덕 만들기, 철공, 용접 등 생활 기술을 전파하고 대안학교에서 목공 수업을 1년간 진행하기도 했습니다.
대안적인 삶… 비빌기지를 아십니까?
업사이클링한 건 단지 물건만이 아닙니다. 지난해 문화비축기지란 이름으로 공원화가 이뤄지기 전까지 상암 월드컵경기장 앞 석유비축기지는 대형버스 주차장에 불과했습니다. 2010년 문화로놀이짱은 이 공간에 들어와 재활용 업사이클링 제작소를 조성하고 명랑에너지발전소라는 이름으로 공공의 마을 작업장을 만들었습니다.
그 이후 석유비축기지에는 음악, 건축, 텃밭, 시장 등 다양한 분야에서 대안적인 삶을 추구하는 12개 팀들이 속속 모여들어 공방과 장터를 열고 텃밭을 가꾸었습니다.
‘마르쉐@친구들’, 생활건축연구소 ‘진짜공간’, ‘AAMU 스튜디오’, 인디레이블 ‘카바레사운드’, 도시 텃밭의 대부로 불리는 ‘자란다’ 등이 대표적인 단체들입니다. 2015년 이들은 자치공동체를 형성하고 비빌기지라고 명명했습니다. 비빌기지는 ‘소유에서 공유로’ 전환하는 시스템을 연구하고 일상의 필요를 스스로 충족하는 삶을 응원하는 곳입니다.
하지만 석유비축기지 공원화 사업으로 비빌기지에서 활동했던 단체들은 퇴거 명령을 받게 돼 쫓겨날 위기를 맞았습니다. 다행히 오랜 진통 끝에 지난해 비축기지 내 다른 곳으로 자리를 옮기고, 기부체납 형식으로 당분간 사용권을 허락받아 그 실험 정신을 이어가게 됐지요.
“유럽에서는 유휴지 운동이란 것이 있어요. 민간 차원에서 자생적으로 탄생한 그룹이 유휴지 공간에서 먼저 활동을 하다가 기부체납하는 방식입니다. 저희는 약속한 기한 동안 우리가 하고 싶은 활동을 맘껏 펼쳐 볼 생각입니다. ”
비빌기지란 이름은 ‘서로에게 비빌 언덕이 되어주고 비빔밥처럼 어우러져 다양한 시도를 해보자’는 뜻이라고 합니다. 새해를 맞아 퇴거 명령으로 잠시 흩어졌던 옛 비빌기지의 멤버들이 속속 재입주할 채비를 서두르고 있다는군요. 상부상조해가면서 삶의 재생을 꿈꾸는 그들의 무한도전기는 계속 이어집니다.
원문: 이로운넷 / 글: 백선기 / 사진: 이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