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맨날 회사에서 당하고 사는 것 같아요. 힘든 일이 다 저한테 떨어져요. 쉽게 성과 낼 수 있는 일은 다른 사람한테 가고요. 열심히 해서 성과를 내면 그 일은 또 다른 사람한테 넘기라고 하죠. 다른 사람이 다 말아먹은 일은 저보고 맡으라고 한 뒤 저한테 그 책임을 떠넘기고요. 이런 식으로 맨날 당하고 살아야 하나요?
Answer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일은 일대로 많이 하고, 성과는 남에게 다 뺏기고, 결국 이용만 당하다가 팽당하는 분들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분들을 가리켜 옛날에는 직장의 ‘봉’이라고 불렀습니다.
봉은 어수룩하여 이용해 먹기 좋은 사람을 비유적으로 이르는 말입니다. 요즘에는 같은 뜻으로 ‘호구’라는 단어가 더 많이 쓰이지만 1980년대에는 개그맨 최양락 씨의 “나는 봉이야”라는 유행어 때문에 봉이라는 단어를 널리 사용했습니다.
대표적인 직장의 봉 사례를 몇 가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사례 1
박 팀장은 팀장들 사이에 업무로서는 단연 에이스였습니다. 하지만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으니 음주·가무에 약했습니다. 그뿐 아니라 약간의 깔끔증까지 있어서 술 마시고 노래하고 춤출 때는 지나치게 건전하게 놀았습니다. 그러다 보니 맨날 힘들고 남들 하기 어려운 업무는 도맡아 하면서도 중요한 정보가 오고 가고 의사결정이 이뤄지는 술자리에는 잘 끼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보니 일은 열심히 하지만 정작 실속은 없는 팀장으로 간주되었죠.
사례 2
오 팀장은 하루는 사장님으로부터 사업부 포트폴리오 전략을 수립하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적당한 기준을 세워 회사 수익에 도움이 되는 사업부와 그렇지 않은 사업부를 선정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시장 전망, 경쟁 구도, 사업부의 핵심 역량, 향후 산업 트렌드 등 사업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다양한 요인들을 고려해서 만든 평가 기준을 바탕으로 분석한 결과를 사장님께 보고 드렸습니다.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계속해서 평가 기준을 이렇게 바꿔보고 저렇게 바꿔보라고 지시를 하셨습니다. 자신이 원하는 답이 나올 때까지 선정 기준을 계속 바꾸라고 지시를 한 것이죠. 나중에는 급기야 자신이 원하는 답에 맞춰서 평가 결과를 바꾸라고까지 하셨습니다. 오 팀장은 내키지는 않았지만 어쩌겠어요. 사장님께서 하라고 하시는데요. 결국 사장님 지시에 맞춰서 결과물을 만들었습니다.
얼마 후 사장님께서는 주요 회의체에서 발표하셨습니다. “오 팀장의 제안에 따라 모 사업부를 다른 사업부에 통폐합하고 사업부 인력을 재배치하겠다”고. 오 팀장은 헉했습니다. 통폐합이라는 말은 당시 처음 들었거든요. 결과물도 철저하게 사장님의 지시에 맞춘 것이었고요. 그런데 사장님께서는 그것을 오 팀장이 제안했다고 하시니. 그러고 나서 한 달 후 오 팀장은 다른 조직으로 배치받았습니다. 이용 가치가 다한 것이었죠.
사례 3
서 팀장의 경우는 오 팀장보다 더 심한 케이스입니다. 평소 입바른 소리 잘하기로 유명한 서 팀장은 회사 내에 케어해주는 상사가 한 명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업무 역량이 뛰어나다 보니 일 복은 항상 넘쳐났죠. 그런데 일을 성공시키고 나면 항상 그 성과를 다른 사람에게 뺏겼습니다.
가령 만년 적자를 면치 못했던 A 사업부를 맡은 지 2년 만에 흑자로 돌려놓으니까 그 사업부를 사장님께서 예뻐하시는 이 팀장에게 넘기라는 지시를 받았습니다. 그러고 나서 서 팀장은 또 다른 적자 사업부인 B 사업부를 맡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고과도 그닥 좋지 않았습니다. 적자 사업부였으니까요. 반면 흑자 사업부를 넘겨받은 이 팀장은 좋은 고과를 받았고요.
서 팀장은 얼마 지나지 않아 B 사업부마저 흑자로 전환합니다. 그러자 이번에는 B 사업부가 또 다른 적자 사업부인 C 사업부와 통합되었습니다. C 사업부장은 서 팀장이 아닌 다른 팀장이 되었고요. 서 팀장은 늘 이런 식으로 일은 일대로 하지만 성과는 인정받지 못했습니다.
사례 4
경력직으로 입사한 홍 팀장은 사내 라이벌인 마 팀장으로부터 계속 공격받았습니다. 마 팀장은 있는 말 없는 말 다 지어내서 홍 팀장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을 내고 다녔죠. 사장님께 홍 팀장에 대한 허위 보고를 하기도 했고요. 그렇게 당하기만 하던 홍 팀장에게도 드디어 반격의 기회가 왔습니다. 마 팀장이 거래업체로부터 뒷돈을 받은 증거를 확보한 것이죠. 그것도 한두 번이 아니라 수년 동안 여러 차례 받았습니다.
홍 팀장은 이를 정리해 사장님께 보고할 자료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다음부터 홍 팀장은 사장님께 직접 보고할 수 없었습니다. 상무를 위시한 다른 임원들이 홍 팀장이 막은 것이죠. 알고 보니 거래 업체로부터의 뒷돈 수수와 관련해서는 마 팀장뿐 아니라 다른 임원들과 간부들까지도 엮여 있었습니다. 홍 팀장이 그걸 모르고 그만 판도라의 상자를 건드린 것이죠. 홍 팀장은 몇 달 뒤 퇴사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직장의 봉이 되기 위한 요건
1. 일은 최소한 평균 이상으로는 잘한다
일을 잘하는 것은 봉의 기본 소양입니다. 그래야 다른 사람들이 일을 맡기기 때문입니다. 일도 못하면 봉이 될 최소한의 자격도 없는 셈이죠. 이처럼 다른 사람의 일을 떠맡는 경우가 다반사이기에 항상 일에 치어 바쁩니다.
2. 입바른 소리는 잘 하지만 입에 발린 소리는 잘 못한다
또 듣기에 거북한 입바른 소리는 잘 하지만 듣기에 기분 좋은 입에 발린 소리는 잘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끔 상사를 불편하게 만들죠. 그렇기 때문에 상사가 술자리에 함께 가기를 꺼립니다.
3. 마음이 약해서 거절을 잘 못한다
마지막으로 거절을 잘 못합니다. 그래서 맨날 당하면서도, 당하는 것을 알면서도 참는 사람이 직장의 봉이 될 확률이 높습니다.
직장의 봉에서 탈피하기 위한 방법
1. 봉의 진가를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상사를 만나라
직장 호구에서 벗어날 수 있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나의 진가를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상사를 만나는 것입니다. 자기가 급할 때 단물만 쏙 빼먹고 버리는 그런 사람이 아니라 나와 함께 험난한 직장의 여정을 함께 하려고 하는 진정한 인생의 선배를 만나는 것이죠. 그래서 그를 위한 봉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분 또한 기꺼이 나를 위한 봉이 될 테니까요.
그런 상사를 만날 수 있을까요? 그런 상사가 과연 있기나 할까요? 저는 있으리라고 확신합니다. 여러분을 이해해주고 케어해주는 상사가 어딘가에는 분명히 있습니다. 아직 여러분께서 그런 분을 만나지 못했을 뿐이죠. 운이 좋으면 언젠가 만날 겁니다. 저는 지금까지 그런 분을 세 분 정도 만났습니다. 자만심에 빠져 복에 겨웠던 나머지 그런 분의 호의를 놓쳤지만요.
당시 저는 열심히 일해서 성과를 내면 인정해주는 상사를 얼마든지 더 만날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인생이 꼭 그렇지만은 않더군요. 성과를 뺏어가는 상사를 더 많이 만났습니다. 저를 봉으로 여기는 상사를… 이처럼 훌륭한 상사를 또 만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큰 행운이지만 만약 그런 상사를 만날 수 없다면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요?
2. 나를 괴롭히는 상대방의 약점을 잡아라
또 하나의 방법은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이를 이용해 딜을 치는 것입니다. 나를 계속 이런 식으로 이용해 먹기만 하면 나도 가만있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나에게도 무언가 보상을 해라는 의사를 넌지시 전달하는 것이죠. 치사하고 더러운 방법이지만 어쩔 수 없습니다. 직장은 약육강식의 세렝기티와 같아서 잡아먹히기 싫으면 자력갱생의 방도를 찾아야 합니다.
주의해야 할 점은 약점을 잡았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는 선에서 그쳐야 한다는 것이죠. 약점을 공개하거나 너무 대놓고 협박을 해서는 안 됩니다. 공개된 약점은 더 이상 협박 수단이 될 수 없기 때문이죠. 또한 약점을 공개하지는 않더라도 이를 이용해 너무 노골적으로 상대방을 협박할 경우 상대는 감정이 상한 나머지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으로 나올 수 있습니다.
이 또한 현명한 방법은 아니죠. 앞의 사례에서 홍 팀장처럼요. 홍 팀장은 상대방의 약점을 공개하려고 했다가 오히려 덜미를 잡힌 케이스였습니다. 관련된 모든 사람을 적으로 돌리는 우를 범했죠. 그래도 홍 팀장은 상대방 약점을 잡기라도 했죠. 상대방의 약점을 잡는 것조차 못한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3. 참고 또 참아라, 때가 올 때까지
어차피 내가 봉인 이상 쉽게 내치지는 못합니다. 이용 가치가 있을 때까지는 계속 이용해 먹기 위해서라도 나를 자르지는 않겠죠. 내가 퇴사하면 상대편 입장에서도 좋을 게 없기에 퇴사하지 않을 정도로 적당히 대우해주면서 이용해 먹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이때는 그냥 참는 게 최선입니다. 언제까지? 나를 알아주는 상사를 만날 때까지. 최소한 상대편의 약점을 잡을 때까지.
그때까지는 웬만하면 내색하지 말고 참으십시오. 가끔 불만을 표시하는 것은 오히려 더 좋을 수 있습니다. 그래야지 상대편도 나를 적절히 보상해 줄 필요를 느끼죠. 하지만 상대편이 감정을 상할 만큼 반발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하지만 이렇게 참는 데도 한계가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4. 이직해라, 안 그러면 정신병 걸린다
도저히 참을 수 없는 한계까지 도달했다면 어쩔 수 없습니다. 저 또한 새로 이직한 직장에서 직장의 봉으로 몇 년간 고생한 적이 있었습니다. 당시 저는 너무 힘든 나머지 직장 경험이 많으신 아버님께 여쭤봤죠. 어떻게 해야 할지. 아버님께서는 단호하게 말씀하셨습니다.
“너 그 회사 그만둬라. 더 다니다가는 정신병 걸리겠다.”
이직을 준비하십시오. 안 그러면 정말 화병 걸립니다. 매일 분한 마음에 밤잠을 설칠 수도 있습니다. 억울한 나머지 회사 내 이 사람 저 사람에게 얘기해봐도 돌아오는 말은 “그러기에 줄을 잘 섰어야지. 왜 그랬어?”라는 핀잔뿐입니다. 말한 사람만 바보 되는 거죠. 눈치 없는 사내 바보. 이 지경까지 이르면 선택은 이직밖에 없습니다.
단 각오해야 할 점은 있습니다. 다른 회사에서도 봉이 될 가능성은 있다는 것이죠. 여러분이 만약 위에서 말씀드린 직장의 봉이 되기 위한 세 가지 조건을 모두 충족시킨다면 어느 회사를 가든 봉이 될 가능성은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새로운 직장에서도 봉이 될 수 있다는 각오는 해야 합니다.
안타까우시죠? 어쩔 수 없습니다. 어쩌면 그게 저나 여러분의 숙명일지도 모릅니다. 과연 내세란 게 있을까요?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비록 현세에서는 직장의 봉으로서 어쭙잖은 것들한테 이용당했지만, 내세에서는 진짜 봉(鳳)으로서 이 세상 마음껏 훨훨 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Key Takeaways
- 일은 일대로 많이 하고, 성과는 남에게 다 뺏기고, 결국 이용만 당하다가 팽당하는 분들을 가리켜 직장의 봉이라고 한다.
- 일은 최소한 평균 이상으로 잘 하면서 입에 발린 소리는 잘 못하고 마음이 약해서 거절을 잘 못하는 사람들이 직장의 봉이 될 확률이 높다.
- 직장의 봉에서 탈피하기 위해서는 내 진가를 알아보고 인정해주는 상사를 만나는 게 가장 좋다. 이것이 어려우면 상대방의 약점을 잡고 딜을 치거나, 참고 견뎌라. 이도 저도 안 되면 어쩔 수 없다. 이직해라.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