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로운 아이디어를 위해 안 돌아가는 머리를 부여잡고, 한 손에는 담배 한 손에는 펜을 잡고, 현실화될지도 모르는 사업계획을 완성해간다.
불과 얼마 전까지 내 모습이다. 사업은 아이디어로 승부하면 될 줄 알았고, 아이디어가 고객 가치만 충분히 담아낼 수 있으면 그걸로 충분한 줄 알았다. 그렇게 하나둘씩 만들었던 아이디어만 넘치는 사업계획은 단지 계획에 불과하다는 것을 최근 몇 번의 실패 끝에 알게 되었다. 그리고 또 하나 깨달았던 것은 생각보다 너무나 많은 오류를 저질렀다는 것이다.
연습도 상대를 봐가면서: 창업자의 입장
사업이 망하지 않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우스갯소리일지 모르지만, 돈이 화수분처럼 계속 나오면 된다. 그게 꼭 고객의 지갑일 필요는 없다. 그냥 오너가 돈이 많으면 망하지 않는다. 하지만 현실은 전혀 다르다. 오너는 돈도 고객도 없고 직원은 늘 들락날락이라 근무시간에 고객보다 직원 후보자를 더 만나 협상을 벌어야 하고 세금, 월세, 월급 등을 내는 날은 너무 빨리 돌아온다. 점점 사는 게 무서워진다.
누구의 이야기일까? 우리 주변 중소기업 대표들의 모습이다. 사업에 무언가 새로운 가치를 부여할 만한 시간은 거의 없다. 운영하기도 빠듯하다. 대기업처럼 체계가 있고 미션과 철학에 맞춰 매년 비전과 계획을 세워 실행하는 비즈니스 시스템의 체계는 바라지도 않는다. 그저 이제 막 들어온 신입 직원이 전화나 이메일이라도 정확하게 처리해줬으면 한다. 고객들에게 고개 숙이는 것도 한두 번이지 정말 이제 넌덜머리가 난다. 이래도 사업할 텐가?
코칭할 때 찾아오는 부류는 크게 두 부류로 나뉜다. 이직과 전직. 말 그대로 직장을 옮기는 것이다. 자신의 원래 경력을 더 반짝반짝 빛나게 할 곳으로 옮기는 것, 자신과 맞지 않는 것을 놓아버리고 옷을 갈아입고 새로운 곳에 가는 것으로 나뉜다. 전직 중 하나가 창업이다. 창업이 갈수록 쉬워진다. 아이디어만 있으면 창업할 수 있다고 각 지역별 관련 기관과 단체에서 현란한 광고문구로 누군가를 채무자로 만들려 한다. 창업이 아직 준비되지 않은 이들에게 이렇게 말해준다.
“빚쟁이가 되고 싶은가 봐요? 그렇다면 (더욱 크게) 창업을 해보세요. 망해도 남는 게 빚뿐인지 한번 경험해보시지요.”
물론 업종을 불문하고 창업해서 성공하는 것이 거의 불가능에 가깝기 때문에 하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수년 동안 여러 사람을 만나니 창업할 사람은 따로 있는 것 같다. 그들이 가진 독특하고도 특별한 능력은 영웅이 되기를 거부하지 않는다. 물러서지 않고 늘 맞선다. 남들이 가라고 하는 것은 물리치고, 자신의 길을 가서 증명해내곤 한다. 다른 글에서도 다뤘지만 그들이 가진 열정의 모양과 색은 다를 뿐 아니라 멈추지 않고 계속 뿜어져 나온다.
그런 사람이라면 창업해도 된다. 그렇지 않으면 무조건 시작하면 안 된다. 큰코다친다. 창업은 연습이 아니다. 바로 실전이고 아무리 주변의 다양한 지원이 있다고 해도 쉽게 될지 안 될지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성공이 아니라 일을 완성하는 과정에서 실패의 가능성을 점차 줄여가는 ‘불확실성의 영역’을 다루는 일이다. 가볍고 쉽게 접근해서는 패가망신한다. 성공한 사람의 이야기보다는 망한 사람의 이야기에 더욱 집중할 필요가 있다.
연습도 상대를 봐가면서: 구직자의 입장
구직자 입장에서는 어떤 기업이든 붙어도 걱정, 붙지 않아도 걱정이다. 물론 관심사와 전문성 등 충분한 준비에 의해 선택하고 결정하면 문제는 적어질 수 있다. 관심 있게 바라보고, 경험하고 싶었던 것을 당당히 맞이하려고 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일부 현실과 다를 수 있다. 다만 스타트업은 몇 가지 이유에서 일반 기업과 다르다.
1. ‘경영적 시스템’이 결여
미안하지만 소위 잘나간다는 스타트업도 전문적인 ‘경영적 시스템’이 구비된 곳은 유니콘이라고 인정받는 몇몇 기업 뿐이다. 그 외엔 대부분 열정과 긍지로 똘똘 뭉친 사람들이 모인 ‘으쌰으쌰’ 자체가 시스템 전부다. 음악 분야별 아티스트가 모여 레이블을 꾸린 곳과 유사하다. 몇몇 히트곡을 만들면 그 자체가 상품이고 시스템이 된다. 하지만 그 히트곡을 어떻게 만들었는지 아리송한 ‘공식 또는 비법’은 미해결로 남고 이어서 히트곡이 나오지 않으면 그 레이블은 무너질 위기에 처한다.
2. ‘사람’이 전부다
특히 소수정예로 만들어진 스타트업은 ‘사람’이 중요하다. 엉성한 시스템 속 빈틈을 사람이 메워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일당백을 하는 이들이 각자의 역할을 넘어 일하는 연결선상에서 갈등의 중재의 역할까지 하는 멀티태스커가 많다. 대체 내가 일을 하는 것인지 일이 나를 만드는 것인지 가끔 모르겠다. 그래도 높은 자존감으로 스스로를 잃지 않아야 한다. 그래야 생존이 가능하고 오래도록 버틸 수 있다. 남의 일을 내 일처럼 할 수 있는 몰입감은 필수이다.
3. 스승 같은 사수를 기대했다면 오산
대기업이라면 허울 또는 형식뿐이라도 멘토-멘티제 운영으로 안정적 정착을 돕고 어차피 누군가의 수족 역할을 하는 동변상련이기에 공감 가능한 영역을 많이 발견할 수 있다. 하지만 스타트업 조직 속 나보다 뛰어난 사람은 각자의 능력을 조직의 현재 또는 미래를 위해 각자의 분야에 투자하지 당장 들어온 신입에게 일을 ‘학교처럼’ 가르쳐 주는 곳은 거의 없다. 일은 어쩔 수 없이 함께하기 위해 일정 부분 가르쳐 줄 수 있지만 소위 ‘친절함’을 베푸는 곳은 찾기 힘들다. 가족 같은 분위기? 아니다. 회사는 그냥 회사고, 스타트업도 회사다.
4. 스타트업도 기업일 뿐
스타트업 취업이라고 일반 기업에 취업하는 것과 다르지 않다. 어차피 그곳도 기업이다. 대신에 더욱 신중에 신중을 기해야 한다. 잘못하면 남이 잘 만들어놓은 쌀밥에 잿가루를 뿌리는 격이 될 수 있다. 심지어 본인만 잘 모를 뿐 그 잿가루가 내가 될 수 있다. 내 커리어만 망치면 모르지만, 다른 이의 커리어까지 망치기 때문이다. 더욱이 연습한다는 마음을 가지고 들어갔다가는 자칫 나뿐 아니라 다른 이들의 커리어까지 망칠 수 있다. 따라서 경험 그 이상의 가치를 좇아서 합류해야 한다. ‘입사’라는 표현보다 ‘합류’라는 표현이 더 적절할 것이다.
5. 성공의 기준은 천차만별
리더의 목표에 따라서 다르지만 빠른 시일 안에 그로스 해킹을 통한 적절한 엑시트(EXIT)가 목표일 수도 있고 100년 넘는 기업이 되도록 노력하기도 한다. 당연히 조직은 목표를 가져야 하고 그 목표에 맞게 움직여야 한다. 따라서 자신의 목표가 리더가 바라는 미래에 얼마나 기여할 수 있고, 그게 내 커리어에 얼마나 도움을 줄지 살펴봐야 한다.
그래서 기업의 미션-비전, 리더의 철학을 중요하게 봐야 하는 것이다. 스스로가 정한 성공 기준, 그에 합당한 움직임을 보이는 기업의 미래가치에 투자한다는 생각으로 입사를 타진해봐야 한다. 무작정 뛰어들면 돈뿐 아니라 절대 되돌릴 수 없는 ‘시간’도 허비할 수 있다.
그럼에도 다양한 ‘시도’를 해야 한다
당장의 ‘일자리 또는 일할 거리’가 필요하다고 해서 아무 데나 지원하거나 아이템이 좋다고 해서 무작정 창업해서는 안 된다. 이직, 전직, 창업 모두 준비가 필요하다. 그곳이 스타트업이면 아직 충분히 성숙되지 않았음을 인지하고 접근해야 한다. 스타트업에서 신입으로 시작하는 경우, 그 스타트업이 만약 ‘기업’으로서의 제대로 된 체계가 갖추어지지 않았을 경우 추천하지 않는 편이다. 내 경험으로 여타의 다른 기업을 판단할 것이고, 그로 인해 편향된 시각을 가질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우리는 다양한 시도를 해볼 필요가 있다. 취업, 직장, 창업 등은 모두 평생직장에 대한 꿈을 갖는 것 혹은 돈 걱정 없는 삶을 꿈꾼다. 그리고 모두 성공하고 싶다. 그렇게 모두가 각자의 성공을 말하고 있지만, 사실 비슷해 보인다. 돈이 먼저인가, 명예가 먼저인가 나눌 때 각자가 추구하는 모습이나 방법 등은 다를 수 있다. 그냥 내 방식대로 내가 할 수 있는 것을 하는 것이다. 단 프로페셔널한 태도를 유지한 채 말이다.
애석하게도 많은 이가 이 점을 놓친다. 프로라면 자신이 받는 값을 충분히 해야 하고, 그 이상의 가치를 만들어내는 과정을 통해 스스로의 성장과 연봉 향상의 부수적 효과를 가져올 수 있다. 그 시도는 몇몇 중요한 카테고리(업계) 내에서 진행되어야만 자연스럽게 쌓이는 ‘커리어’로 남는다. 그냥 재미로 시작할 수는 있다. 하지만 누군가는 그걸 위해서 목숨까지도 건다. 우리는 그걸 놓쳐서는 안 된다.
원문: 김영학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