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글은 창발출판에서 출간 준비 중인 『우린 이렇게 왔다』 중 「하고 싶은 것을 하는 삶, 변형환」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대학교 다니면서 스타트업에서 일도 해보고, 전공 이외 다양한 수업을 수강하며 졸업 후 어떤 분야의 전문가가 될 것인가 고민하던 시기가 있었다. 4학년 2학기, 전공과목 수강, 취업 준비로 바쁘던 때 이현진 교수님의 “게임 디자인과 문화”라는 내 인생의 전환점 같은 수업을 만났다. 게임이라는 매체를 통해 이야기하는 방법을 배우는 수업이었다.
한 학기 동안 게임 디자인 프로젝트들을 하면서 어쩌면 이 길이 앞으로 내가 평생 공부하며 살아갈 수 있을 길이라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자연스럽게 취업 준비를 접고 국내외 관련 대학원을 알아보기 시작했다.
몇 가지 후보군 중 장학 프로그램이 있었던 학교에서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Entertainment Technology) 석사 과정을 마치고 게임 디자이너를 목표로 했던 처음 계획과는 다르게 시애틀 근교에 위치한 웹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에서 UX 디자이너로 커리어를 시작했다. 바쁘게 1년여를 일하고 나니 회사의 자금이 바닥나서 이직을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실리콘 밸리에 위치한 스타트업으로 이직을 시도했지만 비자 관련 문제로 진행 중이던 인터뷰가 취소되는 경우가 많았다. 계획을 수정해 현재는 어도비 포토샵(Adobe Photoshop)의 AI 관련 기능, 브러쉬 툴 관련 기능을 담당하는 UX 디자이너로 일하고 있다.
이제 막 커리어의 첫 장을 시작한 UX 디자이너지만 그간의 여정을 생각해보면 항상 하기 싫은 것과 하고 싶은 것을 고민하고 선택하는 과정의 연속이다. 미국 생활이 맞지 않아서 하루에도 몇 번씩 돌아가고 싶을 때도 있지만 그래도 아직 남아 있는 이유는 이곳에서 하고 싶은 것이 있기 때문이다.
키포인트
- 회사의 직무 기술서(Job description)를 연구해서 구인자가 원하는 구직자가 되자.
- 미국 생활이 본인에게 맞을지 고민이 필요하다.
- 영어에 대한 부담을 덜고 도전해보자.
이전 한국에서의 커리어를 요약한다면
금속 시스템 공학(신소재 공학)을 전공했지만 유아 시절부터 관심은 온통 컴퓨터에 쏠려 있었다. 초등학교 저학년 때부터 프로그래밍, 그래픽 디자인, 영상 편집 등 컴퓨터로 할 수 있는 것들을 독학했다. 대학생이 된 후로는 그간 독학한 것들을 활용해서 스타트업에서 일도 해보고 아르바이트도 해보고 공모전에서 입상도 해봤다.
미국으로 유학 오기 직전에는 STEM 교육 스타트업에서 개발자 및 강사로 반년 정도 일했다. 교육 자료 개발자로서 주로 아두이노 프로그래밍, 전자 회로 설계와 강의 자료를 제작했고 강사로서는 초등학생들에게 제작한 자료를 바탕으로 강의했다.
현재 미국에서의 커리어를 요약한다면
카네기멜런 대학교(Carnegie Mellon University)에서 엔터테인먼트 테크놀로지 석사 학위를 받고 산호세(San Jose)에 위치한 어도비 포토샵 팀에서 AI 관련 기능과 브러쉬 툴 관련 기능을 담당하는 UX 디자이너로 근무하고 있다. 이전에는 시애틀 근교에 위치한 웹 애플리케이션 스타트업에서 UX 디자이너로 근무했다.
스타트업에서 일하던 시절에는 UX 디자이너로서의 업무 이외에도 할 것이 많았다. 시애틀 이스트사이드 지역 스타트업 행사 뉴테크(Newtech)에 나가서 네트워킹, 신입 직원 채용을 위한 인터뷰 진행, 마케팅 자료 준비, 투자자 자료 준비 등의 일을 돕거나 담당했다. 현재 포토샵 팀에서는 유저 리서치, 프로토타이핑 등의 UX 디자인 관련 업무에만 집중하고 있다.
미국에 온 계기나 이유가 있었나
장학금을 받으면서 게임 디자인을 공부할 기회가 있어서 미국 유학을 결심했다. 미국에서 취업하겠다는 목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실리콘 밸리에서 스타트업으로 성공하고 싶다는 목표가 있었다. 현재는 그 목표에 필요한 기초 자금과 영주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큰 회사에서 일하고 있다.
미국 올 때까지 시간이 얼마나 걸렸나
대학교 마지막 학기를 마치고 졸업식 전 겨울 방학에 토플 점수, 학업 계획서, 추천서, 포트폴리오를 준비했다. 대학 생활 중 수업과 프로젝트들로 날 잘 알던 교수님들께서 추천서를 작성해주셨다. 포트폴리오는 그간 여러 경로로 작업하던 프로젝트들을 엮어 준비했다.
취업까지 어떤 준비를 얼마 동안 했나
대학원 과정 2년을 보내고 취업할 스타트업을 찾던 도중 카네기멜런 동문으로부터 본인의 스타트업으로 합류하라는 제안을 받고 졸업 직후 합류했다. 현재의 회사로 이직할 때는 약 두 달 동안 링크드인(Linkedin)을 통해 구직 활동했다. 두 번의 구직 활동에서 가장 필수적인 과정이 그간의 작업물을 엮는 포트폴리오 제작이었다.
당연한 사실이지만 포트폴리오 제작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타깃 유저(Target user) 연구라고 생각한다. 구직 과정에서 타깃 유저는 인사 담당자(Hiring manager)다. 그들이 어떤 포트폴리오를 보고 싶어 하는지 직무 기술서와 그 회사의 최근 프로젝트를 통해 유추할 수 있다. 이 과정에서 회사별로 포트폴리오에 들어간 프로젝트를 재배열하기도 하고 주말을 이용해 새로운 프로젝트를 추가하기도 했다.
취업까지 제일 힘들었던 준비과정은?
구직 활동 중 비자 만료 및 떨어져 가는 통장 잔액에서 오는 심리적인 압박감이 가장 힘들었다. 이직할 때 학생 비자(F1)에 플러스 원으로 딸려 오는 OPT의 확장판 격인 STEM OPT 익스텐션을 소지하고 있었다. 이 비자는 E-베러파이(verified) 회사에서만 일할 수 있게 제한되고 2개월 이상 무직 상태로 있으면 소멸하는 특징이 있다.
비자 만료일은 다가오고 통장 잔액은 계속 줄어드는데 인터뷰를 진행하던 스타트업은 항상 뒤늦게 E-베러파이를 진행할 생각이 없으니 채용 과정을 중단하자 했다. 이런 과정을 몇 번 반복한 뒤 큰 회사로 눈을 돌려 다행스럽게도 비자 만료 및 파산 전에 이직에 성공할 수 있었다.
취업 후 생활에서 가장 힘들었던 점은?
업무 외 여가에 느껴지는 공허함이 가장 힘들다. 미국에서 생활하는 많은 한인이 이야기하듯 이곳의 생활은 매우 심심하다. 퇴근 후 오랜 친구들과 만나서 사는 이야기를 나누는 것, FC 서울 홈 경기를 직관하는 것, 늦은 밤에 하는 산책 등 그동안 내 삶의 일부였던 것들이 순식간에 사라진 데서 오는 공허함이 크다.
또한 2주에 한 번 월급 명세서를 볼 때마다 내 나라도 아닌 곳에 엄청난 양의 세금을 내면서도 기본적인 사회 보장을 받지 못하고 때로는 각종 혐오 범죄의 대상이 된다는 사실에 기분이 상한다. 미국행을 결심하기 전에 본인의 생활 방식, 목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보는 것을 권한다. 미국에 넘어와 살아보면서 고민하기엔 시간적·금전적·정신적 비용이 많이 든다.
미국행을 꿈꾸는 UX 디자이너에게 조언한다면?
UX 디자이너의 직업적인 특성상 회의를 이끄는 역할을 하기도 하고 각종 이해 관계자들을 설득하는 역할을 하기도 한다. 그렇기 때문에 영어에 부담을 느끼고 도전을 주저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 과정에서 본질적인 것은 화려한 언변이 아니라 자료에 기반 둔 논리와 창의성이라고 생각한다. 영어에 겁먹지 말고 일단 문을 두드려 보라고 말씀드리고 싶다.
원문: Jin Young Kim의 브런치 / 필자: 변형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