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 후 금지’와 ‘어린이집-유치원 영어수업 금지’에 관한 기사이다. 한겨레신문 박다해 기자가 전후 맥락을 종합적으로 정리했다. 청와대 홈페이지에 글을 쓴 “7살 딸을 둔 학부모 겸 유치원 영어 교사”의 표현대로 ‘탁상행정’이라는 비판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으로 보인다.
김상곤 교육부 장관이 교육개혁을 하려는 의지는 충분해 보인다. 다만, 실제로 진행되는 교육개혁은 진공상태에서 이뤄지는 것이 아니라 낡은 것과 새로운 것이 뒤엉켜 있을 뿐만 아니라, 욕망과 욕망이 뒤엉켜 있다는 것을 있는 그대로 직시하며 추진하면 더 좋을 듯하다.
시장의 본질은 ‘욕망’이다
물론, 이는 김상곤 교육부 장관만의 오류는 아니다. 예컨대, 19대 국회에서 ‘공교육정상화’의 명분으로 통과된 ‘선행학습금지법’의 경우, 취지는 이해되지만 애초부터 부작용이 예상되는 법안이었다.
초등학교 1~2학년 방과 후 영어수업과 어린이집-유치원 영어수업은 ‘교육’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하나의 ‘시장’이다. 진보 쪽 분들은 시장(市場)에 대해 과도한 거부감을 갖는 경우가 많은데, 시장의 본질은 ‘욕망’이다. 시장에는 이미 욕망이 담겨있기에, 과거 박정희-전두환처럼 전체주의적 폭력을 통해 통제할 것이 아니라면 욕망의 흐름을 인정하는 것을 전제로 정책대안을 마련해야 한다.
예컨대, 초등 1, 2학년-어린이집-유치원의 영어수업을 금지하면 무슨 일이 벌어질까? 학부모들은 “아, 정부가 영어수업을 금지시켰구나? 그럼, 집에서 영어수업을 내가 해줘야지!”라고 생각할까? 학부모들의 반응은 둘로 갈라질 것이다.
- 학원비를 감당할 수 있는 경우이다. 학교가 아닌 영어 학원에 보낼 것이다. 단, 학원비 지출이 확 늘어나는 부담이 생기고 정부를 원망하게 될 것이다.
- 학원비를 감당할 수 없는 경우이다. 이 경우, 그야말로 대책이 없다. 온전하게 정부에 대한 ‘분노’로 쌓일 뿐이다.
지난 대선 후보 경선 과정에서 당시 바른정당 남경필 후보는 ‘사교육 전면금지’ 공약을 내걸었다. 참으로 무책임하고 철없는 공약이었다. 왜냐하면, 실현 가능성이 전혀 없는 공약이기 때문이다. ‘선행학습금지법’이 통과되길 원하던 학부모들은 이중적 욕망, 이율배반적 욕망을 갖고 있었다.
- 과거 전두환처럼 과외와 선행학습을 전면 금지시켜주길 바란다. 다른 아이들이 하니 덩달아 내 아이도 시켰다. 그러니 다른 아이도 금지시키면 내 아이도 안 할 수 있다.
- 민간-개인에 대한 국가의 ‘독재적-전체주의적’ 개입은 원하지 않는다.
19대 국회에서 통과된 ‘선행학습금지법’에는 이러한 두 가지 충돌하는, 이율배반적 욕망이 동시에 반영되어 있다. 민간 학원에 대해 선행학습금지법을 적용하는 것은 당연히 위헌이다. 국가의 과도한 개입이다. 결국 선행학습금지법은 학교만 적용된다. 학교를 공공 시장으로 보고, 학원을 민간 시장으로 본다면, 학교의 선행학습금지법은 ‘공공시장의 공급’을 축소시켜 ‘민간시장의 수요’를 촉진하는 정책으로 귀결된다.
애초 취지는 선행학습금지이지만 실제는 ‘학원 수요 촉진법’으로 귀결됐다. 그리고 이는 쉽게 예상해볼 수 있는 것이다. 19대 국회의원들은 바로 한치 앞을 내다보지 못하고 선행학습금지법을 통과시킨 것이다.
진열을 재점검할 때
교육부는 지금이라도 ‘어린이집-유치원 영어수업 금지’를 철회하는 게 낫다. 선행학습금지법으로 인한 ‘초등학교 1.2학년 영어 방과 후 금지’ 역시 철회하는 게 바람직하다.
교육부가 말한 대로 정책 일관성은 매우 중요한 가치이다. 그러나, 교육부가 강행하든 말든 초등학교 1, 2학년 영어 방과 후 금지와 어린이집-유치원 영어수업 금지는 ‘여론’이 수용하기 어려운 정책이다. 학부모들의 원망과 분노로 되돌아올 가능성이 높다.
교육부의 정책 참모를 재점검 및 보강하면 좋을 듯하다. 수능 절대 평가제 시행을 둘러싼 학종 논란, 영어수업 금지 논란 등은 모두 유사한 패턴을 보이고 있다. 의욕은 과잉이지만, 시장과 학부모들의 반발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것으로 보인다. 전열을 재점검할 때이다.
원문: 최병천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