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상화폐와 블록체인 이야기는 이젠 다소 지겨운 주제다. 그럼에도 규제를 찬성하는 입장을 정리할 겸 글을 남긴다. 정부 관료를 바보로 아는 사람들이 많은데 행시 붙은 내 동기들이 어떤 친구들이었는지만 떠올려 봐도 나는 그런 식으로 쉽게 비아냥거리지는 못하겠다. 까는 건 쉽다. 하지만 정책실무는 이상과 많이 다르고 많은 고려점을 갖는다.
관료들이 IT를 철저히 모를 수는 있다. 그 시각이 바뀌길 바라는 건 말 안 통하는 부모님 설득하기보다 비현실적이다. 그렇다고 그들이 경제나 나라 살림을 모르지는 않는다. 비트코인이나 거래소 문제는 액티브 엑스와는 다른 문제다. 실물경제, 외환, 주식시장 등등이 엮여 있다. 사람들이 지난 며칠간 코인판과 주식시장에서 벌어진 일을 보며 어떤 생각을 했는지 궁금하다. 같은 일이 외환장에서도 가능할 텐데 많은 이가 고민해보았을지 모르겠다.
가상화폐와 맞물린 블록체인 기술의 옹호론자들은 ‘현재의 암호화폐나 블록체인 기술은 설익은 것이고 미래엔 더욱 유망할 것인데 그 산업발전의 기회가 될 싹을 정부가 뭣도 모르고 자른다’고 말한다. 이 문장 자체는 논리적 하자가 없는 주장이다. 헌데 현재 다수의 코인판은 주로 서구권 창시자가 메이저 지분을 선점해서 재벌이 되고, 중국인이 채굴해서 또 지분을 점유한 뒤, 걔네 코인을 한국에서 실물 화폐로 사 와서 우리끼리 좋다고 돌리는 판이다.
그러니 현재 주로 거래되는 코인들이 우리에게 어떤 경제적 이득을 주는지 설명하기가 힘들다. 현재 이미 수-수십 $B 수준의 주로 중국발 코인-원화 환치기가 벌어졌을 거라 보는데 이렇게 유입된 핫머니급의 자금은 현재 실물 경제에 실질적인 위협이 될 수도 있다. 님들이 산 코인, 어디서 왔을까요. 채굴하지 않았다면 판매자는 누구일까. 그 돈은 어디로 흘러갔을까.
거래소 규제를 반대할 이유가 있나?
현재의 코인판은 비록 구조적 왜곡이 있긴 하지만 블록체인 기술과 가상화폐 발전을 위해 규제해선 안 된다는 논리는 정책의 영역에서는 아무 의미 없는 주장이다. 현실적인 문제가 ‘당장’ 보이고, 비가시적인 미래의 가능성’도’ 있는 경우 후자에 배팅하는 일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다.
또 탈집중화되고 공유 분산된 정보 기술로서의 블록체인 기술의 가치를 강조하고, 현재보다 더 효율적이고 빠른 공유기술이 나와 채굴업자와 시장 투기에 의존하지 않고도 유지 가능한 암호화폐 구현이 향후 가능할 것이라 말하는 이들 역시 거래소 폐쇄를 반대할 이유가 없다.
이게 핵심인데, 기술 속성이 정말로 그러하다면 정부가 무슨 짓을 해도 탈중앙화된 시스템과 사설 거래를 어차피 막지 못할 테니 선의의 대중 피해자와 해외 투기꾼들을 투기성 짙은 거래판에서 분리시키는 것 외에 바뀌는 건 없을 거다. 블록체인 기술은, 특히 프라이빗에서는 그와 관계없이 성장할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때문에 업계 주체들이 규제에 반대한다는 점은 거래소를 통해 환금성을 보장하고, 창시자는 코인 선점과 외부자의 투기로 인한 가격 상승을 통해서만 돈을 벌 수 있으며, 채굴업자에게도 인센티브를 주지 않으면 돌아가지 않는 것이 지금의 블록체인 생태계의 한계란 말이기도 하다. 환치기도 포함해서.
이런 연유로 관료라면 눈에 보이는 리스크는 막아야 하고 그로 인한 기술적·경제적·실리적 손실은 거의 없는 선택을 해야 한다. 이대로 갔을 때 한국인이 블록체인 산업영역의 주인공으로 당장 큰 성과를 낼 판도 아니다. 남 좋은 일만 계속될 터다. 거래소 목줄 잡고 계좌 조사하고 실명전환 돌리는 게 무조건 현명한 선택이 된다.
앞서 거래소가 가진 문제 혹은 내가 품고 있는 의구심에 대해 적은 바 있다. 지금은 규제 반대 청원을 올리고들 있지만 대규모 인출 사태라도 터지고 투자금을 회수하지 못하거나 코인판이 망하기라도 하면 그거 물어달라고, 억울하니 못된 악덕 거래소 업주 처벌해달라고, 보상해달라고 정부한테 매달릴 사람들도 바로 그들일 거라 본다.
일단 지근 거리의 지인 중 규제 반대를 열정적으로 하는 사람들은 두 부류다. 이 판의 직·간접적 주체이거나, 투자자이지만 제대로 기술문서나 화이트 페이퍼를 읽지 않는 사람이 대부분이다. 투자자들은 대체로 현실 시장과 코인판을 같이 보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이래서야 서로 무슨 대화가 되겠나.
기술은 거래소와 무관하게 성장 가능하다
보안상의 문제를 제외하고, 어떤 ICO와 그냥 같은 시스템을 정보는 DB에 때려 넣은 뒤 비슷한 방식으로 트랜젝션이나 가치교환을 하도록 만드는 것에 비할 때, 블록체인 방식으로 구현하는 경우 압도적 차이가 있거나 아예 DB로는 아예 개념적 구현이 불가능한 경우를 빼고는 이 기술이 지금 수준에서 어떤 대단한 의미가 있나 싶기도 하다.
블록체인 및 코인이 가치나 정보를 돌리는 플랫폼 사업이라면 기존의 다른 플랫폼을 보유한 주체가 뛰어들어야 의미가 있다. 페이스북처럼. 이게 기술가치가 매우 높았다면 AI 때처럼 카카오나 네이버에서 코인이든 연관 기술이든 뭐든 먼저 한다고 수년 전에 발 벗고 나섰겠지, 지금처럼 대형 IT 회사가 일단 거래소부터 돌리지는 않았을 거다.
이 기술이나 시장에 대해 부정적인 이야기를 하기란 쉽지는 않다. 그렇다곤 해도 저걸로 뭘 할 수 있는지, 좋은 기술이 가져다줄 미래와 탈 현물화폐 시대를 주장하는 엔지니어라면 꼴랑 환금성 정도에 영향을 주는 거래소의 현금 입출금 문제나 제도권 내 존폐 따위에 왜 동요하는지 모르겠다. 정부 영향 따위 받지 않고 제도권을 넘어서는 규모로 클 수 있다고 기술 본질이 설명하고 있지 않나.
위에서 하려던 말은, 이 분야의 전문가들은 기술만 보고 이 시장을 옹호하는 것일지도 모르지만 정부는 그들이 보지 못하는 실물경제를 감안해 무언가를 정해 갈 것이라는 점을 간과하지 말라는 이야기가 하나. 내가 아는 한 이 기술이, 참여자들로부터 들은 내용이나 취지가 맞는 것이라면 거래소를 규제하든 폐쇄하든 기술 발전을 크게 저해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본다는 이야기가 또 다른 하나이다.
첨언
이메일 태동기에는 우체국이 벌 돈을 국내 이메일 포털 사업자가 버는 정도의 차이를 만드는 일이었을 터라, 우체국 쪽에서 인맥을 통해 입김이 들어오니 뭐라도 건수를 만들어 규제하는 식이었을 거다. 지금은 분명 연관 국가 간의 정책 공조도 있을 것이고 주식 외환 등 그냥 두드려 보면 답이 나오는 영역이 섞여 있다. 때문에 이메일 시절의 규제 논의와 지금의 규제 이슈를 비교하는 글은 읽기엔 재미있어도, 역시 정부는 그때나 지금이나 멍청하다며 낄낄 이야기하기에 좋은 참고 아티클은 안 된다고 본다.
앞서의 글에서 이야기했지만 한국의 사기 범죄율은 OECD 최상위권이며 ‘진흥은 핀포인트로, 규제는 광범위하게’ 나라 살림을 이끄는 편이 효율적인 나라다. 그만큼 현세의 삶을 매우 영악하게 사는 국민들이란 거다. 국내 거래소가 사라진다 칠 때 블록체인 기술사업은 어차피 해외 거래소 ICO로 가는 방향으로 진행해야 하니 큰 차이가 없고 VC 밖의 자금 조달 방법이 잠깐 생겼다 없어진 듯하지만 원래 국내에서는 불법이었다. 그래서 이 규제가 산업을 죽인다는 주장이 와 닿지 않는다. 잘 하는 관련 엔지니어분들은 약간 기대감은 낮아졌지만 크게 신경 안 쓰실 듯.
정부가 이런 일을 벌일 땐 전문가 자문도 듣고 공청회도 열게 마련이다. 블록체인 협회든 그 자리에 나간 분들의 설득력이나 설명력이 매우 떨어졌기 때문에 정책입안자가 이해하지 못했으리라는 점도 보아야 한다. 중간 과정 다 빼놓고 ‘지금은 시궁창이지만 이런데 나중엔 이런 미래가 펼쳐집니다’라고만 이야기한다면 업계 내에서도 블록체인만 담당한 사람이 아니라면 납득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게 결과인 셈이다.
이런저런 이유로 실제로 투기에 뛰어들기도 했고 지금도 일부 보유했지만 가상화폐와 관련한 정부의 규제 기조에 찬성한다. 이에 대한 개인적 입장이 긴가민가하다면 우리 집 바로 앞 대림동 환전상도 좀 구경해 보고, 요즘 셀트리온 주가도 좀 보고, 무역수지와 외환보유고 그래프도 확인해 보면서 각자 자신의 스탠스를 정해본다면 여러 모로 좋은 공부가 될 것이라 본다.
원문: 강민구의 페이스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