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들은 자신이 옳았던 일을 잘 기억하고, 틀렸던 일을 잘 잊게 마련이다. 이런 경향은 매우 강력하다. 투자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경영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연애하는 사람도 마찬가지, 물론 취업을 하는 사람도 마찬가지다.
그런데 문제는 나만 그런 것이 아니라 내게 조언해주는 사람들도 조언에 대해 모두 그렇다는 것. 결과적으로 맞춘 것은 다 기억하고, 틀린 것은 금새 잊는다.
그러니 나의 외롭고 고독한 결정에 대해 조언을 하는 사람들은 미묘한 입장이다. 자신이 한 얘기랑 나의 결정이 달랐을 경우, 결국 나의 결정이 옳았으면 그들은 조언한 사실 자체를 잊게 되고, 나의 결정이 틀렸으면 그들은 ‘내가 뭐랬어’ 라며 오랫동안 기억하게 된다. 반대로 서로의 결정이 같았을 경우 나의 결정이 옳았으면 ‘그래 내가 뭐랬어’라고 좋아하지만 우리의 결정이 틀렸으면 중요하게 기억하지 않는다.
그래서 주위의 의견에 영향을 받을만한 (예컨대 회사에서 CEO의) 의사 결정은 통상 이런 모양새다.
투자를 할 때도 매우 비슷한 느낌이었다. 여기서는 ‘회사’라고 적었지만 투자를 할 때 훨씬 더 중요한 문제다. 여러 사람과의 관계라는 것이 투자 성공에는 더욱이 장기적 의미가 없기 때문이다. (반면 경영에서는 관계가 장기적인 편이고, 인생에서는 매우 장기적일 수도 있지 않겠는가)
어쨌건 내가 남들한테 손가락질당할 가능성을 최대한 줄이려는 마음이 크다면 나도 모르게 굳이 ‘틀린 의사결정’에 유혹을 느낄 때가 있다. 특히나 옳은지 그른지 아주 미묘하게 51:49 정도밖에 차이가 나지 않는다면 매우 헷갈리는 상황이다. 이런 때, 혹은 주위의 시선이 매우 중요한 순간에는, ‘옳고 그름’ 보다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한 결정을 하게 마련이다. 틀려도 ‘아무도 나를 탓하지 않는다’는 점과 옳아도 ‘아무런 인정을 받지 못한다’면, 나의 결정에서 도망치고 남에게 의탁하고 싶은 마음이 큰 법 아닌가.
그런데 우리가 쉽게 잊는 부분은, 여기서 남들의 의견이 나의 확신도에 크게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남들은 특히 내가 미묘한 태도를 보이면 내가 듣고 싶은 방향을 헤아려서 의견을 제시할 수도 있다. 예컨대 직장 생활이 너무 편해서 굳이 창업할 용기가 나지 않는 사람이, 배우자에게 ‘나 회사 한번 차려볼까…’ 라고 한다면 거의 99%는 ‘그런 자세로 당신이 무슨 창업을 해 회사나 열심히 다녀’라는 소리를 듣기 마련이다. 그러나 반대로 외부 상황이 바뀌어서든 본인의 내면이 바뀌어서든 ‘나 이제 앞으로 평생 무엇을 하고 살지 결심했어. 회사를 한번 차려볼까 하는데 차근차근 응원해주고 조언을 주겠어?’라고 한다면 50% 이상의 확률로 ‘멋지다 한번 들어보고 나도 고민해볼게.’라는 답이 돌아올 것이다.
20대 초중반 후배들 중에는 간혹 ‘저희 아버지는 완전히 달라요, 제가 하고 싶은 거 한다고 하면 죽이려고 할걸요. 저희 아버지를 몰라서 그러시는데, 저희 집에서 제가 꿈을 쫓아가는 것은 절대 불가능합니다.’라고 생각하는 친구들이 많다. 그럴 때는 ‘너의 결의가 부족해서 그런 것이다. A4 5장 정도에 니가 왜 이 일을 하고 싶고 무엇을 달성하고 싶으며 그게 내 삶에 어떤 의미가 있는지를 설명하면 대부분의 부모님들은 ‘내 자녀가 이렇게 어른인 줄 몰랐네, 정 그렇다면 한번 해봐’라고 답할 것이다.’라고 얘기해줬다.
왜냐면, 부모가 원하는 것은 자녀가 특정한 일을 ‘안 하는 것’이 아니라 ‘철없는 놈이 옆길로 샐까봐’인데, 철이 없지 않고 진지하다는 것만 보여주면 부모의 생각이 영향을 받는다는 것이다. ‘의지가 있다면 응원하고 의지가 없다면 반대’가 대부분의 정상적인 조언의 핵심이다.
그러니 벤 호로위츠의 표현을 빌리자면, 실제론 70:30만큼 명료한 의사결정임에도 주위 조언자들은 당신의 자세를 보며 51:49처럼 미묘한 의사결정으로 둔갑시킬 수도 있다는 것이다.
중요한 것은 투자든 사업이든 인생이든 결국 내가 ‘옳은 것’이다. 내가 옳기만 하면 남들이 기억하든 안 하든 어떠랴, 월급을 줄 수 있고 밥을 살 수 있고 행복을 담보할 수 있고 또 언젠간 모호하게라도 축하받을 수 있고 좋은 일을 할 수 있다.
어떤 이들은 남 눈치를 보며 핑계를 대며 계속 본인도 확신이 없는 길을 간다. 사업조직의 굉장히 높은 의사결정자들도 이렇게 사는 사람이 많고, 거대 펀드들의 펀드 매니저들도 이런 사람이 부지기수이니, 혹자는 여자친구를 사귈 때도 주위 사람들의 의견에 눈치를 보기도 하고, 학원을 가고 말고에도 주위 이야기에 흔들리고 눈치를 본다.
결혼도 마찬가지로 누가 반대하든 내 심기가 분명하면 주위에서 축하해줄 일이다. 내가 흔들리면 주위에서도 덩달아 반대할 것이다. 덩달아 반대하기 시작하면 오히려 향후에 비판받고 비아냥 당할 여지가 더 열리는 것이다. 주위에 의견을 묻는 것은 좋지만 결국 모든 중요한 의사결정은 고독한 것이고, 결론은 단호하게 내려야 한다. 혼자 고독하게 책임져야 하는 게 인생의 결과가 아닌가.
아이러니하게도, 내가 틀린 일은 결국 나도 별로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옳은 결정들이 나의 정체성을 빚어줄 것이다. 주위의 시선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질 수 있는지가 ‘독립적 판단력’의 요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