같은 스승을 만나도 어느 날은 ‘고민을 더 해봐라’는 이야기를 듣고 어느 날은 ‘일단 행동해라’는 가르침을 들을 수도 있다.
두 가지 지침 다 많은 이들에게 성공의 열쇠가 되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두 방향 다 수많은 실패자를 낳기도 하였다. 생각해 보건대, 고민을 하지도 않고 행동하지도 않는 사람은 매우 소수다. 모든 것이 그러하듯, 결국은 그 둘 간의 균형, 둘 간의 비율을 이해하는 것이 중요하고, 그러기 위해 둘 간의 관계성을 곱씹어볼 필요가 있다.
우리는 왜 생각을 할까? 어느 뇌과학자는 우리가 ‘생각을 멈추기 위해’ 생각을 한다고도 한다. 고민을 많이 해서 해결방법을 찾으면, 그 이후에는 요령이 몸에 배여 자동으로 그 행동을 반복할 수 있다. 일종의 오토 파일럿 모드로 무의식적인 숙달이 된다.
늘 다니는 길을 걷거나 운전하는 것은 우리의 의식적 노력이 거의 필요하지 않다. 어떨 때는 출근길을 어떻게 걸어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을 때도 있다. 그러나 처음 가는 길 위에서는 많은 집중력이 필요하고, 그만큼 시간이 느리게 흐르기도 한다. 오토 파일럿의 규칙을 만들어가는 고된 과정인 것이다.
우리가 생각을 하는 이유는 어쩌면 그런 오토 파일럿을 가능케 하기 위해서일지 모른다. 따지고 보면 사람의 뇌는 생각을 하는데 엄청난 에너지를 소모한다. 우리가 의식적으로 문제 해결을 하는데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이 바로 이후에 같은 문제에 대해 에너지를 쓰지 않기 위해서라는 것. 나름 설득력이 있다.
사실 사업의 조직도 마찬가지 아니겠는가. 전략기획팀에서 어려운 의사결정을 하면 생산 현장에서는 그것을 자동화한다. 자동화는 어렵지만 자동화가 이뤄진 후에는 운영에 대한 고민을 덜게 된다.
세상에서 제일 불행한 구간은 생각만 많고 행동할 거리가 없을 때이다. 취업이나 결혼 같이 어려운 문제를 풀기 위해 고민을 하는데 정작 행동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을 때, 생각 속에 잠겨 엄청난 무기력증을 느낀다.
이럴 땐 어쩌면 무엇 하나라도 생각의 고리를 풀기 위해 행동을 해보는 것이 좋을 수 있다.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것, 매일 어느 정도 운동을 하거나 일을 하거나 공부를 하는 것을 반복하면 무의식의 오토 파일럿이 비로소 기능을 하기 시작한다. 그러면 거기서 얻는 지혜들을 모아 조금씩 더 높은 단위의 고민을 구체적으로 해나갈 수 있을 때가 있다. 이럴 땐 분명 생각을 조금 줄일 필요가 있다.
반면 또 하나의 불행한 구간은 모든 것이 오토 파일럿이 되었는데 아무것도 생각할 거리가 없을 때이다. 이것이 어쩌면 혹자에게는 평온함이고 안정감이고 행복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뇌는 한 가지 고민을 해결하고 생각을 멈추면, 다음 고민을 또 찾고 싶은 법이 아닐까. 어쨌든 뇌란 계속 생각을 하기 위해 존재하는 장기이니까. 그래서 아무런 의식적 생각의 필요성이 없어지면 뇌는 퇴화하고, 시간은 오토 파일럿 모드처럼 아무런 관념 없이 흘러간다. 그렇게 오 년이 흐르기도 하고 십 년이 흐르기도 하고, 죽을 때까지 흐르기도 하는 것 같다. 다시 커다란 고민 앞에 놓이는 그 순간까지, 우리의 의식은 멈춰버리는 것이다. 그것이 몸의 행복일진 몰라도, 정신의 행복인지는 알 수 없다.
그럴 땐 생각할 거리가 필요하다. 더 높은 단계의 오토 파일럿을 위해 새로운 시도, 새로운 배움을 갖춰야 한다. 내가 하는 것이 손에 익다 해서 그것이 정답은 아니다. 생각을 안 해도 되는 달콤함이 나를, 그리고 우리를 협소한 틀 안에서 사고하게 만든다. 현재의 오토 파일럿에 인생 전체가 잠식되는 과정을 막아야 한다. 익숙한 것을 경계할 필요는 분명히 있다.
정답은 없을 것이다. 생각과 행동, 누구나 자신에게 맞는 그 둘 간의 적절한 비율이 있을 것이다. 오토 파일럿과 매뉴얼 파일럿 사이에서 부단히 오가자. 낯익은 것과 낯선 것을 충분히 조화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