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우더라도, 아무리 화가 나는 일이 있더라도 남편 아침밥은 꼭 챙겨주겠습니다.”
결혼식장에서 신부가 서로에 대한 맹세를 낭독하는 걸 들었다. 그 대목에서 사람들은 웃으며 박수 쳤지만 나는 얼굴이 굳어졌다.
머릿속에 여러 질문이 이어졌다. ‘맞벌이를 하는데 왜 여자만 남편 아침밥을 꼭 챙겨주어야 하지?’ ‘어째서 무슨 일이 있더라도 해야 하는 1순위가 밥 차려주는 일이 되어야 하지?’ 반면 신랑은 그런 맹세를 하지 않았다.
알고 있다. 내가 아는 그 신부는 선량하고 다정한 사람이다. 그는 그저 사랑하는 남편을 잘 챙겨주겠다는 순수한 마음으로 그런 말을 했을 것이다. 그 남편도 전부터 봐왔다. 그 이야길 들으며 화사하게 웃고 있던 남편도 특별히 가부장적인 사람은 아니다.
같은 공간에서 고개를 끄덕이는 양가 부모님도, 박수 치는 하객들도 ‘좋은 마음’으로 따스하게 생각했을 것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화목하고 원만한 가정은 대개 그런 모습이었으니까.
하지만 ‘지옥으로 가는 길은 선의로 가득 차 있다’는 말처럼 일상에서 일어나는 부조리는 대부분 이런 식이다. 평범한 사람들이 남들이 하는 걸 보고 배운 대로, 좋은 의도로, 사람을 차별하고 편견을 갖고 악습을 답습한다.
가정폭력 같은 범죄는 피해자와 가해자가 명확해 문제의식이 쉽게 공유되어 해결방법을 공동체가 함께 찾아 나가지만, 남녀차별 같은 이슈는 ‘전통’ ‘의례’ 같은 미명하에 약자의 희생과 평범한 사람들의 방관을 먹이로 일상에 깊고 치밀하게 뿌리내린다.
‘극사실주의 웹툰’이라는 별명을 가진 〈며느라기〉는 갓 결혼한 주인공 민사린을 주인공으로 하여 남편 무구영과 시댁을 배경으로 일어나는 일상을 그린다. 이들은 서로를 챙기고 걱정하며 각자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한다. 겉으로 보기에 이 가족은 별문제가 없어 보인다.
하지만 그 결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불합리가 곳곳에 곰팡이처럼 슬어 있다. 며느리 민사린은 찬밥을 먹고, 잔반을 ‘먹어치우며’ 남편 아침밥을 차려 줘야 하니 출장을 안 가면 안 되겠냐는 질문을 시어머니에게 받고, 술을 마시는 남자들 옆에서 제사 준비 내내 부엌을 떠나지 못한다.
시어머니는 민사린을 미워해서가 아니라 자신도 그런 삶을 살아왔기에 이런 풍경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또 남편 무구영은 집안에 분란을 일으키지 않고 부모님이 좋아하는 모습을 보길 원하는, 그러기 위해선 어느 정도 아내가 희생하기를 바라는 한국의 ‘평범한’ 남자일 뿐이다.
웹툰 〈며느라기〉는 이런 현상이 문제라고 주장하거나 선과 악을 대비하여 악인을 비난하는 방식으로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는 다만 어디에나 있을 법한 일상의 장면을 뚝 떼어다가 보여줄 뿐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러한 가정 내 만연한 차별의 문제는 이 세상의 시스템 속에서 자기의 ‘역할’에만 충실했던 사람들이 만들어내는 비극일 뿐이니까.
독자들은 민사린의 일상에서 자신의 모습을 발견하고, 무언가 이상한 점을 찾아낸다. 그리고 이건 아닌 것 같다고 이야기하기 시작한다. 그저 살아가는 게 아니라 잘 살기 위해선 ‘원래 그런 것’들에 질문을 던져야 한다는 걸 깨닫는 것이다.
“남편에게 아침밥 잘 차려주시나요?” 같은 질문을 받을 때 우선 나는 미소 짓는다. 그의 의도를 안다. 나쁜 마음으로 내게 질문하지 않았다.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음을 모르는 그를 공격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내가 이 질문을 피하거나 그의 기대에 부응하고자 ‘그렇다’고 한다면 그는 다른 곳에 가서도 비슷한 질문을 할 것이다. 때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한다.
“저는 가정부 되려고 결혼한 건 아니어서요. 그리고 남편도 딱히 아침밥 때문에 저와 결혼한 건 아닐 거예요~”
원문: 정문정의 브런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