Question
얼마 전 사장님께서 모 대학 교수님 강의를 듣고 오시더니 “상향식 평가 시스템이 필요하다”면서 이를 당장 도입할 것을 지시하셨습니다. 그동안 사내에서 상향식 평가의 필요성에 대해서 여러 차례를 보고를 드렸는데 그때마다 “아직은 시기상조다” 또는 “기업문화에 맞지 않는다”면서 반대를 해오시다가 대학교수님 강의 한번 듣고 나서 입장이 180도 바뀌신 거죠.
이런 적이 한두 번이 아닙니다. 사내 의견은 잘 귀담아듣지 않으시고 외부 전문가 의견이라면 사족을 못 쓰십니다. 그래도 회사 사정을 가장 잘 아는 사람이 회사 직원들 아닌가요? 왜 회사 직원들 놔두고 외부 전문가 의견만 귀담아들으실까요?
Answer
우리나라 속담에 ‘남의 떡이 더 커 보인다’는 말이 있습니다. 서양에도 비슷한 표현이 있죠. 영어로 ‘The grass is greener on the other side of the fence’로, 의역하면 ‘옆집 잔디가 더 푸르게 보인다’로 해석됩니다.
이 속담은 틀린 말이 아닌 것 같습니다. 사장님뿐만 아니라 임원이나 팀장님 중에는 이 속담처럼 생각하시고 행동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습니다. 팀원들이 정말 열심히 고민해서 제안을 올리면 심드렁하시다가 무슨 조찬모임에서 만난 교수님 말씀 한마디에 회사 방침을 바꾸시는 경우가 종종 있죠. 교수님 말씀이 사실 팀원들의 제안과 별반 다를 바 없는데 말이죠.
한 마디로 똑같은 아이디어도 자기 직원들이 얘기하면 평가절하하고 외부의 속칭 ‘전문가’라고 하시는 분들이 얘기하면 바로 ‘오케이’하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저 또한 질문하신 분과 비슷한 경험을 당한 적이 있습니다. 옆 팀의 모 팀장님께서는 제게 종종 의견을 구하곤 하셨죠. 저는 그때마다 정말 저희 팀 일인 양 고민해서 성심성의껏 말씀드렸습니다. 그러다가 이듬해 제가 그 팀장님 팀으로 발령받았습니다. 저는 속으로 쾌재를 불렀죠. 마음 맞는 팀장님이랑 일할 수 있게 되었다고요.
그런데 웬걸, 그 팀장님은 제가 자기 팀으로 들어오자 더 이상 제 견해를 묻지 않았습니다. 그다음부터는 이전에 저랑 같은 팀에서 일하던 제 후배에게 의견을 구하셨죠. 그리고 저는 무슨 말을 할 때마다 쫑크를 주셨습니다.
컨설턴트 출신 분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있습니다. 컨설턴트 시절 자기 의견을 경청하시던 사장님께서 권유해서 그 회사로 이직했더니 그다음부터는 의견은 묻지 않고 일만 시키더라는 내용입니다.
사장님들은 왜 다른 회사 사람 얘기는 잘 들어주면서 막상 자기 회사 직원 얘기는 안 들어주는 걸까요? 우리 팀장님은 왜 옆의 팀원 얘기는 귀담아들으시면서 자기 팀원의 의견은 무시하는 걸까요? 이런 분들은 왜 남의 떡만 더 크다고 생각하시는 걸까요? 사실 우리 회사 직원, 우리 팀 팀원이 가장 전문가이고 또 고민도 가장 많이 했을 텐데 말이죠. 이에 대한 제 ‘51% 정답’을 말씀드립니다.
1. ‘우리 직원은 나와 생각이 비슷하기 때문에 아무래도 다른 회사 사람 의견을 듣는 게 좋겠다’
미국 스탠퍼드 대학의 사회학 교수인 마크 그라노베터(Mark Granovetter)는 1973년에 발표한 「약한 연결의 힘'(The Strength of Weak Ties)」이라는 논문에서 ‘사람들은 가까운 친구들(강한 연결)보다는 별로 친하지 않은 지인들(약한 연결)로부터 도움을 받는 경우가 많다’라고 주장합니다. 가령 직장을 소개받거나, 새로운 정보를 습득할 때에 가족이나 친한 친구보다는 아주 가끔씩 연락하는 지인들의 도움을 받는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라노베터 교수는 그 이유에 대해서 가족이나 친지는 우리와 비슷한 환경에서 비슷한 정보를 얻고 비슷한 판단을 하기 때문에 우리와 많은 것들이 중복되지만, 별로 친하지 않은 지인들은 우리와 다른 환경에서 다른 정보를 접하고 다른 판단을 하기 때문에 우리와 겹치는 부분이 많지 않아서 새로운 지식을 제공하고 전혀 생각지 않았던 도움을 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합니다.
마찬가지 이유로 우리의 상사들도 ‘강한 연결’에 속하는 자기 직원보다는 ‘약한 연결’에 속하는 외부 전문가 또는 다른 팀원들의 의견을 더 경청하는 것이 아닐까요? 아무래도 자기와 동고동락을 많이 해서 척하면 척하고 알만큼 뜻이 잘 통하는 팀원들보다는 조금은 서먹서먹하지만 자기와 다른 생각을 갖고 있는 옆의 팀 김과장 얘기를 한번 들어보려는 깊은 뜻이 있었던 것은 아닐까요? 아니면 우리 팀장님이 주경야독하시는 분이라서 마크 그라노베 머시기 하는 분의 논문을 원문으로 읽으시고 그렇게 하셨을 수도 있고요.
예? 팀장님과 동고동락한 적 없다고요? 팀장님 말씀 도통 못 알아듣겠다고요? 팀장님이 책과 담쌓으셨다고요?
글쎄요. 앞의 설명이 맞을 가능성도 전혀 없지는 않겠지만 이것만 갖고는 왠지 설득력이 많이 떨어지는 것 같습니다. 뭔가 다른 이유가 더 있지 않을까요?
2. “우리 직원들은 이해관계 때문에 객관적인 입장에서 얘기하지 않을 것 같아서…”
상사 중에는 의심이 많은 분도 있습니다. 물론 개중에는 타당한 의심도 있겠죠. 하지만 어떤 경우에는 지나친 의심 때문에 사내 분란을 일으키고 좋은 사업 기회를 놓칠 수도 있습니다.
팀장님들 중에는 팀원들이 어떤 의견을 내면 ‘무슨 꿍꿍이 저의가 있는 것 아니야?’라고 의심하시는 분도 계십니다. 심지어 팀원들의 사심 없는 의견에 대해서조차 무조건 색안경을 끼고 바라보시는 분들도 있죠. 이런 분들은 팀원들의 좋은 제안에 대해서도 ‘숨어 있는 의도가 있을 수 있다’는 이유로 쉽게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반면 외부 사람들의 의견에 대해서는 ‘이해관계가 얽혀 있지 않다’는 이유로 더 신뢰를 하죠.
이런 분들이 많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20년 직장생활을 하면서 몇 분 봤습니다. 대개 정치적인 성향이 강한 분들 중에 많죠. 자기가 저의를 갖고 행동을 하니까 다른 사람들도 그럴 것이라고 생각하며 정말 말도 안 되는 소설을 쓰시는 분도 경험했습니다. 이런 분이랑 같이 일하면 골치 아프죠.
우리 회사 직원들은 저의를 갖고 얘기하고 다른 회사 직원들은 항상 객관적인 입장에서 얘기할까요? 그건 모를 일입니다. 자기 회사 직원, 자기 팀원을 믿지 않고 타사 직원을 더 믿는다면 과연 조직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을까요? 물론 이런 상사가 많지는 않겠죠.
3. “우리 팀원들은 나보다 못하기 때문에 생각해오지 못할 거야.”
‘직급과 지식은 비례한다’ 또는 ‘비례해야 한다’라고 굳게 믿는 분들도 있습니다. 이런 팀장님은 팀원이 자기보다 더 똑똑한 얘기를 하면 기분 나빠합니다.
“그렇게 똑똑하면 네가 팀장 해라!”
이런 분들은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은 나보다 지식수준이나 지혜도 떨어질 것이기 때문에 그런 사람 얘기는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이런 분들이 자주 하는 얘기 있죠. “그건 네가 몰라서 그래.”
그런데 이런 분들이 또 자기 상사 말씀은 복음처럼 받아들입니다. 직급이 높기 때문에 그만큼 지적 능력도 뛰어날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죠. 또 이런 분들은 외부 사람 의견도 골라가며 받아들입니다. 타이틀이 중요하죠. ‘상위권 대학교 교수’ 또는 ‘글로벌 컨설팅사 디렉터급’ 또는 ‘자기 회사보다 더 큰 회사의 고위 임원’이 아니면 아무리 좋은 의견도 묵살합니다.
모 그룹에서는 자기보다 재계 순위가 낮은 그룹에 속하는 회사는 거들떠보지도 않는 ‘풍습’이 있다고 합니다. 외부 컨설팅사에서 만약 자기보다 재계 순위가 낮은 그룹의 사례를 ‘베스트 프랙티스’로 제시하면 “그 회사는 우리 경쟁상대가 아닙니다”라고 단박에 무시한다고 하네요.
공자님께서는 ‘삼인행 필유아사’라는 말씀을 하셨다죠. 논어의 「술이편」에 나오는 말인데 ‘세 사람이 같이 가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즉 ‘어디라도 자신이 본받을 만한 것은 있다’는 뜻입니다. 한번 새겨들으심이 어떠실지?
4. “직원은 상사에게 제안을 하는 사람이 아냐. 상사의 지시를 수행하는 사람이지.”
직원은 상사에게 제안을 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저 상사의 지시를 착실히 수행하는 사람일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아직도 여전히 많습니다. 이러한 분들은 직원이 상사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안하거나 상사의 기존 생각에 반하는 자신의 의견을 제안하면 주제넘은 행동 또는 도가 지나친 행위라고 생각하며 언짢아하죠.
개중 노련하신 분들은 자기도 그전부터 알고 있었다는 듯이 “어, 나도 알아” 하시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한 반응을 보인 뒤 나중에 그 아이디어를 마치 자기 것인 양 여기저기 떠벌리고 다닙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분들은 그냥 노골적으로 불쾌함을 표시하죠.
“그건 네가 참견할 내용은 아닌 것 같은데…”
5. “우리 팀원 의견은 언제든 들을 수 있으니까 굳이 지금 의견을 구할 필요가 없지.”
처음 보는 사람 또는 그다지 가깝지 않은 사람에 대해서는 깍듯이 예의를 갖춰 대하지만, 자신의 배우자 또는 친가족은 조금 함부로 대하시는 분들이 있습니다. ‘내 배우자와 친가족은 항상 내 곁에 있을 것이기 때문에 그렇게 대해도 괜찮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죠. 한 마디로 우리 주변의 맑은 공기와 깨끗한 물의 소중함을 모르시는 분들입니다.
이와 비슷한 논리로 ‘우리 팀원 의견은 지금이 아니라 다음에도 들을 수 있으니까 굳이 지금 의견을 경청할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그냥 나중에 시간 남을 때, 한가할 때 “너는 어떻게 생각하냐?”라고 물어보면 되니까 굳이 지금 귀담아들을 필요가 없다는 논리죠. 하지만 팀원들을 이런 식으로 대하면 나중이 되어도 자기 의견을 얘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6. “우리 팀원들이 생각하지 못했던 바를 얘기해서 팀원들의 기를 죽이고 상사로서의 권위를 세워야지.”
팀 운영을 팀원들과의 ‘기싸움’으로 생각하시는 분들도 있습니다. 팀원의 의견이 채택되면 왠지 기싸움에서 밀릴 수 있다는 생각 때문에 팀원 의견은 아무리 좋은 의견이라도 쉽게 채택하지 못하시죠. 그래서 가끔씩은 외부 사람들로부터 아이디어를 얻은 뒤 그것을 마치 대단한 고생을 해서 간신히 구한 위대한 고견인 것처럼 포장해서 팀원들에게 얘기해줍니다.
때로는 팀원들과의 기싸움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팀원들의 집단지성을 뛰어넘는 팀장만의 기발한 아이디어가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팀장을 ‘리스펙트’하지 않는 조금은 당돌한 팀원들도 있죠. 그래서 외부 의견이 필요할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때로는 팀원들에게 의견을 구하고 그중 참신한 아이디어를 채택해줄 필요도 있습니다. 팀원들은 자신의 의견을 존중해주는 팀장을 가장 ‘리스펙트’하기 때문이죠.
7. “팀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왠지 상사로서 가오가 상할 것 같아서…”
전혀 논리적으로 설명할 수는 없지만 개중에는 ‘팀원의 제안을 받아들이면 가오 상한다’라고 생각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그냥 자존심이 용납하지 않는 것이죠. 나보다 직급이 낮은 사람의 의견을 수용했다는 것을.
이런 분들 중에는 성격이 꼬인 분들이 많습니다. 팀원들이 무슨 말이라도 할라치면 “쥐뿔도 모르면서…”와 비슷한 류의 말씀을 자동반사적으로 하십니다. 그런데 팀원의 주장이 나중에 맞는 얘기로 판명되어서 이를 시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는 경우도 종종 있죠. 하지만 이때에도 꼭 토를 답니다. 이렇게요.
“가만 생각해 보니 네 말도 일리는 있더라. 그런데 여전히 이런 문제점은 있어.”
심지어 이렇게 타박하는 분도 봤습니다.
“네가 그따위로 두서없이 얘기하니까 사람들이 네 말을 못 알아듣는 거야.”
이런 분이 내 상사라면… 생각만 해도 끔찍하지 않으세요? 이런 분과 오래 일하면 열심히 일할 동기를 잃게 됩니다. 그냥 시키는 일 열심히 하는 로봇이 되는 거죠.
지금까지 상사의 입장에서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그럼 이제는 그러한 관점을 갖고 계시는 상사분들께 제안을 드리겠습니다.
제안
사장님, 본부장님, 그리고 팀장님. 지금부터 외부 의견만 구하지 마시고 직원들의 의견도 한 번 구해보시고 받아들여 보십시오. 외부 전문가만 전문가가 아닙니다. 우리 회사 직원이 그래도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가장 절실합니다. 혹시 알아요? 정말 기발한 아이디어를 얻을 수 있을지.
컨설턴트 출신 분들이 자주 하는 얘기가 또 하나 있습니다.
“대부분의 답은 이미 내부에 있다. 그런데 그 답이 경영진에게까지는 잘 전달되지 않는다.”
결국 컨설턴트의 역할은 ‘내부 직원들로부터 구한 답을 경영진이 잘 받아들일 수 있도록 현란한 미사여구로 화려하게 포장한 뒤 거기에 컨설팅 회사 브랜드의 힘을 빌려 약간의 권위를 얹어주는 것에 불과하다’라는 극단적인 주장도 있습니다.
물론 직원들의 아이디어가 많이 부족할 수는 있습니다. 아직 직원들이 조리 있게 얘기하는 훈련이 덜 되어 있을 수도 있습니다. 아니면 직원들이 자신의 의견을 쉽게 얘기하지 않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이러한 직원들을 변화시키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상사의 노력이 필요합니다. 많이 고민하도록 해야 좋은 아이디어가 나옵니다. 많이 의견을 물어야 조리 있게 얘기하는 역량도 키울 수 있습니다. 그리고 많이 신뢰를 줘야 상사를 믿고 충언을 할 수 있습니다.
‘남의 떡이 커 보여도 내 입맛엔 내 떡이 최고다’라는 격언을 들어보셨나요? 아마 못 들어 보셨을 겁니다. 제가 방금 전에 만들어낸 말이니까요.
아무리 남의 떡이 커 보여도 내 입맛에는 내 떡이 최고입니다. 마찬가지로 내 입맛엔 내 배우자가 해준 요리가 최고입니다. 내 배우자는 내 입맛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오랫동안 고민을 해왔기 때문에 내가 가장 좋아하는 요리를 만들 수 있습니다. 내가 중간에 간을 보면서 “조금 더 달면 좋겠어” 또는 “후추 더 치자”와 같은 피드백을 줄 수도 있으니까 나에게 최적화된 요리를 만들 수도 있습니다.
네? 제 제안을 바로 받아들이시겠다고요? 아니, 왜 갑자기 생각이 바뀌셨나요? 생각이 바뀐 게 아니라고요? 저는 외부 사람이기 때문에 제 제안을 받아들이셔도 가오가 상하시지 않는다고요? 저는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아무 상관이 없다고요? 저 같은 팀원 두지 않아서 참 다행이라고요?
Key Takeaways
- 사장님이나 팀장님 중에는 똑같은 아이디어도 자기 직원들이 얘기하면 평가절하하고 외부 전문가가 얘기하면 바로 받아들이시는 분들이 있다.
- 이러한 분들에게는 남의 떡이 더 커 보일지 몰라도 많은 경우 내 입맛에는 내 떡이 최고다.
- 외부 의견만 구하지 말고 내부 직원들의 의견도 경청해라. 외부 전문가만 전문가가 아니다. 우리 회사 직원이 그래도 가장 많이 고민하고 가장 절실하다.
원문: 찰리브라운의 브런치